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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 노인과 바다 3/3
전에는 이렇게 피로해 본 적이 없었는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 무역풍이 부는구나. 이 바람이 불면 고기를 끌어들이기에 유리하다. 나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바람이다.
"다음에 회전을 하려고 고기가 헤엄쳐 나가면 그때 쉬어야지."
노인은 스스로를 달래듯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두세 번만 더 돌고 나면 잡히겠지."
노인의 밀짚모자는 뒤통수에 걸려 있었다. 노인은 고기가 회전하는 것을 감지하자 다시 줄을 끌어당기면서 이물에 주저앉았다. 고기야, 너는 지금 힘차게 움직이고 있구나. 하지만 굽이 돌 때 내 너를 잡으마. 그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
파도가 꽤 높이 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날씨를 예고하는 미풍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려면 이 바람이 꼭 필요했다.
"서남쪽으로 저어 가기만 하면 된다."
하고 그는 말했다.
"감히 남자가 바다에서 길을 잃을라구. 게다가 육지는 아주 길다란 섬이니까."
그가 문제의 그 고기를 처음 본 것은 세 번째 회전 때였다. 처음에는 배 밑을 한참 동안 지나가는 검은 그림자가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도저히 그 길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야."
하고 그는 말했다.
"저렇게 클 리가 있나."
그러나 고기는 그 그림자만큼 컸다. 회전을 마친 후 고기는 배에서 겨우 30야드 떨어진 물 위로 떠올랐었다. 그때 노인은 물 밖으로 나온 고기의 꼬리를 보았다. 그것은 큰 낫의 날보다도 더 길었고 검푸른 물을 배경으로 하여 아주 창백한 '라벤더' 빛깔로 보였다. 꼬리는 뒤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고기가 해면 바로 아래를 헤엄치기 시작하자 비로소 노인은 그 거대한 몸집과 띠를 두른 것 같은 자줏빛 줄무늬를 볼 수 있었다. 등 지느러미는 누워 있었고 커다란 가슴 지느러미는 넙적하게 퍼져 있었다.
그때쯤에야 노인은 고기의 눈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고기의 주위를 헤엄치는 회색 빨판상어 두 마리도 보았다. 두 마리의 상어는 그 고기한테 달라 붙어 있다가 어느 때는 떨어져 나오기도 했다. 아니면 큰 고기의 그늘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기도 했다. 두 마리 다 길이가 3피트는 넘을 것 같았다. 빨리 헤엄칠 때는 몸 전체를 뱀장어처럼 세차게 움직였다.
노인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은 비단 햇빛이 뜨거워서만이 아니었다. 고기가 조용히 차분하게 돌 때마다 그는 줄을 당겼다. 이제 두 번만 더 돌면 작살을 꽂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더 가까이, 아주 바싹 끌어와야 한다. 그리고 머리에 작살을 꽂으려고 해선 안 된다. 단 한 번에 심장을 찔러야 한다.
"침착히 굴어라. 그리고 더욱 힘을 내라, 늙은이."
하고 그는 말했다. 예상대로 다음 회전 때 고기는 등을 물 밖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거리가 좀 멀었다. 그 다음 회전 때도 역시 너무나 멀었다. 그러나 물 밖으로 몸을 훨씬 더 많이 드러냈으므로 노인은 조금만 더 줄을 끌어들이면 고기를 배에 나란히 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는 벌써부터 작살을 준비해 두었었다. 작살에 달린 가는 밧줄을 감아놓은 사리는 둥근 광주리 안에 담아 두었고, 끝은 이물의 말뚝에 단단히 매어 놓았었다.
고기는 이제 천천히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간혹 커다란 꼬리만이 움직일 뿐이었다. 노인은 고기를 배 가까이 몰아오려고 있는 힘을 다해 끌어당겼다. 고기는 잠깐 동안 배를 드러내더니 약간 뒤뚱거렸다. 그러나 잠시후 몸을 바로 하더니 다시 회전을 시작했다.
