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9월 2일 월요일. 35℃, 맑음, 천둥번개, 돌풍, 소낙비, 서늘하다.
여기는 토주르, 숙소에서 거리를 내려다본다. 축구장에 아침이 온다. 거리에는 노란 택시가 간다. 멀리 루아지 터미널이 보이고 사람들이 움직인다. 고개를 돌리니 주유소로 차들이 들어간다.
아침 6시 30분에 일등으로 식사를 한다. 옥상에 있는 식당이다. 옥상이 넓다. 커다란 나무판 그림이 있다. 날카로운 송곳으로 긁어 그린 그림이다. 다육이 식물들이 잘 자라고 있다. 식당이 예쁘다.
식당 테라스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의 건물들과 골목길이 정겹다. 식당에는 베르베르 여인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진열된 식탁이 아니고 갖다 주는 식사다. 커피와 빵, 잼, 계란, 주스 등 풍성하다. 잘 먹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루아지 터미널로 걸어간다. 우리의 목적지는 카세린(Kasserine)에서 스베이틀라(Sbeitla)를 가는 것이다. 카세린으로 직접 가는 루아지는 없고 가프사에서 갈아타야한단다.
가프사행 루아지는 오전 7시 10분에 출발했다. 배낭을 차 뒤에 잘 집어넣었다. 이상하게 젊은 여자들만 탔다. 쭉 뻗은 도로를 달려간다. 사막 한가운데다. 오전인데도 영상 41℃를 나타낸다.
어제 도착하여 기다리던 GAFSA에 도착했다. 거리에는 사람도 많고 차들도 복잡하다. 8시 40분에 루아지 터미널에 들어섰다. 기사 아저씨가 카세린 행 루아지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바로 이어서 카세린 행 루아지를 탑승했다. 오전 9시 10분에 출발이다. 이번에는 남자들만 타고 간다. 재미있다. 주로 젊은이들이다. 카세린을 향해 가는 길은 이제 사막을 벗어난 느낌이다.
주변에 나무들도 자라고 있고 초록 풀들도 보인다. 거기에 비가 내린 흔적도 있다. 대충 120km 되는 거리를 2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했다. 카세린 루아지 터미널은 엄청 복잡하고 사람들도 많다.
카세린은 튀니지 중서부의 도시다. 중요한 시장이 있는 도로·철도의 요충지이며, 주변지역에서는 양과 소가 사육되며, 관개농업으로 올리브와 곡식이 재배된다.
튀니지에서 가장 높은 산인 참비 산(1544m)이 위치해 있다.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때 튀니지 작전의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사막의 여우 롬멜 장군이 이끄는 독일 부대가 등장한다.
전반적으로 독일이 승리했지만 결국 독일군은 이 전투에서 패배하여 북아프리카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다. 정부의 정책에 대한 시위가 자주 일어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튀니지에서는 5년 전에도 한 실직 청년이 스스로 분신자살로 항의에 나서면서 튀니지의 오랜 독재자 벤 알리를 축출하는 민중봉기가 이곳에서 처음 일어났다.
이것으로 인해 '재스민 혁명'이 시작되었고 북아프리카 전체의 '아랍의 봄'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루아지 터미널에서 만난 사람들도 기운이 넘치고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다.
우리의 목적지 스베이틀라를 가는 루아지 표를 끊었다. 표에는 탑승할 차량의 번호가 적혀 있어 그 차를 타야한다. 타야할 인원수를 지정해 주는 것 같다. 고맙게도 새 차를 만났다. 프랑스 푸조 차다.
기사도 젊고 귀공자 같은 멋진 신사다. 기사를 할 것 같지 않은 부자 같다. 친절하게 우리를 스베이틀라 호텔 앞에 내려 주었다. 12시 20분이다. 20여분 걸린 것 같다. 도로 옆에 있는 우리 숙소(Sufetula Hotel)는 제법 넓다.
