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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봉 시집. 3년동안 쓴 우포늪 시편들을 묶었다.
"오늘도 우리가 걷는 길은 신성하고/길가의 들꽃 한 송이는 밤의 등불만큼 아름답습니다//가난한 사랑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빵이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는 길입니다//개밥바라기가 받쳐든 등잔에 마지막 기름을 붓고/풀잎에 우주의 맑은 땀방울인 이슬 매다는 새벽//우리의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마지막 어둠 배웅하는 지상의 등불을 위해/기꺼이 더 가난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동행> 전문.
1998년 [현대시] 신인추천작품상에 당선되어 등단한 배한봉 시인의 시집으로 3년 동안 늪과 시에몸을 섞으며 살아온 시인의 우포늪 시편들이 모여 있다. 시인은 전통적인 가치관에는 자연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겸손과 외경이 깔려 있고,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모든 것이조화와 균형 속에서 하나로 맺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이 시집을 통해독자들은 생명공동체인 우포늪의 살냄새를 맘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02.10.18 金 대한매일기사 > 19면 문학
배한봉씨 두번째 시집 `우포늪 왁새' - 우포늪에서 생명을 보았네
배한봉은 시인이다.그냥 시인이 아니라 이 땅의 생태 역사가 숨쉬는 우포늪 지기 시인이다.왜가리와 개구리밥,자운영,가시연꽃 등속과 더불어 우포늪 ‘ 맑은’ 물에 베잠방이를 적시고 사는 그의 시는,그래선지 온통 자연색이다. 어디에도 인공 감미료의 역겨움이 배어 있지 않다. 청량하고 담백하다.
‘온 몸에 돋은 가시로 제 살을 물어뜯지 않고서는 터질 수 없는 선지빛 꽃 의 뇌관.(중략)분노와 증오,탄식마저 사랑해야 할 여름의 끝,빈 손으로 돌아 온 이들을 위해 불을 댕기는 저 꽃 앞에서 나는 자꾸만 울고 싶은 것이다.’ (가시연꽃 중)라는 그는 우포를 떠나서는 이미 시인이 아닐는지도 모른다.그 의 시정은 가시연꽃처럼 끝모를 늪의 깊이를 향해서만 비로소 벙그는 꽃 같은 것.
그의 두번째 시집 ‘우포늪 왁새’(시와 시학사)는 흔한 시평 하나 없는 숭 늉처럼 밍밍한 시집이지만 속을 들춰보면 물위를 비추는 아침 빛살처럼 눈 시리게 다가온다.
‘나는 지금 1억년 전의 사서(史書)를 읽고 있다/빗방울은 대지에 스며들 뿐만 아니라/돌 속에 북두칠성을 박아놓고 우주의 거리를 잰다/신호처럼 일 제히 귀뚜리의 송신이 그치고/들국 몇 송이 나즉한 바람에 휘어질 때/세상의 젖이 되었던 비는,마지막 몇 방울의 힘으로/돌 속에 들어가 긴 잠을 청했으 리라’(빗방울 화석 중) 이처럼 그의 시세계는 ‘우포’ 또는 ‘우포의 생태’라는 현실을 통해 잊 혀진 역사와 만나고,‘돌 속의 잠’으로 표현되는 현실 또는 현실 이후의 날 들과도 만나기를 희망한다.다시 곱씹어 보라.낱알 같은 빗방울 하나에서 근 원조차도 모를 생명의 기원을 보는 시인의 명상은 얼마나 건강한 것인가.
시편에 나타난 그의 주지(主知) 지향적 진지함은 많은 사람들이 ‘생태의 보물창고’라는 우포늪에서 하나의 기원을 구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 진지함은 ‘봄이 지뢰를 밟았다’(자운영 꽃밭에서)거나 ‘비로소 지느러 미 흔들며 입을 뻐끔거리는 물고기와/부화된 유충들의 오랜 믿음이/한 뜸씩 유영의 무늬를 수놓는 물의 성소’(물의 신전)에서처럼 현상이 그의 시적 정수기를 거쳐 구체화된다.
이런 그의 시가 더 포근한 것은 자칫 냉랭할 수 있는 주지적 경향을 ‘사람 냄새’로 감싸고 있다는 점이다.‘6월 우포늪에 오려면 우항산 멍석딸기 익 을 때가 좋고요/우항산 가는 길은 물억새 키를 덮는 토평둑이 좋지요’라는 그의 우포 사랑이 ‘달콤시큼’하다. 5500원.
심재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