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여행(2006.8.28.)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노래는 수없이 불렀지만, 현실로 이루어지기엔 그 얼마나 오랜 세월이 필요했던가. 9남매인 친정 쪽 형제들은 이번 단체 여행지의 코스를 금강산으로 입을 모았다. 무더운 여름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급한 일정을 잡게 된 것은 칠순이 넘은 언니들이 네 분이나 계셔서 형제지간의 여행을 몇 해 전부터 원해 오시던 터였다. 더욱이 여행이라는 것이 건강을 잃게 되면 아무리 금전적으로 넉넉해도 흥겨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쇠뿔도 당긴 김에 빼라’라는 말이 있듯이 강행했다.
금강산 관광의 코스 유형은 다양했다. 우리 가족들은 일반 요금의 절반 가격으로 알뜰 여행인 육로를 이용한 관광 코스를 선택했다. 우선 가족들이 자가용으로 세 대에 나눠 타고 강원도 북단인 화진포에 위치한 ‘현대 아산 휴게소’에 약 6시간에 걸쳐 도착하니 정오12시 30분이었다. 북측으로 가는 길은 절차는 꽤 까다로웠다. 해외에도 몇 차례 나가 보았지만, 우리나라를 오가는 일이 그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점심을 간단히 마친 후 1시 30분경에 ‘고성항’을 향하여 출발했다. 칠순의 언니들은 마냥 소녀들처럼 신이 나고, 형제간의 끈끈한 정을 알콩달콩 이야기로 풀어냈다. 현대에서 운영하는 대형버스(45명 정원) 25대가 날마다 북측으로 향하는 금강산 관광객을 우송한다고 했다. 우리는 승용차를 주차장에 보관하고 북쪽을 향하는 수속을 밟기에 바빴다. 그곳의 엄격한 질서유지를 위해 안내원들의 지시에 세밀하게 검사받았다.
남측의 자유로움을 접고 북측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설명을 들었다. 휴대전화나 라이터 등 위험 물품을 보관함에 두고 차에 올랐다. 짧은 시간 ‘동해선 도로 남북 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로비에 들어서니 대형 TV에서 관광객을 위해 금강산에 대한 설명과 함께 주의 사항들이 자막으로 반복해서 알려주었다. 오후 3시 30분쯤에 북측을 향하여 버스에 올랐고 우리를 위해 안내해 줄 가이드는 남측 사람인데 2박3일 동안 금강산 관광을 마칠 때까지 함께 한다고 했다.
비무장지대를 지나는 중에도 가이드는 언어와 행동에 관한 주의 사항을 거듭 강조하는 것이었다. 한가로운 들판과 녹슨 철로가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가이드는 그 철로가 언젠가는 원산을 통해 시베리아로 이어지는 유럽 여행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직접 보지 못했다면 여태 느끼지 못했을 안타까운 세월의 흔적들을 해마다 그 무게를 더 해가며 곪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비무장 지대! 그나마도 좁은 땅덩어리에 커다란 상흔을 남긴 철책선이 아닌가! 예전에는 약 4km의 거리였는데 이산가족의 만남이 1.5km로 줄어들었다는 것이고 보면 단 15분간의 거리를 우리 민족끼리 만나고자 하는 염원들이 모인다면 언젠가는 철책은 그 흔적도 남지 않으리라. 어느새 버스는 북측 출입문에 발을 딛었고, 순간 약간 긴장이 됐다. 신상의 검문과 소지품 검사를 마치고 우린 북측의 버스에 올랐다.
드디어 38선을 넘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로등의 색상과 이정표의 도로 표지판이었다. 우리가 생각한 붉은 색의 고정 관념을 깨기 위해 파란색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차도인데도 외길로 되어 있어 마주 오는 차와는 무전 신호로 움직여야만 했다. 군사 분계선에 이르렀을 때 순간 과거의 아픔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JSA 공동 경비구역>의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로 표현되는 비극의 실상은 단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드디어 북측 군인들이 양쪽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보초를 서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게 되었다. 아! 이제껏 실감 나지 않았던 이북 땅을 밟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금강산 관광 이용권을 비닐 커버 속에 두서너 장 넣어 목에 걸고 출발했다. 비무장 지대 안에는 민간 마을이 가끔 보였다. 축구 선수들을 많이 배출해 낸다는 ‘해금강 영웅 중학교’라는 곳을 비롯하여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비슷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금천리 마을은 관광객이나 외부 사람들이 지나가는 도로변 가까이에 있어 사생활의 불편함 때문에 이주해서 살고 있다고 했다. 부근에는 외금강, 내금강, 해금강의 세 종류의 강이 금강산을 감싸고 흐른다. 양쪽 저 멀리 돌산들이 우직하게 널려 있는 것이 굉장히 특이했다. 가이드는 관광 중에 언행을 주의하라는 설명을 거듭 강조했다.
어느새 우리가 2박3일 묵을 숙소에 도착했다. ‘해금강호텔’은 배 모양의 건물이 흡사 물 위에 떠서 흔들거리는 것 같았다. 그곳은 장전항이었고, 옆에는 바로 육로 관광이 이루어지기 전에 선박 관광의 검문소 역할을 했던 건물의 흔적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우린 5층 객실에서 짐을 풀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다시 관광에 나섰다.
여유로운 자유 시간을 이용하여 현대건설에서 지은 해금강 호텔, 금강산 호텔, 외금강 호텔 등을 구경했다. 여러 곳의 호텔은 모두 12층 정도 높이의 건물이었다. 스카이라운지라 할 수 있는 곳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주변을 내려다보니 온정각 전체가 빙 둘러서 문화, 예술, 식당가, 마트 등으로 편리하게 시설로 되어 있는 것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산속의 화려한 불빛은 마치 남측의 어느 관광지로 착각하게 했다. 그 건물들을 모두가 현대에서 관할한다고 하니 남한의 한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고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 호텔의 내부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북측 사람들이었다.
밤 9시에는 무예단의 쇼를 관람했다. 밴드 악단은 총 5명으로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모두가 여성들이었고 가수 역시도 모두 여성 5명과 남자 한 사람으로 구성되어 공연을 했다. 그야말로 꾀꼬리 같은 목소리에 모두가 심취되어 50분이라는 시간이 찰나처럼 느껴졌다. 즐거운 무대가 금강산 여행의 흥을 띄우며 내일을 향한 기대감으로 설익을 수밖에 없는 잠을 청하려 해금강 호텔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