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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도둑맞은 편지
에드가 앨렌 포우[미국] 에드가 앨렌 포우[Edgar Allan Poe (1809.1.19 - 1849.10.7)] 미국의 시인, 평론가, 단편소설 작가. 그는 추리소설, 탐정 소설의 영역을 개척한 작가로 유명하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황금 벌레> <어셔 가의 몰락>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 <검은 고양이> <병 속의 수기> <도둑맞은 편지> <마리로제의 비밀> 등이 있고, 시 <에너벨 리> <애니를 위하여> <갈가마귀> 등이 있다. 지혜로운 자에게는, 너무 영리한 것처럼 해로운 것은 없다. ――소네카 18xx년 가을, 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느 날 저녁 날이 저물어 어둠이 깃든 후에, 나는 파리의 교외 생·제르망의 뒤노街 34번지 3층에 살고 있던 친구 C·오규스트·듀팡의 조그마한 새재에서, 그와 함께 명상도 하고 해포석(海泡石)파이프로 담배를 피우는 두 가지 재미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적어도 한 시간 동안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얼핏 보기에 방안 공기를 짓누를 듯한 연기의 소용돌이 속에 정신이 팔린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것은 모르그街의 사건과 마리·로오제의 살해사건 뒤에 엉킨 비밀이었다. 그러므로 방문이 활짝 열리고 우리가 잘 아는 파리의 경찰국장인 G씨가 들어왔을 때 나는 어떤 우연의 일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를 반가히 맞아들였다. 그에게는 멸시할 점도 있었지만 한편 재미있는 점도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그를 몇 해만에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어둠 속에 앉아 있었으므로 듀팡이 남포 등에 불을 켜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G씨가 하는 말이 말이 매우 골치아픈 용무를 우리와 의논하려고, 아니 우리의 의견을 물으러 왔다고 하였으므로, 듀팡은 불을 켜지 않고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만일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라면 어두운제서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듀팡은 남포 심지에 불을 붙이지를 중지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또 당신의 그 묘한 버릇이 나놨군요.」 하고 경찰국장은 말하였다. 그는 무엇이든지 알 수 없는 것은 모두 <묘하다>고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묘한 것 투성이 속에서 사는 사람이었다. 「그럼요.」 듀팡은 그에게 담배를 권하고 의자를 내어밀었다. 「그런데 그 골치아픈 사건이란 무엇입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설마 또 살인사건은 아니겠지요?」 「아닙니다. 이번엔 성질이 좀 다르지요. 실은 매우 간단한 사건이므로 우리까리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지만 사건이 너무 묘하므로 듀팡씨도 그 사건의 내막을 듣고 싶으실 거예요.」 「간단하고도 묘하다!」 하고 듀팡은 말하였다. 「네 그래요. 그렇지만 또 반드시 그렇다고만 볼 수는 없지요. 사건이 실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알쏭달쏭하기 때문에 골치아프단 말씀예요.」 「그러면 사건이 너무 간단한 것이 오히려 당신들을 괴롭히고 있군요.」 하고 나의 친구가 말하였다. 「천만에!」 경찰국장은 껄껄대며 즐거운 듯이 대답하였다. 「그 괴상한 점이 너무 명백한 모양이군요.」 하고 듀팡이 말하였다. 「이봐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어쨌든 지나치게 자명(自明)하단 말이죠?」 「하, 하, 하……듀팡씨에게 절리면 꼼짝 못하겠는 걸.」 경찰국장은 재미있다는 듯이 크게 웃어대었다. 「대관절 무슨 사건입니까?」 하고 이번에는 내가 불었다. 「그럼 말씀드리죠.」 경찰국장은 생각에 잠겨 담배를 오래 빨더니 의자에 편히 앉아 대답하였다. 「간단히 이야기하지요. 미리 말할 것은 이 사건은 비밀을 지켜야 해요. 만일 내가 누구에게 이야기했다는 것이 알려지는 날에는, 내 모가지가 달아날 거요.」 「어서 애기해 보시죠.」 하고 내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그만두시든지……」 이건 듀팡의 말이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겠어요. 나는 어느 고귀한 분으로부터, 궁정(宮廷)에서 매우 소중한 서류가 없어졌다는 비밀정보를 받았어요. 훔친 사람이,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지요.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훔친 걸 보았으니까요. 그리고 그 서류가 아직도 그의 손에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어요.」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듀팡이 물었다. 