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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017시즌, 최강부에는 많은 관전포인트가 있었겠지만 그 중 최대 관전포인트는 아무래도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강만규가 빠진 족구계의 첫 시즌, 새로운 왕좌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었다. 2015시즌부터 강만규가 있었던 현대파워텍을 정상의 자리에서 내리고 새로운 왕좌에 등극했고, 2016시즌, 거의 대부분의 대회를 싹쓸이 우승한 '하이트진로음료'의 진정한 독주가 시작하며 새로운 왕좌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대부분의 이들이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예상은 빗나갔다. 바로 오늘 칼럼에서 소개할 '공포의 외인구단' 유영산업으로 인해서 말이다.
부천중앙 족구단, 아마 이들을 모르는 족구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형진, 전휘진 쌍둥이 형제가 함께 족구를 한다는 것 부터가 이슈가 되기 충분했는데, 이들이 2010년대 초반, 일반부에서 전국대회를 휩쓸고 다녔으니 오히려 이들을 모르기도 쉽지 않았다.
공격수 전휘진의 말도 안 되는(?) 자세에서 나오는 '문어발 비껴차기'는 마치 과거 족구1세대시절의 전설의 공격수, '문어발'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삼성전자 족구단 이찬호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세터 전형진의 완벽한 세팅능력과 넓은 수비범위, 제 아무리 각 깊은 꺾어차기도 여유있게 돌아가 받아내었던 우수비 주성헌, 이런 우수비를 확실히 커버해주며 좌측라인을 지켜낸 좌수비 홍은표까지, 이들에게 어쩌면 일반부는 너무 좁았던 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일반부에서의 성적을 발판삼아 2012시즌, 처음으로 최강부에 입성했다. 과연 이들이 최강부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지만 그래도 일반부와 최강부의 수준차이를 감안한다면 최강부에서 성적을 내기가, 즉 입상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예상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이들의 모습은 일반부에서의 모습보다 더욱 업그레이드된 기량이었고, 첫 시즌부터 최강부의 강력한 한 축으로 자리를 잡으며 새로운 신흥강호로 부상했다.
이 후 쌍둥이 형제의 군 입대로 부천중앙 족구단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가 지난 해, 이들이 제대하며 그들은 다시금 족구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들 쌍둥이 형제에게 군 복무에 의한 공백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존의 기교에 파워까지 더하며 더욱 업그레이드 된 모습이었다. 더욱 강해진 공격능력은 물론, 수시로 자리를 바꿔가며 하는 공격은 상대를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일반부를 평정했고, 모두가 기피하는(?) 최강부에 자진해서 입성했다. 그들의 최강부 복귀전(?)은 2016시즌 마지막 대회였던 '제1회 대한민국 족구협회장기'. 이 대회에서 유영산업은 지난 시즌을 평정한 '하이트진로음료'를 누르고 우승하며 화려한 복귀를 신고, 올 시즌들어 '대한체육회장배'를 제외한 참가했던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있다. 적어도 이번 시즌만 놓고 보았을 때, 왕좌의 자리는 이들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족구계의 왕좌의 자리는 항상 회사 팀, 혹은 학교 팀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회사 팀도 학교 팀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과 같이 이렇다 할 지원도 없고, 일반 동호인 팀과 크게 다르지 않은 팀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렇게 강할까? 이들의 전력을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으로 파헤쳐 본다.
첫째,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각 선수들의 기량이다.
①'신개념 공격수' 전휘진
공격수 전휘진은 지금까지의 여느 공격수들과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유연한 몸을 이용해 마치 채찍이 때리는 듯이 공을 치는 타법에 온몸의 체중을 공에 싣고, 높은 타점에서 내리 꽂는 듯한 공격방법을 사용하는데, 보통의 공격수들이 수평 스윙이라고 한다면 전휘진은 약 15도에서 25도 정도 위에서 누르는 하향 스윙을 사용하고 임팩트 순간, 공을 누르는 듯한 타법의 공격은 바운드 이후 종속이 강하다. 쉽게 말해 야구에서 이야기하는 공 끝이 최고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는 서브시에도 마찬가지다. 밀어치는 타법의 서브는 종속이 강한데다가 같은 자세에서 발날서브로 역회전이 걸려있는 공을 코트 중앙지점에 툭 떨어뜨려 놓는다.
