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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8일 아산 UBF 주일메시지(민수기 제 9 강_강해)
아론의 지팡이에 싹을 내신 하나님
말씀 / 민수기 16,17장
요절 / 민수기 17: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모세는 나이 80세에 부르심 받을 때, 자신은 입이 어눌한 사람이라며 부르심에 응할 수 없다고 거듭 버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입이 뻣뻣하다고 하는 모세를 위하여 형 아론을 붙여 주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움 받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출애굽 역사의 지도자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지도자의 자리는 고독합니다. 지도자는 비호감 대상일 수 있습니다. 지도자에 대하여 덮어놓고 공격적이거나 비판적인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일들은 리더에게 흔히 발생하는 일이며 리더는 이것을 참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부르심에 순종한 리더를 책임져 주시고 세워주십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 부르심 받은 지도자가 감당하여야 할 위기 요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어떻게 지키시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1. 고라와 그 무리를 멸하신 하나님(16:1-50)
16장 말씀은 고라와 따르는 자들이 모세와 아론을 거역하였다가 하나님의 심판 받아 진멸당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 연구자들은 이 시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로 회정한 초기, 백성들 내면의 어려움이 있을 때 발생한 사건으로 봅니다.
16장 1,2절을 보십시오.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 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반역 주모자는 고라와 르우벤 자손 다단과 온이었습니다. 유다서 1:11절을 참고해 보면 그 중에서도 주동자는 고라입니다. 고라는 레위 족속 고핫의 손자로 모세 아론의 사촌이었습니다. 고핫 자손은 회막 기물을 어깨에 메고 운반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다른 레위인 족속들은 수레라도 써서 짐을 운반하는데 비하여 고핫 자손만은 직무를 몸으로 어깨로 감당 하였습니다. 그들은 힘든 일을 자기들만 한다고 생각하니 불만이 생겼을 수 있습니다. 자기의 져야할 의무와 직무를 하나님 앞에서 감당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불평과 불만은 생길 수 있습니다.
고라는 고핫자손의 직무를 행할 때마다 사촌으로써 거룩하게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모세와 아론에 대하여 비교하는 마음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다단과 온은 르우벤 지파여서 그들의 조상이 장남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유다지파가 장자지파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가졌을 것이라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것이 맞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도자에 대하여 거역하는 것은 꼭 인과관계가 있어서 발생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납득할 이유 없이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발생 합니다. 특별한 총애를 받은 사람이 거역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거역하는 일은 꼭 누군가 힘든 일이 있어서 발생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죄인으로써 근본적으로 선한 권위를 부정하고 싶어하는 기질이 있습니다. 질서를 깨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남 탓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 합니다. 자신이 무능하면서 다른 사람, 옆 사람, 윗사람을 무능하다 말합니다. 자신이 불공평하게 살면서 다른 사람, 옆 사람, 윗사람, 아랫사람이 공평하지 않다고 비난 합니다. 잘 한 것은 내 덕이고 못한 것은 지도자 탓, 부모 탓, 목자 탓 하는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본성이 있습니다. 이런 본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인식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발생할 때 큰 충격을 받습니다.
오늘 말씀의 고라는 아론의 제사장 권위에 대하여 문제를 삼고 대적하였습니다. 고라가 간과한 것은 아론을 제사장에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과 아론의 제사장 권위는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가볍게 여기고 본격적으로 당을 지어 아론과 모세를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들과 함께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력한 지휘관들 250명이 가담하였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그들은 당신들이나 우리나 다 같은데 왜 당신들은 스스로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은 사람 행세하는가? 하였습니다. 그동안 모세가 권위적으로 처신한 것은 없습니다. 모세는 온유와 겸손과 하나님께 대한 순종으로 이스라엘을 감당하며 인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말함으로써 모세와 아론이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 이스라엘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나쁜 지도자로 단정 하였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이들의 말을 들은 모세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를 가까이 오게 하실 것이니 고라와 무리에게 향로를 취하여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피워 나오도록 했습니다(6). 향을 피우는 것은 제사장의 고유한 권한으로써 하나님의 불에 죽은 아론의 아들들 사례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를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고라와 레위 자손들의 죄악을 구체적으로 깨우쳐 주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고라가 속한 고핫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백성들 중에서 구별하여 주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 가까이 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문제 일으키는 사람의 특징은 받은 복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모르는 것, 하나님께서 자신을 특별히 사랑하시고 각별히 주목하시고 유난히 아끼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에서 모든 문제는 출발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사람들이 나를 몰라줘도 하나님께서 나를 높이신다. 사람들이 나에게 무관심하여도 하나님께서 나를 지극히 아끼시고 귀하게 여겨 주신다는 것을 알 때, 어려운 마음은 눈처럼 녹고 쓰라린 심정은 솜사탕처럼 녹아 내 안은 부드럽고 달콤해 지는 것입니다. 