「그 서류의 성질이나, 또 그녀석의 손에서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면, 다시 말해서 그가 이용하려 마음먹었던 대로 했을 때, 금새 나타날 어떤 결과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분명히 할 수 있는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얼른 알아듣기가 어렵군요. 좀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나는 또 말참견을 하였다. 「그러면 그 문서가, 그것을 자긴 사람에게 어느 방면에서 어떤 권세를 부린다는 것 까지만 얘기하지요. 그 작용은 그 방면에서 매우 소중한 겁니다.」 국장은 외교 용어를 쓰기를 좋아하였다. 「난 아직도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걸.」 듀팡이 말하였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하고 국장이 말하였다. 「이 문서의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만일 그들이 제3자에게 내 보이면, 그 고귀한 분의 명예가 훼손됩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그 문서를 가진 사람이 그 고귀한 분에게 큰 권세를 부리게 되고, 따라서 고귀한 분의 명예와 평화가 크게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 힘이란 것은」하고 나는 말하였다. 「그 서류를 잃어 버린 사람이 훔친 녀석을 알고 있다는 것을, 또 그 훔친 녀석이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감히……」 「그 녀석은」하고 국장은 말을 있었다. 「D장관입니다. 그는 남자로서 할 짓 못할 짓을 가리지 않고 다 하는 사람입니다. 훔친 솜씨는 교모하다기 보다 대담해요. 문서란 곧 편지인데, 도둑맞은 분이 혼자 궁정에 있을 때에 당한 것입니다. 그 편지를 읽고 있는데 마침 그 편지를 보여서는 안 될 어떤 다른 고귀한 분이 들어와서 그만 읽기를 중단해 버렸어요. 그래 다급히 서랍속에 넣으려다가 실패하자 편지를 편채 책상 위에 놓았어요. 그러나 수신인의 이름이 위에 있고, 내용은 보이지 않았으므로, 편지 내용은 눈에 뜨이지 않았어요. 이때 마침 D장관이 들어왔어요. 그의 괭이 같은 눈은 재빨리 그 편지에서 수신인의 이름을 보고 또 그 수신인이 놀란 안색으로 보아 거기에 무슨 비밀이 있다는 것을 곧 알아차렸어요. 그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사무를 빨리 끝내고 문제의 편지와 비슷한 편지를 꺼내어 읽는 체 하다가 먼저 편지 바로 옆에 그 편지를 놓았어요. 그리고는 다시 15분 쯤 공무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이윽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에서 자기에게 관계 없는 편지를 집어 들었어요. 그 편지의 수신인도 그것을 보았지만 바로 옆에 제 3자가 서 있으므로 차마 말할 수 없었어요. 장관은 쓸모없는 자기 편지를 책상위에 남겨놓고 급히 방에서 밖으로 나갔어요.」 「그럼 인제……」 하고 듀팡이 나한테 말하였다. 「자네가 묻던 그 권세를 부리기에 필요한 여러 가지 조건이 모두 나왔네 그려. 도둑맞은 분이 훔친 녀석을 알고 있는 줄을 그훔 녀석이 또 알고 있으니 말일세.」 「그렇지요. 이렇게 해서 손에 넣은 권세는 몇 달 동안은 매우 위험할 정도로 어떤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해 왔습죠. 도난을 당한 분은 어덯게 해서든지 그 편지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공공연하게 찾을 수는 없고 헤서 실망에 빠진 끝에 결국은 나한테 모든 걸 맡겼어요.」 「당신보다 더 현명한 일꿈은 바랄 수도 없고, 생각나지도 않았을 테지요.」 듀팡은 담배 연기가 자욱한 방에 앉아서 달하였다. 「너무 비행긴 태우지 말아요. 하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구장 말씀처럼 그 편지가 장관의 손에 있는 건 분명합니다.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갖고 있는 것이 유리할 테지요. 편지를 이용하면 세력은 없어지니까요.」 하고 내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구장이 동의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으로 일을 추진해 왔어요. 우선 제일 큰 관심거리는 장관의 집을 철저히 수색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장관 몰래 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큰 골치거리였지요. 우리의 계획을 그가 눈치재면 재미 없을테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런 수색쯤이야 국장님으로서는 식은 죽 먹길테지요. 파리 경찰은 이런 일에 대하여는 겸험이 많지 안아요?」 하고 내가 말하였다. 「그야 그렇죠. 그러므로 나는 실망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장관은 이런 일을 하기에 편리한 습성을 갖고 있었어요. 장관은 언제나 집을 비워두거든요. 또 하인도 몇 사람 안되는 데다 주인 방에서 떨어진 곳에 거처하고 있었어요. 거의가 나폴리 사람들로, 웬만큼 술을 먹이면 곧 녹아떨어지더군요. 나는 파리에서는 뉘집 어떤 방이나 어떤 서랍이든지 열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어요. 석달 동안에 하룻밤도 내가 D 장관 집을 수색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내 체면에 관계되는 문제니까요. 그리고 이것은 극비이지만 보수도 엄청나요. 그러나 훔친 자가 나보다 훨씬 단수가 높다는 것을 알고 나는 그만 수색을 단념했어요. 편지가 숨겨 있을 듯한 곳은 샅샅이 뒤져보았어요.」 