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인들의 휴식처가 되는 문학기행
이병헌
봄이 깊어가면서 여기저기에 꽃이 피어난다. 올해는 봄에 기온이 갑자기 올라가 벚꽃도 일주일 이상 일찍 피어났고 동시다발적으로 피어나 꽃 멀미를 느낄 정도였다. 이렇게 봄이 깊어가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물론 글을 쓰는 문인들도 어디론가 떠나 여행하면서 글의 소제를 얻기를 원한다.
한국문인협회예산지부(이하 예산문협)에서는 일 년에 한두 번 문학기행을 다녀온다. 코로나로 말미암아 몇 년 동안 다녀오지 않았거나 가까운 곳에 간단히 다녀온 적이 있다. 예산문협 동인지를 보면 다녀온 문학기행지를 알 수 있다. 문학기행으로 남겨놓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문학기행지는 대개 문인들의 생가, 문학관 그리고 시비나 문학비가 대상이 된다. 문학기행을 다니면서 선배 문인들의 삶과 문학세계를 만나보는 것도 참 좋다. 물론 문학기행이라고 해서 문인들의 자취만 찾는 것은 아니다. 문학기행과 동시에 같은 지역에 있는 문화재나 관광지를 돌아보는 경우가 많이 있고 또 그렇게 해야 더 재미가 있다.
예산문협에서는 많은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큰 버스를 이용해서 다녀온 적이 있고, 미니버스를 회원이 직접 운전해서 다녀온 적도 있다. 최근에는 승용차를 나눠타고 여행을 떠나기도 하였다. 사실 물가가 올라서 버스를 빌려서 여행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아무래도 인원이 30명은 넘어야 버스를 빌려 타고 여행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승용차로 여행하면 경비는 적에 드는데 회원 간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제한적이다. 버스를 타고 시끌벅적하게 다녀오던 여행을 생각하면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장점도 있다. 승용차를 함께 탄 사람들끼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잘 알게 되고 그들의 문학세계도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산문협에서 다녀온 곳은 정말 많다. 이십여 년 전에는 8명이 버스를 타고 강원도로 문학기행을 떠난 적이 있다. 춘천 김유정 문학촌을 다녀온 적이 있다. 참 오래전의 일인데 남이섬까지 갔던 기억이 새롭게 다가온다.
평창 이효석 문학관을 여행한 적도 있다. 또한 강릉 문학기행도 잊혀지지 않는다. 강릉으로 문학기행을 떠나는 것이 쉽지는 않았는데 그때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였는지 모른다. 그래도 다녀온 후의 기억이 남는 것은 그 당시의 문학기행이 마음속에 풍성한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성의 조병화 문학관과 박두진 시비, 양평의 소나기마을과 잔아문학관을 돌아보기도 하였다. 양평으로 문학기행을 갈 때 정말 많은 회원이 갔다. 아름다웠던 추억이 유난히 많았던 문학기행이었고 다시 떠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충청북도의 정지용생가와 문학관을 돌아보았고, 충주 문학기행으로 신경림시비를 만나보기도 하였다. 물론 지금 예산문협에서 함께하지 못한 회원들이 참 많이 있다. 이 말은 오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송어비빔밥을 먹었던 기억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경상북도의 이육사 문학관에서 그의 삶과 문학세계를 알아보고, 석정문학관을 돌아보면서 부안 바닷가에서 보트를 탄 적도 있다. 아주 오래전에는 심훈 필경사를 돌아본 후에 난지도에 들려 한 회원의 생일파티를 한 적도 있어 인상적이었다.
오래전에 보령 이문구의 자취를 향해서 떠났고, 서천 문학기행도 하였다. 공주로 떠났을 때는 세상을 떠난 고철수 시인이 가지고 온 술을 유구 개울가에서 마시던 일이 생각난다. 모든 문학기행은 추억을 담아내고 있다. 함께 한 회원들과의 이야기가 남아있고 그들의 채취도 그리워진다.
부여 정한모 생가와 신동엽문학관에 들리기도 하였는데 그리 멀지 않지만 자주 가지는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홍성문협과 교류의 차원에서 홍성문협의 초청으로 홍성문학기행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작년에는 홍성 문학기행으로 한용운 생가를 다녀온 적이 있다.
