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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허담증 fabulation [우화작업]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99. (P.304)
사실을 과장스럽게(romanesque) 표현하여 제시하는 것
들레(Jean Delay 1907-1987)에 따르면, 기억의 망상[정신착란]일 것인데, 그 경우에 환자가 순수하게 상상적 창작물들을 진솔한 추억인양으로 생각하고, 창작물의 실재성을 굳게 믿는다는 것이다. 픽(Arnold Pick, 1851-1924)는 다양한 허담증을 주목하였는데, 허담증은 과거의 이야기 속에다 상상의 개입에 의해, 빈 것은 채우려고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허물없는 담소(confabulation)라고 이름 붙였다. 이 무의식적 혼란은 과장증(mythomanie)와 구별해야 한다. 후자는 적어도 처음에는 완전히 의식적인데, 자기 자신의 생각에 높이를 부여하는 데[강조하고자] 목표하고 있다. (43WMA)
[처음에는 긴가민가하고 이야기한 허담증의 이야기를 농담 삼아라도 타인이 인정하게 되면, 그 험담증을 말한 자는 그것인 실재하는 것으로 믿게되는 것은 마치 데자뷔 현상처럼 기억착오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43WMA)]
[벩송은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의 제2장 ‘정태적종교’에서 우화적 기능을 설명한다. 상상적 산물은 습관적 계속은 믿음을 신앙으로 바꾼이다. 믿음이 기복종교에 가깝다면 신앙은 유일신앙에 가깝다. 왜 유일신앙이 정태적 종교인가? 그 종교의 극단에는 고정된 절대자(참주, 황제, 폭군)을 세우고 믿음을 넘어서 복종하고 종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폭군을 폭로한 이는 들뢰즈/가타리이다.l (57PLE)]
인위성 facticité [인조성]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99. (P.304)
우연적인 사실이라는 자격으로 현존하는 것, 다시 말하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의 특성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일반적 방식에서 이유 없이 주어진 것 모든 것을 지칭하기 위하여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에 의하여 창안되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합리적 추론에 의해 세계를 연역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세계의 실재성은 “인위적인 자료”(une donée factice)이다. 인위성은 생성(genèse), 또는 합리적 연역에 대립된다. 인간의 자유는 모든 인위성의 근원이다.
이 용어는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와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에서처럼 실존[현존]주의 철학에 의해 다시 사용되었으며, 현존의 인위성이란 의미는 우리의 현존이 그 자체로서는 정당화될 수도 없고 또 이해할 수 도 없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다.
현존의 인위성은 근본적인 두 가지 특성으로 환원될 수 있다. 1.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Nous sommes donnés à nous-même)라는 것은 우리 스스로 의식하기 이전에 우리가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확인할 수 있지만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로서 우리의 현존을 발견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하이데거는 피투성(Geworfenheit)이라 불렀다. 2. 우리는 자유롭다(Nous somme libres)는 우리의 현존을 그러그러한 의미(sens 방향)로 방향잡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에게 미리 주어진 법칙(loi)도 운수(destinée)없고, 어떤 필연적 방식으로 우리 삶의 과정을 규제할 법칙도 운수도 없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인위적(factice)이다. 참조: 불합리(absurde) (43WMA)
[인식] 역량 [능력] (la) faculté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99. (P.304)
신체적 도덕적 가능성을 의미한다.
고전 심리학은 영혼의 세 가지 능력을 구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느낄(감각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감성(sensiblilité), 이해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지성(intelligence), 행동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즉 경향, 의지, 자유 등의 활동성(activité)이 세 가지다.
“철학”을 배우는 학급에서, 심리학의 모든 과목은 항상 이 세 가지 묶음의 주변에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세 가지에 애정성(affectivité)을 첨가했다. 이 애정성은 사랑과 증오와 같은 감정들의 능력이며, 이것은 (지각의 요소들로서) 감각의 능력인 감성(sensibilité)과 구별된다. (43WMA)
사실 (le) fait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99. (P.304)
경험의 모든 재료.
과학들의 이론가들은 우리들 공통의 지각에 상응하는 “평범한 사실”(fait brut)과 과학적 용어로 진술하는 “과학적 사실”(fait scientifique)을 구별한다. 전자의 예로서는 나는 돌이 떨어지는 것을 본다는 것은 평범한 사실이다. 후자의 예로는 물체의 낙하에 대한 일반적 법칙인 ‘낙하의 법칙’은 무한정하게 반복할 수 있는 과학적 사실이다.
시간과 장소라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는 역사적 사실은 “사건”(l'événement)이라 이름 붙었다. 일반적 방식으로 사건은 단순한 자료를 지칭하며, 그것은 일반원리를 진술한는 법칙과 대립된다. (43WMF)
가족 (la) famill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99-100. (P.304)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식들을 말한다. [왜, 할배 할매도 넣어야지]
가족에 대한 초기 이론가들은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이고, 이들은 가족을 사회의 자연적 세포라고 생각했다. 이 결속들(les liens)은 생물학적으로 연관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결속의 숫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느슨한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근대 심리학은 이론적 관점을 확정하였다. 즉 사람들은 가족 내에서 여섯 자식 이상일 경우에, 어머니는 자식들 각각과 관계에서 똑 같은 애정을 기울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자식들은 욕구불만(frustrés)이 있게 되고 덜 사랑 받는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을 주목했다.
따라서 가정은 동일 핏줄(le même sang), 즉 동일 가계(la même race)로부터 나온 인간들의 집합을 지칭한다. 이런 가정의 원리는 “씨족”(le clan) 사회 전체를 지배하며, 로마의 부계 가계의 시대에 있었던 것과 같은 것이며, 오늘날에도 많은 나라들에서, 특히 아프리카와 발칸반도에서, 아직도 현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씨족과 같은 대가족은 제한된 공간에서 공동으로 살아가는, 즉 족장의 권위 아래서 사는, 같은 핏줄의 개인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씨족의 현존방식이 어떠하든지 간에 가족은 모든 사회의 핵심을 구성한다. (43WMF)
광신주의(열광) (le) fanat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0. (P.304)
어떤 견해, 일반적으로 종교적 또는 정치적 견해에 정열적으로 열중한 것을 의미한다.