「그러나 이런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하고 내가 암시해 주었다. 「그 편지가 아직도 장관의 손에 있다고 하더라도 집밖에 감춰 두었는지 알 수 없지 않아요?」 「그건 안될 말이야.」듀팡이 입을 열었다. 「궁중의 특수 사정이라든가 특히 D장관이 관련되어 있는 음모의 규묘로 보아, 편지를 당장에 이용해야 한다는 것, 즉 편지를 당장에 꺼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편지를 갖고 있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거든.」 「당장에 내 놓을 수 있게 되다니?」 하고 나는 물었다. 「다시 말하면 곧 찢어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야.」 「그렇다면 편지는 분명히 집안에 있겠군요. 대신 장관이 갖고 다닐테지요.」 「그래요. 도둑인 체하고 두 번이나 그를 지키고 있다가 그의 몸을 뒤져 보았지요.」 하고 국장이 말하였다. 「귀찮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아요.」 하며 듀팡이 대답히였다. 「장관도 바보는 아닐테지. 그것쯤이야 각오하고 있었겠지요.」 「그야 바보가 아니지요. 그렇지만 장관은 시인이랍니다. 나는 시인을 바보의 이웃 사촌으로 간주해요.」 하고 구장이 대답하였다. 「옳은 말예요. 나는 전에 엉터리 시를 써본 일이 있어요.」 듀팡은 해포석 파이프를 길게 사려 깊이 한모금 빨아들이고 말하였다. 「수색의 내막을 좀더 자세히 말씀헤 주실 수 없어요?」 하고 나는 구장에게 말하였다. 「사실은 이래요. 나는 이런 일에 대하여는 경험이 많으므로 시간을 많이 들여 구석구석 낱낱이 찾아보았어요. 방 하나를 조사하는 데 이렛밤이나 걸렸지요. 이렇게 해서 방 하나하나 차례대로 집안을 전부 수색했어요. 우선 방마다 가구를 조사하고 서랍을 다 열어보았지요. 능숙한 경찰관에게는 비밀서랍이란 있을 수 없어요. 바보가 아닌 한 이러한 종류의 수색에 우리 눈을 속일 수 있는 비밀서랍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일은 간단해요. 모든 서랍에는 일정한 용적의 부피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정확한 자가 있으므로 1라인(1인치의 10분의 1)의 50분의 1도 속일 수 없지요. 서랍 다음에는 의자를 조사했지요. 또 쿳숀 같은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그 가늘고 긴 바늘로 찔러 보았어요. 그리고 테이블은 그 위 판대기까지 뜯어 보구요.」 「그건 왜요?」 「테이블 위의 판대기나 다른 세간의 뚜껑을 뜯어 물건을 감추는 예가 흔히 있으니까요. 다리에 구멍을 뚫고 물건을 그 속에 넣은 후에 위 판대기를 다시 덮어요. 침대 판대기 위아래가 이렇게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요.」 「그렇지만 구멍 같은 건 두들겨 보면 알 수 있지 않아요?」 하고 내가 물었다. 「천만에요. 물건을 넣고 그 주위에 솜 같은 것을 잔뜩 틀어박으면 그만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는 소리를 내지 않고 일을 해야 해요.」 「그렇지만 지금 말씀한 그런 식으로 감췄을 듯한 가구를 전부 뜯거나 조각을 낼 수야 없지 않아요. 편지 한 장쯤이야 얼마나 되겠어요. 똘똘 말면 크기가 큰 바늘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그렇다면 의자의 가로 막대기에 낄 수도 있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의자를 모조리 뜯어 볼 수는 없겠지요.」 「그야 그렇지요. 그러나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조사했어요. 의자의 모든 가로 막대기와 가구의 틈바구니를 정밀한 현미경으로 조사했지요. 그래에 뜯어본 듯한 흔적만 있으면 눈에 띄게 마련입니다. 톱밥 하나가 사과만하게 보이니까요. 아교로 붙인 것이 약간 떨어져 있다든가 틈새가 좀 이상하게 뒤틀려 있기만 하면 대뜸 발각되지요.」 「거울도 살펴 보셨겠지요? 유리와 판자 사이 말예요. 그리고 침대와 침구, 커어튼과 양탄자도 조사해 보셨겠지요?」 「그야 물론이지요. 이렇게 하여 가구를 철저히 조사하고 나서 집 자체를 조사하기 시작했지요. 집 외부를 여러 구분으로 나누어 일일이 번호를 붙여 가지고, 그 집과 옆에 붙은 두 집을 포함해서 앞서 말한 현비경으로 세밀히 조사 했어요.」 「옆에 붙은 두 집까지두요?」 하고 나는 소리쳤다. 「거 참 굉장한 일이었겠군요.」 「그럼요. 그렇지만 보수가 많으니까요.」 「집 언저리의 뜰안도 살펴보았어요?」 「마당에는 모두 벽돌이 깔려 있었어요. 그래서 힘이 덜 들었지요. 벽돌 틈의 이끼를 조사해 보았더니 별로 수상한 곳은 눈에 뜨이지 않았어요.」 「물론 D장관의 서류와 서재의 책들도 조사해 보았겠지요?」 「그럼요. 모든 꾸러미를 펼쳐 보았어요. 책도 단지 보통 경관들이 하듯이 그냥 흔들어 보지 않고, 책마다 한 장 한 장 씩 넘겨 보았지요. 표지도 세밀한 자로 그 두께를 재어보고 현미경으로 찰저히 조사했어요. 새로 제본에 손을 댔다든다 하면 곧 눈에 띄지요. 서점에서 최근에 도착한 몇 권의 책은 바늘로 세밀하게 찔러 보았어요.」 「양탄자 아래 마루도 살펴보았어요?」 「물론이지요. 양탄자를 죄다 벗기고 마룻바닥을 현미경으로 살펴보았어요.」 「벽지는요?」 「암 조사했지요.」 「지하실도 보았나요?」 「보았어요.」 「그렇다면?」 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무슨 오산이 있겠군요. 그 편지는 당신이 생각한 것처럼 집안엔 없어요.」 「아마도 그런가 봐요.」 국장도 동의하였다. 「그런데 듀팡시는 어떻게 생각해요?」 「집안을 다시 한 번 철저히 조사해야죠.」 「그건 쓸데없는 일이예요. 