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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라바스티 성지
‘쉬라바스티’는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에 있는 도시로 현재의 지명이고, 부처님 당시에는 사왓티 또는 사위성이라고 했던 곳입니다. 쉬라바스티는 고대 코살라국의 수도로 부처님 당시에는 상당히 번성한 도시였고, 빠세나디왕이 다스리던 곳입니다.
쉬라바스티 성지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후 가장 오랫동안 머무르시며 중생을 교화하신 곳으로, 부처님께서는 45년간 전법하시는 동안 24~25회의 우안거를 이곳에서 보내셨다고 합니다.
1. 쉬라바스티의 수행처
1) 기원정사
‘쉬라바스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기원정사입니다.
기원정사는 부처님께서 가장 많은 우안거를 보내신 곳인데, 부처님께서 오랫동안 머무셨던 만큼 금강경을 비롯한 수많은 경전이 설해졌습니다. 경전을 펼치면 자주 나오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기원정사)에 계실때…"라는 구절이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합니다.
기원정사(祇園精舍)는 부처님의 열렬한 재가제자인 수닷타장자가 마련한 수행처인데요, 수닷타는 이곳 사위성의 상인이었는데 라즈기르(왕사성)에 있는 처남 집에 갔다가 부처님을 뵙게 되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자신이 사는 사위성에 부처님과 수행자들이 편안하게 수행할 수 있는 도량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가장 적당한 곳으로 기타(祇陀, 제따)태자의 숲을 사려고 했는데 팔 생각이 없던 기타태자는 농담 삼아 "땅을 황금으로 덮기라도 하면 모를까."고 말했습니다. 수닷타는 실제로 황금을 가져와 땅의 일부를 덮었고, 그 마음에 감격한 기타태자도 건립에 참여하여 자신의 동산을 보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기타태자의 동산(기원)과 수닷타가 만든 도량(정사)이 합쳐진 '기원정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기원정사는 기수급고독원의 약칭이기도 한데, 사위성 사람들은 수닷타를 고독한 이들에게 물자를 공급해주는 사람이라고 해서 급고독장자(아나타핀디카)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수(祇樹, 기타태자의 숲)와 급고독원(급고독장자가 보시한 원림)을 합쳐서 ‘기수급고독원’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세워진 기원정사는 부처님과 출가수행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기원정사에는 출가 수행자들뿐만 아니라 왕과 장자, 바라문과 상인, 평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의 신분이나 직업, 사회적 지위와 성별에 따라 차별하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근기와 상황에 맞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자비와 지혜의 가르침을 전하셨습니다.
또, 기원정사는 부처님께서 오랫동안 머물며 함께 생활했던 곳으로 단순히 법문을 설하는 것만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시며, 때로는 직접 행동으로 본보기를 보여주심으로써 삶 자체가 법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기원정사는 부처님과 제자들, 그리고 재가신자들이 함께 법을 배우고 실천했던 공간이었습니다. 재가신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존경하며 수행자들에게 음식과 의복, 거처 등을 보시했고, 기원정사는 이러한 재가신자들의 적극적인 후원 속에서 오랜 세월 불교 교화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원정사는 단순히 ‘부처님께서 머무셨던 곳’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곳은 부처님과 출가 수행자, 그리고 재가신자들이 서로 의지하고 돕는 관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며 배우고 수행했던 불교공동체로, 부처님의 법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성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동원정사(뿝바라마)
비사카(팔리어는 위사카)가 기증했는데, 그녀는 당시 신심 깊은 여성 재가신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 실천했으며, 승가가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필요한 물품과 생활의 편의를 세심하게 살폈던 인물로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3) 라자까라마
라자까라마는 ‘왕의 동산’, 또는 ‘왕원’이라는 뜻으로 빠세나디왕이 승가를 위해 마련한 수행처입니다. 빠세나디왕은 처음부터 부처님을 신뢰했던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가르침을 들으면서 점차 부처님의 지혜와 인품에 감복하여 부처님께 귀의하였고, 수행처뿐만 아니라 부처님과 수행자들이 수행하고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적극적으로 후원하였습니다.
