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의 시력을 위하여 원본에 없는 행 띄우기를 하였습니다.
잉꼬와 앵무새의 사랑
권 예 자
세상에 별 희한한 일도 다 있다.
토요일 오후에 우연히 텔레비전을 켰더니 어느 방송에선지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게 되었다.
이야기인즉슨 어느 꽃가게 주인이 잉꼬 한 쌍과 앵무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어느 날 이구아나 한 쌍을 사 오면서 앵무새를 넣어둘 곳이 마땅치 않아, 사이좋은 잉꼬부부가 사는 새장 안에 앵무새를 넣어 주었단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사이가 좋던 잉꼬부부 중 수놈이 저보다 몸집도 월등하게 큰 앵무새 처녀와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고 한다. 변심한 잉꼬 수놈은 자기 조강지처가 곁에 오기만 하면 부리로 쪼아서 근접을 못 하게 하였다. 가엾은 암놈은 한쪽 귀퉁이에서 오돌오돌 떨며 서러워하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 그 둘은 사흘 만에 둥지를 차지하고 날마다 부리를 맞대고 사랑을 하더니 보란 듯이 알을 두 개나 낳은 것이다.
텔레비전 화면 속의 앵무새 예비 엄마는 둥지 안에서 벌써 알을 품고 있고, 예비 아빠인 잉꼬 수놈은 둥지 위에서 보초를 서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일주일 후면 알이 부화할 것이라고 하는데 학계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라 과연 어떤 아기 새가 태어날지 관심 집중이라고 한다. 재치 있는 MC 임성훈 씨는 호랑이와 사자의 새끼가 ‘라이거’였으니 앵무새와 잉꼬의 새끼는 ‘앵꼬’가 될지도 모른다며 웃고 있었다.
어떤 모습의 것이 태어나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데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참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새장 안에는 자기들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절박감.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들끼리만 살다 보니 모양만 조금 다른 동족이라는 느낌을 받아서 그런 일이 생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번 일은 지극히 우연히 생긴 일이지만 이것을 보기 삼아 또 다른 이상한 동물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생각해 왔던 사이좋은 부부의 표현인 ‘잉꼬부부’라는 말은 이렇게 하여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 같아 서글프다.
결혼 초에 나도 노란빛에 살짝 연두색을 입힌 듯 예쁜 잉꼬 한 쌍을 길렀던 적이 있다. 그 둘은 얼마나 사이가 좋았던지 온종일 입맞춤을 하면서 재재거려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고는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새장 청소를 하고, 물과 좁쌀을 새로 넣어 주고 외출을 했다가 돌아왔더니 잉꼬 수놈이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새장 안에서 이리저리 날며 난리를 치는 것이 아닌가. 웬일인가 싶어 자세히 보았더니 한 마리가 없어진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새장 청소를 할 때 암놈이 빠져 달아난 듯싶었다.
그때는 단독주택에 살 때였기 때문에 근처 여러 곳을 찾아보았고 제가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기다렸지만 날아간 암놈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동안 수놈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생각난 듯 울기만 하였다. 할 수 없이 처음에 새를 사 온 가게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잃어버린 것과 비슷하게 닮은 암놈을 새로 사다가 새장에 넣어 주었다. 그런데 새로 만난 잉꼬 한 쌍은 사이좋게 잘 지내기를 바랐던 내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새로 들어온 암놈은 자꾸 수놈 곁으로 가려고 하는데 수놈은 새 암놈을 쳐다보지도 않을뿐더러 제 곁에 오면 부리로 심하게 쪼아서 밀어내곤 한다. 게다가 음식도 먹지 못하게 구박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상태가 사흘이 넘게 계속되자 우리 부부는 수놈이나 암놈이나 모두 가엾고 안쓰러워서 더는 그대로 보고 있을 수가 없어, 다시 가게에 가서 두 마리를 다 돌려주고 새로운 한 쌍을 받아다 길렀다.