이번 봄 문학기행은 논산으로 떠났는데 동선을 최소로 잡고 돌아볼 수 있도록 계획을 하였다. 덕분에 정해진 시간에 비해 많은 곳을 다녀왔다. 김홍신문학관과 박범신 소금문학관에 들려 그들의 문학세계를 만나보았다. 물론 살아있는 문인들이지만 작가들의 문학관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계백장군 묘와 탑정호 출렁다리도 다녀왔는데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번 문학기행은 날씨도 좋았고 벚꽃이 만개한 상태여서 아름다운 꽃들을 만났고 맛있는 식사와 딸기주스까지 마셨으니 모든 것이 완벽하였다.
앞으로도 떠나 할 문학기행지가 많이 있다. 물론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 거리가 먼 곳도 있고, 가깝지만 다녀오지 못한 곳도 있다. 무엇보다도 문학기행을 갈 곳을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턱대고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제주도, 울릉도, 보길도 등 거리가 있는 곳으로도 떠나고 싶다. 물론 이렇게 떠나게 되면 1박 이상이어야 하니 숙제가 될 수도 있다.
문학기행을 떠나기 위해서 어떤 것이 중요할까? 우선 정해진 지역의 작고한 문인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생가와 문학관 그리고 문학비나 관련 유적지를 찾아보아야 한다. 물론 생존해 있는 문인들이라면 그래도 나이가 든 경우가 좋다. 그리고 문학기행으로 밋밋한 부분을 그 지역의 유적지나 관광지를 돌아보도록 일정을 짜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여행하면서 식사를 할 식당과 식사 후에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는 카페도 중요하다. 예전에는 밥만 먹으면 되는 줄 알았지만 요즘은 카페문화가 발전하였고, 특히 개인 승용차를 이용해서 문학기행을 떠날 때는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개인차는 있겠지만 사진으로 남기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예산문학의 역사 속에 차곡차곡 쌓아놓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퇴직과 노인(老人) 그리고 살아가야 할 방향
내가 퇴직을 한 지도 몇 년이 되었다. 퇴직한 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였다. 나보다 먼저 퇴직했던 직장 동료들의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퇴직은 제2의 출발이라는 말이 있다. 일을 끝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퇴직하면서 ‘노인’이라는 칭호를 붙는 경우가 많다. 기업에 따라 명예퇴직의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60∼65세가 되면 퇴직의 나이가 된다. 물론 그보다 이른 나이에 퇴직하는 사람들도 있다. 퇴직하거나 퇴직 후 몇 년이 지나면 노인 소리를 듣게 된다. 노인(老人)에 대한 사전적인 의미는 ‘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을 뜻한다. 나이가 먹었으니 노인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틀리지 않다. 하지만 ‘노인’이라는 말을 들을수록 서러워지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노인이라는 말의 뉘앙스가 문제이다.
“노인네들 나이 먹었으면 집에나 있지 왜 이리 돌아다니는지 몰라.” 언젠가 길을 가다가 들은 소리인데 나에게 한 소리는 아니었고 두 여자가 자신들의 시부모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그 말을 한 사람도 노인이 되기에 얼마 안 남은 것 같았다. 자신들도 시간이 지나면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럽게 노인이 된다. 그런데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말을 하는 경우를 본다.
직장을 퇴직하거나 자영업을 하다가도 은퇴를 한 경우에도 기준점으로 삼은 날 이후의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 활발하게 살아가는 분도 있었고, 일 년 사이에 몰라보게 변할 정도로 늙은 것 같은 경우도 있다. 그것은 일부는 자신의 마음 먹기에 달려있고, 가족 환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퇴직을 한 후 집에만 머물고 활동하지 않으면 생각부터 노쇠해질 수 있다.
이러한 경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뇌세포의 활동이 줄어드는 경우가 있는데 몸과 마음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니 몸도 급격하게 노화 과정을 겪게 될 수 있다. 퇴직 후 중요한 것은 자신이 정말 일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할 준비가 된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 중에는 나이가 들었어도 일을 계속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직장인이 아닌 경우 일을 계속하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직장에서 퇴직한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직장을 퇴직한 친구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일을 하는 친구가 부럽다.