그 뿐이 아니다. 예상치도 못 한 상황에서 나오는 '문어발 비껴차기', 그리고 정 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네트 앞으로 바로 떨어지는 발날 페인트와 어마어마한 비거리를 자랑하는 발코 내려찍기가 같은 자세에서 나온다. 영상으로만 보아도 공을 때리기 이전에 어떤 공격일지 예측이 안 되는데 실제로 코트에서 맞붙는 상대라면 더욱 예측이 안 될 것이다.
②'멀티플레이어' 전형진
세터 전형진은 그야말로 '멀티플레이어'다. 최고의 '세팅능력'은 물론이고, 상대의 연타, 페인트를 모두 잡아내고 때로는 수비수들의 빈 공간으로 들어오는 상대의 공격을 모두 커트하는 능력까지 갖추었다. 뛰어난 수비능력을 갖춘 세터들은 많지만 전형진은 지금까지 족구계에서 이론으로 정립(?)되어 있었던 세터의 수비 범위를 넘는 수비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 뿐 아니다. 리시브가 길어 토스를 하기가 힘든 상황에서, 혹은 전휘진이 세컨 터치를 해 공격을 못 할 경우 기습적으로 공격을 하기도 하는데, 그 공격이 결코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 공격수 전휘진에 크게 뒤지지 않는 공격능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격수 전휘진과는 쌍둥이, 각자의 애인과 연애할 때를 제외하고는 잠까지 함께 자며 24시간 붙어 다니는 이들의 호흡이 맞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세터는 전형진이 아닐지도 모르나 전휘진의 최고의 세터는 전형진이 틀림없다.
③'든든한 좌측라인' 홍은표
내가 부천중앙 족구단을 처음 본 것은 2010년, 서울시 광진구에서 벌어진 '아차산배 족구대회'였다. 당시 결승전 상대는 'SM드림', 상대 공격수는 김경춘이었다. 수비라인이 우측으로 돌아간 것을 확인한 김경춘은 비껴차기 공격을 시도했다. 공은 비어있던 좌측라인을 향해 강하게 날아갔고, 수비수들은 이미 역모션에 걸린 상황에서 누가봐도 '저건 점수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좌수비가 역모션에서 다시 돌아와 그 공을 받아내었다. 한 번 이었으면 우연이겠지만 세 번이라면 그것은 실력이다. 이 날 홍은표는 김경춘의 이 공격을 세 번 이상 받아내며 좌측라인을 철옹성같이 지켰고, 경기는 부천중앙의 2:0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많은 이들이 쌍둥이 형제의 활약이 가장 눈에 띄었겠지만 적어도 이 날, 내 눈에 가장 빛나 보였던 이는 좌수비 홍은표였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후 '부천중앙 족구단' 카페에 가입했을 때, '가입인사'말로 '개인적으로 홍은표 선수의 팬입니다.'라는 멘트를 적었다.
④'A킥 커터' 주성헌
2010년 이후, 부천중앙팀의 경기를 자주 보았는데 딱히 주성헌에게는 큰 장점은 보이지 않았다. 발이 그렇게 빠른 것 같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상당히 안정적인 자세에서 수비를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상대의 각 깊은 A킥은 그의 발에 항상 걸렸다. 그들의 경기를 보다가 상대의 각 깊은 꺾어차기가 나왔는데, 누군가가 그 공의 끝에 서있었다. '경기를 지켜보던 이 중 한 사람인가?'라는 착각을 할 정도로 여유있었던 그의 모습에 놀랐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 공을 받아 올리는 모습에 한 번 더 놀랐다.
지금은 동료 이정욱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후보선수로 뛰고 있지만 그의 능력이 이정욱에 뒤진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홍은표와 함께 기량뿐만이 아닌 존재만으로도 어린 선수들이 흔들릴 때 잡아 줄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⑤'왼발잡이 우수비' 이정욱
현 KBS축구해설 위원 이영표는 중계방송 중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수시절, 저는 왼쪽 윙백이었지만 오른발잡이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것이 많았습니다. 상대 선수들이 제가 왼쪽 윙백이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왼발잡이라고 생각하며 수비했기 때문이죠.'
족구에서 '우수비는 반드시 오른발잡이여야만 한다.'는 규정은 없다. 하지만 보통 우수비는 오른발잡이가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무엇보다도 상대의 바운드가 큰 꺾어차기 공격을 크게 돌아가 받아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영산업의 우수비 이정욱은 조금은 특이하게(?) 왼발잡이 우수비이다. 앞서 언급한 이영표의 경우도 그렇지만 우수비 역시 왼발잡이가 조금은 유리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공격수는 무의식 중에 상대 우수비는 오른발잡이 일 것이라고 생각해, 상대 우수비가 왼발로 받게 하려는 공격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물론 왼발잡이로서 우수비에서 정상급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붙는다. 바로 오른발을 왼발과 비슷하게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정욱의 플레이는 '저 선수가 정말 왼발잡이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른발 역시 자유자재로 쓰고 있다.