이 광신주의는 종교전쟁으로, 마남[마녀] 사냥 재판으로, 오늘날에는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이끌기도 했었다. 이 원리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나 다른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다른 정당들을 인간적인 존재들로서 인정하기 않았다. 종교적 광신주의는 1962년 크리스트교 공의회에 의해 단죄되었다고 한다. 이 공의회는 인간 종의 통일성의 원리를 제안했다고 한다. [제21차 공의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을 지칭하는 것으로 ‘가톨릭 교회의 갱신’이 주 내용이라 한다.]
이데올로기의 광신주의에 관하여 말하자면, 그것은 후르시초프(Nikita Sergeevich Khrushchyov, 1894-1971)에 의해 폐기된다. 그는 세계를 양분하고 있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두 이데올로기 사이에 평화공존을 [1959년에 제21차소련공산당전당대회에서] 설파했다. [그러나 그는 1964년 실각한다]
보편 인간의 현상으로서 광신주의는 일반적으로 개인과 민족의 (정치적 광신주의 같은 것이) 능력있음(compétence)에, 지식에, 문화에 반비례한다. [말하자면 지식과 문화가 높으면 광신주의에 덜 빠져든다.] 그리고 개인들과 민족들 사이에서, 삶의 수준의 차이들, 가난과 저개발은 이 정열에 연결을 자극한다. (43WMF)
그림설명: 꼴로(J. Collot)의 사형수들. 볼테르는 말하기를 “사람들이 광신주의를 우둡고 잔인한 종교저 광기라고 이해한다. 그런데 그것은 작은 고질병처럼 생기는 질병이다.” 아일란드에서 이란까지 또 챠드에서 레바논까지 이런 광기는 지난 세기에도 줄어들지 않았다. (43WMF) [꼴로(Jean-Pierre Collot, 1764-1853)는 군대어용상인, 명성있는 수집가이다. 보나파르트의 친구였다. 그는 보나파르트 이탈리아 원정 시에 조각, 자기 등 예술작품을 구입했다. 이 꼴로는 판화가가 아니라 그림 설명에 맞는지 모르겠음. 동명이인이 있다. 꼴로(Jean-Marie Collot, dit Collot d'Herbois, 1749-1796)는 프랑스 혁명에서 국민공회(혁명의회, Convention: 1792년 9월 20일 이후)에 의원이며, 극단 단장을 지냈다. 이도 화가는 아니다. (43WMF)]
숙명론 (le) fatal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00-101. (P.304)
모든 사건들이 미리 고정되어 있어서 철회[변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태도와 학설.
숙명론은 하나의 종교적 태도로서, 인간적 삶의 사건들에 관한 것이다. 숙명론은 결정론(le déterminisme)과 구별된다. 결정론은 자연의 사건에 근거하며, 과학적 원리이다. 과학적 결정론은 자연의 현상들에게 결정성을 부여하지 못하는 비결정론(l'indéterminisme)에 대립된다. 이에 비해 숙명론은 인간의 자유에 대립된다. 이 숙명론에 따르면, [인간 개인의] 현존은 어떤 법칙에 따라서 밝힐 수 없는 운명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대부분의 학설은 똑같은 필연성(anangkē: ἀνάγκη, nécessité)이 인간의 삶에도 신의 삶에도 지배한다고 인정했다. 이러한 전지 전능한 숙명은 그리스 비극(la tragédie) 속에서 표현된다. 그 비극 속에서 비참(le tragique)은 운명에 비추어서 인간 의지의 무능을 정확하게 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소포클레스의 외디프스(Oedipus)가 그러하다. 사람들은 이 비참을 스토아 학파의 철학에서 다시 찾는다. “예정론”(prédestination)을 말하는 모든 크리스트교의 이론들은 자유를 신의 섭리(la Providence)에 희생시킨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운명은 믿음의 대상이고, 숙명론은 감정적 태도이자 단순한 가설이라 한다. 그런데 자유는 의식의 어떤 자료(une donnée)이므로, 의지적 행위의 경험 속에서 표현되며, 효과적 행동의 경험에 의해 확인된다. 이 점에서 자유는 자신이 처음 시도했던 것과 관계 없이도 현존하지 않았던 어떤 것을 실현한다. 이것은 우연(hasard)이 아니다. 반면에, 스콜라철학에서 숙명론이 “게으른 논증”(argument paresseux)으로 간주되었다. (43WMF)
잘못 (la) faut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1. (P.304)
도덕적 의무나 일반적 규율에 모자람(manquement)을 의미한다.
잘못의 경험은 우리들의 책임감에 연결되어 있으며, 책임감은 경험에게 도덕적 의미를 부여한다. 따라서 잘못은 우리자신의, 즉 행위의 주체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잘못”(la faute)은 파국(l'échec)과 구별된다. 파국은 우리들 외부의 조건이나 사건에 부여된다. [프랑스 철학자] 나베르(Jean Nabert 1881-1960)는 윤리학의 기본(Element pour une ethique, 1943)에서 잘못의 감정은 불가능성의 감정으로 서술했다. 이 불가능성의 감정이란, 우리가 이미 수행했던 과거의 행위에서 우리가 스스로 인정하기에 불가능했던 것에 대한 감정이다. 말하자면 인격은 자신이 잘못이라고 거부했던 어떤 과거를 수용할 수 없다. 일반적인 방식에서는, 개인이 권리상으로 자신에 의해 기대했었던 것을 실현하지 못했을 때, 잘못이 있다고 한다. (43WMF)
페히너의 법칙 (Loi de) Fechner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1. (P.304)
이 법칙에 따르면 감각의 강도는 자극의 대수(logarithme)처럼 변한다. 즉 자극이 산술 계열(1, 2, 3, 4, ...)처럼 변할 때, 감각은 기하학에 따라서(1, 2, 4, 8, 16, ...)변한다. 이런 법칙을 가지고, 페히너는 심리학을 물리학의 일부로 환원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베르그송은 감각과 자극의 외적 측정사이에 공통의 척도가 없다고 제시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손바닥에 14그램과 15그램의 무게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15그램과 16그램 사이의 차이도 느끼지 못하나, 그러나 우리는 14그램과 16그램 사이에 차이를 느낀다. 그러나 감각 속에 “단계”(sauts)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감각은 어떤 해당하는 양을 갖지 않는 오히려 어떤 “성질”(qualité)일 것이다. 베르그송은 덧붙여서 “내가 보는 색깔들과 측정 가능한 파동들 즉 두뇌에서 작용하는 파동들 사이에 어떤 연관도 없다. 물리학자는 색깔들을 파동들에 환원시키기를 원하지만.”