"저것 봐. 내가 녀석을 움직이게 했다."
노인은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내가 움직이게 해서 배를 드러냈던 거야."
그는 또다시 현기증이 났으나 있는 힘을 다해서 고기를 붙잡고 있었다. 내가 녀석을 움직였다. 아마 이번에는 끝장을 낼 수 있을 거야. 손아, 끌어당겨라.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다리야, 버텨라. 머리야, 날 위해 견뎌다오. 제발 여기서 정신을 차려라. 제발 정신을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고기를 끌어오련다.
그러나 온 힘을 기울여서 고기를 끌어당기려고 했지만, 고기는 약간 뒤뚱거렸을 뿐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헤엄쳐 나가 버렸다.
"고기야."
노인은 말했다.
"고기야, 너는 어차피 죽어야 하지 않니. 그렇다고 네가 나마저 죽여야 되겠니?"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무것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입이 말라서 소리내어 말을 할 수도 없었으나, 이젠 물 있는 데까지 갈 힘도 없었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뱃전으로 끌어와야 해. 녀석이 계속 돈다면 내 몸이 온전치 못할 거야. 아니, 그래도 괜찮을 거야, 언제까지나 괜찮을 거야. 노인은 중얼거렸다.
또다시 고기가 회전을 시작했다. 그때는 거의 고기를 잡을 뻔했다. 그러나 또다시 고기는 자세를 바로잡고 유유히 헤엄쳐 나가 버렸다.
네가 나를 죽이는구나 고기야.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너에게는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다. 나는 일찍이 너처럼 크고 아름답고 침착하고 위엄이 있는 고기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네가 날 죽인다 해도 조금도 서운할 것 같지가 않다. 형제여, 자, 어서 와서 날 죽여라, 누가 누구를 죽이건 상관없다. 이제 머리 속이 혼미해지고 있구나,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머리를 좀 식혀야지. 머리를 식히고, 끝까지 남자답게 고통을 견디어 내도록 온갖 지혜를 모아야지. 아니면 저 고기처럼이라도 말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정신차려라, 머리야."
그는 자기 귀에도 거의 안 들릴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신차려!"
고기는 이후로도 두 번이나 더 회전을 했으나 형세는 마찬가지였다. 이젠 더 이상 모르겠다,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때마다 그는 의식을 잃고 기절할 것 같은 상태에 빠지곤 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한번만 더 해 보자.
그는 한번 더 힘을 써 보았다. 마침내 고기가 뒤뚱거렸다. 순간 그 자신도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고기는 다시 몸을 바로잡고 거대한 꼬리를 휘저으며 또다시 유유히 헤엄쳐 가 버렸다. 한번 더 해 보겠다고 노인은 결심했다. 그러나 이제 두손은 제멋대로 짓무르고 눈도 희미해져서 잠깐잠깐 순간적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다시 한번 해 보았으나 마찬가지였다. 역시 같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작하기도 전에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또 한번 해 보자. 그는 혼미한 정신 속에서 습관적으로 중얼거렸다.
노인은 온갖 고통을 억누르고자 애썼다. 자신의 남은 힘과 과거의 긍지까지 다 동원하여 고기가 던져주는 극심한 고통과 겨루었다. 마침내 고기는 주둥이를 뱃전에 닿을락말락하면서 노인의 곁으로 유유히 헤엄쳐 오더니 그대로 배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길이가 길고 높고, 넓은, 자줏빛 줄무늬가 보였다. 그리고 온 몸이 온통 은빛으로 보이던 그 무한히 큰 고기가 배를 지나쳐 가기 시작한 것이다.
노인은 손으로 잡고 있던 줄을 놓고 발로 밟았다. 그리고 드디어 작살을 높이 쳐들어 있는 힘을 다해서, 아니 지금까지 써왔던 힘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그런 힘을 내어서, 물 위로 드러난 거대한 가슴 지느러미 바로 뒤 옆구리를 내리 찔렀다. 노인은 쇠작살이 꽂힌 것을 느끼며 작살에 몸을 기대었다. 고기의 몸 속에 작살이 더 깊이 박히도록 몸의 전 중량을 실었다.