나의 곁이 고독하고 나의 마음이 촉촉하지 않고 나의 생활이 찬양으로 충만하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주의 주신 복을 내가 모르고 있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특별한 사랑과 관심을 부어 주시는 것을 알고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한 점은 그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을 때, 아끼는 사람이 곁에 없다고 느낄 때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하시자 그것을 그대로 믿은 것입니다. 그랬을 때 아브라함은 가나안 족속들의 높은 성벽과 비교하지 않고 곁에서 장막 생활하면서 감사가 넘쳤습니다. 그는 오히려 베풀고 주고 나누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 이방인들로부터 ‘하나님의 방백’이라 존경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주의 주신 복이 있는데, 주신 복을 모르면 냉소적이다 못해 원망이 생기고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성품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무지한 고라에게 모세가 분명하게 말합니다. 10절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셨거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 이미 고라와 다른 모든 레위 자손 형제들은 큰 복을 받았습니다. 어떤 다른 백성보다도 더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특권,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하나님의 위대하신 손길을 가까이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은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는 속죄소, 언약궤를 직접 몸으로 모시고 다닐 수 있는 놀라운 체험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존귀한 일입니까? 그 크고 귀한 복을 알지 못하느냐? 모세는 고라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였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그들이 모여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는 것이 심각한 죄가 되는 이유를 말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여호와를 거스르는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아론은 스스로 이스라엘 중에서 특권층이라 자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세움을 받았고, 아론이 하는 일은 백성들의 죄를 지고 하나님께 나가는 무거운 직책이었습니다. 아론은 스스로 그 일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분을 주셔서 감당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주신 직분은 매우 무겁게 감당하여야 하는 일이어서 경쟁과 시기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죄를 지고 그들을 대신하여 중보 하는 일이야말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영적인 하나님 앞에서의 일입니다. 이런 영적인 일을 하나님께 여쭙지도 않고 ‘그거 나도 좀 해보자 너희들만 하냐?’ 이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어서 엘리압의 두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보냈습니다. 그들은 오라는 요청을 거절하였습니다(13,14).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주는 그들의 예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나는 그들의 한 나귀도 빼앗지 아니하였고 그들 중의 한 사람도 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죽이려 한다.’ ‘왕이 되려 한다’ ‘사람들의 눈을 빼려 한다’ 엘리압의 두 아들들의 말은 근거가 없습니다. 두 사람의 말은 근거 제시 없이 대단히 공격적이고 파괴적이기만 합니다. 두 사람이 하는 말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영역인데, 그것을 악담으로 바꾼 것입니다. 가데스 바네아 사건에서 이스라엘이 불신을 드러냈고 두려움으로 해선 안 될 망동을 보였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합당한 징계와 연단은 이스라엘에게 은총입니다. 가데스 바네아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앞으로의 연단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그러한 하나님의 하신 일을 근거로 모세더러 ‘죽이려 한다’ ‘왕이 되려 한다’ ‘백성들의 눈을 빼려 한다’ 하니 얼마나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까? 모세는 고라와 그를 따르는 250명의 지휘관들이 모두 함께 향로를 들고 향을 얹고 여호와 앞으로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다음날 고라와 무리들이 향로를 준비하여 회막문에 섰습니다(18). 고라는 감히 회막문 앞에까지 나와 백성 전체를 선동하여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고자 하였습니다(19). 바로 이 때였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났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하나님께서 진노의 심판을 대적하는 무리들에게 쏟아 내고자 하십니다. 모세는 이 때 위기임을 알고 곧바로 엎드려 중보 기도를 드렸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 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모세는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근거로 기도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범죄 했다고 해서 온 회중을 멸하시는 것은 생명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성품과 맞지 않으신데 전체 회중에게 진노하십니까?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들으시고,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만 심판하고자 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회중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을 떠났습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였습니다. 땅이 갈라져 그들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물건을 삼켰습니다(29-32). 고라와 무리들이 산 채로 땅 속 음부에 빠졌고 땅이 그 위에 합하여 덮어버렸습니다. 반역한 사람들은 망하였습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온 이스라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땅이 우리도 삼킬까 두렵다." 하며 도망하였습니다. 이 때 여호와께로서 불이 나와 분향하던 이백 오십 인들도 소멸하였습니다(35). 그들이 대적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자들에 대하여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가장 분명한 표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멸하신 후에 엘리아살을 통해서 250인이 들었던 향로를 쳐서 번제 단을 싸는 편철을 만들도록 하셨습니다(38). 앞으로 성소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역자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기시키고, 제사장을 세우신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40).
