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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UBF 2016년 12월 18일 주일메세지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누가복음 2:1-2:20
누가복음2:10,11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Merry Chistmas! 2016년 성탄을 축하합니다! 시끄러운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나라를 맛보기를 기도합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UBF
1.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1-7)
1절을 보십시오.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로마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는 유명한 옥타비아누스 황제입니다. 그는 줄리어스 시저를 외삼촌이라 부르는 조카였습니다. 시저의 양아들이 되었고 시저가 남긴 유언에 의하여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악티움에서 격파했습니다. 원로원은 그에게 '아우구스투스 - 존엄한 자'라는 호칭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가 호적명령을 내렸습니다. 로마의 세금에는 인두세와 관세가 있었습니다. 인두세를 징수하기 위해서 정확한 인구조사가 필요 하였습니다. 황제의 명령에 따라 로마 지배 아래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호적지로 떠나야 했습니다. 로마 지배하에 있던 유대 모든 사람들도 호적명령에 복종하여 자기 고향으로 가서 호적해야 했습니다(2,3). 환자나 해산이 임박한 임신부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호적 하러 고향으로 돌아가는 행렬에는 나사렛의 목수 요셉과 만삭이 된 마리아도 끼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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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호적명령과 베들레헴으로 내려가는 요셉과 마리아! 이 모습은 세상을 잘 말해줍니다. 황제의 호적 명령은 세상의 실상을 알려 줍니다. 옥타비아누스 황제 때부터 A.D.180년 까지 팍스로마나 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는 로마 역사상 유례없는 태평성대였습니다. 대규모 내전도 없었습니다. 2차 포에니 전쟁과 같은 강력한 외적의 침공도 없었습니다. 이 기간동안 로마의 상업은 융성하였습니다. 로마 시민들은 전쟁의 공포와 난리의 고통 없이 번영과 안정을 누렸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렇습니다. 로마 시민들의 번영과 안정 이면에는 식민지 백성들에 대한 압제와 폭력이 있었습니다. 로마 시민들은 직접세를 내지 않고도 로마의 문화와 제국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지만, 정복지의 식민지 백성들은 무거운 세금을 내느라 고통 받아야 했습니다. 귀족들은 대토지를 소유하고 넘치는 부를 축적하고 사치와 향락을 누렸지만, 정복지의 백성들은 포로로 로마에 끌려가고 노예로 전락하여 평생 고통스러운 노역에 종사해야 했습니다. 평화라고 하지만 거짓 평화였습니다. 태평성대라고 하지만 식민지 백성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대를 겪어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시대도 그렇습니다.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겪었습니다. 한국전쟁동안 미군은 260만톤의 폭탄과 포탄을 사용했습니다. 미국이 2차대전때 사용한 것은 500만톤입니다. 우리 부모 세대는 한국전쟁을 경험했습니다. 우리 세대와 지금 대학생들인 우리 다음 세대는 전쟁을 경험하지 않고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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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태평성대로 보이지만, 실상은 평화롭지 않습니다. 1900만 명이 월급받지만, 정규직은 300만도 되지 않습니다.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한 기업 몇 개는 엄청난 수익을 얻지만, 그런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들은 곧 시장에서 사라집니다. 직장에서 해고 되어야 실업급여라도 받지, 어려움 있어서 사표 낸 사람들은 실업급여도 받지 못합니다. 소득차이는 더 커졌습니다. 경쟁력 있는 글로벌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하는 2류대, 지방대 출신 청년들은 제대로 준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격렬한 경쟁의 시대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므로 오라는 곳이 없습니다. 연약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돈벌이하는 자격증 학원, 어학원, 고시원이 신나게 돈을 벌고 있습니다. 3포 세대니, 5포 세대니 하며 어려운 신세를 자조하는 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지도자들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보살피지 않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격차를 보이는 신자유주의 경제가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지만, 15년이 지나도록 지도자들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전혀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관료집단은 안일했습니다.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백성들을 개 돼지로 여겼습니다. 그들의 송년회 건배사는 '이대로' 였습니다. 말로는 어려운 백성들을 보듬고 보살피겠다는 사람들은 '분노하라' '외치라' 선동하기만 할 뿐, 이 시대 백성들의 아픔을 어떻게 해야 치유할 수 있는지, 단 한 번도 대안을 낸 적이 없습니다. 그들도 비전이 없으며 대안이 없습니다. 비난과 비평과 불평만 쏟아냅니다. 우리 시대는 평화롭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 마음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이런 백성들을 위로할 교회조차 권위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신학교를 자랑하고 신학을 자랑하며 목회자 직분을 섬기는 직분이 아닌 엘리트 관료처럼 특권 받은 권위적 벼슬로 여깁니다. 황제의 호적 명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그 명령에 따라야 하는 가난한 요셉과 마리아는 여전히 어렵고 힘든 여정을 오늘날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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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괴로운 세상 어려운 현실에도 하나님의 위대하고 장엄한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황제의 호적 명령은 세금 징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황제의 말에 따라 괴로이 움직여야 했지만, 그의 호적 명령은 성경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옥타비아누스의 호적 명령이 없었다면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탄생하셨을 것입니다. 호적 명령 덕분에 구약 성경 말씀에 예언한 대로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보면서,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우울하여도 하나님께서는 역사하고 계십니다. 학교가 아이들을 방치하고 많은 교회들 조차 생명과 영혼들 위에 군림하고 짐이 된다고 하여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시대에도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다.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믿고 우리들이 먼저 살아 계신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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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베들레헴이란 ‘떡집’이란 뜻으로 본래 인심이 후한 시골마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마굿간이었습니다. 