편지가 집안에 없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건 내가 살아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분명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그 이상 더 좋은 의견이 생각나지 않는군요.」 하고 듀팡은 대답하였다. 「그런데 당신은 편지의 모양을 잘 알고 있지요?」 「암요.」하고 결찰국장은 수첩을 꺼내어 편지의 내용이며 겉봉에 대하여 더욱 상세히 콧소리로 읽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읽기를 끝내고 그는 가 버렸다. 나는 그때처럼 그의 낙심한 얼굴을 본적이 없었다. 한 달쯤 지나 그가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는 그가 전에 왔을 때나 다름없이 담배 연기 속에 묻혀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그는 파이프를 꺼내 물고 의자에 앉아 이 얘기 저 얘기를 시작하였다. 이윽고 나는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구장님, 그 도난당한 편지는 어떻게 되었어요? 장관은 당해내지 못하여 그만 단념해 버렸어요?」 「그 작자 말예요, 말도 못해요. 나는 듀팡씨 말대로 한번더 조사 해 보았어요. 그러나 내가 예상한 대로 헛수고였어요.」 「보수는 얼마라고 했지요?」 듀팡이 물었다. 「그야 엄청나지요. 아주 특별한 보수입니다. 분명히 얼마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만일 그 편지를 나에게 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5만 프랑의 내 개인수표를 떼지요. 이것만은 이 자리에서 약속해 드릴 수 있어요. 이 편지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더 커져 요새 와서는 보수가 두 갑절로 늘었어요. 그렇지만 설사 세갑절이 된다 하더라도 나는 더 이상 손쓸 수가 없어요.」 「아 그렇습니까?」 듀팡은 해포석 파이프를 빨면서 천천히 말하였다. 「나는 당신의 이 사건에 대하여 전력을 다하였다고는 할 수 없어요. 좀더 손쓸 여지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요?」 「아무튼(뻑뻑 담배를 빨며)당신은 이 사건에 대하여 남의 충고를 좀더 들어야 했을 겁니다. 아버니디(John Abernethy-1764~1831, 영국의 유명한 와과의)의 이야기를 이십니까?」 「몰라요. 어버니디란 어던 빌어먹을 놈입니까?」 「그렇죠. 빌어먹을 놈이지요. 그런데 언젠가 인색한 부자가 이 아버니디한테 의학상의 의견을 슬거머니 물어보려고 했어요. 그래 어느 개인적인 회합에서 이야기 끝에, 가령 이런 환자가 있다면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요, 하고 자기 병세를 이야기했어요. 그 구두쇠가 말하기를<그 사람의 병세는 이러저러하다고 생각하는데, 의사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처방을 하시겠어요?>했더니, <그건 의사의 충고를 들어야 해요.>하고 아버디니가 말하더래요.」 「그러나 나는 남의 충고를 들을 용의가 있어요. 또 이에 대한 보수까지도 제공하겠어요. 이 사건에 대하여 나를 도와 주는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5만 프랑을 드리겠어요.」 국자은 약간 불안스러운 얼굴을 하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하고 듀팡은 서랍을 열고 수표책을 꺼내면서 말하였다. 「지금 말씀한 액수의 수표를 써 주십시오. 그 수표에 싸인만 하시면, 곧 편지를 내드리겠어요.」 나는 깜짝 노랐다. 국장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한동안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않고, 입을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금새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듀팡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는 정신을 가다듬어 몇 번이나 머뭇거리다가 수표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펜을 들고 5만 프랑을 기입하고 싸인한 다음에 책상 맞은 편에 있는 듀팡에게 넘겨 주었다. 듀팡은 수표를 조심스레 살펴보고 지갑 속에 넣더니 사무용 책상 열쇠를 열고 편지를 꺼내어 국장에게 주었다. 국장은 기뻐서 어쩔줄을 모르면서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받아들고 급히 읽어 보더니 인사 한마디 없이 비틀거리면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는 듀팡이 수표를 써 달라고 말한 후로 말이라고는 한마디도 입밖에 내지 않았던 것이다. 국장이 나가 버리자, 듀팡은 나에게 이렇게 자초지종을 이야가 하였다. 「파리의 경찰은 그 방면에서 유능하단 말이야. 참을성도 있고 교묘하고 교활하며 직무상 지식에 정통해 있네. 그래 나는 국장이 D장관 댁을 수색한 이야기를 했을 때, 그가 애쓴 범위네에서 충분히 조사했으려니 하고 전적으로 그 말을 믿었다네.」 「그가 애쓴 법위내에서란 말이지?」 「그래, 그런 범위내에서는 조사하지 않았네. 만일 편지가 그들의 수색 범위네에 감춰 있었던들 영낙없이 발견되었을 걸세.」 나는 잠자코 웃고만 있었다. 그러나 듀팡은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방법도 훌륭하고, 조사도 물생틈 없었네. 그러나 그 방법이 사건과 상대방에게 적합하지 않은게 흠이었네. 국장이 매우 교묘한 수단이라고 생각한 건, 그에겐 일종의 푸로크리티스(古代희랍의 도둑으로 그가 잡은 사람을 자기 침대에 눕혀놓고, 침대에 맞추어 몸의 길이를 절단해 죽였다고 한다.)의 침대와 같아서, 억지로 자기의 모든 것을 맞춰 나가려고 했다네. 