마찬가지로 모든 감각은 우리들 인격 속에서 반향(retentissement)이다. 이 반향은 우리의 태도에, 즉 우리의 심리학적 성향에 의존한다. 간단히 말하면, 감각이 증거하는 노력과 감각이 알려준 지지(audience)에도 불구하고, 페히너의 법칙은 있는 그대로의 심리주의(psychisme)의 과학에 전혀 근거하지 않고 있고, 또 그런 과학이 가능한 것 같지도 않다.
참조: 페히너(Gustav Theodor Fechner 1801-1887) (42VLJ)
참조: 베버(Ernst Heinrich Weber 1804-1891) 독일 해부학자 생리학자. (43SLD)
여성주의 (le) femin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1. (P.304)
성들간에 사회적 법률적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매개적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학설을 말한다.
이 여성해방의 주제는 혁명과 함께 태어났으며, 즉 드 구쥬(Marie Gouze, dite Marie-Olympe de Gouges, 1748-1793)의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 선언(Déclaration des droits de la femme et de la citoyenne, 1791)이 나왔으며, 그리고 생시몽주의자들이 다시 받아들였다. 이 주제는 법률적인 측면에서, 남편과 부인이 법앞에서 평등이라는 하는 점에서, 그리고 정치적 측면에서, 선거권과 피선출권이라는 점에서 이 주제에서 초창기 몇가지 승리들을 거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프랑스가 여성을 위한 선거권을 채택한 것은 유럽에서 마지막 나라였다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여성 선거권은 1934년에까지도 상원에서 거부되었으며, 드 골(Charles De Gaulle, 1890-1970) 장군에 의해 1944년에 제도화되었다. 반대로 프랑스는 1960년대에 동일한 직종에서 남성과 여성의 수입의 동등성을 확립한 초기 나라들 중의 하나이다. (43WMF)
포이에르바흐(Ludwig Feuerbach, 1804-1872)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2. (P.304)
포이어바흐는 독일 철학자이다. 그는 1804년 바이에른 란트슈트(Landshut)에서 태어나 1872년(68살) 뉘렘베르크(Nuremberg) 부근 레헨베르크(Rechenberg)에서 죽었다.
그는 처음에 헤겔주의자였다. 그리고 나서 견해를 바꾸어 베이컨과 스피노자의 근대철학에 관한 역사적 작업을 이어갔다. 이 당시에 그는 헤겔 철학의 비판(Critique de la philosophie hégélienne, 1839)을 썼다. 그는 유물론에 가담하여, 종교에 대한 깊은 비판을 가하였다. 종교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갖지 못하는 모든 것을 투사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스도교의 본질(Das Wesen des Christentums, 1841: L'Essens du christianisme)에서 인간만이 진실한 종교의 대상이라고 제시한다. 포이어바흐는 맑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Thesen über Feuerbach, Theses sur Feuerbach, 1845)와 엥겔스의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Ludwig Feuerbach et la fin de la philosophi classique allemande, 1888)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42LMC)
피히테 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02-103. (P.304)
독일 철학자이다. 피히테는 1762년 삭스(Sachsen, fr. Saxe)의 라메노(Rammenau)에서 태어나 1814년(52살) 베를린(Berlin)에서 죽었다.
그는 시골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지역학교인 포르타(Pforta) 고등학교에 다녔다. 그는 가출을 행함으로써 자유의 열렬한 사랑을 표출하였다. 그는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을 읽으면서, 사상의 자유를 옹호하게 되었으며, 그리고 칸트의 사상에 열광하였다. 왜냐하면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이론적 증명의 모든 헛된 시도들에 종말을 고하면서 자유의 실천적 증명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첫째 사색의 작업은 [칸트에게 제출한 논문인] 「모든 계시에 대한 비판 시도(Versuch einer Kritik aller Offenbarung, 1792; Critique de toute révélation)」이다. 그의 첫 저술은 프랑스 혁명에 관한 대중의 판단을 교정하기 위하여(Beitrag zur Berichtigung der Urteile des Publikums uber die französische Revolution, 1793; Contributions destinées à rectifier le jugement du public sur la Révolution française)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독일문학계를 뒤흔들었던 무신론의 논쟁은 피히테에 대항하는 논쟁이었다. 그는 [예나대학을 거쳐서] 베를린 대학 철학교수를 지냈다.
그의 철학은 두 측면을 내보인다. 1. 한 측면으로는 엄격하고 추상적인 철학으로써, 지식학(Wissenschaftslehre, La Théorie de la science, 1794, 1801, 1804)[1801년과 1804년에 쓴 것은 사후 출판된다] 속에 제안된 차이들 속에서 표현된다. 이 이론은 “부분적으로 자유에 관한 반성일” 뿐이다. 학문(과학)으로써 중요한 것은 결국 철학(과학)이며. 철학은 인간적인 모든 상상들에 항상성을 부여할 수 있는 소질이 있기 때문이다. 2. 다른 한 측면에서 피히테는 사회적 경제적 삶의 철학자로서 제시된다. 이에 해당하는 폐쇄적 상업국가(Der geschlossene Handelsstaat, 1800; Etat commercial fermé)와 독일 국민에게 고함(Reden an die deutsche Nation 1807-1808; Discours à la nation allemande)이 있다.
