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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바위구멍연구모임 스크랩 인생길따라성혈여행 다섯번째나들이 (읍내동당산성혈~전민동김반신도비성혈)
안여종 추천 0 조회 74 13.12.04 16:0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인생길따라성혈(性穴)여행다섯번째나들이 (읍내동당산성혈~전민동김반신도비성혈)

 

어머니란 이름으로...

 

날짜:2013년 8월 28일 수요일 맑음

코스:법동소류지-회덕동사무소-숭현서원-우성이산성혈-화봉산장수바위성혈-화봉산-전민동김반신도비-화암네거리

시간: 약 6시간

 

오늘은 당산,우성이산,화봉산,김반신도비,성혈을 찾아 나서기로 했는데 어제 뜻밖에도 돌까 형님께서 전화가 왔다. 새로운 성혈을 발견 했다고 ...법동 소류지 근방에서 아~그러면 들렸다 가도 되겠구나 생각하고 집을 나선다. 대전역을 나와 신탄행 버스를 타고 동부경찰서 앞에 내려서니 8시30분 매봉초교와 고속도로 지하통로을 지나 올라가면 법동소류지,물이 많이 말라 볼품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운동을 나서고 있다. 소류지 우측으로 올라서고,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정자지나 화장실앞 위치에 바위2개가 나무을 가운데 두고 서있다. 그 곳에 성혈이 있단다.

 

 

성혈이 있는 바위

 

 

무수히 많은 성혈모습이 나타나 있는 밑부분 단면

 

 

그 바위위에 5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다.

 

 

발견당시 치성의 흔적으로 동전이 놓여져 있었다고

 

 

아직은 미등록된 성혈, 처음 발견자의 이름을 따 가칭 돌까마귀 성혈이라 칭해 둔다. 구멍을 만들기에 무척 불편한 바위 밑부분에 무수한 수의 구멍이 분포되어 있는데 자세히 보면 자연적인 구멍 형태의 바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문가의 판단에 가려 지겠지만..참 묘한 관계가 설정된 바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득 든다.자연적인 성혈에 인공적으로 5개의 성혈을 가미해 서로 연관 지어지게 만든 성혈바위는 또 처음 보는 것이다. 기도나 소원의 성취도을 최대한 극대화 시키는 효과를 노린 성혈로 보여지는데 이것은 어디까지 느낌표 개인의 소견이므로 섣부른 판단은 금물임을 밝혀둔다. 참 귀한 성혈을 감상 할수 있음에 다시 한번 돌까 대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법동 소류지를 출발 동부평생 문화센터를 지나고 옥오재 건너 맞은편 골목길로 내려간다. 지금도 이런 골목이 남아 있나 싶을 정도로 옛 정취가 묻어나는 길이다. 일명 철도 굴다리를 서너개나 지나가야 하는 길, 그 끝지점에 읍내동 뒷골돌장승이 자리 잡고 있다.

 

 

읍내동 뒷골 돌장승

 

 

읍내동 뒷골 돌장승을 서너 발짝 내려 오면 비석군이 자리 잡고 있는 회덕 동사무소 이곳에서 가슴 찡한 어머니란 이야기로 성혈 여행을 시작 한다.

 

 

원촌 방향으로 이어진 대로 좌측에 읍내동 당아래 돌장승이 있다 음력정월 14일 저녁 거리제를 지내며 이 장승의 몸에 황토를 개어 바른다고 한다. 장승을 보고 있노라면 힘이  불끈 솟는 느낌이다. 애경산업 스파크 공장 맞은편 배배골 마을 뒷길 끝자락에 불망비가 있고 그 위쪽 배바위에 성혈이 있다.

 

 

아리랑로 89번길 끝자락 유진모터스 삼거리에 불망비가 있는데 자연바위를 깍아 비를 세웠다.  이 불망비 위쪽 바위에 성혈이 있다.

 

 

읍내동당산성혈- 이곳 맞은편은 나루터 이며 강물이 이 바위 밑으로 휘돌아 가는 형국이었으니 지금으로 말하면 참 조망 좋은 곳 이었단 말이죠..나루터에 돗배가 보이고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기다림의 장소로 사용했을 바위..

 

 

오늘 거쳐야 할 김반 신도비에 새겨진 성혈-이야기를 풀자면 구문몽의 작가 서포 김만중으로 부터 풀어야 될것 같다. 아버지는 김익겸,할아버지는 김반,때는 병자호란 시대 마침내 1637년 2월 22일 강화성이 함락되자 적에게 유린당하지 않고 충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아버님이 목숨을 끊는다. 이때 그의 어머니이자 서포 김만중의 할머니도 함께 목숨을 끊고 말았으니..아들이 지키고자 했던 그 길을 어머니란 이름 으로 그 충절을 이어 갔으니 그 어찌 위대 하지 않다 하리요..이 읍내동 당산성혈도 많은 어머니들이 이곳에서 귀한 자식,남편들을 보내고 맞이한 흔적이  이렇게 바위구멍으로 남은것은 아닌지...원촌교 건너 숭현서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원촌교를 지나며,갑천은 말이 없다.

 

 

숭현서원 을 둘러 보고 우성이산 성혈로 향한다.

 

 

대전 mbc방송국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진주강씨 가은제가 우성이산 들머리

 

 

이곳 부터 대덕사이언스길 시작이다. 20여분 올라 가면 대전시와 갑천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바위에 도착 하는데 이곳에 2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다.