하늘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하신 곳은 짐승들을 위한 공간, 짐승들에게 주어진 공간이었습니다. 바닥에 눕힐 수 없어 갓난 아기를 누인 곳은 말의 먹이통 말구유였습니다. 이 모습은 슬픕니다. 이 모습은 매우 마음 아픈 모습입니다. 얼마나 가난하고 얼마나 멸시를 당하였으면 아기 낳을 곳이 마굿간이란 말인지! 아기를 누일 곳이 말구유란 말인지! 예수님은 이렇게 슬프게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탄생 때처럼 슬픔의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실 때도 죄 없이 가장 중한 죄인으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구유 탄생과 예수님의 고난과 예수님의 죽으심은 모두 슬프고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슬픔과 고난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며, 우리의 위로를 위한 것입니다. 낮아지고 희생할 때, 결국 승리한다는 우리의 소망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쇠하지 않고 멸하지 않는 하나님나라를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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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볼 때, 우리에게 하나님는 나라가 임합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는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지극하신 은혜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는 세상 만민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구원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입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는 죄에 빠져 심판 받을 죄인들을 속량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는 놀라운 희생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진리의 별을 따라 긴 여행 끝에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보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님 안에 진리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에게서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은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생명과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 위하여 한없이 낮아지신 그리스도의 희생과 생명의 진리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가장 큰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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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여전히 세상은 시끄럽고 불공평합니다. 우리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 분을 우리의 내면에 영접해 드린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평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기쁨과 소망을 가득하게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예수님을 다시 한번 더 깊이 만나는 성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2. 구세주 예수님(8-14)
8-12절은 천사가 전한 성탄 메시지입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그 밤에 목자들이 베들레헴 들녘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8). 그 때에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쳤습니다. 목자들은 크게 무서워했습니다(9). 하나님의 사자 천사들은 이 땅에 메시야가 온다는 사실을 전해 주었습니다. 당시 목자는 거지, 도둑과 사회적 위치가 같았습니다. 목자들은 재판에서 증인으로 설 수 없었습니다. 비천한 목자들에게 하나님의 사자들이 성탄 메시지를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시대가 얼마나 어두운 시기였는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당시 제사장들은 헤롯과 결탁하고 타협하며 살았습니다. 그 시대는 돈과 이권과 자신과 가족외에는 그 어떤 것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목자들은 밤을 지키는 파수꾼과 같았습니다. 내면은 겸손했고 그들의 삶은 가장 낮은 곳에서 순수함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UBF
10,11절을 보십시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천사들이 전한 메시지에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어떤 것입니까?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자 이십니다 (11a). 11a절을 보십시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동네는 베들레헴을 가리킵니다. 베들레헴 탄생은 아기 예수님이 구약 성경에 예언된 대로 탄생하신 약속된 메시아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에서 구원자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후 아브라함과 다윗과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 약속을 더욱 굳게 하셨습니다. 42대에 걸친 긴긴 세월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고자 구주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메시야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오시는 정통성있는 메시야. 참 그리스도 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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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기 예수님은 그리스도 주이십니다 (11b). 11b를 보면,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주'란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구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것은 죄문제 해결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가장 근본적이고 큰 문제는 죄입니다. 죄는 사람을 병들게 만듭니다. 사람을 못 쓰게 만듭니다. 죄는 사람들에게 죄의 열매를 맺고 죽음의 고통을 당하게 합니다. 로마서 6:23절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죄의 대가인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히 9:27절을 보면,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음을 증거 합니다. 죄를 범한 인간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져 영원한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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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12)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가 구주의 표적입니다. ‘강보’는 유대인들이 어린 아이를 싸는 긴 포대기를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강보로 아기를 돌돌 싸서 말았습니다. ‘구유’는 마구간의 말먹이를 주는 먹이통입니다. ‘강보에 싸여 말 먹이통에 누인 아기!’ 이것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주를 알아보게 하는 표시입니다.