자유공화주의자로서 또 인문주의 철학자로서 그의 진실한 사상은 왜곡되기도하고 잘못 알려졌다. 그는 “현상학적” 방법, 현존의 서술들, 역사에 관한 반성 등으로써 근대철학의 기초자였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은 자기의 시대에 세 가지 큰 사건들이 있었다고 썼다. 피히테의 지식학(Wissenschaftslehre, 1794),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빌헬름 마이스터(Wilhelm Meisters Lehrjahre, 1796; Les Années d'apprentissage de Wilhelm Meister), 프랑스 혁명(Révolution française, 1789-1794)이다. 피히테 철학의 정신은 근대 현상학과 실존철학에 근본적으로 영감을 주었다. (43WNG)
충실성 (la) fidélité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3. (P.304)
이 용어는 라틴어 피데스(fides) 즉 신앙(foi)이란 뜻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자신의 참여에 대한 것을 완수하고자, 또 자기의 약속을 지키고자하는 엄수(exactitude)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실성의 기본적이고 진실한 형식은 자기 자신에, 자신의 업무에, 자기의 의무에 충실(fidélité)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에 충실하는 것을 “성격”(le caractère)에서 오는 것이라고들 한다. [이에 비해] 타인과 관계에서 충실성은 애착에서 오는 항상성이다. (43WMG)
목적성 (la) finalité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3. (P.304)
어떤 목적을 갖는 특성을 의미한다.
목적성에 의한 설명 또는 목적적(finale, 결과적) 설명은 자기 목적에 의한 행위, 자기 의도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설명은 인과적 설명(l'explication causale)과 대립되며, 인과적 설명은 앞선 것에 의해서 현재 있는 것을 설명한다. 목적적 설명은 사건이 일어난 것을 “무엇을 위하여”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인과적 설명은 “어떤 매개적인 것을 통하여”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학적으로 자주 쓰이는 목적성은 생물학과 심리학에서 적극적 용도로 쓰인다. 이 학문들의 영역에서는 유기체의 또는 심리기제의 총체성으로부터 (총체성에 속하는) 요소를 따로 떼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신분석학은 어떤 꿈을 그 꿈의 목적, 그 꿈의 목표, 그 꿈의 의도에 의해 설명한다. 예를 들러, 마찬가지로 [생명체의] “간”(foie)의 현존은 그 유기체 속에서 기능에 의해 설명한다.
자연의 사건들에서, 어떤 의도에 의한 목적적 설명은 “마술적”전형의 설명이다. [우연(hasard)을 계열의 사건적인 발생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위계적으로 해석하여 목적적으로 설명하려는 현대인은 속좁은 이성에 갇혀있다. 「천암함 사건(2010 03 26)」을 정부가 자신의 목적에 맞게 설명하는 것은 “마술적” 설명의 전형이다. 현재의 친일부역자들에 대한 공판의 법률적 판단도 ‘마술적’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이다. - 사회주의 세상은 흥미있는 놀이를 새롭게 생산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43WMG)
섬세의 정신 (l'esprit de) finess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3. (P.304)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에 의해 정식화된 개념이며, 파스칼에 의하면, 이 개념은 느리고 딱딱하고 유연성없는 기하의 정신(l'esprit de géométrie)과 대립된다.
섬세의 정신은 무매개적이며, “사유의 유연성에” 의해 특징지울 수 있다. 이 정신은 논리적이라기보다 직관적이며, 종들의 경우들에 매여있다. 이리하여 인간과학들은, 예를 들어 심리학은 다른 과학들과 구별되는데, 그것은 기하학적 정신이 거기에서는 충분하지 못하고, 섬세의 정신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딜타이(Wilhelm Dilthey, 1833-1911)에 이어서, 섬세의 정신인 “이해”(compréhension)와 기하의 정신인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설명”을 대립시킨다. (43WMG)
유한성 (la) finitud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3. (P.304)
끝나는(est fini) 것이 있는 특성
이 용어는 근대철학에서 극단적인 경향을 띠고 있는 것으로, 부분적으로는 인간 의식에 알맞은 특성을 지칭한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에서는 이 특성이 죽음의 불안에서 드러나고,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에서는 이 특성이 전인격에서 단 한번의 말투에서 또는 행동에서 표현되고 언표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오는 것이라 하고,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에서는 이 특성이 우리가 자유로이 선택한 것으로 여기는 생애와 필연에서 동시에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에게 제공된 가능성들 사이에 임의적인 방식이든지 동시적으로 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오는 것이라 한다. (44LKB)
핑크 Eugen Fink 1905-1975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03-104. (P.304)
독일 철학자이다. 핑크는 1905년 바덴 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지방의 콘스탄츠(Konstanz)에서 태어나, 1975년(70살) 같은 지역의 프라이부르크(Freiburg im Breisgau)에서 죽었다.
그는 1930년(25살)에 현상학의 창시자인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의 조수였다. 1946년(41살)에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의 첫째 작품, 표상과 이미지(Vergegenwärtigung und Bild, Beiträge zur Phänomenologie der Unwirklichkeit: Représentation et image, 1930) 뒤에는 「현 비평속에서 후설의 현상학적 철학(Philosophie phénoménologique de E. Husserl dans la Critique présente」이라는 논문이 실려있다. 이 논문에서 그는 현상학적 반성에게 “세계의 기원”(l'origine du monde)을 발견하는 임무를 할당하였다. 기원에 관해서, 발견의 임무를 비판적 반성으로부터 구별해내는 것이다. 비판적 반성의 목적은 단지 세계에 대한 우리 인식을 기초하는 것일 뿐이다. [비판적 반성은 칸트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고, 토대보다 기원으로 올라가는 것은 현상학적 반성으로 표현한 것인데, 사실상 사유의 보증을 찾는다(데카르트)는 점에서 상층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에 비해 프랑스 쪽에서는 근원(심층)으로 내려가는 사유를 반성적 사유(라슐리에, 라뇨, 베르그송)라고 할 것이다.] 핑크는 후설의 전체적 동의 받고서 쓴, 후설의 데카르트의 제6성찰(Méditation cartésienne)의 저자이다.