그러자 고기는 자신이 죽게 되었음을 느꼈던지, 마지막 기운을 내어 물 위로 높이 솟구쳤다.
그 고기는 마침내 거대한 몸 길이와 넓이를 남김없이 드러내 보여 주었다. 또 온갖 힘과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보여 주었다. 그 모양은 마치 배에 타고 있는 노인의 머리 위에 매달리는 듯 하더니 잠시 후 고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 속으로 떨어졌다. 그 바람에 노인의 몸과 배는 흠뻑 물보라를 맞고 말았다.
노인은 의식이 몽롱해지고 구역질이 나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앞도 잘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쉬지 않고 작살의 줄을 간추렸다. 그리고는 터져서 생살이 드러난 손에 그것을 쥔 채 천천히 풀어 주었다. 눈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고기가 은빛 배를 드러내고 떠 있는 것을 보았다. 작살 자루가 고기의 어깨쪽에 비스듬히 꽂혀 있었고, 심장에서 흘러나온 피에 바닷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 피는 처음에는 1마일도 더 깊은 푸른 물 속에 있는 고기 떼처럼 시커멓게 보이더니, 곧 구름처럼 퍼져 나갔다. 은빛으로 빛나던 고기의 몸뚱이는 이제 조용히 파도에 둥실 떠 있었다.
노인은 희미한 시력을 온통 집중시켜 그 광경을 바라 보았다. 그런 다음, 작살줄을 말뚝에다 두 번 감아 놓고는 머리를 두 손 사이에 파묻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는 이물의 널빤지에 기대면서 자신을 다그쳤다.
"나는 늙은이이고, 또 너무나 지쳐버렸어. 하지만 나는 방금 내 형제인 이 고기를 죽였다. 따라서 이제는 뒤처리 노역만 남아 있을 뿐이다."
고기를 배에다 나란히 묶을 수 있도록 올가미와 밧줄을 준비해야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설사 지금 당장 이 배에 두 사람이 있다 해도 저 고기를 배에 싣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고기를 배에다 실을 때 배에 물이 찰 것이고, 아무리 열심히 물을 퍼내도 이 배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으니까. 고기를 배 가까이로 끌어와서 밧줄로 잘 묶은 다음, 돛대를 세우고 돛을 펴서 집으로 가야 되겠다.
밧줄은 아가미를 통해 끼어서 입으로 빼야겠다. 그리고 머리를 이물에 꽉 비끄러맬 수 있도록 고기를 끌어들여야만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순간 그는 저 몸뚱이를 만지거나 더듬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기는 내 재산이다. 그러나 단지 그 때문에 만져 보고 싶은 것은 아니다. 조금 전에 심장을 만져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작살 자루를 박아 넣을 때 말이다. 자, 이제 끌어들여서 비끄러매어라. 저 놈을 배에 비끄러맬 수 있도록 꼬리와 허리를 올가미를 하나씩 걸어야 한다.
"늙은이, 어서 일을 시작하시지."
하고 그는 말했다. 그는 물을 조금 마셨다.
"싸움이 끝났으니까 이젠 뒤치닥거리만 남아 있다."
그는 하늘을 쳐다본 후 다시 고기를 바라보았다. 해를 찬찬히 살펴보니 오정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무역풍이 일고 있었다. 이제 낚싯줄은 아무래도 괜찮다. 집에 가서 그 아이와 둘이서 풀어 가지고 새로 이으면 되니까.
"이리 오너라, 고기야."
