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대한불교조계종 지장기도도량 오봉산 영선사 원문보기 글쓴이: 월공스님(천인)
내북 지역의 행정지명과 현지지명 비교 정진명(국어 교사) 1.머리말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생각과 의도에 따라서 작용하고 표현된다. 그런 점에서 각 지역에서 쓰는 마을 이름은 언어의 이 같은 작용을 잘 드러내 주는 부분이다. 언어는 사람이 일상생활의 필요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 그 말을 쓰는 사람의 삶이 그 언어 안에 실려 있을 때 생동감을 갖고 의도를 전달하는 훌륭한 구실을 한다. 그러나 언어는 꼭 그렇게만 쓰이지 않고 언어가 다시 언어를 가리키는 메타 언어 구실을 하기도 한다. 이 경우 언어는 언어가 직접 지시하는 대상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동떨어지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모호한 성격을 지니게 된다. 그런 상황이 어떤 제도의 틀 안으로 편입되면 대상을 가리킬 때의 생동성을 잃어버리고 관념화되고 추상화된다. 행정용어로 편입된 각 지역의 지명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이 논문에서는 내북 지역의 행정 명칭과 현지의 주민들이 쓰는 이름을 비교하여 이와 같은 점을 알아보고자 한다. 2. 행정 지명의 특성
행정은 주민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성격을 지향한다. 따라서 현지의 실정과 행정의 방향이 정확히 일치할 수는 없으며, 이 같은 현상은 지명에도 관철되어 현지의 지명이 주민들의 생각과는 조금 차이나는 방향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이 같은 현상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골 마을을 가리키는 말이 그것을 행정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한테는 행정이 지닌 간편성과 효율성, 또는 타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주민들 의사의 일부 또는 전부를 배제하고 행정을 위한 방편으로 정착시키려 든다. 마을 지명의 경우, 행정 단위에 따른 일관된 규칙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그러한 규칙 안으로 현지의 지명을 개편 수렴한다. 우리 나라의 중앙 통치 구조가 마을 단위까지 직접 통제하게 된 것은 왜정 때부터이다. 그 전까지는 군이나 현의 통치 아래서 단위 장의 관리하에 통제되었지만, 왜정 때 이르면 중앙 정부가 마을 단위까지 통제하는 철저한 관료 체계를 완비한다. 따라서 마을 단위로 이루어져 있던 지명도 리(里)라는 행정 단위로 편입된다. 이 과정에서 실로 그 지역의 주민들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이름들이 면서기들의 손끝에서 작성된다. 마치 특별한 이름이 없던 부인들의 이름이 면서기들의 손끝에서 호적으로 정리되는 상황과 똑같은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지명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확립된 것이다. 여기서는 행정의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고 행정 지명이 현지의 지명과 어떤 차이를 보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서 행정명으로 편입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고자 한다. 내북중학교에서는 3학년 국어 시간에 우리 지역에 대한 조사를 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모둠별로 한 주제를 택하여 조사를 하기로 하였고, 그 중에 한 모듬이 내북 지역의 지명을 조사하였다. 그 과정에서 어원을 알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 드러났고, 그 부분은 학생들 스스로 할 수 없는, 다소 체계잡힌 지식을 요구하는 부분이어서 교사인 내가 직접 나서게 되었다. 우선, 학생들이 현지에서 조사해 온 지명을 중심으로 하여, 내북면 사무소에서 제공해준 한자 지명을 자료로 썼고, 다시 보은군에서 발행한 내북면 지도를 참고로 하였다.
