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행 갈치 전어 잡이]
-허수빈
1.바다가 자꾸 부른다. 강물이 눈에 어른거린다.
2.등불로 대낮같이 밝히면, 불나방처럼 모여드는 녀석 들.
그 은빛 유혹에 빠지면, 헤어날 길 없다. 미치는 거다.
3.찬바람 불기시작하면 바다길 오가며 이사철 맞이하는 물고기들.
방 빼고 새로 입주한 가을 바다 물고기 백과사전. 지금 펼쳐본다.
4.낮잠 자는데 잠을 못자요. 갈치가 계속 왔다갔다 해서요.
5.몸을 막 흔들면서 잡히는 은빛 갈치, 낚이는 손맛 싱싱한 바다맛.
6.20년 만이다. 갈치 풍어소식 솔솔 들려오는 남쪽 바다. 갈치고장.
전국에서 강태공들, 연일 구름처럼 몰려든다. 끝내주는 제철을 맞았다.
7.갈치는 손맛도 좋고, 징니들한테 나눠주는 재미도 쏠쏠하다.
8.싱싱한 갈치, 한껏 모셔올 생각에 얼음 욕심도 잔뜩. 가득 퍼 담는다.
9.들뜬 마음도 가득 싣고 마침내승선 완료. 여수 국동항을 떠나 먼 바다로.
10. 백도 동쪽 자리로, 두시간정도 나아간다.
11.옥황상제의 아들과 신하들이 수십개 섬이 됐다는 백도의 절경.
12.갈치 떼 찾아 촉각 곤두세워 물색한 끝에 다다른 망망대해.
12.파도가 장난이 아니다. 조류하고 바람하고 반대로 노네.
13.마땅한 자리는 정했는데, 바람이 심상치 않다.
14.낚시채비에 앞서 바람과 조류에 저항하며 배가 서서히 이동하도록.
낙하산 같은 곳을 물속에 내린다. 수중 낙하산처럼 펼쳐져 배가 표류하지 않게
돕는 물돛.뱃머리에 펼친 물돛은 주변에 소용돌이를 만들어 갈치를 불러들인다.
15.월동을 위해 남쪽 바다로 내려온 갈치 맞이할 준비가 한창.
16.미끼는 멸치모양 흉내낸, 냉동 꽁치를 사용한다.
17.갈치는 저녁에 나온다. 집어가 되어야 나온다.
18.지금 낮에는 아직까지 안 나온다. 지금 나오는 건 눈먼 고기가.
19.갈치는 야행성. 유인책은 집어등이다. 불빛에 작은 고기 모여들면 먹성좋은
갈치가 뒤따왔다 낚이는 것이다.
20.드디어 때가 왔건만,사나워진 파도가 여기저기 헝클어뜨린 낚시줄이 말썽.
21.울렁거니는 파도탓에 초죽음이 된 낚시꾼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걸까.
멀미가 심하게 나서 죽겠단다. 나는 중간에 낑겨가지고 죽겠어.
힘들다. 힘들어, 파도 몰아치는 바다 낚시. 극한 취미다. 최악의 취미다.
높은 파도 복병을 만나 입질도 감감 무소식,애타게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는다.
22.물었다~! 마침내 여나믄개 바늘 촘촘히 엮인 줄끝에 꼼짝없이 걸려든 녀석.
오늘 첫 갈치가 거울처럼 비치는 은빛 자태를 우아하게 들어낸다.
23.외줄 낚시 하나 드리우면 바늘마다 줄줄이 사탕으로 매달려오는 게
갈치잡이 매력이다. 오! 또 물었다! 1타 7피가 막 올라오는 게 끝내줘요.
낚아올리는 은빛 갈치를 바라보며, 바이돌핀이 쏴하게 온 몸을 퍼져간다.
24.여름 산란기 마치고 통통하게 살 오른 굵은 갈치가 쉴 새없이 올라온다.
25.새끼였던 때와는 달리 자라면서 점점 길어지며 몸집 형태가 변하는 갈치
위협적인 이빨을 가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 백과사전인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에도 나와있다. 치마끈처럼 긴 모양의 물고기라 군대어로 표기한 갈치.
맛은 달고 물리면 독이 있다.
26.새벽까지 버티려면 갓잡은 갈치회로 기력 좀 보충해줘야한다. 비늘을 벗긴 갈치회는 양파하나만 곁들여도 밤참으로 그만이다. 갈치회가 양파하고 궁합이 잘 맞는다. 선상에서 먹는 갈치회가 최고다. 산지가 아니면 먹기 힘들다는 귀한 갈치회. 양파 조각에 얹어 먹는 갈치회맛. 고소하다. 비린내 날 것 같은데 비린내 하나도 안난다.
27.밝아오는 새벽, 귀항 직전 막바지로 이어지는 낚시,
은궤처럼 쌓니는 갈치가 가득하니 흐뭇하다.
27.거센 파도에 흔들리며 밤새운 보람이 넘친다. 힘은 든데 보람이 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지인들 입으로 즐겁게 들어간다는 것. 사명감으로 한다.
28.어화를 밝힌 밤바다에서의 하루. 불야성 이룬 화려한 도시도 더 황홀하지는 못하다.
28.전남. 함평. 함평사람들은 전어에다가 신김치를 안 주면 전어를 안 먹는다.
신김치가 엄청 시다. 먹으면 눈이 가긴다. 신김치하고 전어를 곁들여 먹으면
신김치의 신맛은 줄어들고, 전어 뼈는 연해지고 그렇게 궁합이 잘 맞는다.
신 열무김치와 전어 한입. 계절의 맛이 한층 더 깊어진다.
가을 전어는 뼈가 연해 통째로 썰어먹기에 제격. 회에 신김치는 필수다.
29.넉넉한 가을의 풍요를 간직한 바다의 유혹은 이제시작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