그러나 그는 사건에 대하여 너무 가볍게 생각하거나 너무 신중히 생각하여 언제나 실패한단 말이야. 이런 면에 있어서는 오히려 죽민하교 아이들이 그보다 더 영리할 거야. 내가 알고 있는 여덟 살쯤 되는 어떤 아이는 홀수와 짝수 놀이에서 언제나 잘 알아맞추어 칭찬을 받는다네. 그 장난은 매우 간단하여 돌을 갖고 한다네. 한 아이가 여러 개의 돌을 갖고 상대방에게 그것이<홀수냐? 짝수냐?>하고 물어서 맞츠면 하나를 얻고 틀리면 하나를 내놓는 걸세. 내가 말한 이 아이는 자기 학교 친구들의 돌을 죄다 딴거야. 그 아이는 이것을 알아맞추는 데 어떤 원칙을 갖고 있었네. 그것은 다른 아이들의 꾀를 잘 짐작하는 것에 불과하네. 예컨대 다른 아이가 바보일 경우에 그 아이가 손을 들며 <홀수냐? 짝수냐?>한단 말이야. 그러면 그 애는 <홀수―>라고 말하여 그만 잃게 되네. 그러나 다음 번에는 영낙없이 이기는 걸세. 왜야하면 이때 이 애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바보는 처음에 짝수를 가지고 이겼으니까, 그 머리 정도로 보아 다음 번에는 홀수를 가질 것이다. 그러므로 홀수라고 하면 틀리 없이 이길 것이다.>하고 생각 끝에, 정말 홀수라고 하여서 이기는 것일세. 그러나 상대가 이 아이보다 좀 영리한 편이라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네. <이녀석은 내가 처음 홀수라고 하였으니까 다음에는 앞서 애와 마찬가지로 짝수에세 홀수로 고치려고 하다가 이것은 너무나 단순한 변경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아마도 전과 마찬가지로 짝수를 손에 집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짝수하고 불러야겠다.>――이렇게 해서 짝수라고 불러서 이기게 된다네. 친구 아이들이 저마다<행운>이라고 부르는 이 아이의 추리법을 끝까지 분석해 보게.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나?」 「그거야, 간단하지 뭘 그래. 추리하는 자의 지력을 상대방의 지력에 일치시키면 그만이 아니겠나.」 「요점은 바로 그걸세. 내가 그 애에게 너는 어떻게 해서 성공의 토대가 되는 추리를 그렇게 잘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네. <누구나 그가 얼마나 꾀가 있나 또는 얼마나 멍청한가, 선량한가, 불량한가, 혹은 그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알고 싶을 때에는, 그 아이의 표정에 따라서 저도 되도록 정확하게 그애의 표정을 지어요. 다음에 그 표정에 따라서 제마음에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떠오르나 하고 지켜보아요.> 이 초등학교 아니의 대답에는 로슈프코(Francois Rochefoucault 1613~1680 프랑스의 윤리학자), 라· 부기브(Jean de Bruyere― 1645~1696를 포가 La Bougive라고 잘못 쓴 것임(프랑스의 윤리학자),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1557, 이탈리아의 정치가 및 저작가), 캄파넬라(Tammaso Campanella- 1568~1639, 이탈리아의 신부 및 철학자)등이 갖고 있었다고 생각되고 있는 모든 허위의 심각성보다 더 깊은 것이 있다고 생각되네.」 「결국 자네 말은 추리자의 지력과 상대방의 지력의 일치는 이쪽에서 상대방의 지력을 정확히 추측하느냐 혹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인가?」 「그 실제적인 가치는 그런 점에 달려 있네. 그리고 치안국장과 그 부하들의 실패한 원인은 첫째로 이러한 일치가 없었으며, 둘째는 상대방의 지력을 잘못 측정했거나 또는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일세. 그들은 단지 자기네의 재주만 믿고 숨긴 물건을 찾을 때에도 자기들이 숨김직한 곳에만 주의를 집중시켰다 말이야. 그들은 지금까지는 물론 잘해 왔어. 그들의 교묘한 방법은 일반민중들이 갖고 있는 교묘한 지혜의 대표였으니까. 그러나 어떤 악한의 교활성(狡滑性)이 그들의 교활성과 다를 경우에 그 악한은 그들을 속여넘길 수 있네. 이러한 일은 상대방의 지력이 그들보다 뛰어날 경우에 있는 일이지만, 또 열등할 때에도 생길 수 있네. 그들은 수색을 할 때 처음에 세운 방침을 변경시키는 일이 없네. 어떠한 비상상테에 부딪쳤을 때 막대한 부수라도 있으면, 그 방침을 변경할 생각은 하지 않고 고작해야 그들의 상투수단을 확대하거나 과장할 뿐이라네. 예컨대 D장관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네. 그들의 행동방침에 어떤 변화가 있었단 말인가. 구멍을 파본다든지, 송곳으로 쑤셔본다든지, 뚜들겨 본다든지, 현미경으로 자세히 조사해 본다든지, 집의 전면적을 각 평방인치로 나눠서 번호를 매긴다든지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그 따위 짓은 모두 궁장이 오랜 재직중에 인간의 지력에 대한 견해를 토대로 한 수색방법의 한가지 또는 몇 가지를 과장해서 실시한 것에 지나지 않네. 그는 사람마다 누구나 의자 다리에 구멍을 파고 편지를 감추지 않는 다고 하더라도, 그런 방법으로부터 암시를 받아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는 구멍이나 틈에 편지를 감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네. 그러나 이러한 구석에 감춘다는 것은, 단지 보통때만, 또는 보통 지력을 가진 사람만이 흔히 하는 일일세. 물건을 감출 때 이렇게 힘을 들여 처치하면, 대번에 상대방에서 눈치를 차리기 쉽고, 또 실제로 눈치를 차리게 된다네. 그리고 이것을 찾아내는 것도 수색하는 사람의 교묘한 머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력과 참을성과 결심에 달려 있는 것일세. 