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중요한 이야기인데요, 깨달음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찾아 나서는 것이 깨달음을 얻는 본질이 아닙니다. 깨달음은 제 스스로 우리를 찾아옵니다. 아니 찾아온다기보다는 언제나 깨달음 아닌 순간이 없고, 참된 자성이 아닌 적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온전한 깨달음은 언제나 있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행복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지 내가 행복을 찾아가는게 아닙니다. 내가 지금 불행하기 때문에 언젠가 있을 행복을 찾아 나서겠다, 달려가겠다, 그게 행복의 본질이 아니라는 겁니다. 때때로 어떤 선지식이나 깨달음을 얻었다는 분들 중에는 끊임없는 정진과 피나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분들도 계시지만,
어느날 갑자기 불현듯 깨달음이 나를 찾아왔다고 말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뭔가 치열하게 수행을 하고, 피나는 노력을 해서 결국 깨달았다고 하는 게 정답인 줄 알았는데 그런 방식으로 올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올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수행이라는 것에 '수' 자도 모르고, 불교의 'ㅂ' 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더라도 그 사람에게 깨달음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불교나 깨달음은 불자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해탈과 열반이 불교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가르침은 이 우주의 근원적인 진리를 이름하여 '불교' 라고 이름 지었을 뿐이지, 사실은 불교라는 그 비좁은 이름 속에 담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수행이라는 것은 사실 나를 완전히 여는 작업입니다. 가두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나를 활짝 열어 두는 작업입니다. ___p46,47 < 깨달음이 나를 찾아오도록 하라 '중' >
----------- 제가 알지 못하는 저의 어떤 모습으로 가깝고, 먼 사람들이 자신의 아프고 상처받은 생채기를 내보이며 다가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럴때면 당황해서 어쩌지 못해 회피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제 마음 같아서 너무 잘하려고 애쓴 결과였을 겁니다. 그때는 왜 저에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인지 스스로 고민이 되어 사람을 가까이 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하게는 제 자신을 완전히 여는 것이 두려웠을 겁니다. 이미 지나간 가책으로 남아 가슴에서 쓸어내어 봅니다.
'지금 여기' 완전한 깨달음은 언제나 있어서 희망적으로 다짐합니다. 이제는 저의 소소한 인연들을 사랑합니다. 어떠한 인연으로 다가오더라도 수용하고 싶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