그들이 알을 낳고 사이좋게 사는 모습을 보고 나는 ‘잉꼬부부’란 말이 이래서 생긴 것이구나 감격해서, 우리도 저렇게 사이좋게 살자고 남편과 약속하였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서로 직장 일에 바쁜 데다가 큰아이가 태어나 일이 많아 잉꼬를 깔끔하게 키우기 어렵게 되었다. 정이 많이 들어 섭섭했지만 하는 수 없이 십자매를 키우고 계시던 시누님 댁에 드렸다. 그때 잉꼬 한 쌍의 사이좋던 모습과 제 암놈을 잃고서 단식투쟁을 하며 울부짖던 수놈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하면서 생활이 편해지고 모르던 많은 것들을 쉽사리 알게 되었다. 건강도 좋아져 수명이 길어지는 등 긍정적인 면이 참으로 많은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촌스러운 사람이라 그런지 생태계만은 있는 그대로 두기를 바라고 있다. 복제 양 ‘둘리’가 태어났을 때 왠지 불안했는데 그 ‘둘리’가 새끼까지 낳았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복제 송아지가 태어나 크고 있으니 복제 인간을 만드는 것도 안 하고 있을 뿐이지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25~6년 전에 읽은 어느 공상 소설에 의하면 복제 인간을 그룹별로 만들어서 어느 그룹은 태어날 때부터 노동자 계급으로 키우고, 어느 그룹은 예술가로 또 다른 그룹은 정치가로 키운단다. 이렇게 종류별로 수백 쌍의 쌍둥이 인간들을 조직적으로 만들어 기계적이고 질서 있게 생활한다고 되어있었다. 그들은 세상을 떠나는 시기가 오면 자연스럽게 죽음의 공장에 가서 자기 인체가 물질별로 분해되어 각기 다른 용도로 쓰이게 될 때를 무감각하게 기다린단다.
나는 그때 그 소설을 읽고 이건 어디까지나 기발한 공상 소설일 뿐이라고 웃어넘겼는데, 요즈음 유전공학의 발달을 보면 그 소설의 내용이 아주 가까운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 어찌 되었건 이런 속도로 유전공학이 발달해 나가다가는 머지않아 반인 반수의 인간이 정말 태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작은 새들의 자연스러운(?) 사랑에 내가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지는 몰라도….(1999)
-후기 : 부화할 것이라던 날까지 소식이 없어 취재진은 며칠 후 그곳을 찾았는데, 앵무새는 여전히 알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알을 확인한 결과 4개가 늘어서 6개가 되어있었다. 보통 잉꼬는 부화하는데 12~16일, 앵무새는 16~20일 걸린다고 하여 취재진은 일단 철수를 하고 늦게 발견된 알의 부화 시기를 지나서 다시 방문하였다. 그때도 앵무새는 알을 품고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취재진이 알을 꺼내 보니 이번에는 하나가 줄어서 5개가 되어있었다. 전문가가 알을 점검한 결과 1개는 내부가 말라 있고 다른 4개는 무정란으로 밝혀졌다.
꽃가게 아저씨는 많이 서운해하면서 다음을 기다려 본다고 한다. 잉꼬와 앵무새는 알을 다 잃은 후에도 여전히 서로 따뜻하게 애무하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첫댓글 잉꼬가 이름값 못하고 배신을 하다니! 뒷이야기가 궁금했는데 결국 새끼를 보지 못했군요ㅠㅠ 재미난 글 잘 읽었습니다. ^^
그 사랑이란 놈이 참 이상한 녀석에 개구장이 인것 같아요.
저는 조금 전에 영화 <조 블랙의 사랑> 을 다시 보았는데,
거기선 아버지 데릴러 온 저승사자하고 사랑을 하네요.
해피앤딩을 만들기 위해 관람자가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더군요. 교통사고와 혼수상태 사이에서...
암튼 저는 좋아하는 '브래드 피트' 보느라고...
@봄비 권예자 그 무지 긴 영화를 보셨군요. 여운이 오래 남았던 거 같은데 내용이 가물가물 하네요ㅠ
잘 읽었습니다
송선생님 우리 수필카페에 대한 관심에 늘 고맙습니다.
어쩌면 글을 올리면 바로바로 입장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