또 사건이 중대하다고 하더라도 혹은 경찰관의 눈으로 볼 때에는 같은 일이지만, 보수가 많을 때에는 이제 내가 말한 수색의 특징은 조금도 변함이 없이 그대로 실천된다네. 그러므로 도난 당한 편지가 국장의 수사법위 안에 들어있기만 하면, 다시 말해서 편지를 감추는 수법의 원칙이 국장의 수색원칙에서 포함되어 있으면 문제없이 발견이 되지만, 이번에 국장은 완전히 넘어가 버렸단 말일세. 그가 실패한 먼 원인은 장관이 시인으로 이름이 나 있었기 때문에, 그를 바보라고 단정해 버린데 있네. 국장은 ,모든 시인은 버보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세. 그는 이러한 전제에서 추리하여 매개 불확충의 오류를 법하고 있었네.」 「그런데 장관이 정말 시인인가? 두 사람의 형제가 다 학문연구에 이름을 날린다더군. 장관은 미분학에 대한 훌륭한 책을 쓴 걸로 나는 알고 있네. 그는 수학자이지 시인은 아니야.」 「아니야, 그건 오핼세. 나는 그를 잘 알고 있네. 그는 그 두가지를 다 겸하고 있네. 즉 시인 겸 수학자란 말일세. 그는 시인 겸 수학자로서 잘 추리하고 있네. 단지 수학자라면 추리가 다 뭔가 국장의 굴레에 빠져 들어갔을 걸세.」 「그건 놀라운 일인 걸.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의 의견과는 다르군 그래. 자네는 설마 오랫동안 세상에 통용되는 생각을 무시하는 건 아닐테지. 수학의 추리법이야 말로 흔히 가장 훌륭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지 않나?」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하고 듀팡은 샴포르(Nicholas Chamforf-1741~1794 프랑스의 문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입을 열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의 생각, 그리고 세상의 모든 관례는 대중의 견해에 적응되는 것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일세. 수학자는 지금 자네가 말한 그 통속적인 오류를 보급시키기에 전력을 다해 왔네. 그것이 설사 진리로 간주되어 왔다고 하더라도 오류는 역시 오류란 말일세. 예컨대 그들은 이런 경우에 교묘하게 분석이라는 말을 대수학에 정용하려고 한단 말야. 이런 속임수는 프랑스인이 장본인일세. 만일 용어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리고 용어가 적용되는 데서 어떤 가치가 생긴다면 나전어 ambitus가 거기서 파생한 영어의 ambition(야심)을, religio가 영어의 religion(종교)을, 또는 homines honesti가 영어의 honorable men(존경할 만한 사람)을 의미하지 않듯이 분석은 대수학을 의미하지 않는 것일세.」 「자네 파리의 대 수학자에게 싸움을 거는 건가? 여보게 그건 어쨋든 어서 하던 이야기나 계속하게.」 「나는 절대적 논리 이외의 특수한 형식에서 발달된 추리의 효력, 또는 가치에 대하여 항의하는 것일세, 특히 수학적인 연구에서 생긴 추리의 가치에 대하여 항의하는 것일세. 수학은 형식과 수량의 학문이라네. 그리고 수학적인 추리는 형식과 수량에 대한 관찰에 적용된 추리에 지나지 않네. 이른바 순수 대수학의 진리는 추상적, 또는 보편적인 진리라고 가정하는 것이 잘못일세. 그것이 놀랄만큼 일반인에게 잘못 통용되어 있는데는 놀랄뿐일세. 수학의 공리(公理)는 결코 보편적인 진리는 아닐세. 관계에 대하여――형식과 수량에 대하여 진리인 것은, 예컨대 윤리학에서는 커다란 오류인 경우가 많네. 윤리학에 있어서는 부분의 총계가 전체와 같다는 것은 대체로 진리가 아니네. 그리고 화학에 있어서도 공리는 들어맞지 않네. 동기를 생각해 볼 때에도 그렇다네. 각각 일정한 가치가 갖고 있는 두 개의 동기는, 그것을 합쳐도 반드시 개개의 가치의 합계와 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없으니 말일세. 이밖에 관계의 범위 안에서만 진리가 되는 수학적 진리가 많이 있네. 그러나 수학자는 습관상 그들의 유한한 진리가 절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또 세상사람들도 그처럼 믿고 있는 것일세. 브라이언트(Jacob Bryant-1715~1804, 영국의 고고학자)는 그의 신화학속에서 <이교도들의 우화는 믿을 만한 것이 못되지만 우리는 언제나 자기자신을 잊어버리고 이 우화를 실화처럼 생각한다>고 말하였지만, 이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오류의 근원을 지적한 말일세. 대수학자란 결국 이교도의 별명이고 보면, 잘못 생각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우둔한 두뇌로 말미암아 이교도의 우화를 믿고 추론하고 있는 것이라네. 요컨대 나는 등근(等根)이외의 것으로 믿을 수 있는 수학자 또는 X²+ PX 가 절대 무조건적으로 q와 같다는 것을 자기 신념의 일부로 간주하지 않는 수학자를 본 일이 없네. 시험적으로 이들 수학자의 한 사람에게 X²+px는 q와 같지 않은 때가 있다고 말해 보게. 그리고 그것을 그에게 이해시킨 후에는 곧 도망쳐야 하네. 그는 분명히 자네를 때려눕히려고 할 테니까.」 「내 이야기의 취지는」 내가 그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고 웃고 있으니까 듀팡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만일 D장관이 단지 수학자에 불과했다면 경찰국장은 이 수표를 나한테 줄 필요는 없었을 걸세. 그러나 나는 그가 수학자인 동시에 시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네. 나는 그 여러 가지사정을 고려하여 나의 척도를 그의 재능에 합치시킨 것일세. 나는 그가 정신(廷臣)으로서 대담한 음모가라는 것도 알고 있었네. 이러한 남자는 반드시 경찰의 상투수단을 잘 알고 있을 걸세.