그가 행한 반성의 현실적 목표는 현상학의 서술적 태도를 사색적으로 기초하는 것이다. 그의 후설 현상학의 문제(Das Problem de Phenomenologie Husserls, 1938), 열광의 본질(Vom Wesen des Enthusiasmus, 1947; De l'essence de l'enthousiasme), 시공진행의 존재론적 초기역사에로 고찰(Nachdenkliches zur ontologischen Frühgeschichte von Raum-Zeit-Bewegung, 1957; Contribution à l'histoire des débuts de l'ontologie), (Spiel als Weltsymbol, 1960; Jeu comme symbole du monde) 니체 철학(Nietzsches Philosophie, 1960; Philosophie de Nietzsche) 등이 있다. (44LKB)
피셔 Kuno Fischer 1824-1907 Ernst Kuno Berthold Fischer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4. (P.304)
독일 철학자이다. 피셔는 1824년 현 폴란드의 니더슈레지엔(Niederschlesien)의 산데발데(Sandewalde bei Guhrau, 폴란드 고라 Gora)에서 태어나 1907년(85살)에 독일 바덴 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지방의 하이델베르크(Heidelberg)에서 죽었다.
그는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체계(System der Logik und Metaphysik, 1852; Système de logique et métaphysique ou Theorie de la science)에서 헤겔의 변증법과 다윈의 진화론의 재료들을 조화시키고자 했다. 1852년에서 1893년까지 새로운 철학사(Geschichte der neuren Philosophie, 4권; Histoire de la philosophie nouvelle)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철학을 진화의 역사로 생각하고 또 인간 자신이 갖는 인식의 진보라고 생각했다. (44LKB)
침착형 flegmatique 점액질의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4. (P.304)
성격학(caractérologie)에서 성격의 전형을 구별하는 8가지 중의 하나이며, 그 성격의 근본적 구성물은 비정서적이고[여기서 정서의 부재(비정서적)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내재적으로 동요하는 것을 의미한다], 활동력이 있으며, 인격성의 측면에서 우리에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깊은(내재적으로 심층) 반향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외향적, 표면적으로 반향하는 성격은 투쟁형(sanguin)이다.]
예를 들어 장군이며 원수였던 조프르(Joseph Joffre, 1852-1931). 그는 법률적인 의미에서 조직화를 하는 성격 인물로서, 머리는 차가운 지성을 지니고 있고, 전쟁의 전날에도 잠을 잔다. 참조: 성격학 [성격학에는 점액질의 침착형을 베르그송, 프랭클린, 투쟁형(sanguin)에는 볼테르, 헉슬리, 베이컨 등을 꼽고 있다.](44LKB)
신앙 (la) foi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4. (P.304)
어떤 종교, 어떤 이상, 어떤 사람을 믿음을 의미한다.
철학적 문제는 지식과 신앙의 연관의 문제이다. 철학적 반성은 인간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있는가? 또는 반대로 영혼의 불멸성, 세계의 기원, 신의 현존 등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필연적으로 제한되거나 부적절한가? 전자의 경우에 데카르트, 스피노자, 피히테, 헤겔 등이 해결할 수 있다고 사유했으며, 후자의 경우에, 칸트, 꽁트 는 해결할 수 없거나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지식을 제한된 것으로 간주하고 신앙에 자리를 마련해 주는 학설들은 경건주의(fidéisme) 또는 불가지론(agnosticisme)에서 유래한다.
맑스(Karl Marx, 1818-1883)에 앞서서 포이에르바하(Ludwig Feuerbach, 1804-1872)는 기독교의 본질(Das Wesen des Christentums, 1841; Essence du christianisme)에서 신앙에 대해 비판하면서, 신앙은 현존하지 않는 것에 연관할 수 없음을 제시하였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것은 실재적 지식의 대상이기 때문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은 현존하는 사물이지만, 그것의 무한한 특성은 전부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벗어난다. 인간을 믿는 신앙은 문명의 진보 속에서, 삶의 수준의 향상에서, 또 인간들의 평화적 소명에서 희망이라 정의될 수 있다. (44LKB) .
광기 (la) foli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04-105. (P.304)
정신의 깊은 혼란(trouble). 광기(folie)라는 용어는 지난 세기(19세기)에 정신의 무질서한 모든 것을 묶는 개념이며, 훨씬 더 일반화되었고, 정신과 의사에서는 위인들의 광기(folie des grandeurs), 박해의 광기(folie de la persécution) 표현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예전에 사람들은 미친갱들(les fous 광인들)을 따로 존재하는 것들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사실상 모든 개인은 사회생활에서 억제되고 지배하고 소통하는 그림자의, 충동의, 욕망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화가 난 인간은 얼마간의 순간 동안에 미쳐(fou)있다. 오히려 광기란 한 인격성을 구성하는 어려움들 사이에 불균형으로부터 결과된다. 보다 일반적으로 광기란 사회적 의미를 갖고 사회적으로 적응 안 되는 행실(comportement)을 지칭한다.
이리하여, 심리학적으로 예를 들어 간질환자와 같은 미친 존재는 사회적으로 적응될 용도를 발견할 수 있다. 인도에서 이 존재는 “샤만”(schaman), 다시 말하면 영감을 받은 성직자가 될 수 있다.