2. 부처님의 가르침
1) 보시에 대한 가르침
쉬라바스티에서 수행처를 보시한 재가신자들은 신분도, 성별도, 사회적 지위도 서로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신만 간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만날 수 있도록 자신의 것을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보시를 매우 소중하게 여기시며 칭찬하시면서도, 보시의 크기보다 보시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많이 베풀었다는 자만이나 명예를 얻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탐욕과 집착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청정한 마음으로 베푸는 것이 참된 보시로 그것이 자신의 마음을 맑게 하고 공덕을 쌓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시는 단순히 재물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는 집착을 내려놓고 자비를 실천하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쉬라바스티는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귀의한 재가신자들이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보시하며 부처님과 승가를 외호했던 곳입니다. 보시가 활발했던 만큼 부처님께서는 참된 보시에 대해서 강조하셨습니다.
2) 기원정사에서의 부처님의 가르침
(1) 보시의 가르침 : 기원정사는 부호 수닷타가 황금으로 땅을 덮어 마련했는데, 부처님은 재물의 많고 적음보다 청정한 마음으로 베푸는 보시가 가장 큰 공덕임을 가르치셨습니다.
(2) 분노를 자비로 다스리는 가르침 : "원한은 원한으로 풀리지 않고 오직 자비로써 풀린다."라는 가르침을 여러 차례 설하시며 미움보다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셨습니다.
(3) 사념처 수행 : 몸, 느낌, 마음, 법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수행법인 사념처를 자세히 설하셨는데, 깨달음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강조하셨습니다.
(4) 자애(Metta) 수행 : 모든 생명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자애심을 닦도록 가르치셨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널리 독송되는 자애경의 바탕이 됩니다.
(5) 무상(無常)의 가르침 : 모든 것은 변하며, 집착이 괴로움의 원인임을 반복해서 설하시며 무상과 무아를 깊이 깨닫도록 이끄셨습니다.
(6) 수행자의 생활 : 승가의 계율과 수행법을 정비하시고, 수행자는 욕심을 줄이고 서로 화합하며 살아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3. 부처님의 교화 사례
1) 앙굴리마라의 참회
앙굴리마라는 원래 총명하고 성실한 젊은 수행자 아힘사까였는데, 전승에 따르면 음모로 스승의 의심을 사게 되어 사람 백 명을 죽여 그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라는 잘못된 가르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스승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으로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한 그는 무서운 살인자가 되어 앙굴리마라(손가락 목걸이를 한 사람)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무서워서 도망을 갔고 어머니도 그를 막지 못했는데, 부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않고 직접 찾아가셨습니다.
앙굴리마라보다 계속 한걸음 앞서가는 부처님께 앙굴리마라가 "멈춰라!"라고 외치자, 부처님은 "나는 이미 멈추었는데, 그대는 아직도 멈추지 못하는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해치려는 마음, 악업, 삼악도의 고통, 번뇌 망상을 멈추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에 크게 깨달은 앙굴리마라는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었고,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잘못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참아내고 수행해서 마침내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진심으로 참회하고 수행하면 누구나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며,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2) 키사 고타미의 깨달음
외아들을 잃은 키사 고타미는 슬픔에 미쳐서 아이를 살려 달라고 부처님께 찾아왔습니다.
부처님은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집에서 겨자씨를 한 줌 구해 오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집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죽음을 겪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착을 내려놓았으며,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이 일화를 통해 부처님은 죽음은 모든 존재가 겪는 자연스러운 진리이며, 집착을 내려놓을 때 괴로움도 사라진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3)쌍신변(雙神變)
쉬라바스티는 부처님께서 외도들의 교만을 꺾고 중생들의 믿음을 일으키기 위해 쌍신변을 보이신 곳으로도 전해집니다. 부처님께서 몸의 한쪽에서는 불을, 다른 쪽에서는 물을 내뿜는 모습을 번갈아 나타내셨다는 이야기인데, 이 사건 때문에 이곳은 고대부터 사위성의 큰 기적으로 기억되어 왔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처님께서 신통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도록 교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점입니다.
