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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잠언 제 9 강 아산UBF 메시지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
말씀 / 잠언 18장, 19장
요절 / 잠언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무엇을 우선하는가? 무엇을 중시하는가? 이것을 사람의 가치관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어떤 존재로 보는가? 사람을 어떤 대상으로 여기는가? 이것을 그의 인간관이라고 합니다. 사물과 사건, 세상을 보는 시각이 어떠한가? 이것을 그 사람의 세계관이라고 합니다. 믿음 가졌다는데 여전히 가치관은 자기, 자기영광에 두고 있는 일이 많습니다. 예수님 제자라 자부하는데 다른 사람을 얕잡아보고 사람이 모두 나를 이해하고 내가 제시하는 것에 따르기를 바라는 인간관이 여전한 경우도 많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언어생활과 우리 관계와 우리 삶이 하나님의 지혜로 가득하여 좋은 열매로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잠언 18장을 시작하면서 세 가지 이슈를 먼저 제기하고 있습니다. 첫째 마음의 추구하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무리에서 떠나는 자는 자기 욕심을 따르는 자라 모든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이기적 욕심에 이끌리는 대표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공동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동체에 불만을 제기하고 분열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중심으로 모임이 이루어지고 자기 중심으로 모임 내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불만이 많습니다. 공동체를 떠나 혼자 길을 가거나 여러 사람 데리고 나눠지려는 사람의 바탕은 이기적인 욕심입니다. 지혜와 반대되는 행동입니다.
둘째, 언어생활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상황에 맞지 않는 말, 다른 사람 감정 상하게 하는 말, 유익이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는 것보다 자기 머리에 떠오른 것을 일단 말 하고 보는 사람입니다. 언어생활에서 이것이 습관으로 자리잡은 사람입니다. 생각과 마음 중심이 자기에게 있어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성경은 ‘미련한 자’라 정의합니다.
셋째, 행하는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악한 자가 이를 때에는 멸시도 따라오고 부끄러운 것이 이를 때에는 능욕도 함께 오느니라" 실제 삶에서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질서 지켜야 합니다. 약속 지켜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약속을 지키라 하고 자기가 지키지 않는 것은 별 문제 삼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시간을 지키라 하는데 자신은 시간을 잘 지키지 않습니다. 남들에게는 규칙을 지키라 하고는 본인은 상황에 따라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합니다. ‘인격장애’의 특징이 남자의 경우는 자신의 규칙 안 지키는 것을 모르거나 자랑하는 것입니다. 법을 어기면서도 이것을 인식하지도 않고 오히려 자랑하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은 악한 행동을 하면 반드시 그에 따른 멸시와 수치가 따라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서두에서 ‘생각’과 ‘말’과 ‘행동’ - ‘마음 중심’과 ‘언어생활’과 ‘실제생활’을 이슈로 제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행하는 것이 달라져야 합니다.
4절부터 8절까지 언어생활에 대한 잠언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예수님의 제자는 말에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풍부한 소재를 가지면서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은혜가 흘러나와야 합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 자기 영광, 자기 유익 구하는 사람은 말이 뻔합니다. 상황무시, 사람무시 오직 나, 나밖에 없으니 입으로 나오는 것이 뻔할 수밖에 없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악인을 두둔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은 선하지 아니하니라" 잘못 저지른 사람 편들거나 정의로운 사람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높임받아 칭찬받기 좋아하는 사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 나를 높여주는 것 같으면 그 사람이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라도 편들어 줍니다. 반면, 하나님 경외하는 사람, 주와 복음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라도 나에게 반대하는 일이 있으면 부당하게 대우합니다. 악인을 두둔 하고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은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여기서 충성할 이유가 없다’며 다른 사람들까지 절망하게 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의 생활을 보면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갈등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천사같은 사람, 황희 정승같이 무슨 말을 해도 맞다 맞아 해주는 사람외에는 곁에 있으려 하지 않습니다.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됩니다. 이것이 입의 열매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미련한 자의 입은 자기의 멸망이 되고 그의 입술은 자기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결국 어리석은 사람의 말은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자신의 말에 자신이 걸려들게 됩니다.