사실 퇴직 후의 삶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을 그만두는 것이 자신을 가정에만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퇴직한 사람들은 취미활동을 하고 봉사 활동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어떤 상태더라고 활동의 연속성이 보장되는 것이기에 정신적 육체적인 활동으로 이어진다.
사실 사회적인 분위기는 노인들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나이가 든 사람들을 표현할 때는 '노인네', '노친네', '노땅'등의 용어를 쓰는 경우가 있다. 노인들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어르신', '시니어', '실버' 등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노인들은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한 사람들이다.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힘든 일을 많이 하였다. 지금 우리나라가 있기까지 공헌한 바가 큰데 젊은 사람들은 노인들을 바라볼 때 그저 ‘나이 먹은 사람’에 불과하다. 국가에서 공공요금 인상할 때도 노인들이 중심에 있다. 구조적인 문제를 생각하기보다는 노인들이 무임승차를 하는 것이 큰 문제처럼 여겨지고 있다.
노인에 대한 사회적인 관념은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55세였고, 1990년대에는 60세였다가 2000년대에 65세로 올라갔다. 유엔의 규정에 따른 분류로 '고령화사회'란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7%를 차지하는 사회를 말한다. 한편 노인인구의 비율이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라고 규정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0년에 65세 이상 인구는 15.7%를 차지하고 있으니 이미 고령화사회에 접어들었다.
내가 65세가 되었을 때 관광지를 돌아다니면서 다가오는 유혹이 있었다. 국가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문화재는 65세 이상은 무료이거나 할인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사용하지 않았는데 몇 달 지나고 나니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자신이 국가를 위하여 일을 하였기에 일정한 나이가 들어 주는 혜택이니 이용하자는 생각을 하였고 지금은 당연히 그 혜택을 이용하고 있다.
나는 퇴직을 한 후에 집에만 있으려 하지 않는다. 날씨가 나쁘지 않다면 일주일에 두세 번은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온다. ‘여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좀 그래도 몇 시간 동안이라도 돌아다니면서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걸으면서 유적지를 돌아보거나 계절별로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만나는 것도 좋다.
사진을 잘 찍지는 못해도 여행하면서 사진을 찍고 내가 운영하는 블러그에 올리기도 한다. 사실 블러그 운영은 나의 가장 큰 취미이다. 인터넷 바다에 부여받은 나의 공간에 나의 세상을 꾸며나가고 있다. 블러그의 주요한 내용은 여행과 글이다. 내가 여행하는 곳은 거의 사진을 찍고 그것을 올리면서 글로 설명한다. 누군가가 공감을 하고 댓글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된다.
이렇게 블러그를 운영하다가 나의 블러그를 일 년 동안 돌아본 한 출판사의 제안으로 전국 여행 안내책을 내게 되었다. 이는 나의 삶의 큰 전환점이 되었고, 예산문화원을 통해서 예산여행 안내서 두 권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충남문화재단의 문예진흥기금을 받아 충남 문학기행 안내서를 내었다.
사실 나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나의 본업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중요한 취미이다. 시집을 내고 소설집을 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한 권 한 권 낼 때마다 스스로 채찍질한다. 좀 더 단단해지고 싶지만 그것이 쉽게 이뤄지지는 않는다.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한다. 부단히 노력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 내가 나이 먹어가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은 글을 잘 쓰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쉽게 이뤄지않으리라 생각하지만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볼칸에서 찾는 열정
요즘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한데 그 원인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글쓰기에 애정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말에 대해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문인은 한 가지의 장르에 매진해서 열심히 써 내려가야 한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 나는 한 가지의 장르에만 충실하지는 못한다. 시(詩)도 쓰고, 소설에도 관심이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수필을 쓰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글쓰기에 애정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머뭇거리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집이나 소설집을 내었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좀 더 좋은 글을 써 보자는 생각인데 그 이후에 글을 쓰면 사실 내가 원하는 글이 써지지는 않는다. 심사숙고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좋은 글을 많이 읽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집이나 소설집을 구입해서 읽으면서 스스로 자양분을 만들어주려고 하지만 그것은 밑 빠진 둑처럼 들어왔다가 금방 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책을 읽음으로 나의 공간을 넓혀가고 싶어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식물원이나 수목원에 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식물원이나 수목원에 가면 나무와 꽃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봄에 만나는 꽃들은 메마른 영혼에 힘을 준다. 죽은 듯한 나무에 초록빛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면 내 마음속에도 초록빛이 돋아나는 것을 느낀다.
