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10월18..원20주일
사마리아인의 감사와 믿음(눅17:11-19)
오늘 본문에 보면, 나병환자가 나옵니다.
나병환자는 문둥병환자라고 불렀고 그리고 한센병이라고 부릅니다.
노르웨이 의사 한센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나병을 일으키는 균을 피부조직
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한센병으로 한 것입니다.
한센병의 원인은 일명 나균 때문인데요,
나균은 피부와 말초신경과 상기도의 점막에 침투하여 조직을 변형시키거나
괴사시킵니다.
그리고 한센병의 더 큰문제는.... ‘만성 전염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도 한센병환자들이 모여 사는 나환자촌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장소가 고흥군에 위치한 소록도입니다.
물론 지금도 한센병환자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라남도여수에
애양원이 있고 그곳에서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하신 손양원 목사님 기년관이
있습니다
손양원목사님은 1939년 애양원교회에 부임하셔서..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동
고동락 하셨습니다
일본 제국의 신사참배 강요에 끝까지 맞서 투쟁한 목사이자 항일 독립운동가. 애양원(愛養園)에서 나병 환자들에 대한 구호사업과 전도활동에 전력하였으며 6.25 전쟁 중 죽음을 맞이하였다.
돌봐줄 사람이 없는 애양원 환자들을 버리고 갈 수 없었기 때문에 피난하지 못했으며,..... 아들을 죽인 원수마저도 사랑으로 품은 그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있읍니다
그 당시의 일화 중 하나로 환자들 중 상태가 심한 환자들만 격리해놓은 방이 있었다.
간호사들조차 신문지를 깔고 들어가니.....
그런 행동에 모욕감을 느낀 환자 중 하나가 "우리가 짐승이냐?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다!" 라고 외치면서 때려 죽이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에 손양원 목사는 맨발로 그 방에 들어가 간호사를 죽인 그 환자에게 다가갔다. 잠시 기도를 올리던 손 목사는 상처를 직접 입으로 빨아 고름을 빼냈다.
한센병이 전염병인지라 애양원에서 크게 걱정을 하며 수차례 검사를 시행했지만 다행히 손 목사에게는 발병하지 않았는데,.....
이에 그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가 나병에 걸리면 그들과 똑같아질거고 그러면 환자들이 나에게 더 거부감 없이 대할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였다고 한다.
그리고 해방 후 에 손양원 목사님은 국기에 대한경례를 할 때 국기를 향하
여 절하지말자
국기를 향허여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니 ..가슴에 손을 언고 국기를 바라보
게 하자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제안하신분이 손양원목사입니다
손양원목사님은 당시 백범 김구선생과 함께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시
며 한센병환자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좋은교회 큰교회서 청빙이 왔지만.....모두거절하고 한센병 환자들과 동거동
락을 하시다 순교하셨읍니다
다행히 지금은 한센병 환자는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에는 가장 지독한 병이 바로 한센병이었습니다.
나병에 걸리면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다수를 보호하기 위해 마을에서 추
방했고, 격리시켰습니다.
그리고 나병환자가 마을이나 사람들이 있는 곳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고, 나
병환자가 접근하면 멀리서 돌로 쳐서 몰아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병을 고칠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병에 걸리면 마을 밖 동굴같
은 곳에 거처를 두고 짙은 외로움과 엄청난 고통속에서 평생을 살다가 그
렇게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한센병을 저주의 저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10명의 나병환자가 합심해서 나병 환자촌을 벗어
나서...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마을로 들어설 때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멀리 서서 그
들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큰 소리로 강청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친 것은 사람들로
부터 예수님이 모든 병을 다 고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 가면 나병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
그래서 그들은 용기를 내서 예수님을 찾아왔고, 마을 어귀에 들어서신 예수
님을 멀리서 발견하자,
지체하지 않고 예수님을 향하여 있는 힘을 다해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
쌍히 여기소서고 크게 소리쳤던 것입니다.
몆번을 불렀을까???
예수님이 그들의 간절한 호소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이 말씀을 하실 때 나병환자들의 병은 아직 치유가 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만약에 그대로 제사장에게로 가면 제사장은 그들에게 나병환자 촌으로 돌아
가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명의 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들은 한 마디 말도 반문하지 않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제사장을
향해 열심히갑니다
그런데 가던 길에 기적이 일어 났습니다.
순종하여 가던 중에 그들의 나병이 깨끗하게 다 치료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순종하여 길을 갈 때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
다.
여기까지 다시 한번 간단히 정리하겠습니다.
10명의 나병환자들은 나환자촌에서 예수님의 치유소식을 들었고,
예수님을 찾아왔고, 예수님을 만났고,
멀리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쳤고,
너희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고,
순종하며 길을 갈 때 나병이 치유되는 놀라운 기적같은 은혜를 입었읍니다.
여기까지는 모든 과정이 참 좋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가 조금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치유받은 10명 중에 9명은 그 길로 각자의 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한 사람 사마리아인은 예수님께 다시 찾아와 영광을 돌렸습
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감사하는 사마리아인에게 말씀합니다.
17,18절입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예수님이 ‘아홉은 어디 있느냐 왜 이방인 외에 돌아온 자가 없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홉을 찾으시는 예수님의 분위기를 보면, 치유받은 9명이 당연히 돌
아와서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란 기대를 갖고 계신다는 것입
니다.
