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올림픽을 계기로 부동산의 경기는 활성화되고, 건축 붐이 최고조에 달해 많은 주택을 하청받아 짓기도 하였으며, 바쁜 와중에도 88년 4월 운전 면허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반복되는 작업 속에 탱크라는 별명을 들어가며 땀을 흘렀고, 도면보다 실 수요자가 사용하기 편리 하게하기 위해, 건축사와 머리를 맞대고 상의도 하여보며, 새로운 디자인으로 실속 있게 보완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정부 시책의 일 환으로 실수요자가 아니더라도 100평 이하의 논은 지번 등기를 하게 되어, 강서구에 99평을 매입해 두었는데, 매년 종토세만 납부 하고 누가 농사를 짓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실정이다.
그러면서도 쉬지 않고 노력한 보상으로 93년 APT 를 구입도 하였으나
주택으로 눈을 돌러 더욱 열심히 작업에 임하고 있을 때. 집 장사를 하던 부산 친구가 ‘박씨요 일에만 매달리지 말고 시간을 쪼개서 배우셔요. 독학으로 졸업도 할 수 있고 기사 자격증도 취득 할 수 있을 것’ 이라며, 만날 때 마다 배움의 길로 독려를 하는 것이었다.
너무 늦은 것이 아니냐는 반문 속에, 중학교 가정의 책을 접하게 되고 93년 겨울부터 고입대비 야간반에 들어가 배우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책과 씨름을 하는 주경야독이었다.
94년 4월의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94년 정월 초 이튼 날 남해안의 폭설로인해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을 걸으며 초등학교 졸업증명서를 받기 위해 모교를 찾았더니, 교장 선생님은 계시지 않고 이웃 마을의 선배님이신 급사가 있으면서 ‘지금 배워서 뭐 하겠는가? 그렇지만 배울러는 용기가 대단 하다며’ 며 우편으로 보낼 테니 주소만 적어놓고 가라는 것이었다.
이미 시작은 하였고 기초부터 튼튼히 하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배운 결과 노력의 결실로, 94년 4월 17일 중졸 자격 검정고시에 무난히 합격을 하였고, 내친김에 8월의 고졸 자격 검정 고시에 도전 을 하였다.
생각보다 쉬운 것은 수학이었고, 문제는 영어 실력. 3년 동안 학교에 다니며 배우는 아이들도 잘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나의 욕심이 너무 지나쳤을까?
94년 대입자격 시험에서 수학 75.미술96. 농업84. 등. 좋은 점수를 받았으나, 영어가 과락에 걸리게 되고, 덕분에 정치. 경제. 국사를 포함, 부족한 공부를 더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는 학원에도 가지 않고 먼저 배우던 교재를 복습하고, 영어는 EBS
교육방송에 매달렸다. 그 당시 우리 애들 말이 ‘아빠는 이해 를할 수가 없다.
사장이라는 말을 들어가면서 무엇 때문에 골치 아프게 공부를 하는지‘
아이들의 핀잔을 듣고 있던 95년 5월 5일 대입자격의 미달 된 3과목을 재차 치르게 된 결과, 정경 64. 국사 72. 이번에는 영어도 무난히합격을 하여 대입자격 검정 고시에 합격 을 하였을 때가 47살의 나이였다.
대입자격의 합격으로 나를 깨우치게 만든 그 친구 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이제부터는 건축기사 자격증 에 도전을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해 수능에 대비해 밤이면 TV 앞에서 EBS 교육방송에 시달려야 했고, 주간의 고된 작업으로 어떤 때는 깜빡 졸음이 올 때도 있었는데, 방송 중의 교수님이 그 시간을 어떻게 점 찍어내시는지‘ 지금 졸고 있는 학생이 있다’ 며 1분간 기지개를 켜고 심호흡을 하라는 소리에, 얼마나 놀랐었던지!
그로부터 얼마 후 수능을 치르기 위한 교실에서 또 한번 놀랐다.
문제지와 답안지를 배부받은 몇몇 학생이 그것을 베게 삼아 그대로 엎드러 자는 것이 아닌가!
그 들 부모 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학생들을 위해 정부에서는 비행기 이. 착륙까지 금지 시키며, 보살펴 주는 성의를 무시한 채, 감독관 역시 말 한디 없었다.
생각보다 문제는 어러웠고, 수능의 결과는 200 만점에 126점 이었다.
그래도 전국에서 93만 여명의 응시생중 에 45 만번에 달했으니 배운 노력은 있었다고 자부하며, 그길로 부산 정보대 건축학과 야간반에 응시하였으나, 8:1이라는 무서운 힘에 쓴맛을 보았고, 곧바로 방송대에 입학을하게 되었으며, 건축학과가 없어 망설이기도 하였으나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농학과를 택하였다.
그러면서도 주택 구입의 기회가 왔다.
96년 1월 현재 살고있는 이집을 매수하게 되었고, 살고 있던 APT 는 전세를 놓았다. 주택을 구입 한 후 간단한 리모델링과 함께 마당의 시멘트를 걷어내어 텃밭을 만들고, 대문 위에도 흙을 올려 작은 밭을 만들어 보리를 심고. 이듬해 잘 익어 가는 보리를 보고 옆집 새댁이 ‘ 대문 위의 저 나무가 무슨 나무냐’ 고 묻는 말에 한바탕 웃음꽃이 피기도 하였고, 골목길의 아이들에게 학습의 장으로도 이용되기도 하였다.
마당에는 들깨와 토란을 심고, 자고 나면 길게 늘어지는 오이와. 고추도 심어, 푸르고 싱싱한 무공해 자연산 식품으로 여름철 식탁을 차리게 되고, 전면 화단에는 잡동사니 나무들을 뽑아내고, 단감. 포도. 앵두. 매화. 자두 등 유실수로 대체하여 심었으며, 잎이 피기도 전에 이른 봄 매화의 꽃을 선두로
10부에서.
첫댓글 박성완님!
바쁘다는 핑게로 성완님에 성장기 9부를 읽게 되었다는 죄송한 인사말씀을 드립니다.
사업을 하시면서 만학을 하셨다는 기록을 보고 존경심을 보내 드립니다. 주경야독으로
정보대 건축과에 입학하신 노고에 다시한번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말은 쉽지만
실천에 옮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집념과 추진력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이제 아름다운
노년기를 맞이 해서 진보적인 삶을 설계하시고 건강지키시면서 내일에 행복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파이팅으로 다시 한번 용기에 찬사를 보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신가는 사생활을 이곳에 올렸다고 뭐라하던데요.
제가 생각하기는 말 그대로 '자유 게시판' 인데 사생활운운
할 필요가 있을런지요?
말썽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누군가는 알수 없지만 자유 게시판을 이용 해 보지 않는 사람으로 짐작이 갑니다.
회원들이 읽어서 생에 도움을 주는 이야기는 자유롭게 등제할 수 있습니다.
카페에 자주 들리지 못해서 내용을 알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생활운운 한 분이 누구신지 저에게 전화를 좀 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10-3867-0984) 카페지기 양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