노인이 그렇게 말했지만 고기는 오지 않았다. 오기는커녕 이제는 바다를 침대 삼아 뒹굴거리며 누워 있었다. 노인은 배를 끌어 고기쪽으로 다가갔다. 노인은 고기 옆으로 가서 고기 머리를 뱃머리에다 대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 크기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고기의 크기에 다시 한번 놀라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 진행시켰다. 우선 말뚝에서 작살 밧줄을 풀어서 고기의 아가미를 통해 턱으로 빼낸 뒤 칼처럼 뾰족한 부리를 한번 감아서 다른 쪽 아가미로 빼내었다. 그것을 다시 한번 부리에다 감아서 양끝을 매듭지은 뒤 이물에 있는 말뚝에다 단단히 비끄러매었다. 그리고 나서는 밧줄을 끊어 내었다. 이젠 꼬리에다 올가미를 씌우는 일이 남았다. 그는 고물 쪽으로 갔다. 고기는 본래의 색깔인 자줏빛과 은빛 일색으로 변해갔다. 줄무늬는 꼬리와 마찬가지로 엷은 보랏빛이었다. 줄무늬는 손가락을 쫙 편 것보다도 넓었다. 고기의 눈은 잠망경의 렌즈처럼 보였고, 눈빛은 행렬 기도에 참례한 성자처럼 표정이 없었다.
고기를 죽이자니 그럴 수밖에 없었어, 하고 노인은 중얼거렸다. 물을 조금 마시자 기분이 좀 나아졌다. 의식은 잃지 않을 것 같았다. 머리도 개운했다. 저 정도라면 1500파운드는 넘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아니, 훨씬 더 넘을 지도 모르지, 내장을 빼내고도 약 삼분의 이가 남을 텐데, 파운드당 30센트씩 받는다면 모두 얼마나 될까?
계산하려면 연필이 있어야겠는 걸. 하고 그는 말했다.
지금 내 머리는 그 정도로 맑지가 못해. 그러나 오늘은 저 훌륭한 디마지오 선수와 비교해도 결코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디마지오처럼 발뒤꿈치 뼈는 아프지 않았지만 사실 나도 두 손과 등이 정말 아팠으니까.
노인은 또 생각을 해 보았다. 정말 뒤꿈치 뼈 타박상이란 어떤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순간에 그 병에 걸릴지도 몰라. 그는 그 큰 고기를 이물과 고물, 그리고 배 허리께에 단단히 비끄러매었다. 고기의 크기는 큰 배 한 척을 나란히 매어놓은 것만큼 컸다. 노인은 마지막으로 밧줄을 한 가닥 끊어서 고기의 입이 벌어지지 않도록, 아래턱을 부리에 갖다 대어 묶어 놓았다. 될 수 있는 대로 배를 미끄럽게 저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다음에는 돛대를 세우고 갈고릿대와 가름대 등장비 등을 정리한 뒤, 조각조각 기운 돛을 폈다. 마침내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인은 나침판이 없어도 서남쪽이 어느 방향인가를 알 수 있었다. 무역풍의 촉감을 느낄 수 있었으므로 돛이 이끌어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가는 낚싯줄을 이용해 뭐든 먹을 것을 낚아 보도록 하자. 그리고 목도 축여야지. 그러나 꾐 낚시는 보이지도 않았고 미끼로 쓸 정어리마저 상해 있었다. 할 수 없이 누런 모자반류 해초가 한 조각 지나가는 것을 갈고리로 건져서 털어 보았다. 그러자 그 속에 있던 잔 새우가 뱃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중 서너 마리는 그래도 꽤 먹을 만해 보였다. 새우들은 노인의 발 밑에서 모래벼룩처럼 튀고 차고 했다. 노인은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새우의 머리를 따낸 뒤 껍질이며 꼬리까지 죄다 씹어 먹었다. 아주 조그마한 새우였지만 노인은 그것들이 영양이 풍부하고 맛도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직도 물병에는 물이 두 모금쯤 남아 있었다. 노인은 새우를 먹고 나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배는 무거운 짐을 실었는데도 잘 달렸고, 그는 키의 손잡이로 배의 방향을 조종했다. 고기가 잘 보였다. 노인은 상처투성이의 두 손을 보았다. 그리고 고물에 닿은 등의 아픔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이 일이 정말 일어났었다는 걸 깨달았다. 