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네――그리하여 결국은 그가 예상하던 대로 되었던 것일세. 그리고 그는 자기 집이 몰래 수색을 당하고 잇다는 것도 짐작했을 걸세. 경찰국장은 장관이 언제나 밥에 집을 비운 것을 좋아했지만, 실은 차라리 경찰에 충분히 수색할 시간 여유를 주어, 편지가 집에 없다는 것을 하루 속히 알게 하려는 그의 계획에 지나지 않았던 거야. 국장도 아마 그렇게 단정해 버렸지만, 숨겨둔 물건을 수색하는 경찰의 상투적인 방법에 대하여 지금 내가 자네한테 상세히 설명한 내용쯤은 장관도 진작 생각하고 있었을 걸세. 설사 그의 집안 구조가 복잡하여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이라도 국장의 눈과 바늘과 송곳과 현미경 앞에서는 그가 언제나 사용하고 있는 벽장이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을 못할만큼 장관은 바보가 아니야. 맨 처음 우리가 국장을 만난 날에, 내가 이 사건은 너무나 빤한 일이기 때문에, 그를 괴롭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을 때, 국장이 크게 너털웃음을 친 것을 자네는 그저 기억하고 있을테지.」 「그래 생각나네. 매우 통쾌하게 웃어젖히더군 그래. 나는 국장의 허파라도 터지지 않나 하였네.」 「물질계에는 정신계와 비슷한 현상이 얼마든지 있네. 그러므로 은유와 직유를 사용하여 주장을 강하게 하고 표현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수사학상의 독단이 어느 정도 진리처럼 보이게 되는 걸세. 예컨대 타성의 원칙은 물리학이나 형이상학에 있어서 동일한 것처럼 생각되네. 물리학에서 있어서, 큰 물체는 작은 물체보다 움직이기 힘들며 이에 따르는 운동의 양은 이 어려움에 비례하는 것인데 그것은 마치 형이상학에 있어서 더 큰 능력을 가진 지력은 영등한 지력보다 동작에 있어서 더 상하고 변치 않고 효과가 크지만, 그것이 발동할 첫걸음에 있어서는 훨씬 움직이기 힘들고 어렵고 주저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일세. 그리고 자네는 상점에 걸려 있는 간판 가운데서 어던 것이 눈에 제일 잘 뜨이는지 생각해 본 일이 있나?」 「그러건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네.」 라고 나는 대답하였다. 「왜 글자 찾기 놀이가 있지 않나?」 하고 그는 말을 계속하였다. 「지도를 펴놓고 하는 것 말이야. 그것은 한편이 어던 지명을 부르고 상대편에게 찾아내라고 하는 거야. 마을, 시내, 주(州), 나라 등――아무튼 복잡한 지도 위에서 어떤 지명이라도 관계 없네. 이 놀이에 서투른 사람은 애써 깨알 만한 지명으로 상대편을 골려 주려고 하지만 흔히 이 놀이에 익숙한 사람은 지도한 끝에서 한 끝까지 큰 글자로 펼쳐 있는 이름을 고르는 법이라네. 이러한 글자는 너무나 크게 써붙인 거리의 간판이나 광고와 마찬가지로 도리어 사람들의 눈에 덜 뜨이는 걸세. 그리고 이러한 것을 잘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물리적인 착각은, 유식한 사람이 오히려 너무나 명백한 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정신상의 부주의와 비슷한 점이 있네. 그러나 이점을 국장은 이해하지 못하였네. 그는 장관이 편지를 세상의 어느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뭇사람들의 코 앞에 갖다 놓아 둘지도 모른다는 것을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을 걸세. 그러나 나는 D장관의 대답하고 당돌하며, 교모한 수법을 생각할수록――그가 편지를 유효하게 쓰려면, 가까운 데 놓아 두어야 한다는 사실, 또한 그 편지는 국장의 판에 박은 듯한 수색방법의 법위 안에 숨겨 놓아서는 안된다는 단정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장관은 더욱 그 편지를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는 영리하고도 사려깊은 수단을 취했으리라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어느 맑게 개인 날 아침에 푸른 색안경을 쓰고 장관댁을 방문하였네. 장관은 마침 집에 있었네. 그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하품도 하고 천천히 왔다갔다하면서 꽤 심심한 것처럼 보였네. 그는 세상에서 제일 정력적인 사람일텐데,――그러나 이것은 남이 보지 않는데서만 그렇단 말일세. 나는 시력이 약하기 때문에 그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려면 반드시 안경을 써야 한다고 투들거렸지만 실은 그 안경 덕분에 같으로는 그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체 하면서 그의 눈을 피해 방안을 세밀히 살려 보았네. 나는 특히 그가 앉아 있는 커다란 책상을 유심히 보았네. 그 위에는 편지와 서류와 한두 개의 악기와 두서너 권의 책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네. 그런데 그것을 아무리 눈여겨 보아도 의심스러운 것은 전혀 눈에 뜨이지 않았네. 그리하여 방안을 둘러보다가, 난로 바로 한복판 아래 있는 조그마한 놋쇠로 만든 작은 손잡이에 푸른 리본이 달린 아름다운 상자의 명함꽂이를 발견했네. 이 명함꽂이는 서너 칸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거기에는 대여섯 장의 명함과 때묻고 꾸겨진 한통의 편지가 들어있었네. 그리고 그 편지는 가운데가 둘로 찢어져 있었네. 그것은 마치 애초에는 쓸모가 없었으므로 찢어 버리려고 하다가 다시 생각하고 찟기를 중단한 것 처럼 보였네. 그런데 거기에는 검은 봉인이 찍혀 있고, 분명히 D라는 글자가 쓰여 있고, 가느다란 여자의 필적으로 D장관에게 보낸 것이었네. 