얼마 전에 태안에 있는 천리포수목원에 다녀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목원이기도 한데 이곳에는 많은 꽃들이 연중 피어난다. 특히 봄에는 꽃 멀미가 날 정도로 다양한 꽃들이 수목원 여기저기에서 피어난다.
4월이 되면 수목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봄을 느낄 수 있다. 4월에 이곳에 가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꽃이 바로 목련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목련은 볼칸이다. 볼칸이 꽃을 피우는 것을 보노라면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곳 천리포 수목원을 일군 사람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 밀러였다. 미군 해군장교 출신으로 1946년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는 한국의 전통적인 매력과 사찰, 식물 등에 매료되어 1979년 민병갈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했다. 그는 평생 이곳 수목원을 가꾸면서 결혼도 하지 않고 지냈다. 2002년 4월, 8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으며, 10년 후인 2012년에 추모공원의 태산목 아래에 수목장을 햐였다.
그의 열정은 이곳을 우리나라 최고의 수목원으로 만들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목련을 가지게 되었다. 나무의 높이는 5m 정도이고 자주색의 포도주잔 모양의 꽃은 크기가 25cm 정도 된다. 이곳의 볼캄은 1990년 10월에 뉴질랜드에서 구입했다고 한다. ‘불칸’ 목련은 뉴질랜드 목련 전문가 펠릭스 쥬리가 1970년대에 육종한 품종으로 이곳 수목원에서 많이 피어난다.
바로 이곳 수목원도 밀러의 열정으로 일궈냈다. 지금은 전 세계적인 수목원이 되어 국내외에서 많은 식물학자들이 찾고 관광객들도 연중 방문하는 곳이 되었다. 그 중심에는 밀러의 수목원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열정적으로 피어나는 꽃을 보면서 나는 나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생각해 보았다. 열정(熱情)에 대한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라고 풀이되고 있다. 붉게 피어나는 목련꽃인 볼칸은 수목원으로 들어가면서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다.
4월 한 달 동안 피어나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인증사진을 찍기도 한다. 붉게 타오르는 듯한 볼칸을 보노라면 침전되어있는 나의 열정이 솟아오르는 것 같다. 글을 쓰는 것과 꽃이 피어나는 것이 어떤 유사점이 있을까? 그것은 꽃이 열정적으로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마음속에 가라앉은 나의 열정을 잠 깨우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사실 내가 여행을 하거나 꽃을 만나고 온 뒤에는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배가되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다. 그래서 글을 써야 할 때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풍경과 꽃을 만나면서 자양분을 조금씩 얻어낸다.
문인에게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하루에도 시를 몇 편씩 쓴다고 한다. 사실 그것은 쉽지 않지만 글 가뭄에 갇히거나 마감 일에 허둥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글이 작가의 마음대로 써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글을 쓰는 것이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는 것처럼 쉽지는 않다. 다만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도 마음속에 열정이 있다면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선배 문인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글쟁이는 글을 미친 듯이 써야 한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미친 듯이”가 의미하는 것처럼 어떤 조건없이 자신의 마음을 담아서 글을 써 내려간다면 자신의 섬에 분명 글을 담은 서재가 존재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혼자서 살아나갈 수 없다. 글을 쓰는 사람들도 혼자서 섬에 갇혀서 살 수는 없다. 자신의 글에 담금질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자신의 글의 빛깔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자신 혼자서 글을 쓰는 것보다는 자신이 쓴 글을 다른 문인들과 토론하면서 다듬어 나가는 열정이 필요하다.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은 자신의 힘으로 남아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이 또한 열정을 가질 때 이뤄질 수 있다.
마음이 흐트러지고 글쓰기가 안 될 때 나는 조용히 집을 나가 여행길에 나선다. 물론 여행며칠 동안 이뤄지기도 하지만 몇 시간 동안 가까운 곳을 돌아보면서 숨겨진 열정을 되찾기도 한다. 올해도 이곳 수목원을 몇 번 더 갈지 모른다. 그저 비어갈 때마다 찾아가서 조금이라도 채우면서 매진하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