고급스러운 리조트 같은 분위기다. 정원이 있는 커다란 대문을 들어가서 체크인을 한다. 숙소는 1층인데 전망이 좋다. 부겐베리아 핑크빛 꽃이 창가에서 화려하다. 테라스로 나가보니 바로 로마 유적지가 보인다.
예쁜 수영장도 보인다. 숙소 식당에 가서 뜨거운 물을 구해 왔다. 누룽지를 불려 멸치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창밖을 보니 유적지 벌판에 돌풍이 분다. 모래 먼지가 뽀얗게 일어나 시야를 가린다.
금방 어두워진다. 검은 먹구름이 몰려온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 멀리서는 비가 내리는 것 같다. 10여분을 어둡게 하더니 서서히 또 갠다. 파란 하늘이 나타나더니 시야가 좋아진다.
에어컨이 좋다. 빨래를 하고 샤워를 한다. 로마 유적지 구경을 하러 간다. 숙소를 나와 걸어서 간다. 건너편에는 올리브 나무가 잘 심어져 있다. 왼쪽 길로 걸어간다. 유적지 담장을 끼고 걸어간다.
담장을 넘을 수 있게 되어있다. 눈으로 살펴보며 걷는다. 정식 입구를 통해 들어가려고 입구까지 걸어간다. 입구에는 SUFFETULA, Sbeitla라는 글씨가 보인다.
스베이틀라, 수페툴라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길 건너편 박물관 건물에서 입장권을 팔고 있다. Sbeitla의 고고학 박물관 건물이다. 박물관에는 여러 조각품과 모자이크가 있다.
여러 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캡시안 문화에 관한 것이다. BC 8000년 전의 캡시안(Capsian) 시대의 유물이다. 고대의 캡시안(Capsian) 문화의 자손인 베르베르(Berber) 민족에 관한 유적이다.
두 번째는 디오니소스(Dionysus)등의 로마 신화와 관련된 여러 개의 모자이크가 있다. 사람들이 없다. 우리만 들어가서 표를 구입했다. 두당 8디나르(3,200원)다.
아폴론 신을 형상화한 모자이크 작품이 보인다. 하프를 들고 있고 화살을 갖고 있는 형상이다. 길을 건너 유적지로 들어간다. 표를 검사하는 사람도 없다. 스베이틀라는 튀니지 중서부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북아프리카 로마세력이 이슬람 세력에 맞서 마지막까지 수도로 삼고 저항했던 곳이다. 유적의 규모도 크고 튀니지 중부에 위치한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관광객들이 많이 들리는 곳이다.
우리가 도착한 튀니지에서 가장 잘 보존 된 비잔틴 포럼 사원이 들어있는 로마 유적지다. 이 지역의 우수한 기후 조건의 혜택을 받은 올리브 산업을 통해 큰 번영을 이루었다고 한다.
도시의 폐허에서 발견된 올리브 압착기는 이러한 결론을 더욱 뒷받침해 준다. 그로 인한 번영은 화려한 포럼과 다른 중요한 건물의 건설을 가능하게 했다. 비잔틴 제국의 도착은 새로운 영광의 시대를 열었다.
647년, 도시 앞의 들판은 귀족 그레고리우스의 비잔틴과 베르베르인 사이의 주요 전투와 라시둔 칼리프의 이집트 사이의 주요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었다. 수페툴라 전투는 무슬림의 결정적인 승리로 끝났다.
이 전투는 이 지역에 대한 비잔틴 제국의 지배력을 흔들어 놓았으며, 북아프리카에 대한 무슬림의 정복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알리 벤 게다헴(1814 – 1867)은 이곳 출신의 튀니지의 유명한 혁명가다.
근대사에 있어 1864년 프랑스에 좌지우지되던 베이 정부에 대한 메즈바 반란을 주도한 '민중의 베이' 알리 벤 게다헴이 이곳 출신이다. 유적지로 들어가서 여러 가지를 구경한다.