둘째, 이들은 완벽한 신구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유영산업을 일단 상당히 어린 팀이다. 전형진, 전휘진, 이정욱과 후보 선수인 최현수가 94년생이고, 막내 송태훈은 98년생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족구 경력이 대부분 5년 이상이고, 전형진, 전휘진의 경력은 이미 10년이 넘으니 베테랑이라고해도 손색이 없을 경력이다. 하지만 어린 선수들이 기세를 한 번 타면 누구도 말릴 수 없을 정도로 무섭게 타지만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때는 한 없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약점이 있다. 이런 이들에게 홍은표, 주성헌의 존재는 경기력은 차치하고서라도 존재감만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주전으로 뛰고 있는 홍은표는 코트 안에서 이정욱에 자리를 양보하고 후보선수로 뛰고 있는 주성헌은 코트 밖에서 팀의 위기 상황에서 선수들을 다독여 줄 수 있는 선배 혹은 큰 형의 역할을 해 줄 것이다.
말이든 행동이든 이들이 주는 영향력과 무게감은 후배 선수들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천진난만하게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삼촌들과 함께 고사리 손을 얹으며 파이팅을 해주는 주상현(주성헌 선수의 아들)의 존재는 선수들에게 한 번 정도는 더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줄 것이다.
셋째, 경기를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 강만규, 장한빈과 인터뷰를 했을 때 이들은 각자 현대파워텍, 하이트진로음료에서 각자의 생업의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에 이에 반드시 보답을 해야 하고, 그 방법은 바로 성적을 내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들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회사 팀은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없을 수 없다. 그것은 학교 팀도 마찬가지, 선수들이 족구로 취업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팀이 거두는 성적은 취업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유영산업은 다르다. 유영산업이라는 회사에서 지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곧 생업으로 연결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일까? 경기 중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승리가 확정되면 코트 가운데 모여 하늘을 찌르는 세레모니를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에서 진정으로 족구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얼마 전 이들이 운영하는 '족구교실'에서 강습을 받은 한 지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강만규 선수를 비롯해 내가 알던 정상급 기량의 선수들 모두가 직업이 불안정해서 맘놓고 운동하기가 어려웠지, 그런데 쌍둥이 형제들은 젊어서 인가, 재미있게 운동하더라, 방송에서도 하고 싶은 운동 열심히 하며 살 것이라고 하는 자신감도 좋고, 족구교실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정말 응원해주고 싶더라.'
노력하는 자는 독한 자를 이길 수 없다. 그런데 독한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유영산업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독주를 할지는 알 수 없다. 올 시즌 아직 이들을 상대로 한 번도 이기지 못했지만 지난 시즌까지 최강의 면모를 보인 '하이트진로음료'가 있고, 딱 한 번 이었지만 이들의 우승을 저지했던 '이천시청'이 있으며, 최강부에 떠오르는 별들, 오디텍, 일등코리아, 중랑구청, 김포대학교등 어린 선수들이 주축이 된 이들이 언제 치고 올라올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선수단의 개편이 크게 없는 한 유영산업은 향후 최강부의 강력한 한 축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점이다.
강만규가 빠진 족구계의 새로운 왕좌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가? 지난 시즌에는 '하이트진로음료'가 올 시즌에는 '유영산업'이 아직까지는 그 주인공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역사의 흐름은 절대 강자의 시대 이후 반드시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고는 했었다. 바둑에서는 세계최강 이창호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혼돈의 시대가 만들어 졌고, 2000년대 후반 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세계축구를 호령했었던 스페인의 독주가 끝나자 세계축구계는 절대 강자 없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으며 우리 족구계에서도 '현대자동차 족구단'의 시대가 끝나면서 현대파워텍, GM대우, 한세대학교, 이천시청등의 절대 강자 없는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졌었다.
과연 이들 공포의 외인구단의 등장이 하이트진로음료를 왕좌의 자리에서 내리고 족구계에 새로운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게 하는 시발점이 될 것인지, 아니면 이들이 족구계의 새로운 왕좌의 주인공이 되는 원년이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이들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별들이 그러했듯이 이제 이들이 전설로 남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