3. 현지 지명이 행정명으로 바뀌는 방식
현지 지명은 행정 체계로 편입될 때 불가피하게 행정 편의를 위해 개편, 개정된다. 그것은 우리 나라의 행정 단위가 한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예컨대, ‘말’이나 ‘골’이라는 마을 단위는 모두 행정 단위에서 리(里)라는 이름으로 옮겨진다. 그런데 이렇게 한자 단위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크게 네 가지 방식이 적용된다. 다음과 같다. ① 현지 지명의 소리를 취하여 한자로 바꾸는 경우 ② 현지 지명의 뜻을 취하여 한자로 바꾸는 경우 ③ 위의 세 가지 방식을 적당히 혼합하는 경우 ④ 현지의 지명과는 상관이 없는 말을 갖다 붙이는 경우 이 네 가지 방식에 따라서 내북면 지역의 지명이 어떻게 행정 지명으로 바뀌었는가 하는 것을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우선 연구 대상으로 삼은 조사 지역을 밝히면 아래의 표와 같다. 4. 현지 지명의 소리를 취하여 한자로 바꾸는 경우
내북면 지역의 경우에, 이 방식에 따라서 개정된 지명은 대안리(大安里)와 법주리이다. 대안리의 경우, 지도를 살펴보면 안대안과 바깥대안이 있어서, <大安>은 <대안>의 음을 그대로 취한 것이다. 이 때 한자는 순전히 옮겨쓴 사람 멋대로 갖다 붙인 것이다. 물론 이때에도 뜻이 좋은 한자를 취한 것이다. 원래의 <대안>은 <대>와 <안>의 합성어이다. 우리말에서 <대>는 대개 높이 솟은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거나 널찍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안>은 바깥의 반대말이다. 따라서 <대안>이란 ‘농사꾼들한테
법주리는 좀 복잡하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버드리>인데, 이것이 <법줄>이라는 축약을 거쳐서 그에 가장 가깝고 친근한 <法住>로 정착한 것이다. 이것은 물론 보은을 대표할 만한 절인 법주사라는 말의 친근성에서 온 것이다. <버드리>은 <버들>에 주격조사 <이>가 붙은 말인데, 이 <버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버드나무를 뜻하는 말은 아닌 것이, 법주리에는 버드나무가 자랄 개울이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길게 뻗는다는 말에서 온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법주리라는 곳이 골짜기가 길게 뻗은 곳에 들어선 동네이기 때문이다. 또 <머그남골>이라는 지명도 보이는데, 이것은 <머그남+골>의 구조로, <머그남>은 머귀나무의 사투리이다. 즉 오동나무가 있는 동네라는 뜻이다. 5. 현지 지명의 뜻을 취하여 한자로 바꾸는 경우
또 현지에 전하는 이름의 뜻을 취하여 거기에 걸맞는 한자를 택하여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내북 지역의 경우, 이 방법을 쓴 것이 가장 많다. 낱낱의 지명을 검토하겠다. 검토 순서는 별 의미가 없다. <東山>은 <새터>라는 마을의 이름을 그대로 번역한 경우에 해당한다. <東>은 우리 옛말로 <새>이다. 샛별 높새 같은 말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터>는 <山>으로 번역했다. 그래서 <새터>가 <東山>이 된 것이다. <鳳凰>은 <쏴안말>에 대응하는 말이다. <쏴안말>은 바로 옆의 ‘새터’와 관련지을 때 <새(東)+안(內)+말(里)>의 구조를 보인다. 따라서 <봉황>은 <새>를 취한 말이 분명하다. 새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새인 봉황을 취한 것은, 좋은 뜻을 담으려는 의도이다. 그러나 이 경우 이 <새>가 날아다니는 새를 뜻하는 것인가 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 <새터>를 <東山>으로 번역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새터 안쪽에 있는 마을’을 뜻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봉황이란 말은 쏴안말에서 왔지만, 실제로 봉황리라는 행정 명칭이 지시하는 대상 지역은 지도상에도 그렇고 학생들의 현지 조사에서도 그렇고 현지 지명 ‘도리비’ 지역과 일치한다. 이 <도리비>라는 말은 우리말이 지명에 적용될 때 생기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말이다. <돌+입+이>의 구성을 보이는데, <돌>은 ‘돌다’의 어근이고, <입>은 ‘하릅소, 다릅소’에서 보듯이 명사화접미사이며, <이>는 주격조사이다. 