천사들이 메시야의 표시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라고 함으로써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까지 예수님은 어떤 메시야이신가? 분명한 메시지를 주십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실 때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그 역사 방법과 메시야로 오시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믿음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멸시 당하고 고난 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멸시당할 때 슬프고 화가 납니다. 또 우리는 두렵습니다. 나의 인생이 망할까봐 두렵습니다. UBF
직장생활하는 목자님들은 직장에서 착하고 어리숙해 보인다고 무시하고 깔보는 것이 아주 괴롭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면 마음이 괴롭고 머릿속은 고민으로 가득해 집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이 은혜가 되는 것은 이런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 부활 승리의 믿음을 굳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오래 참지만 반드시 이기는 사람들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승리하지만, 승리하기까지 우리는 하나님나라를 먼저 맛봅니다. 결국 우리는 그 나라에 들어가 살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예배를 마치면 또 다시 바쁜 연말연시의 삶의 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이 우리의 삶이 되고 우리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우신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십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우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나라를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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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4절을 보십시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굿간에서 가난하고 슬픈 아기의 모습을 무시하고 멸시하였습니다. 제사장도 왕도 신하도 아무도 가보지도 않고 환영하지 않았지만, 이 아기 탄생은 하나님의 원대한 인류구속역사가 드디어 완성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죄에 빠져 신음 하면서도 하나님께 돌아올 줄 모르는 이 세상은 구제불능입니다. 그런 세상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구속이 경륜과 위대하시고 지극하신 사랑이 드디어 실현되었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천군과 천사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고 찬란한 영광이 나타났음을 찬양하였습니다. 천군과 천사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과 은혜로 인하여 땅에는 심판과 증오와 두려움 대신 평화가 임하게 되었음을 찬양하였습니다. UBF
15절을 보십시오. 천사들의 메시지를 들은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가보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가 오신다는 소식은 이 목자들만 들은 것은 아닙니다. 동방박사들을 통하여 헤롯왕도 들었고, 헤롯왕을 통하여 제사장도 들었습니다. 헤롯왕과 제사장들에 의하여 예루살렘 모든 사람들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베들레헴에 가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가 오신다고 해도 누구도 영접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였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목자들은 베들레헴으로 빨리 갔습니다.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았습니다. 17~20절을 보십시오. 목자들은 천사들이 자신들에게 계시하신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목자들은 계시대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가서 보았고 보고는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UBF
우리들의 성탄이 목자들과 같아야 합니다. 우리의 성탄은 목자들과 같이 깨어 있는 성탄이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성탄은 목자들과 같이 예수님께 가보는 성탄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성탄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는 성탄이어야 합니다. 깨어 있는 사람이 없는 시대입니다. 목자들은 깨어 있어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목자들은 몸만 깨어 있지 않고 마음과 영혼까지 깨어 있었기에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오신 예수님을 찾아 나섰고, 예수님을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는 하나님을 크게 찬양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나라의 기쁨을 맛보며 돌아갔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나라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맨날 하나님나라를 잃어버리고 삽니다. 우리는 틈만 나면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잃어버리기 잘합니다. 우리의 성탄이 구유에 누이신 아기를 만나는 성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성탄이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하나님나라를 맛보는 성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성탄이 자기 아들을 세상에 구세주로 보내신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과 은혜를 소리 높여 찬양하고 온 마음으로 찬양하는 성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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