8절을 보십시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험담하기 좋아하는 사람의 말은 맛있는 음식처럼 쉽게 받아들여지지만, 결국 해롭습니다. 험담하는 말을 들으면 가급적 듣고 바로 잊어버려야 합니다. 자기 중심인 사람은 남의 약점을 들으면 대단히 즐거워 하고 잊지 않고 기억해둡니다. 그랬다가 그의 약점과 허물을 다른 곳에서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8절까지의 말씀에는 개인의 언어생활이 자기를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할 수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관계에서의 성공과 실패가 말에 달려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9절부터 12절은 아름다운 언어생활, 좋은 열매 맺는 말을 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필요하며 선행되어야 하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자기의 해야 할 일을 부지런히 하는 사람이 언어생활도 절제가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이 말이 많습니다. 책임감이 강하고 맡은 일을 충실히 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말에서도 절제가 생깁니다. 저의 친구들 중에 초 중학교 시절에는 공부 못하다가 자라나 서울대, 연고대 간 친구들이 여럿 있고 의사가 되고 행정고시 사법고시에 합격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 친구들 공통점- 열심히 공부하면서부터 말수가 적어졌습니다. 자기 일을 부지런히 하여야 합니다. 부지런한 사람이 말에도 자제력이 생깁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망대는 적들의 공격에 대한 방어시설입니다.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은 말이 많습니다. 마음에 고민이 있으면 하나님 앞으로 가는 사람은 사람들 앞에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억울할 때, 괴로운 일을 겪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사람, 그런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말 많이 하지 않습니다. 언어생활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사실 마음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실제 삶에서의 문제들을 하나님께 들고 나가 하나님께 해결받는 사람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같이 여기느니라" 부자는 자신의 재물을 안전한 보호처로 여기지만, 허상일 수 있습니다. 뭔가 가졌다고 여기는 사람이 말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참 보호처로 여기는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말로 실수하지 않습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임을 알고 하나님만이 자기를 지켜주시는 높은 성벽임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다른 사람들을 업신 여기는 사람, 자신이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여기는 사람,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얼마나 치명적인 말실수를 합니까? 겸손은 존경과 영광으로 이끄는데, 특별히 교만은 그의 언어로 나타나며 겸손 역시 말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존경과 영광을 겸손의 마음을 품고 겸손의 말을 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13절부터 24절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좋은 언어생활을 하기 위하여) 애쓰고 실천해야 할 것을 기록한 잠언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성급하게 판단하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황 파악없이 말부터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육체의 질병은 견딜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치유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상처 받은 마음에서 부담되고 부담되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가 있을 때, 예수님께로 나가야 합니다. 고난 받으신 예수님께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아야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지혜로운 사람은 계속 배우려 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 노력합니다.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은 말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말에서 뿐 아니라 생활에서 실수가 적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선물은 관계를 좋게 하고 기회를 열어줄 수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좋은 것을 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시도 하는 사람이 말에서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송사에서 먼저 하는 자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이웃이 와서 밝히느니라" 한쪽의 이야기만 들으면 그것이 옳은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쪽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친한 사람의 말을 듣고 덮어놓고 화내거나 상황을 판단하는 사람은 큰 실수를 합니다. 다른 견해 다른 말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제비뽑기는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하나님께 결정을 맡길 줄 알아야 합니다. 공정한 방법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다툼을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려 할 때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상처받은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상처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더러 ‘왜 그렇게 역사 지리를 많이 아느냐’고 묻습니다. 알면 안됩니까? 어떤 사람은 ‘왜 그렇게 논문을 많이 쓰냐’고 묻습니다. 많이 쓰면 안됩니까? 저더러 ‘왜 아들이 그렇게 공부를 잘하냐’고 묻습니다. 이런 말을 듣자면 도대체 얼마나 나를 깔보는 관점을 품고 있나 느껴지지 않습니까? 관계에서의 성공과 실패는 말에 기인하며, 말은 그 품은 생각,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우리의 말은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살면서 그 열매를 맛보는 것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우리가 하는 말은 삶과 죽음만큼 중요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결과는 우리 자신들에게 돌아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은혜입니다. 천사를 아내로 만나도 오랜 세월 괴롭게 하면 악처가 될 수 있습니다. 화내고 감정 드러내면 밖으로 돌아다니는 나쁜 남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아내에게 말을 잘 하여야 합니다. 남편에게 함부로 감정을 터트리지 말아야 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가난한 자는 애걸하여 구하여도 부자는 엄하게 대답하느니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부자처럼 고자세로 말하는 태도가 없어야 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수많은 얕은 관계보다 한 명의 진실한 친구가 더 소중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진실한 친구를 얻을 수 있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친구는 노력해서 얻는 것입니다.