고기와의 싸움이 끝나 갈 무렵에는 몹시 고통스러워서 아마 이것이 꿈일 거야,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고기가 물 밖으로 나와서 바다로 떨어지기 직전 공중에 잠시 걸려 있는 모양을 보고서 뭔지 참으로 이상스런 것이 있구나, 하고 여겼던 것이다. 노인은 도저히 그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눈이 평소처럼 잘 보이지만 그때는 눈도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노인은 고기도 실존하고 손과 등도 실제로 아프다는 것을 알았다. 그건 분명 꿈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 정도의 상처는 얼마 안가서 나으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피도 나올 만큼 나왔으니 소금물에 담그면 금방 낫게 될 것이다. 정말로 깊은 바닷 속의 컴컴한 그 물은 우리 같은 어부들에겐 무엇보다도 제일 잘 듣는 약이야. 손은 제 할 일을 훌륭히 해냈고, 또 우리는 순조롭게 달리고 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머리를 맑게 하는 것 뿐이다. 고기는 입을 꽉 다문 채 꼬리만 수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우리는 형제처럼 항해하고 있다. 그러다가 머리가 조금 희미해지기 시작하자 노인은 다른 생각을 했다. 지금 대체 고기가 나를 데리고 가는 건가, 아니면 내가 고기를 데리고 가는 건가? 내가 고기를 뒤에 매달아 끌어가고 있다면 문제는 없다. 또 만일 고기가 배 안에 실려 있다면 역시 문제는 없다. 그러나 노인은 그들이 한 데 묶여서 나란히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꾸만 그런 혼란스러운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는 또 문득 고기가 원한다면 나를 데리고 가라지,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저 고기보다 좀 낫다는 것은 꾀가 있다는 것뿐이다. 사실 고기는 나를 해치려고 하지도 않았었다. 그들은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었다. 노인은 짠물에 손을 담근 채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하늘에 떠 있는 적운과 권운으로 보아서 밤새도록 미풍이 불 것임에 틀림없었다. 노인은 자신이 고기를 잡았다는 것이 사실임을 확인하려고 고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첫 번째 상어가 고기를 공격해 온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상어의 공격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검은 피구름이 1마일이나 깊은 바다 속까지 퍼지자, 피냄새의 흔적을 맡은 상어가 푸른 수면을 박차고 물 위로 솟아 오른 것이다. 그리곤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서 피냄새를 쫓아, 배와 고기가 지나온 길을 따라 헤엄쳐 왔던 것이다. 상어는 때로 그 냄새의 흔적을 잃어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냄새를 찾아 내거나 그 흔적이나마 찾아내곤 해서 재빨리 따라왔다. 그것은 바다에서 가장 빨리 헤엄칠 수 있다는 덩치가 큰 마코상어였다. 그 상어는 흉악한 주둥이만 빼고는 몸 전체가 아름다웠다. 잔등은 황새치처럼 푸른빛이었고, 배는 은빛이며 껍질은 매끈하고 아름다웠다. 빨리 헤엄칠 때는 커다란 주둥이를 꽉 다물고 있어서 꼭 황새치 같이 보였다. 상어는 바로 수면 아래에서 높은 등지느러미를 꼿꼿이 세운 채 노인의 배를 뒤쫓고 있었다. 등지느러미가 가차없이 물을 베었다. 꽉 다문 주둥이 속에는 여덟 줄의 이빨이 죄다 안으로 굽어져 있을 것이다. 그것은 보통 상어의 이빨처럼 피라밋 형으로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의 손가락을 매 발톱처럼 오그렸을 때의 모양과 같았다. 이빨의 길이는 거의 노인의 손가락 정도이고, 양쪽 끝이 면도날처럼 날카롭다. 바다에사는 어떤 고기라도 잡아 먹히게 생긴 이빨인 것이다. 게다가 놈은 매우 빠르고 힘세고 무장이 잘 되어 있어서 당해 낼 고기가 없었다. 바로 그 공포의 상어가 신선한 피냄새를 맡자 전 속력으로 쫓아온 것이다.
