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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임하는 방법
“맑은 창가에 고요한 책상(明窓靜机 명창정궤)”이라는 표현과
志氣和平(지기화평)이란 표현이 있는 것처럼
글씨는 주위의 환경과 분위기, 뜻과 심기가 평온해야한다는
이 두 가지가 최적의 조건이다.
주위가 어수선하거나 자신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氣魂(기혼)을 펼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 어찌 최적의 조건만 찾을 수 있겠는가.
“바쁜 가운데 한가로움을 찾는다(忙中閑 망중한)”라고 했으며
“어디 누추함이 있으리오(何陋之有 하누지유)”라는 표현도 있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작품을 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글씨는 虛心(허심)한 상태에서 쓸 수 있어야 되는 것이 틀림없지만
凡夫(범부)이기에 쉽지가 않다.
손과정은 <<서보>>에서 작품하는 데에 있어서
‘五合五乖論(오합오괴론)’을 펼친 바 있다.
오합은
1. 심신이 편안하고 잡무가 한가로운 것
(神怡務閑 신이무한),
2. 은혜에 감응하고 글씨를 알아주는 사람의 뜻에 따르는 것
(感惠循化 감혜순화),
3. 시절이 調適(조적)하고 기후가 溫潤(온윤)한 것
(時和氣潤 시화기윤),
4. 종이와 먹이 서로 映發(영발)한 것
(紙墨相發 지묵상발),
5. 우연히 흥이나서 붓을 잡는 것
(偶然欲書 우연욕서)
오괴(五乖)는
1. 마음이 바쁘고 몸이 무거운 것
(心遽體留 심거체류),
2. 뜻을 어기면서 세력에 굴욕당하는 것
(意違勢屈 의위세굴),
3. 바람이 건조하고 날이 무더운 것
(風燥日炎 풍조일염),
4. 종이와 먹이 서로 걸맞지 않는 것
(紙墨不稱 지묵불칭),
5. 심정이 권태롭고 손이 무딘 것
(情怠手闌 정태수란)이 그것이다.
氣魂(기혼) ; 마음에 있는 생각 ?
虛心(허심) ; 마음속에 아무 망상이 없음
凡夫(범부) ; 평범한 사내. 평범한 사람
映發(영발) ; 광채가 번쩍번쩍 빛남
五合五乖(오합오괴) ; 다섯 가지의 글씨 쓰기에 합당한 것과
다섯 가지 글씨 쓰기에 합당하지 않은 것
怡 기쁠 이 循 따를 순 遽 급히 거, 분주히 거
燥 마를 조 闌 가로막을 란 乖 어그러질 괴
서예창작에 대한 제언
‘書如其人(서여기인)’이란 말에서
其人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이다.
옛 선비들은 글씨를 점잖게 썼고,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중국인들은 한자의 한자 한자에 精靈(정령)이 들어 있다고 믿는다.
이름 석 자나 아호. 학교명. 상호 같은 것들을 짓는데
그 의미 부여에 무척이나 고심한다.
그 뜻과 같이 되고자 하는 간절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씨의 한자 한자를 함부로 대하거나
멋대로 쓸 수 없는 것이다.
옛 선비들은 한 글자를 쓰다가 중도에 그만두면
“반만 쓴 글씨는 뜻이 통하지 않는다
(半字不通 반자불통)”라고 하여 금기로 여겼다.
글씨를 정중하고 근엄하게 쓰면
그 사람도 따라서 賢士(현사) 君子(군자)같이 된다는 것이다.
“마음이 바르면 글씨도 바르다(心正則筆正)”의 의미라기보다는
“글씨가 바르면 마음도 바르게 된다(筆正則心正)” 란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상이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글씨를 修身(수신)의 德目(덕목)으로 여기는 이유가 되어 온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서예를 어떻게 새롭게 발전시키느냐
즉 돌파구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하는 것은 앞으로의 큰 과제이다.
“서예도 예술인가”하는 문제에 대하여
심도 있는 연구와 대처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의문이나 질문은 愚問(우문) 이다.
一顧(일고)의 가치도 없는 생각이라고
일축해 버릴 수 도 있다.
그러나 九段(구단)만이 烏鷺閒談(오로한담)을 즐기는 것이 아니며
高僧(고승)만이 禪悅法喜(선열법희) 하는 것이 아닌바
글씨도 서가의 전유물일 순 없다.
서예계의 과제는 서가들의 대화합으로부터
서예계의 산적된 여러 가지 문제를 풀어가면서
같이 연구 격려함으로써
서단과 서가의 위상을 스스로 높여가는 것이다.
서예를 교양 삼아 하는 사람이나 문외한 신세대 등
모든 사람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作風(작풍)을
진작시켜 나가야 하는 것은 시대적 소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한글서예를 더욱 많이 보급시키되
궁체나 판본체의 정형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서법의 여러 가지 기법을 담아
새로운 풍을 창출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한문서예는 지금 쓰고 있는 것을 근간으로 하면서
은. 주의 도상문자를 다양하게 연구하여
누구라도 쉽게 느껴 볼 수 있는 단계로 끌어 올리는 것이
좋은 방법으로 여겨진다.
더욱 진보적이라면 종이에만 쓰는 글씨의 개념을
다소나마 탈피하여 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일 것이다.
예를 들면 집을 짓는데 벽면장식을 할 때
벽화나 조각을 했던 것처럼
글씨를 표구해서 붙일 것만이 아니라
벽면처리를 할 때 쇠붙이나 나무를 가지고
직접 글씨를 써 본다든지
또는 나무. 돌. 동판. 등에 새기거나
부식해서 붙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폭넓은 시도들은 서예를 좀 더 다양화하는 일면이며
나아가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길이며
더불어 다른 예술과 공존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書如其人(서여기인) ; 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
精靈(정령) ; 만물의 근원을 이룬다는 신령스러운 기운
賢士(현사) ; 어진 선비
君子(군자) ; 행실이 점잖고 어질며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
修身(수신) ;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아 수양함
德目(덕목) ; 忠(충), 孝(효), 仁(인), 義(의) 따위의 덕을 분류하는 명목
愚問(우문) ; 어리석은 질문
烏鷺閒談(오로한담) ; 오로는 까마귀와 백로, 흑과 백. 바둑의 별칭으로 한가하게 바둑을 둚
高僧(고승) ;학덕과 지식이 높은 僧侶(승려)
禪悅法喜(선열법희) ; 禪定(선정)에 들어선 기쁜 마음으로 부처의 敎法(교법)을 듣는 즐거움
禪定(선정) ; 참선하여 삼매경에 이르는 것 (禪)
참고문헌 ; <<서예통론>> 선주선저 원광대학교출판국, 인터넷 사전, 한한대자전 등 참고
첫댓글 오늘 명지서법 서예이론은 서예통론에서 지난 주 금욜 창작부분에서 勤까지 나가고 오늘은 博부터 나갔고 p132-143까지 나갔다. 후배들이 중간고사 기간이기에 모두 열공 중이다.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참고하길 바란다.
오늘은 2020년 1월 3일 새해 첫 강습회가 있는 날이다.
오늘 후배들이 본 서예이론이다.
2020년 일학기 명지서법 회장 추운 동아리 방을 지켜주어 고맙다.
다음주면 따뜻한 동아리에서 강습회를 할 것이다.
기대하도록 하고
감기 들지 않도록 하자 오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