“광기”라는 공통적 개념은 책임이라는 의미를 상실하는 것, 또는 신경쇠약증처럼 실재[현실]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을 지칭한다. 오늘날 광기라는 용어 대신에 신경증(névrose 노이로제)과 정신병(psychose)으로 대치되었다. 신경증은 타인과의 관계가 변질되는 경우이고, 정신병은 타인과 관계들이 단절되는 것이다. [신경증은 사물에 대해 이상 적응하는 것인 반면에, 정신병은 사물에 대해 실질적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경우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광인(le fou)은 가두어 두거나, 그의 운명에 내버려두지 않는다. 의사들은 주사를 통해서 화학적 반응으로 치료하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사실상, 심리학적 분석, 정신병리학적분석은 확실한 진단들을 허용하고 있고 또 아직도 치료 가능할 수 있는 순간에 혼란의 진행을 막도록 한다. (44LKB)
기능 (la) fonction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5. (P.304)
유기체적 생명이 표출하는 작용들(les operations) 일체를 말한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정신은 어떤 “기능”(une fonction)이라고 말할 때,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정신이 추상적 능력(une faculté)으로서 현존한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식의 작용에 그리고 정신이 표출되는(se maniferter) 즉 기능하는(fonctionner) 행위에 환원되는 것이다. (44LKB)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Fondement de la métaphisique des moeurs 1985)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5. (P.304)
독일어 원제목은 도덕형이상학기초(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1785; Fondements de la métaphysieue des moeurs)이다. [칸트는 이것을 확대하여 나중에 실천이성비판, 1788으로 낼 것이다]
이 작품은 세 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일상적 도덕인식으로부터 철학적 인식으로 이행. 근본적 철학으로부터 도덕형이상학으로 이행. 도덕형이상학으로부터 순수실천이성비판으로 이행. 칸트는 여기서 정언명법(l'impératif catégorique)에 의해 지배된 의지만이 절대적으로 선하다고 증명한다. (44LKB)
폰세카 Pedro da Fonseca 1528-1599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5. (P.304)
포르투칼의 예수회 신부이며 철학자이다. 폰세카는 1528년 크라토(Crato)가까이의 코르티카다(Corticada)에서 태어나 1599년(71살)에 리스본(Lisbonne)에서 죽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주석(Commentaire sur la Metaphysique d'Aristote을 썼으며, 몰리나(Luis de Molina 1535-1600) “중간과학”이라 불렀던 것에 영감을 받아서 그는 자유의지와 신의 예정설을 조화시키고 애썼다. (44LKB)
퐁트넬 Bernard Le Bovier(ou Le Bouyer) de Fontenelle 1657-1757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5. (P.304)
프랑스 작가이며 사상가이다. 퐁뜨넬은 1657년 오뜨 노르망디(Haute-Normandie) 지방 센-마리팀(Seine-Maritime, 76)주의 루앙(Rouen)에서 태어나, 1757년(100세)에 파리에서 죽었다.
그의 삼촌이자 극작가인 토마스 코르네유(Thomas Corneille 1625-1709)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그는 변호사가 되었으며, 곧바로 변호사라는 자리를 떠나서 파리의 살롱을 드나들러 갔다. 그는 다수의 세상에 대한 대화(Entretiens sur la pluralité des mondes, 1686) 작품으로 과학을 세속화하는 최상의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다. 신탁의 역사(Histoire des oracles, 1686)에서 그는 신학을 세속화하는 데로 확장하였으며, 예언들이 빈 것(le vide)임을 고발하고, 각각의 사실에서 자연적 원인을 찾는다.
그는 1699년에서 1740년에 이르기까지 “과학아카데미”의 영속적인 비서직을 맡았고, 이 학술단체의 역사의 「서문」(Préface)에서 처음으로 과학들의 견고성과 자연법칙의 항상성을 표현했다. 그의 찬사들(Eloges)들이란 글에서 고인이 된 회원들, 특히 말브랑쉬(Nicolas de Malebranche, 1638-1715) 등이 진지한 사상가이며 스틸의 스승임을 알게 해준다. (44LKB)
형식주의 (le) formalism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5. (P.304)
철학의 모든 문제를 단일한 정식(formule unique)으로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방식으로 표현되는 경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모든 문제를 하나의 정식, 즉 “어떻게 선천적 종합판단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에서 귀착시킨다.
칸트의 도덕적 학설은 형식주의이며, 그의 학설이 도덕행위의 일반적 원리(선한 의도를 가지고 행위하기)를 부여하고 어떠한 개별적 구체적 의무를 특화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도덕은 우리가 삶에서 자연적으로 행하는 그 무엇 안에 있는 태도, 즉 “의지의 기질”(dispotion de la volonté)일 뿐이다. 도덕은 어떤 개별적인 삶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통적 삶에서 일반적 태도이다. 이로서 [칸트의] “형식적 도덕”(la morale formelle)은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가 말하는 “구체적 도덕”(la morale concrète)에 대립된다.
예술에서 형식주의는 “구상예술”(l'art figuratif)을 희생시켜 나온 추상화의 과도한 경향이라고 특징짓는다. [형식예술이난 구상예술의 형태를 무너뜨리고 극단적인 추상으로 비구상 단순면을 표상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44LKB)
형상[형태]이론(Théorie de la forme) 또는 게슈탈트이론(Gestalt-théori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6.(P.304)
『유기체의 구조(Structure de l'organisme)』를 쓴 이 이론의 창시자 골드슈타인(Kurt Goldstein 1878-1965 독일 출신 아메리카 신경정신과의사)이 처음으로 제시한 이론이다. 이 이론은 유기체 전체이론(théorie globale)이다. 이 이론은 유기체 전체를 변형시킴이 없이 한 기관을 따로 떼어낼 수 없다는 확신에 기초한다. 예를 들어 손이 잘린 손없는 유기체가 아니라 다른 유기체라는 것이다.
거꾸로 모든 요소는 유기체의 전체구조에 의존한다. 즉 간(foie)은 건강한 유기체와 병든 유기체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이 형상이론은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을 이어서, 프와(Charles Foix, 1882-1927, R2 x)의 연구 이후에, 심리주의(psychisme) 영역에 확장되었다.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1896), 이 책이 나왔을 때 골드슈타인은 18세이다. 따라서 골드슈타인이 나중에 베르그송의 영향을 입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베르그송은 이미 생명현상은 (심리주의 입장에서) 조그만 변화도 전체의 변화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두뇌 속에 기억 또는 흥분(émotivité)을 위치화 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보상[대행]현상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두뇌 속에] 기억의 장소가 파괴되면, 다른 것이 이 장소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기조직의 일부가] 절제되었을 때, 심리주의[심리기제]의 균형은 다시 문제 제기된다.
결국 형상이론은 기욤(Paul Guillaume, 1878-1962, 프랑스 심리학자)과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 덕분에 전체지각의 심리학적 이론이 되었다. “내가 나무를 보았을 때, 나는 나무라는 관념을 연역하기 위해 처음에 나뭇잎 그리고 가지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선 나무라는 총체(totalité)로서 즉 형태(forme) 또는 구조(structure)로서 지각한다. 그리고 나서 나뭇잎과 가지 등등이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형태심리학의 구체적 서술은 고전 심리학에 대한 반작용이다. 이 고전 심리학에서는 전체지각의 우선이 아니라, 개별적 감각의 구성물(un composé)이라고 보았다. (39UMG)
푸꼬 Michel Foucault 1926-1984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6.(P.304)
프랑스 철학자이다. 푸꼬는 1926년에 쁘와뚜-샤랑뜨(Poitou-Charentes)지방 비엔(Vienne 86)주 프와티에(Poitier)에서 태어나 1984년(58살)에 파리에서 죽었다.