따라서 <도리비>란 에돌아가는 형태를 묘사한 말이다. 무엇이 돌아가는가? 물길이 감싸안고 돌아간다. 봉황리의 현지 마을을 냇물이 둥글게 감싸안고 돌아간다. 그런 모습을 주민들은 <도리비>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안동 하회(河回)의 경우 그곳 지명은 ‘물돌이동’인데, 이것은 의미가 겉으로 확실하게 드러나는 데 반해 ‘도리비’는 물돌이동보다 더 축약되면서도 돌아간다는 뜻을 잘 살리고 있어서 훌륭한 지명 노릇을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世村>은 <누리실>에 그대로 대응한다. 느리실이 지도에는 <느리골>이라고 나오는데, 마찬가지 얘기이다. <누리>는 <世>로, <실>은 <村>으로 옮긴 것인데, 실은 우리말에서 가느다란 것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골짜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聖巖>은 <바위밑>과 대응한다. <聖>은 글자수를 맞추기 위하여 단순히 좋은 뜻을 취한 한자를 갖다붙인 것이다. 말 그대로 옮길 경우 암저(巖低)나 암기(巖基)가 될 텐데, ‘밑’이 지닌 어두운 측면을 일부러 배제한 결과일 것이다. <星峙>는 <벼재>에 대응한다. <벼재>는 <별재>의 리을(ㄹ)이 떨어진 형태이다. 따라서 <벼>를 <별>로 취해서 <星>으로 옮긴 것이다. 이 지명이 하늘의 별과 상관이 있는가 하는 것은 좀더 조사해 보아야 할 일이지만, 농경이 위주가 된 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벼가 나는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한 해석이 될 것 같다. <泥院>은 <도랑이>와 대응한다. <泥>는 수렁을 뜻하는 말이다. 도랑을 그대로 옮긴 경우이다. 대개 도랑과 같이 물과 관계된 말은 <溪>나 <谷>으로 옮기는 것이 보통인데 이 경우 결코 반갑지 않는 수렁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경우가 되어, 이 지명을 붙여준 자의 불편한 심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院>은 옛날에 관청에서 운영하던 숙박 업소였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는 지명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사람이 사는 마을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6. 위의 세 가지 방식을 혼용하는 경우
이상은 한 가지 방식을 적용시켜서 이름을 정한 경우이다. 그런데 위의 방식을 혼합하여 이름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斗坪>은 <두멍뜰>과 대응한다. <斗>는 <두멍>과 대응하고, <坪>은 뜰을 옮긴 것이다. <두멍>은 <둠>에 명사화접미사 <엉>이 붙은 말이다. 둠은 산에 둘러 싸여 아늑하게 패인 평지를 가리키는 우리말이다. 두멍뜰이란 산으로 둘러 싸인 아늑한 분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뜰은 <坪>으로 그 뜻을 취한 반면에 <두멍>은 <斗>로 그 음을 취해서 옮긴 경우이다. <峨谷>은 <아차실>과 대응한다. <아차>의 첫음을 그대로 따서 <峨>로 옮겼고, <실>은 그 뜻을 취해서 <谷>으로 옮겼다. 음과 뜻을 각기 취한 경우이다. <아차>는 우리말에서 ‘다음, 둘째’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아차실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볼 때 그 다음가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다른 큰 마을에서 분가해 나가면서 형성된 마을일 것이다. 상궁, 하궁, 신궁은 한 골짜기 안에 들어있는 마을이다. 이 역시 한자의 음과 뜻을 섞어서 옮긴 경우가 되겠다. 상궁과 하궁은 각기 윗궁뜰과 아랫궁뜰과 대응한다. <궁>은 <弓>으로 옮겼는데, 활과는 상관이 없고, 이것은 우리말 <굼>이 유성음화한 것이다. <굼>은 구멍과 같은 어원을 지닌 말로, 구멍처럼 좁다라면서도 길게 늘어진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상궁에서 하궁까지 지도를 살펴보면 이에 걸맞게 길게 늘어진 골짜기이다. 따라서 궁뜰이란 길다랗게 늘어진 골짜기를 뜻하는 말이다. 이 골짜기의 윗쪽이 윗궁뜰이고 아랫쪽이 아랫궁뜰이다. 