카피톨리노 사원, 공중 목욕탕, 안토니누스 게이트가 참 인상적이다. 카피 톨리노 (Capitoline) 사원의 개선문을 제일 먼저 구경했다. 1세기 후반에 건설되어 이 지방의 중심도시로 번창한 곳이다.
가장 중요한 유적은 세개의 신전이 줄지어 있는 포룸이다. 2세기 경에 지어진 것이란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에 해당하는 로마의 쥬피터 신전이고, 그 옆에는 쥬피터의 아내인 출산의 신인 주노(헤라)를 위한 신전이다.
또 하나는 그들의 딸인 공예,직업, 예술 그리고 전쟁의 여신 미네르바(아테나)를 위한 신전이란다. 세 신전이 나란히 서 있는 것도 처음 본다. 신전 아랫 부분이 서로 연결된 흔적도 남아있다.
그러나 세 신전의 구조는 모두 다르다. 그외 로마 극장에 남아있는 흔적은 무대뿐이었는데, 보수하여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욕장은 3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이란다.
목욕탕에는 온돌처럼 아래에서 불을 지피는 방식으로 냉탕, 온탕, 증기탕이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 4~6세기에 세워진 성당의 유적이 발굴되어 있다.
꼬마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찾은 성 비탈레 대성당의 고대 로마 세례 수반, 세례반은 정말 환상적이다. 바닥뿐 아니라 전체를 모자이크로 장식했다. 십자가와 꽃, 물고기 형상이 보인다.
세례반은 커다란 세 개의 신전과 함께 스베이틀라의 대표유물이다. 비잔틴 시대의 성당 바닥에는 모자이크 문양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다양한 주거시설의 흔적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여러 개의 목욕탕, 수많은 저수조와 상 하수도 시설, 방앗간, 학교, 극장, 경기장 등은 이곳에 살았던 약 5천명의 주민들이 얼마나 고급스러운 생활을 영위했는지 짐작케 한다.
지면 아래로는 고대 로마시절에 설치 되었다는 수도파이프가 보인다. 첨단을 달렸던 상하수도 시설만 보아도 로마의 영화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돌로 포장된 길을 따라 구경하다가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30분 정도를 꼼짝도 하지 못하고 유적 담벼락에 붙어서 우산을 쓰고 비를 피했다.
유적지를 안내해 준 꼬마들에게 건빵과 1디나르씩을 선물로 주었다. 담 넘어 들어온 중학생들을 만났다. 허름한 자루를 들고 있는데 이곳에서 식용 달팽이를 잡는다고 한다.
비가 내린 후에는 달패이들이 나온다고 한다. 잡은 거북이도 보여주고 하얀 달팽이도 보여준다. 주민들이 여러 명 달팽이를 주으러 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입구로 다시 가기가 너무 멀어서 우리도 살짝 담을 넘어 나왔다. 길가에는 폭우로 밀려든 쓰레기가 모여있다. 작은 가게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빵 가게다.
우리도 줄을 서서 빵을 샀다. 금방 만들어지는 따끈한 샌드위치다. AZIZA 수퍼에 들어가 요플레를 샀다. Kasserine 29km, 표지석이 보인다.
이곳에서 카세린 까지의 거리가 29km인가보다. 튀니지 도로에는 모두 거리표시가 있어서 재미있고 반가웠다. 숙소로 돌아왔다. 아내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한다.
춥다. 비가 온 후라 기온이 많이 떨어졌다. 에어컨이 필요없다. 영상 21℃를 보여준다. 사가지고 온 참치 샌드위치에는 올리브 절임도 들어있다.
요플레와 함께 저녁을 해결한다. 케로안, 카이루안(Kairouan) 숙소를 예약했다.
*9월 2일 경비 – 토주르에서 가프사 루아지 17, 카프사에서 카세린 루아지 24, 카세린에서 스베이틀라 루아지 6.3, 로마 유적지 16, 꼬마들 3, 슈퍼 3.8, 빵 4, 숙박비 216디나르(87,000원). 계 116,640원. 누계1,33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