푸꼬는 1970년(44살)에 꼴레쥬 드 프랑스 교수로 지명되었다. 그는 1961년(35살)에 고전주의 시대에서 광기의 역사(Histoire de la folie à l'âge classique, folie et déraison1961)를 출판하였고, 거기서 그는 17세기에 이성(질서)와 광기(무질서) 사이에 나타난 분리(la séparation, 차별), 즉 중세에는 무시되었던 분리를 분석했다. 중세에는 광인은 신이 보낸 자였다. 그리고 나서 그는 불연속에 기초한 역사의 철학을 전개했고, 말과 사물(Les Mots et les Choses: Une archéologie des sciences humaines, 1966)과 지식의 고고학(L'Archéologie du savoir, 1969)을 썼다. 인식들의 진화는 여러 층(stratifications)들에 의해 표시되고, 층의 각각은 다른 인식론의 장(champ)을 구성한다. 각 시기에 인식들, 즉 담론 형성들은 여러 다른 방법과 대상들 주위에 조직화된다. 우리는 또한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Naissance de la prison, 1975), 성의 역사(Histoire de la sexualité, 1976 et 1984)의 3권 지식의 의지(La Volonté de savoir, 1976)(1권), 쾌락의 용도(L'Usage des plaisirs, 1984)(2권), 자기 배려(Le Souci de soi, 1984)(3권) 등을 읽을 수 있다. (44LKD)
푸이예 Alfred Fouillée 1838-1912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6.(P.304)
프랑스 철학자이다. 푸이예는 1838년 멘-에-르와르(Maine-et-Loire, 49)주의 뿌에즈(Pouëze)에서 태어나, 1912년(74살)에 론(Rhône 69)주의 리용(Lyon)에서 죽었다.
푸이예에 따르면 “관념들은 힘들이다”. 관념들은 자기 속에 개인의 영혼들을, 그리고 영혼들이 퍼져있는 사회적 환경을, 변형시키는 실현화의 권능을 지니고 있다. 그는 현대도덕체계의 비판(Critique des systèmes de morale contemporains, 1883), 현대 사회과학(Science sociale contemporaine 1884), 힘관념의 진화(L'Evolutionnisme des idées-forces, 1890), 힘관념의 심리학(La Psychologie des idées-forces, 1893), 힘관념의 도덕(La Morale des idées-forces, 1907) 등을 썼다. (44LKD)
[벩송이 푸이예 작품 중에 소크라테스 부분과 퀴니코스와 스토아의 연결을 잘 읽었다.]
군중 (la) foul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7.(P.304)
많은 사람들의 회합(réunion).
군중은 비조직적 집합이다. 이것은 그룹의 원칙과 제도를 가지고 조직화된 사회적 그룹과 다르다. 군중 심리학은 그룹의 심리적 실재성, 즉 특별한 정신성(mentalité)을 구별해 낸다. 즉 그 정신성은 따르드(Jean-Gabriel de Tarde, 1843-1904)가 말하듯이 그룹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정신들의 합계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군중은 개인들이 각각 따로 있으면서 서로는 더 이상 만나지 않았을 경우에도 [유사한 또는 동일한] 전형적인 반작용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국가부도와 같은 것이 일어나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인 경우, 사적 형벌을 가하는 경우, 또는 [애국적, 민족적] 열광과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따라서 사람들은 르봉(Gustave Le Bon, 1841-1931)의 “군중 심리학”에 대해 말 할 수 있으며, 한편으로 그것은 개인들 사이의 관계들의 심리학이라 할 수 있는 “상호심리학”의 한계에 머물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조직화된 그룹들의 분석인 “사회학”의 한계에 머물 수 있다. [르봉(Gustave Le Bon, 1841-1931)은 군중심리학(Psychologie des Foules, 1895)에 대해 프로이트는 1921(65살)년에 군중심리학과 자아분석(Massenpsychologie und Ich-Analyse Digitalisat, 1921; Psychologie des masses et analyse du moi)을 썼다.] (44LKG)
푸리에(Charles Fourier, 1772-1837)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1984)
프랑스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다. 그는 1772년 프랑스 서부 스위스 접경인 프랑쉬꽁테(Franche-Comté) 지방의 도브(Daube)주의 주도인 브장송(Besançon)에서 태어나서 1837년 파리에서 죽었다. [푸르동(Pierre Joseph Proudhon 1809-1865)도 브장송 출신이다]
부유한 모직상의 아들로 태어난, 푸리에는 1793년에 식민지의 산물(産物)에 투기하여 자기 재산을 잃었다. 그리고 상업에 고용인으로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문명의 악덕(vices de la civilisation)”을 고발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빈곤과 풍요사이에 불균형에 놀란 그는 공동체의 총체적 삶을 실행하는 인간 그룹을 만들기를 권하기 때문이다. 그는 일종의 사회주의 마실 즉 “팔랑스테르(phalanstères, 공동생활체)”를 건설하려고 생각했다. 이 곳에서 삶은 공동이며, 한 때 이스라엘(Israël)에서 실행되었던 키부츠(Kibboutsim)와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랑스테르는 주식회사(une société par action)의 법률적 형식 즉 자본주의 사회의 전형이었다. 주식(action)을 소유하는 각 구성원은, 이런 사실로부터, “우리땅, 우리 궁전, 우리 성, 우리 숲, 우리 공장”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공동체(집단) 건설이 거의 현실적이지 못하고 또한 그 스타일이 완전히 유행이 지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푸리에 작품은 여전히 읽히고 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 인간의 일반적 운명과 4가지 운동의 논리(Théorie des quatre mouvements et des destinées générales)(1808), 가정적, 농업적 사단법인론(Traité de l'association domestique agricole)(1822) 등이 있다. 이 후자는 1841년에 Théorie de l'unité universelle)이란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39PLG, 42MLC)
프랑크푸르트 학파 (l'école de) Francfort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7.(P.304)
1923년에서 1938년 사이에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사회탐구연구소(Istitut für Sozialforschung)” 주위에 모여든 독일 철학 학파를 말한다.