아울러 그 골짜기에는 <느티골>과 <노치고개>라는 말이 있어서 이런 심증을 굳혀준다. <느티>와 <노치>는 늘어진다는 뜻의 <늦>을 어원으로 하는 말이다. 따라서 길게 늘어진 골짜기가 느티골이고 그 늘어진 골짜기에 있는 고개가 노치고개인 것이다. <늦티>가 <느티>도 되고 <노티>도 되었다가 한자음 치(峙)의 영향으로 <노치>로 변하고 이제 노치(老峙)라는 행정명으로 정착한다. <新宮>은 좀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 경우이다. 신궁리는 상궁과 하궁의 중간에 있는 마을이다. 따라서 <宮>은 상궁, 하궁의 <궁>과 같은 말이다. 한자표기는 다르지만,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新>은 새롭게 생긴 마을이기 때문에 붙은 말이다. 말하자면 <새궁>이 될 것이다. 한글로 새궁이라고 적어놓고 보면 <새>는 사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에 상궁과 하궁 사이에 있는 궁뜰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원래 우리말로 불리던 것을 한자로 적는 과정에서 의미가 변화를 일으킨 것 같다. 아니면 실제로 새로 생긴 마을이라서 붙은 이름일수도 있다. <西枝>는 <서갖>과 대응한다. 서갖이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서>는 음을 취해서 <西>로 적었고, <갖>은 <가지>를 뜻하는 말 <枝>로 옮겼다. 7. 현지의 지명과는 상관이 없는 말을 갖다 붙이는 경우
현지의 지명과는 상관없이 만든 사람이 멋대로 갖다 붙여서 만드는 방식이 있다. 평지말을 <桃源>이라고 한 것이 그런 경우이다. 평지말은 평평한 땅 모양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도원>이란 동양의 이상향인 무릉도원을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수저골 또는 수적골은 <龍壽里>라고 옮겼는데, 이 역시 현지 지명과는 상동성을 찾아보기 힘든 경우이다. 아마도 용수리는 그 뒤쪽의 산이름인 구룡산(九龍山)에서 따왔을 것으로 보인다. 화전(花田) 또한 마찬가지이다. 현지 지명인 먹골이나 무두리와 비슷한 점을 찾기 힘들다. <倉里>도 마찬가지여서 이와 대응하는 말이 없다. 대개 <倉>은 현이나 군에서 직접 관할하던 창고, 그러니까 세금을 저장하는 곳에 붙는 말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내북면의 중심 지역이어서 관이 주재하던 곳이기 때문에 붙은 말이기 쉽다. 8. 결론
지명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주인공이지만, 중앙집권화가 진행되면서 마을이 불가피하게 그 체제로 편입되고 그 과정에서 지명의 변화가 초래된다. 이것은 중앙 정권의 권력이 지방화되는 것을 뜻한다. 이 과정에서 지명은 대체로 네 가지 방식으로 변화를 겪는다. 현지 지명의 소리를 취하여 한자로 바꾸는 경우, 현지 지명의 뜻을 취하여 한자로 바꾸는 경우, 위의 세 가지 방식을 적당히 혼합하는 경우, 현지의 지명과는 상관이 없는 말을 갖다 붙이는 경우가 그것이다. 내북 지역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원래의 주민들이 붙였던 이름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행정 지명화하였다. 우려되는 것은 생활 방식이 변화하면서 이러한 행정 지명이 점점 원래의 현지 지명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고, 행정 지명을 낳은 현지 지명의 뜻이 구성원들의 이탈로 점차 망각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각 지역의 지명 연구는 꼭 필요하며, 이런 작업은 그 지명을 사용한 당사자들이 점차 농촌을 이탈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는 인식이 절실히 필요한 분야이다. 이 논문은 이와 같은 생각에서 출발하여 내북 지역의 지명을 서로 대조하여 그 뜻과 변화 과정을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대체로 행정 지명이 현지 지명을 향찰식으로 옮겨 적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행정 지명이 현지 지명을 압도하고 왜곡하는 시점에서 이러한 연구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내북중학교 졸업논문집(2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