잠언 19장에서는 실제 생활에서 무엇을 중시할 것인지를 강조하고 훈계와 교육의 필요성을 전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3절까지는 도입부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성실하게 행하는 가난한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지혜로운 삶의 기초는 정직과 성실 자체를 중시하는 것입니다. 돈 중시하는 사람은 어떤 과정을 거치든지 돈만 벌면 된다고 여깁니다. 성과 중시하는 사람도 성과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합니다. 과정과 절차에서 나타나는 정직과 성실이 동기와 목표만큼 중요합니다. 앞세대 중에 성과 중시하면서 과정/절차에서 정직과 성실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일이 있었습니다. 세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뒷세대 중에도 성과에 집착하는 사람은 과정과 절차에서의 정직과 성실을 가볍게 여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 지식 없이 무작정 욕심내는 것은 좋지 않으며, 성급하게 행동하면 실수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싶다 하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앞세워 상처주는 무기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행하여야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인생이 꼬였는데도 하나님을 탓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잠깐 고난 당하고 일시적으로 고생할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반복되는 문제가 있고 이것이 누적되어 열매없는 삶이 될 때, 자기에 집착하고 매인 사람들은 자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반복하여 훈련받아도 회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깨어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것은 이런 미련한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19장 도입부의 말씀을 볼 때, 우리는 돈, 성과보다 정직과 성실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무지한 채 벌이는 자기 열정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쁜 열매는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고 회개와 그에 합당한 열매 맺고자 하여야 합니다.
4절에서 7절은 재물과 인간관계에서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떠나느니라" 부자일 때는 많은 사람이 친구라 하지만, 가난해지면 떠나가는 세태를 보여줍니다. 5절을 보십시오.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도 피하지 못하리라" 거짓말하고 거짓 증언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6절을 보십시오. "너그러운 사람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관대한 사람에게는 많은 사람이 호의를 구하며, 베푸는 사람에게는 많은 이가 친근히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가난한 자는 그의 모든 형제가 미워하거든 하물며 그의 친구야 그를 멀리하지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지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 가난한 사람은 가까운 친척 형제조차 외면하는데, 친구들은 더욱 멀어진다는 현실을 말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알뜰하게 모아서 부자가 되는 것은 나쁜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부자가 되었을 때, 부자이기에 상처받는 일을 당할 수 있으며, 부자이기에 상처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처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8절에서 17절까지 지혜로운 삶의 실천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 지혜를 추구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것을 지키면 복을 받습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 이름을 빙자하여 자기 이름 내고 자기 영향력 키우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생명의 진리에 관심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에 주목하고 주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과 주께서 얻으신 영광에 참여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켜 복을 받는 인생이 되는 길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 자기 중심일 때 거짓을 말하는 때가 옵니다. 이익 중심, 성과 중심인 사람은 항상 말이 다릅니다. 그 말의 신뢰를 잃었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미련한 자가 사치하게 사는 것이 적당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 월급 300만원 받는 사람이 자동차 할부금으로 200만원 내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요. ‘카푸어’라 부르지요. ‘명품푸어’도 있고 ‘하우스푸어’도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듯, 질서가 뒤바뀌는 상황은 무엇이든 부적절한 것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예수님의 제자는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지 말아야 합니다. 화내지 않고 남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이자 영광입니다. 화를 내지 않는 부드러움이 온유입니다. 온유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왕의 노함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의 이슬 같으니라"
권력자의 분노는 두렵고 위험하지만, 그의 은혜는 생명을 살리는 이슬 같습니다. 우리는 리더가 되려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리더다운 소양과 인격을 갖추기를 추구하여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미련한 아들은 그의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은 비 올 때 집 천정에서 물이 새서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녀는 부모에게 큰 근심이 되고, 늘 다투는 아내는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부유한 조상과 부모에게서 유산은 받을 수 있지만, 현명한 배우자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배우자와 함께 하는 복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게으른 사람은 빈곤에 빠지게 되며,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굶주리게 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멸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지키는 것을 교회에서만 국한하는 것은 잘못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동일하여야 합니다.