4. 쉬라바스티의 유적지
쉬라바스티의 유적지는 크게 사헤트와 마헤트로 나뉩니다.
1) 사헤트(Saheth) : 기원정사. 부처님께서 실제로 머물면서 수행하고 설법하셨던 공간
(1) 간다쿠티(Gandhakuti, 香室) :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머무실 때 사용하셨다고 전해지는 거처로, 현재는 낮은 벽과 기단 형태의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순례자들이 특히 중요하게 참배하는 곳입니다.
(2) 코삼비쿠티(Kosambakuti) : 부처님의 명상처로 전해지는 곳입니다. 앞쪽에는 부처님께서 경행(經行), 즉 걸으면서 수행하셨다고 전해지는 경행터의 흔적도 있습니다.
(3) 아난다보리수(Ananda Bodhi Tree) : 부처님이 자리를 비우셨을 때 신도들이 예경할 수 있도록 아난다가 보리수 묘목을 심기를 청했고, 보드가야의 보리수에서 가져온 묘목을 심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현재 순례자들이 기원정사에서 매우 경건하게 참배하는 장소입니다.
2) 마헤트(Maheth) : 옛 사위성 도시
사헤트가 부처님의 수행과 설법의 공간이었다면, 마헤트는 부처님 당시 사위성이라는 도시 자체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거대한 성벽과 성문, 여러 유적이 발굴되어 당시 도시의 규모를 짐작하게 합니다.
(1) 수닷타 스투파(아나타핀디카 스투파) : 기원정사를 부처님께 보시한 급고독장자 수닷타(아나타핀디카)와 관련된 유적으로 전해집니다. 중국 순례자들의 기록에 따르면 그의 집터와 관련된 장소에 스투파가 세워졌다고 전합니다.
(2) 앙굴리마라 스투파 : 부처님을 만나 살인자의 삶을 버리고 출가하여 수행자가 된 앙굴리마라와 관련된 유적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이곳은 앙굴리마라의 장례와 관련된 장소로 여겨집니다.
3) 천불화현터
부처님께서 신통력을 나타내셨다고 전해지는 장소입니다. 불교 전승에 따르면 부처님께서는 쉬라바스티에서 외도들과의 논쟁이 있었을 때 여러 가지 신통변화를 나타내셨는데, 이곳은 수많은 부처님의 모습을 화현하셨다고 하여 ‘천불화현터'라고 부릅니다.
쉬라바스티는 화려한 기적의 장소라기보다, '법을 배우고 수행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성지'로 불립니다. 부처님께서 가장 오랫동안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시며 법을 설하고 자비와 지혜로 수행 공동체를 이끌어가신 삶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곳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가장 풍성하게 펼쳐진 성지고,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가 가장 깊이 스며있는 성지라고 하겠습니다.

첫댓글 기원정사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보더라도 부처님과 출가 수행자, 재가신자들이 함께 배우고 수행했던 불교공동체로서의 의미가 깊은 곳이군요.
정원보살님 ~ 좋은 자료 만드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단장님도 수고많으십니다.
ㅎ 덕분에 부처님에 대해 많이 공부하는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준비하다보니 인도 순례가 더 기대가 되네요~
부처님의 발자취를 마주할 그날을 법체에 새기며, 수많은 재가신자들이 법을 배우고 실천했던 쉬라바스타 기원정사의 환희 속에서 이번 순례가 진정한 내면의 깨어남으로 이어지기를 발원해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존경하며 수행을 후원했던 옛 신도들의 마음처럼, 든든한 길잡이를 마련해 주신 정원보살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_()_
귀한 자료 올려주신 정원보살님!
순례에 큰 도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