예수님은 ‘지금 뭔가 몹시 아쉬워 하시고, 못 마땅해 하시고, 이러면 안되는
데’라는 뉘앙스를 풍기신다는 거예요.
물론 예수님이 그들에게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돌아오라고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각자 제 길을 가더라도 불순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9명을 찾으실까요?
그것은 아직 주님이 그들에게 주셔야 할 은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질병을 치유하실 때 그 치유 안에 또 다른 은혜를 담아 놓
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뭘까요?
다같이 19절을 읽겠습니다. ‘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더라’.
지금 예수님은 사마리아 인에게 엄청난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이 뭡니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라.
여러분!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구원은 영혼구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돌아온 사마리아인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를 9명에게도
주시고 싶으셨읍니다
9명이 1차적으로 예수님께 가면 육신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와서 간청함으로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입
은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아요?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을 어떻게 불렀습니까?
‘예수 선생님이여’. 예수님을 선생님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아직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육신의 치유를 통해 그들이 ‘예수님이 메시야요 그리스도
라’는 사실을 알기를 바라셨고, 그래서 치유를 통해 9명이......
사마리아인처럼 예수님을 찾아 올 것을 기대하고 계셨던 것이죠.
그리고 그들이 찾아오면 2차적으로 주실 은혜가 바로 사미라인이 받은 구원
의 은혜였던 거예요.
그러나 9명은 육신의 치유는 받았지만 안타갑게도 주님을 놓쳤고, 그래서 영
혼의 구원을 받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예수님께 돌아온 사마리아인에게 관심을 집중해 보겠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치유의 사건을 통해 2가지가 분명했습니다.
첫번째는 감사입니다.
나병이 고침받았을 때 가장 먼저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생각이 뭐였습니까?
감사였습니다. ‘예수님께로 돌아가서 감사드려야겠다’.
사마리아인은 9명과 수준이 다릅니다.
9명은 엄청난 은혜를 받았지만 그 은혜에 감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받은 은혜를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감사의 타이밍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인의 감사가 새로운 은혜의 별미로 작동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감사를 잘 하십니까? 감사는 더 큰 은혜로 우리를 이끌어 가는 가교역할을
수행해 줍니다.
인생을 한 단계 더 높이 그리고 더 깊이 업그레드가 되기 위해서는 타이밍
에 맞는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살전5:18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선포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을 저는 이렇게 표현해 봅니다.
‘현장에서 즉시 감사하라’. 맞습니다.
감사는 일상생활 속에서 곧바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성립이 되는 것이죠.
열왕기하 5장에보면 나아만 장군이 나옵니다
아람 족속의 군대 장관인 나아만 장군은 아람을 구원하여 아람 왕에게서도 존귀한 대접을 받는 그런 사람이었다
(1절). 그는 아무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에게도 단 하나의 고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가 나병환자라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점을 알지 못할 때가 많다.
또한 자신의 문제점을 알고는 있지만....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보게 된다.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고 아니라고 부인하며 살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인정하게 될 경우..., 그것을 직면하게 될 경우 다가오게 될 부끄러움과 절망감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자신이 병자임을 인정할 때 의사에게 나아가 고침 받을 기회를 얻게 된다.
자신이 병자임을 알지도 못하고, 또 알아도 인정하지 않는 자는 의사에게 나아가 고침 받을 수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내가 새롭게 되어야 할,... 고쳐져야 할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다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왕하5:9)"
우리 인생의 문제를 고치고 새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우리의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주셔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왕하5:14)"
말씀에 순종할 때 역사가 일어난다. 기적이 일어난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지 못할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난다.
안 될 것 같은 일이 되게 된다.
여러분!
본문 상황에서 감사를 하는 것과 감사를 하지 않는 것의 엄청난 차이점을
보십시오.
감사가 없는 9명은 육신의 치유에 그치고 말았지만 감사한 사마리아인은 육
신의 치유와 함께 영혼구원의 은혜를 받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감사는 새로운 은혜로 이끌어가는 통로라는 사실을 기억하
시고, 범사에 즉시 감사, 감사, 또 감사를 하십시오.
그리하여 사마리인처럼 감사에 담긴 은혜와 복을 영육간에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번째는 믿음입니다.
아홉명은 육신의 치유를 받았을 때, ‘예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육신의 나병이 치유된 것에만 도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달랐습니다.
이 사람은 나병이 치유받았을 때 ‘예수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더라’는 것이죠.
처음에서 단순히 예수 선생님인 줄 알았는데, 나병을 치유받으면서 사마리아
인은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이 분은 단순히 선생이 아니라 그리스도시다.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야구나’
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이 그들을 치유해 주시면서 기대했던 이해와 믿음을 보
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잖아요?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치유를 통해 메시야 되심을 보여 주셨고, 그것을 사마리인은 알았
고, 믿었고,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사마리아인의 믿음이 맞다고 인정해 주시면서 너는 구
원받았다고 선언해 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나병환자였고, 죄인이었던 사마리아인은 예수님께 나와
서 육신의 치유와 영혼의 구원을 다 받았다 할 수 있는 것이죠.
오늘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마리아인, 말씀에 순종하는 사마리아인, 치유를 통
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마리아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마리아인,
주님께 감사한 사마리아인,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마리아인.
이 사마리아인처럼 주님을 향한 순종과 감사와 믿음의 열심을 통해 영육
간에 주님의 은혜를 맛보아 새롭게 주님을 발견하고, 더 깊이 주님을 믿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