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동일하여야 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가 갚아 주시리라"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하나님께 빌려드리는 것과 같으며,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인격과 삶에는 긍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긍휼을 행하시고자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도 이웃을 위하여 긍휼을 행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18절부터 29절까지는 훈계와 교육에 대한 잠언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네가 네 아들에게 희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고 죽일 마음은 두지 말지니라" 자녀를 올바르게 교육하되, 과도한 징계는 피해야 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성깔 있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건져 주어야 하리라" 경솔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은 본인은 후련하겠지만,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합니다. 화내는 것이 습관으로 자리하기 쉽습니다. 함부로 화내는 사람은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감정 드러내는 것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조언을 듣고 교훈을 받아들이면 결국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완성된 인격과 성품을 갖추는 것이 아닙니다.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배우고 선생으로부터 배우고 목자로부터 배웁니다. 부모를 인간적으로 보고 배우지 않는 자식들은 나가서도 어른들을 인간적으로 봅니다. 배우지 않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인간은 많은 계획을 세우지만,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집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사람은 그의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으니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진실한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존경받으며, 정직한 가난이 거짓된 부보다 낫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면 생명을 얻고 만족하며 살게 되고 재앙을 피할 수 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게으른 자는 그의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게으른 사람은 가장 간단한 일조차 하기 싫어하는 극단적인 태만함을 보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거만한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경성하리라 명철한 자를 견책하라 그리하면 그가 지식을 얻으리라" 징계를 통해 어리석은 자도 깨닫게 되며, 지혜로운 사람은 책망을 통해 더 많이 배웁니다.
26절를 보십시오.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 부모를 학대하고 무시하는 것은 큰 수치이며 저주받을 일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 진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가르침은 멀리해야 합니다. 요즘 인터넷에 자료가 많고 유튜브 영상이 넘쳐납니다. 진리를 벗어나는 것에 대하여 분별이 필요합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악한 증인은 공의를 비웃나니 악인의 입은 죄악을 삼키느니라" 악한 증인은 정의를 무시하고, 악인은 악행을 즐깁니다. 이런 사람에게 심판이 있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 악을 행한 자, 교만한 자와 어리석은 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벌을 받습니다. 심판이 없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며 그런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심판 받기로 정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생에서 징계와 훈련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럽습니다. 징계와 훈련이 즐거운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징계와 훈련이 없을 때, 평생 수치와 모욕을 달고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본성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을 누가 기뻐하고 환영하겠습니까? 마음의 원하는 바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가까운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부담스럽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늘 누가 감당해주어야 하고 참아 주어야 관계가 유지됩니다. 징계가 없었고 훈계가 없었고 연단이 없었으므로 본성을 부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 머리에 떠오르는 자기 생각을 참고 억누를 수가 없는 것은 훈계받은 것이 없고 징계 받아본 적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을 통하여 훈계받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인생 채찍이라도 있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받아주고 인자하였던 부모에 대한 기억은 혼자 간직하는 것이 좋습니다. 훈계와 징계없이 자랐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약점을 노출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잘 해준 사람, 나를 높여 준 사람을 공개적으로 말하면서 열거하는 것은 나르시스트가 하는 전형적인 행태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의 십자가를 배웠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그 인격을 반복하여 배운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배운 그리스도의 희생과 겸손이 우리의 언어생활에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배우고 믿는 그리스도의 헌신과 죄인들을 향한 긍휼이 우리에게서도 드러나고 나타나야 합니다. 다른 사람, 다른 영혼을 나 중심으로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 편에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인생, 다른 영혼을 나의 유익, 나의 영광 드러내는데 이용하려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일인 줄 알고 오직 겸손과 온유함으로 나기를 낮추고 예수님께로만 인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말의 열매가 있고 먼저 연단을 받아 올바른 관계를 실생활에서 맺을 줄 아는 사람을 생명역사에 쓰십니다. 행사, 프로그램, 시대 분위기를 핑계대지 말고 지금 내게서 무엇이 나오고 있는지 돌아보고 변화와 성장에 힘쓰시기를 기도합니다. 아산UBF
아산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