그리고 이 편지는 명함꽂이 첫간에 쓸모없는 것이라는 듯이 아므렇게나 꽃혀 있었네. 이 편지를 보자마자 나는 내가 찾고 있던 것이 바로 이것임을 알아차렸네. 그것은 어느모로 보던지 국장이 우리에게 자세히 들려 준 그런 그런 편지와는 다르게 보였네. 이 편지는 검은 봉인이 큼지막하게 찍혀 있고 가다란 글씨가 쓰여 있었네. 국장이 우리에게 말한 편지 모양은 조그만 빨간 봉인이 찍혀 있고, S공작가(家)의 문장(紋章)이 있다고 했네. 그리고 이 편지의 주소는 가느다란 여자의 필적으로 되어 있으며, 어느 왕족에게 붙인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비슷한 것은 단지 편지의 크기뿐이었네. 그런데 이와 같은 차이점과 손때와 찢어진 모양이며, D장관의 빈틈 없는 일상생활의 습성과는 모순되어 있어, 보는 사람의 눈에 마무 소용도 없는 것처럼 하려는 의도라든가, 또한 전에 내가 도달한 결론대로 편지가 모든 손님들의 눈에 뜨일 수 있는 곳에 꽂혀 있는 사실은 수색하기 위해 찾아온 나에게 대뜸 큰 의심을 주었네. 나는 되도록 오래 눌러 앉아서, 장관의 흥미를 끌어 감동시킬 만한 문제를 놓고 열렬히 토론을 하는 한폍, 수간도 편지에 대한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네. 이와 같이 하는 동안에 나는 편지의 겉모양과 명함꽂이에 꽂혀 있는 모양을 잘 기억해 두었네. 그리고서 다음과 같은 것을 찾아내고는 나의 조그마한 의혹까지도 깨끗이 사라졌네. 즉 편지의 모서리를 유심히 들여다본즉 필요 이상으로 구겨져 있었던 걸세. 두터운 종이가 한번 접혀서 금이 갔던 것을 다시 접었다가 뒤집어 가지고 반대로 접었을 때에 생기는 그런 구심살이었네. 이것으로 충분하였네. 나는 장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일부러 금으로 만든 담배갑을 책상 위에 놓고 집으로 돌아왔네. 이튿날 아침에 나는 담배갑을 찾으러 장관댁에 가서 어제 우리들이 하던 이야기를 열심히 되풀이하였네. 그러자 창문 아래서 갑자기 권총 소리 같은 큰 소리가 들리더니 곧 이어서 무서운 비명과 군중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네. 장관은 급히 뛰어가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 것이었네. 나는 벌덕 일어나 명함꽂이가 있는 곳에 가서 그편지를 꺼내어 호주머니에 넣고 가짜 편지를 대신 끼워 넣었네. 그 편지는 내가 빵으로 만든 도장으로 D라는 봉인을 하고 집에서 용의 주도하게 만든 걸세. 거리의 소동은 총을 가진 사나이가 미친 지랄을 부린 것이었네. 부인들과 아이들을 향해 총을 쏜 것이지만 공포라는 것이 판명되어 미친 사람이 아니면 술 주정꾼의 소행이라고 해서 놓아 주었네. 그 후 D장관은 다시 돌아왔네. 하진 나도 잔뜩 눈독을 들인 물건을 손에 넣게 되자 장관의 뒤를 쫒아 창옆에 서 있었네. 이윽고 나는 작별인사를 하고 그집을 나왔네. 그 가짜 미치광이인즉 바로 내가 시킨 사나이었네.」 「그런데 뭣하러 가짜 편지 같은 걸 거기 끼워 두는 거야. 자네가 처음 찾아갔을 때 버젓이 뺏아 가지고 오면 되지 않아?」 「아니야. D장관은 물불을 헤아리지 않는 대담한 사람이란 말이야. 그리고 그 집에는 그를 위해 목숨을 내던질 하인들도 얼마든지 있네. 만일 자네 말대로 하다간 뼈다귀도 못 추리게 될걸세. 따라서 파리 시민들도 그 후 내 소식을 전혀 듣지 못하게 될거야. 그렇지만 나는 배포가 좀 달랐네. 자네도 알다싶이 난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네. 그리하여 이 사건에 있어서 나는 귀부인이 관련된 당원으로서 행세할 걸세. 장관은 18개월 동안 자기의 권력으로 그 귀부인을 손아귀에 넣고 흔들었네. 그러나 이번에는 장관 쪽에서 그 귀부인의 권력에 좌우될 판이었네.――왜냐하면 그는 편지가 자기 수중에 없는 줄을 모르고 있으므로 편지를 가진것처럼 행동하는거야. 이리하여 그는 갑자기 자기의 정치 생명을 잃게 된단 말이야. 그것은 실로 순간적인 일이니 얼마나 꼴불견이겠나. 그야말로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는 격이오, 숨이 막힐걸세.(지옥으로 떨어지기는 쉽다)는 말도 있거니와, 칼타라니(이탈리아의 성악가)가 성악에 대하여 말한 바와 같이 무엇이고 올라가는 것은 떨어지는 것보다 쉬운 거라네. 이 경우에 나는 떨어지는 자는 동정하고 싶지 않네. 불쌍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네. 그 작전은 무서운 괴물단지야. 철면피한 점에 있어서는 단연 천재라네. 어째든 국장이 소위<이런 귀부인>에게 납작하게 되어 내가 마침내 명함꽂이에 끼워 둔 그 편지를 펴 보아야 할 처지에까지 이르렀을 때, 그가 어떤 생각을 할는지 매우 궁금하네.」 「왜? 자네가 그 편지 속에 무슨 이상한 것을 써 넣었나?」 「그럼. 백지만 널기도 뭣해서――그건 예의가 아니거든. D 장관은 언젠가 뷔안나에서 나를 크게 골린 적이 있었네. 그때 나는 불쾌한 얼굴을 하지 않고 다만 언제든지 이을 마음속에 새겨 두겠노라고 말했지. 어쨋든 자기를 넘겨잡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을 터이므로 나는 그 단서를 알리지 않는 것도 안된 것 같아서, 그는 내 필적을 잘 알고 있으므로 나는 종이에 이렇게 써 넣었네. <이런 무서운 계획은 아트레에게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디에스트에게는 어울릴 것이다> 이 글은 크렙용의<아트레>라는 희곡 속에 있는 문귀일세. (코레비용은 18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으로 그의 작품 아트레의 줄거리는 대강 이러하다. 디에스트는 아트레의 아내를 유혹한 죄로 말미암아 국외로 추방된다. 아트레가 디에스트와 화해하려고 주연을 베풀고 그의 두 아들을 죽여 그에게 그 고기를 먹인 후에 그 사실을 고백하여 상대방에게 복수를 했다는 희랍의 전설을 희곡화 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