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지나 찾아본 형님
요즘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이 하나 생겼다. 1994부터 2010년까지 KBS에서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TV는 사랑을 싣고”인데,” 어쩌다 못 보게 되면 인터넷으로 다시 보기를 찾아내 볼 정도로 푹 빠져 버렸다.
고향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해 밤무대를 전전하던 가난한 가수 설운도에게, 자장면을 사주고 용돈을 대주며 응원해주던 혼혈 1세대 가수 김복천 선생님 얘기며, 산 타는 개그맨 자연인 윤택이 중고교 시절 가출을 일삼던 문제아였지만, 친아들처럼 끌어안고 붙잡아 준 박재욱 선생님, 프로야구선수 홍성흔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라며 근성을 가르쳐준 이해창 선배 얘기를 들을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었다.
어제 새벽 야근을 마치고 회사에서 퇴근하다, 문득 20여 년 전 서산에서 살 때 이웃에 살며 친동생처럼 돌봐 주시던, 형님 같았던 직장 선배가 생각났다.
소문에, 작년 연말, 서울로 올라가 큰 수술을 하고 내려오셨다는 얘기도 들리고~
집에 도착해 아침을 먹으며 아내에게, 오늘 바쁘지 않으면 태안으로 형님내외분 찾아뵈러 가자고 했더니, 다행히 자기도 사모님을 한번 뵙고 싶다고 했다.
통화한 지가 언제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다행히 통화가 되어, 오늘 가겠다고 말씀 드리고 태안으로 출발했다.
20여년 전 대전으로 이사 오던 날, 전날부터 우리 집에 와 이삿짐을 싸 주시고, 손수 소형 트럭을2대나 빌려, 한대는 형님이 끌고 또 한대는 형수가 운전해 짐을 운반해 주고 가셨었다.
그때는 고속도로도 개통되지 않은 때라 대전까지 3시간이나 걸렸었다.
예전엔 태안 시내 상가주택 3층에서 사셨는데, 이번에 가보니 태안서 멀지 않은 근흥면의 바다가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내외가 살고 계셨다
이사한 주소로 내비게이션을 찍고 달려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태안 터미널 근처에 나와 있으니, 집으로 가지 말고 이리로 바로 오란다.
2시간 걸려 태안에 도착하니, 식당에 점심까지 예약해 놓으시고 내외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죄스럽고 반가움에 한참을 껴안고 아무 말도 못 했다.
"형님 이제 나이가 몇이지요" 하니 77세란다.
"죄송해요. 자주 연락도 못하고" 했더니 "자식들하고 살다 보면 다 그렇지 뭐~
괜찮아~ 이렇게 보면 되잖아" 하신다.
서산에 근무하며 이웃에 살 때 형님은 안면도가 고향으로, 주말에 다녀 오시면, 지금은 시장에서 엄청 귀한 대접을 받는 감태 김이며
주꾸미. 대하. 설 게를 한 바구니씩 갔다가 주셨고,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학용품과 가방도 사주시고, 명절이면 알이 꽉 찬 냉동 꽃게도 여러 번 보내주어, 당진 고향까지 들고 가 부모님께 갖다 드린 적도 있었다.
서산을 떠나면 죽는 줄 알고 우물 안 개구리로 살고 있을 때,
사람은 큰 데 가서 놀아야 한다며 한사코, 대전 본사로 가도록 인맥을 총동원하여
보내주신 고마우신 형님이다. 덕분에 20년 전 대전으로 이사 와, 여기서 승진도 하고 정년퇴직도 하게 되었다.
오래 간만에 태안 명물 게국지 찌개로 점심을 먹으며 형님을 보니, 대장 수술로 인해 체중이 20kg 나 빠지셨고 얼굴도 많이 야위셨다.
옛날에 한 부서에서 같이 근무하며 퇴근 후, 소주 한 잔씩 나눌 때가 참 좋았다고 하셨다. 죄인 된 기분으로 찾아 갖지만 형님 내외분이, 엄청나게 반가워하시고 즐거워하셔서 찾아간 보람이 있었다.
이제 저도 퇴직했고 시간도 있으니 가끔 오겠다고 했더니, 두 식구밖에 없으니
종종 가족 데리고 와서, 삼겹살도 구워 먹고 하룻밤씩 자고 가란다.
태안 바닷가 너른 언덕, 새로 지은 집에서 3시간여 대화하다 또다시 오마하고 집을 나왔다.
지난가을 앞마당 감나무에서 땄다는 대봉 곶감을 한 상자나 실어 주시며, 내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마당에서 손 흔들어 주시던 형님, 젊은 날 제 인생에 큰 힘이 되어 주신 형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간절히 기도드리고 모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태안을 떠나 왔다.
잊으리/ 경음악
첫댓글 밤배님이 이득주 선생님이셨군요. 본인 성함으로 활동하시니 더욱 친근감을 느낍니다.
20년 만에 선배님을 만나셨으니 참으로 반갑고 한편으로는 쓸쓸했을 거 같아요. 그래도 세월의 거리를 잘 뛰어넘으신 거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강표성님 습작인데도 보아 주셔서 감사 합니다.
저만 가명을 쓴것 같아 오늘에서야 실명으로
수정했습니다.
아, 밤배 님이시군요~^^ 반가운 글입니다. 읽다가 제가 눈물이 났습니다. 친 형제나 다름없을 것 같습니다. 좋은 인연 오래 계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글로도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지안님! 동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생각해 보니 36년간 직장생활하며 신세진
분들이 참 많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