 

 

우성이산 성혈-높지는 않지만 참 눈맛이 기가 막힌 곳이다. 멀리 대전시내가 펼쳐지고 눈 앞으론 장대한 갑천이 흐르고 뒤에는 병풍같은 우성이산이 둘러 쳐져 있는곳 시대가 변해 아파트라는 거대한 괴물이 온 시야를 가리고 버티고 서 있으니 그저 안타갑기 그지 없다.

 

 

23세의 젊은 나이에 나라을 위해 목숨마저 끊은 아들, 그 자식를 위해 목숨마져 버린 우리 어머니 ..그 숭고한 마음은 우리 모두 어머니도 같으리라 ..여기 2개의 성혈이 그 숭고함을 말없이 전해 주는것 같다. 화봉산 장수 바위 성혈로 향한다. 사이언스길을 따라 가면 된다.

 

 

우성이산 정상 도룡정을 지나 20 여분 걸어 내려 오면 양쪽으로 조망이 좋은 곳에 바위가 있고 이곳에 성혈이 있다. 좌측으론 계룡산이 우측으론 계족산이 한눈에 들어 오는 조망이 시원한 곳이다. 지금은 나무숲에 가려 조망이 트이지 않지만 가을을 넘어서면 양쪽 조망을 한눈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해돋는 계족산,노을로 멋진 계룡산이 연출 되는 곳이다. 좌측 평편바위와 정면 바위에 성혈이 있다.

 

 

서포 김만중의 아버님이 정축노변때 강화도에서 자분순절 했을때 나이가 23세의 젊은 나이, 그 당시 어머님은 21세에 그만 청상과부가 되고 말았다.

 

 

 

이 화봉산 장수바위 성혈도 어찌 기쁜 이야기만 담겨 있으리..서포의 할머니.아버지.어머니 이야기와 같은 안타가운 사연도 담겨 있으리라. 

 

 

화봉산 장수바위 성혈을 뒤로 화봉산 정상에서 잠시 물한모금 마시고 사이언스길을 제껴두고 전민동으로 내려 간다.

 

 

전민동으로 내려 오면서 우측 좁은 등로 따라 내려오니 오호~~바이오벤처타운, 정문을 나서니 우측으로 한의학연구원이다. 이곳이 김반 신도비가 있는 곳인데 정확히 내려온셈이다. 장님이 얼떨결에 문고리 잡은 격이랄까..건너편 김반신도비가 있는 곳으로 건너 간다.

 

 

찾아오는곳 설명을 하자면-전민동 네거리에서 대덕I.C 가는 길로 전민동 사무소 앞을 지나  전민제일교회뒷편 다시 제일교회 오른쪽에 정려각과 신도비가 있다.

 

 

 

서포 김만중의 할아버지 김반신도비, 위치는 모르겠지만 할머니 연산 서씨,아버지 김익겸 정려각이다.

 

 

<구운몽>을 지은 서포 김만중의 충효 소설비

 

 

 

김반신도비-사계 김장생의 아들이자 김집의 아우인 김반(1580-1640)은 인조(1623-1649)때의 충신이며 대학자이다. 예학의 종장이라 부르는 사계 선생의 아들로서 호는 허주. 정시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대사간에 이르렀으며, 세상을 떠나고나서는 영의정으로 벼슬이 높여졌다. 신도비의 글은 청음 김상헌이 짓고 글씨는 동춘 송준길 선생이 썼다.

 

 

 

-전민동 김반신도비 성혈-

이곳 신도비 좌측 산기슭에는 서포 김만중의 할아버지등 광산김씨 묘역이 있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묘 위치는 조상님의 산소가 위쪽에 있고 후손은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곳은 할아버지 김반의 묘가 아래에 있고 셋째 아들인 아버지의 묘가 그 위에 위치해 있다. 할아버님이 나라를 위해 23세의 나이에 먼저 순직한 아들의 공을 기리기 위해서 스스로 자신의 묘 위에다 아들의 묘자리를 잡아 놓았기 때문이란다.

 

 

 

1637년, 아버님이 정축노변때 강화도에서 자분순절때, 어머님은 21세 젊은 나이에 그만 청상과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역경을 헤치고 어머니는 당시 5세였던 형 김만기와 아직 뱃속에 있던 자기를 훌륭히 길러냈던 것이다. 

 

 

존경하는 할아버지는 젊은 아들을 잃어야 했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순직하고 어머니는 나이어린 나이에 청산과부가 되어 두 형제를 길러야 했다. 어찌 서포 김만중의 어머니만 그러 했겠는가 병자호란 뒤에는 더 많은 우리네 어머니들이 애닳은 삶을 살았다. 어찌 역사로만 그 이야기만 증명 되리요 이 6개의 구멍은 그 보다 더큰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말이다. 화암네거리로 발길을 잡는다.

 

 

대한항공기술연구원을 지나 고개마루 넘기전 이정표 따라 통신탑으로 올라가 중앙백신연구소로 내려 가면 오늘의 종착지 화암네거리에 도착 한다.

 

 

날머리에 있는 대덕사인언스길 안내도

 

 

오후 2시 30분,적오산성 이정표가 있는 화암네거리에서 모든 일정을 갈무리 한다.

 

다음은 적오산과 금병산 이야기 입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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