4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참담한 일이 또 발생하였습니다.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모세와 아론이 반역한 자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백성들은 고라와 무리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께 하신 일을 가지고 또 대적하며 나섰습니다.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백성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할 때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다시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4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45)." 하나님께서는 바로 전염병으로 백성을 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모세는 이때 아론에게 향로를 취하여 단의 불을 담고 향을 두어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고 명했습니다(46). 아론이 모세의 명대로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가서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 염병이 그쳤습니다(48). 이미 14,700명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들어가 이스라엘을 구원한 아론의 모습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주권에 해당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또 부정하다가 백성들은 염병으로 14,700명이나 죽어나갔습니다.
2. 아론의 지팡이에 싹을 내신 하나님(17:1-13)
17장 1절~3절을 보십시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 중에서 각 조상의 가문을 따라 지팡이 하나씩을 취하되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대로 그 모든 지휘관에게서 지팡이 열 둘을 취하고 그 사람들의 이름을 각각 그 지팡이에 쓰되 레위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라 이는 그들의 조상의 가문의 각 수령이 지팡이 하나씩 있어야 할 것임이니라” 각 지파별 지휘관들은 지팡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팡이는 지도자의 권위를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지팡이에 각 지파 대표의 이름을 새기되 레위지파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새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 두 개의 지팡이를 회막 안 지성소 증거궤 앞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회막 안 지성소 증궈궤 앞은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를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힘들 때마다 모세와 아론에 대하여 대적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팡이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의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주권대로 세우셨음을 보이고자 하십니다. 증거궤가 있는 곳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기 때문에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하나님은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지팡이는 죽은 나무로써 어떤 생명 현상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신 것과 친히 아론을 택하신 것을 보이시겠다고 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대로 열두 지팡이를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아론의 지팡이'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아론의 지팡이에서 순이 나고 꽃 피고, 살구 열매까지 달려 있었습니다. 적어도 5, 6개월의 기간을 거쳐 일어나는 현상인데 하룻밤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백성들에게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첫째,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마른 나무에서 싹이 나고 움이 돋게 하고 살구 열매를 맺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부여자, 생명의 공급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마른 막대기에서도 싹이 나고 살구 열매가 주렁주렁 맺힙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택하십니다. 하나님은 열두 족장들의 지팡이 중에서 레위 지파의 지팡이를 택하시고 아론의 이름을 쓰게 하심으로써 아론 한 사람을 하나님의 주권으로 택하여 대제사장으로 세우셨음을 보이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주권은 생명 살리는 권세입니다. 하나님께서 반역하는 이스라엘 무리들을 염병으로 치실 때 아론은 목숨을 걸고 염병이 번져나가는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뛰어들었습니다. 그가 산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하나님 앞에 속죄하고 엎드림으로 염병이 그쳤고 이스라엘은 죽음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아론을 세우신 것은 백성의 죄를 사하시고 백성들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하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아론의 지팡이에서 생명의 싹이 나게 하셔서 하나님께서는 그 주권이 생명의 주권이며 이스라엘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하심임을 나타내셨습니다. 제사장은 죄를 사함 받게 하기 위한 직분입니다. 대제사장의 직분은 하나님 생명 역사의 중심입니다.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위한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몸을 드려 우리 모두가 죄사함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셨다가 말씀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대제사장임을 믿고 나오는 자마다 죄사함 얻고 영생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으로 대제사장을 세워 죄 사함 받고 생명 얻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지팡이를 전부 가져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보이며 그들이 각각 자기 지팡이를 집어들게 하였습니다(9).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의 지팡이를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 거기에 간직하라고 명하셨습니다(10).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이스라엘이 다시는 원망하지 못하도록 하는 표징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확인한 이스라엘 자손은 "보소서.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탄식하였습니다. 그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없는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데스 바네아 사건 이전에는 비전과 소망 속에서 행진하였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실 것이다.’ ‘너희들이 본토인이 되고 너희 땅에 이방인들이 나그네로 찾아올 것이다.’ ‘농사짓고 추수하고 타작하는 삶을 살 것이다.’ ‘포도주를 짜며 살 것이다.’ 가데스 바네아 사건 이후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간 광야에서 연단 받아야 하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엎어진다고 하니 절망과 낙심이 백성들 속에 확산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늘 좋은 것, 달콤한 것만 있지 않습니다. 죄가 있으면 털어내야 하고 허물이 있으면 청산하여야 합니다. 사랑은 달콤한 것만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어떤 할머니는 어린 자녀를 일곱 명이나 잃었습니다. 낳으면 죽고 낳으면 죽고, 그러다가 여덟 번째 아이가 영아기 유아기를 지나 살았습니다. 불면 날아갈 새라 쥐면 터질 새라 애지중지 금지옥엽 키웠습니다. 그랬더니 이 아기가 돌아다니며 어디서나 사람들과 싸웁니다. 조금이라도 관심 받지 않으면 원망하고 비방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에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관심주고 귀하다 하면 선한 사람, 나에게 관심주지 않고 쓴소리 하면 악한 사람입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것이 사람에게 나쁠 수 있습니다. 당장 쓰고 괴로운 것이 사람에게 좋은 것이 더 많습니다. 위한다는 것은 잘해주기만 하는 것이 위하는 것의 전부가 아닙니다. 사랑하기에 지적도 당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대상이므로 따끔한 징계와 연단도 받는 것입니다. 40년간의 사랑의 징계와 연단을 감당할 수 없는 내면성을 가진 사람들이 오늘 말씀의 사건을 통하여 정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의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주권으로 세우는 질서와 권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오늘 말씀은 대적하는 일을 만나는 리더가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모세와 아론은 대적하는 무리에 대하여 혈기 부리지 않았습니다. 강력한 논리로 다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대적하다가 진멸한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방향을 따랐으며 오히려 죽어가는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하고 산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는 일을 하였습니다. 권위와 권세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리더는 세워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일, 기도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들었으니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이 심각한 죄를 짓고 오류를 반복하는데도 가만히 있어야 하고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해야 하는가?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예수님 말씀을 따르면 됩니다. 목자도 예수님 안에서 형제이고 리더도 같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형제가 잘못하면 먼저 개인적으로 죄를 깨닫게 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말을 듣지 않을 경우 두 세 사람이 가서 죄를 깨닫도록 권고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교회에서 징계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사실 확인 없이 여러 사람들에게 성급하게 정죄하는 말을 전하여 비방한다든지 검증과 절차 없이 자의적인 판단을 인터넷에 먼저 올린다든지 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아낀다면 오류라 보이는 것에 대하여 사실 확인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중한다면 오류를 시정하도록 인격적으로 돕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귀하게 여긴다면 잘못과 오류를 시정하고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때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고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절차대로 하면 됩니다.
저에게도 대적하는 사람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어떤 후배 목자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하여 관계가 깨졌습니다. 저는 그에게 고개 숙여 동역자들 모두 보는 곳에서 공개적으로 사과하였습니다. 사과 받고도 미온적었던 그가 무릎 골절되는 일이 생겨 양을 다른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하지만 맡은 분이 양을 보살펴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의 양을 집으로 데려와 먹이고 섬겼습니다. 다리를 치료하고 돌아온 그 목자는 온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툭하면 전화를 걸어 ‘목자님 고마워요’하는 진심어린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또 저에게도 해준 것 없이 부당하게 마음 아프게 하는 어른도 있었습니다. 이 분은 한 챕터를 맡으신 분인데, 다른 사람에게 들은 말만 가지고 분노하고 개인적으로 저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저의 정혼식 때, 정혼식 마치고 밥 먹는 저더러 분노하고 책망하여서 옆의 분들이 말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분 센터의 컴퓨터 고장 나면 잘 고쳐주고 당시 팩시밀리도 사드렸습니다. 그분들이 아끼고 사랑했으나 끝내 돕지 못한 그 센터 목자를 우리가 사랑하였습니다. 그가 일에 묻혀 있으면 찾아 그분들 수양회에 보내주고 믿음으로 살도록 보이지 않게 도왔고 기쁨으로 우리 집에 데려다 같이 살았습니다. 그렇게 도운 목자가 덴버 최요셉 선교사입니다. CMI로 갈라진 3년 후에도 그 분이 우리 아산 개척역사까지 심하게 훼방하며 나타났는데 그 날 최요셉 선교사가 아름답고 아주 내면성 있는 이화여대 대학원 출신 자매목자님과 믿음의 가정 이룬 것과 미국에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는 소식을 알고 당황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돕지 못하는 일을 서아브라함 목자가 해주었으니 그를 인정하여야 한다’ 조언하였던 다른 분의 말이 그날 생각났을 것입니다.
대적하는 양의 문제든, 부당해 보이는 지도자의 문제든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사랑으로 풀어나가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개인적으로 권면해도 듣지 않고 두 세 사람이 권고하여도 듣지 않으면 저의 경우는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제는 내가 처리하겠다’ 하시는 하나님의 답을 기도를 통하여 들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적절한 때에 하나님의 주권대로 징계하실 것은 정확하게 징계하시고 은혜 주실 것은 은혜를 주시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시고 부르신 자의 영적인 진실과 권위를 친히 세워 주십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사람을 탓하고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런 때에 더욱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때에 더욱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가장 올바르고 선한 일을 하십니다. 선하신 주 하나님을 찬양 합니다.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Asan UBF
Asan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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