이 학파는 그 당시 뉴욕으로 옮겼다가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1895-1973)와 더불어 1950년에 다시 돌아왔다. 이 학파는 1971년에 사라졌다가,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 )가 나오게 된다.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 1903-1969)와 마르쿠제(Herbert Marcuse, 1898-1979)들도 똑 같이 중요한 역할을 한, 이 학파는 “사회탐구”로부터 그리고 정신분석학으로부터 나온 개념들로부터 [정치적]당들과 독립적으로 맑스주의를 다시 사유하기를 애쓴다. (43RLH)
프레게 Gottlob Frege 1848-1925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p. 107-108. (P.304)
독일의 논리학자이며 수학자이다.
프레게는 1848년 독일의 북부의 맥크랜부르크(Mecklenburg-Vorpommern)지방의 비스마르(Wismar)에서 태어나 1925년(77살)에 같은 지방의 바드 클라이넨(Bad Kleinen)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근대 논리학의 기초자이다. 분석철학의 흐름은 그의 작품에서 원용되었다. 그는 개념표기법(Begriffsschrift, eine der arithmetischen nachgebildete Formelsprache des reinen Denkens, 1879)에서 수학이론들의 형식화와 연구에 알맞은 형식언어(laguage formel), 표의문자법(idéographie, [가상언어, 기호논리]) 즉 개념표기법(Begriffsschrift, écriture du concept, [기호언어])을 발명했다. 또한 프레게는 수학의 기초를 재료로 하는 논리주의 학설의 저자로서, 산술학의 기초(Die Grundlagen der Arithmetik, 1884; Les Fondements de l'arithmétique)과 산술학의 법칙(Grundgesetze der Arithmetik 2권(1893, 1903); Lois de l'arithmétique)을 썼다.
그리고 프레게는 「개념과 대상에 관하여(Über Begriff und Gegenstand, 1892; Sens et référence」라는 논문을 통해, 표현에 관한 의미(Sinn, sens)와 지시(Bedeutung, référence) 즉 외연(dénotation) 사이에서 의미화작용에 대한 근대이론의 토대를 마련하는 구별을 하였다. “새벽별(샛별)”과 “저녁별(개밥바라기)”이라는 표현들은 동일한 지시체(이 두 표현은 모두 금성(Vénus)을 지시한다)를 갖는다. 비록 이 표현들은 의미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즉 한 표현은 그 지시체를 접근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예로서 새벽별은 해뜨기 전에 만나는 분위기와 의미를 갖는다.] 프레게의 서신교환은 매우 많았다. (43WMG)
프로이트 Sigmund Freud, 1856-1939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8. (P.304)
오스트리아의 신경학자 정신과의사이며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다.
프로이트는 1856년 옛 모라비 왕국 프라이베르그(Freiberg, Moravie) [오늘날.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리보르(Pribor, Tchécoslovaquie)에서 태어나, 1939년(83살)에 영국의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885년(29살)에 프랑스에서 샤르꼬(Jean Martin Charcot 1825-1893)의 영향을 받았다. 샤르꼬의 근본적 생각으로는 신경증 특히 히스테리는 기관의 손상 없는 심리적 감화(affections)들이라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1895년에서 1897년(41살)에 브로이어(Josef Breuer 1842-1925)와 함께 일하면서, 심리적(mental) 과거의 탐험을 최면상태의 잠을 수단으로 그리고 근원적으로 정서적 충격을 일으켰던 것에 대해 다시 의식하기에 의해 히스테리의 치유를 할 수 있다고 확인했다. 이 충격이 성적인 생활의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자기 학설(즉 프로이트주의)의 기초를 다졌고, 이 “프로이트주의”는 원초적 리비도(libido), 즉 성적 경향(tendance sexuelle)으로부터 거의 모든 심리적 혼란을 설명하게 되고, 또한 자신이 만든 방법적 원리들 즉 정신분석학도 설명하게 된다.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의 단순한 분석에 의해 모든 혼란들을 제거한다고 한다. 이렇게 [무의식을] 의식하게 되는 것은 [혼란과 히스테리부터] 해방으로서 그리고 정상상태로 회복으로서 나타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개인의 인격성은 어린이가 태어난 3년 동안에 어머니와 관계에 의해 규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이 치유할 수 있는 [심리적]혼란은 일반적으로 청소년기의 애정관심(sexualite, 성관심)에 연결되어 있다.
프로이트의 저작들은 항상 매우 구체적이고 또 모든 이들에게 접근가능하다. 사람들은 정신분석 입문 강의(Vorlesungen zur Einführung in die Psychoanalyse, 1917; Introduction à la psychanalyse)로부터 시작할 수 있고, 그리고 나서 정신분석학의 다섯 강의(Cinq leçons sur la psychanalyse, 1909)를 읽을 수 있다. 게다가 꿈의 과학(Science des rêves 1901)과 토템과 터부(Totem et Tabou, 1913)도 주목하자. 참고: 어린시절, 정신분석학. (44LKC),
욕구불만 (la) frustration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108. (P.304)
개인이 만족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믿는 그 만족에 대해 박탈당한 감정
정신분석학은 애정적 욕구불만(la frustration affective)이란 개념을 논의할 가치 있게 만들었다. 이 욕구불만은 한 어린이에게서 부모가 그의 형제들에게 더 호감을 표시하는 경우에 생겨날 수 있으며, 그리고 그가 부당한 취급을 당한 것으로 느낄 수 있는 경험의 모든 형식들에서 생겨날 수 있다.
욕구 불만에 찬 개인은 공격적인 품행으로 반작용할 수 있으며, 또는 반대로 스스로를 자신속에 가둘 수도 있다. 그리고 그의 억제된 공격성이 심리적 혼란들[장애들]을 생겨나게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 심리적 혼란들을 “욕구불만 콤플렉스”(complexe de frustration)라는 호칭아래 모으게 된다. 예를 들면 고행(mortification), 자책의 품행들(conduites d'autopunition) 등이 그것이다. (44L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