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왜 탄생했을까? 니체가 말하는 미(美)의 잔혹한 진실
Dragon ・ 2025. 12. 2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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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고 국보급 문화유산을 마주하며 그 예술적 가치를 느껴왔지만, 정작 예술은 왜 탄생하게 되었는지 원초적인 질문에는 소홀했음을 고백한다. 이 근원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술의 진가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1. 카오스(Chaos)를 가리기 위한 코스모스(Cosmos)
인류는 오랜 세월 폭력과 공포가 지배하는 원시적 사회를 살아왔다. 무질서한 카오스의 세계관을 극복하며 공동체를 세우고, 규범과 제도를 만들어 질서 정연한 코스모스의 세계로 이행해 온 과정은 우리가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이 이행의 길목에 ‘신화’와 ‘예술’이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올림푸스 12신을 창조한 이유는 명확하다. 도시국가가 형성되기 전, 거인 타이탄족이 상징하는 파괴적 본능과 무질서를 제압하고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철학자 니체는 이를 두고 “아폴론적인 세계(예술)는 추함과 무질서를 가리기 위해 탄생했다”라고 말했다. 예술은 결코 순진(Naive)하게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 밑바닥에 깔린 어두움, 추함, 본능적인 공포를 극복하고 은폐하기 위해 '아름다움'이라는 가면을 쓴 것이다.
2. 백제의 미소, 그 이면의 피눈물
백제의 예술을 상징하는 ‘서산마애삼존불’을 흔히 ‘백제의 미소’라 부른다. 하지만 이 해맑은 미소의 기원을 따라가면 백제 27대 위덕왕의 처절한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
고대사회 왕실사찰에서 부처님을 조성한다면 그 얼굴을 지도자(왕)의 모습으로 조성하는 경우가 많다. 서산마애삼존불의 주불 역시 당대의 국왕이었던 위덕왕의 초상이라는 학자들의 견해가 일반적이다.
위덕왕(525~598년)은 누구인가?
백제 27대 왕으로 554년 관산성(충북 옥천) 전투에서 신라군에 의해 살해당한 성왕의 아들이다. 본인이 태자 시절 관산성에서 한강 유역에 대한 영유권 확보 문제로 신라군과 전투를 벌였고, 성왕은 전투를 지휘하고 있던 아들을 위로하고자 보기 50여 기를 거느리고 야간에 구천(옥천)에 이르렀는데, 신라 복병의 기습 공격을 받아 전사했다. 이때 성왕의 머리는 잘려 신라 북청(北廳)의 계하(階下)에 매장되었고, 4명의 좌평과 3만 명에 가까운 사졸들이 전사했다.
위덕왕은 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희생되었고, 죽은 아버지는 목이 잘려 신라 관청의 계단 아래 묻혔다. 그리하여 신라의 관료들이 아버지 머리를 매일 밟고 출퇴근하는 엄청난 참사에 직면했다. 아마 고대 우리나라 삼국을 통틀어 위덕왕처럼 불행했던 왕이 또 있었을까! 그는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고, 살아있어도 산 목숨이 아니었을 위덕왕의 죄책감은 어떠했을까? 평생 웃음 한 번 마음 놓고 웃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수 많은 군인들이 전사한 백제국의 대참사, 이 혼돈(Chaos)의 시대를 종식하고 코스모스(Cosmos 질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아버지를 잃은 공포와 슬픔을 감추고, 한 번도 웃지 못했을 왕의 얼굴을 ‘가장 자비로운 미소’로 치환하여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서산 마애삼존불 (국보)
서산마애삼존불은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전환하는 과정에 탄생한 대표적인 예술(유물)이 되었다.
여기에 또 하나를 더한다면 위덕왕이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의 제사 때 영혼을 불러 모시기 위해 피웠던 향로다. 아버지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한치의 소홀함 없이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세상에 둘도 없는 명작으로 백제금동대향로가 탄생했다.
백제 금동대향로 (국보)
이 또한 폭력스럽고, 공포스럽고 추했던 과거를 감추고 질서의 세계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백제인들은 오래되지 않아 예술이 탄생했던 본질을 망각했고, 순진(Naive)하게 아름답다는 감상에만 머물렀던 것일까? 한 세기를 넘기고 백제는 멸망했으니, 니체가 경고했던 말들이 귓전을 울린다.
3. 무기를 묻고 예술을 꽃피운 신라
신라는 한반도에서 가장 후발주자로 출발했지만, 당나라와 연합을 통해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뜨리고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러야 했고 패배도 하고 승리도 하는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삼국사기》는 참으로 매정하다. 전투에서 죽은 군인들의 숫자는 기록하면서 사랑하는 자식들을 잃은 신라 백성들의 통곡 소리는 단 한 줄도 기록하지 않았다. 신라 군인들의 피가 강물을 붉게 물들이고 들판에 시신이 산처럼 쌓였어도 유가족들의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매정한 역사 인식.
하지만 우리는 당시 임금의 괴로운 고뇌를 읽을 수 있다.
통일에 마침표를 찍은 문무왕은 통일 전쟁으로 지친 백성들을 위로하고, 카오스적인 시대를 종식하기 위해 폭력과 공포의 시대를 남김없이 숨기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빨리 질서의 세계로 가고자 전쟁에서 사용되었던 병기와 투구들을 모두 수거하여 경주 암곡동 깊은 산골짜기 무장사 어딘가에 매장하여 감추어버렸다. 그래서 무기를 감춘 이곳 사찰을 ‘무장사(鍪藏寺)’라 불렀다.
경주 암곡동 무장사지 삼층석탑 (보물)
이렇게 통일신라도 전쟁의 잔혹함을 감추고, 예술이라는 화려한 덮개로 가린 채 비로소 평화로운 코스모스를 선언했다. 그 화려했던 덮개가 바로 불국사, 석가탑, 다보탑, 석굴암, 성덕대왕신종 등 다양한 예술로 채워져 오늘까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랬지만 신라도 이후 지속적으로 문명이 무너져 내려 935년 국가가 멸망하고 말았다.
불국사 석가탑(국보) 석굴암 본존불(국보) 성덕대왕신종(국보)
4. 본질을 망각한 문명의 경고
니체는 경고했다. “예술이 카오스를 감추기 위해 탄생했다는 본질을 잊고, 그저 순진(Naive)하게 아름다움만을 추구할 때 문명은 무너지기 시작한다”라고 말이다.
백제와 신라의 천년 사직이 저문 것은, 어쩌면 그들이 예술 뒤에 숨겨진 원초적 고통과 경각심을 잊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는 문화유산을 답사하며 무엇을 보고 있는지! 화려한 겉모습에 취해 그 안에 숨겨진 ‘진실된 통증’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출처] 예술은 왜 탄생했을까? 니체가 말하는 미(美)의 잔혹한 진실|작성자 Drag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