노인은 상어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저 상어는 무서워하는 것이 전혀 없고,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고야 마는 놈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 챌 수 있었다. 그는 상어의 동태를 지켜 보면서 작살을 준비하고 거기에다 밧줄을 단단히 묶었다. 그런데 고기를 비끄러매느라 밧줄을 잘라 썼기 때문에 짧았다.
이제 노인의 머리는 맑고 정상적이었다. 상어를 보자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지만 희망은 거의 없었다. 좋은 일은 결코 오래 가지 않는 법이야. 노인은 중얼거리면서 상어와 배에 매단 큰 고기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것 역시 차라리 꿈이라면 좋겠다. 상어가 공격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잘하면 그놈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덴투소란 놈, 이 망할 놈의 자식아. 상어는 빠른 동작으로 고물 가까이 바싹 다가왔다. 상어가 고기를 공격하려 했다. 그때 노인은 상어의 그 벌린 입과 이상한 눈을 보았다.
놈이 바로 꼬리 위쪽의 살점을 향해 덤벼들 때 이빨로 찰칵 소리를 내면서 물어뜯는 것이 보였다. 잠시 동안 상어의 머리가 물 밖으로 나왔다. 노인은 상어의 머리통을 겨누었다. 그리고 두 눈 사이의 줄과 코에서 뒤로 똑바로 올라간 줄이 교차되는 지점에 작살을 꽂았다. 그때 큰 고기의 가죽과 살이 찢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노인의 눈앞에는 그저 크고 날카로운 푸른 머리와, 커다란 눈과, 거친 이빨을 찰칵거리며 무엇이나 삼켜버리는 툭 튀어나온 주둥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곳이 상어의 골이 있는 위치였으며, 노인은 바로 그곳을 내리친 것이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작살을 내리친 것이다. 별로 희망은 없었지만 무서운 결의와 철저한 증오심으로 작살을 꽂았던 것이다.
상어가 빙그르 돌기 시작했다. 노인이 언뜻 보기엔 이미 상어의 눈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어는 밧줄로 몸을 두 번 감더니 다시 한번 돌았다. 노인은 상어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으나 상어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상어는 거꾸로 뒤집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꼬리로 물을 후려치고 주둥이를 연속 찰칵거리면서 경주용 보트처럼 물을 헤치고 달리는 것이었다. 상어의 꼬리가 요동치는 바람에 해면은 온통 하얗게 물보라가 튀었다. 이어서 밧줄이 팽팽해지고 부르르 떨리더니 뚝 끊어지는 게 아닌가. 그때 상어의 몸뚱이가 거의 대부분 물 위로 드러났다. 상어는 잠시 수면에 가만히 떠 있었다. 노인도 움직이지 않고 상어를 지켜 보았다. 이윽고 상어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라앉았다.
40파운드는 족히 가져가 버렸어. 노인은 자못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내어 말했다. 작살과 밧줄도 모두 가져가 버렸다. 그런데 내 고기는 또다시 피를 흘리다니, 그렇다면 언제든 다른 놈들이 또 나타날 것이다. 고기는 병신이 되고 말았다. 노인은 더 이상 고기를 보고 있지 않았다. 고기가 뜯길 때 노인은 마치 자기 자신의 살점이 뜯기는 것 같았었다.
그러나 내 고기를 물어뜯은 상어를 나는 죽였어. 노인은 생각했다. 그런데 그놈은 내가 본 중에서 가장 큰 덴투소 야. 사실 나는 큰놈들을 많이 보아 왔었는데... 이렇듯 엄청난 행운이 오래 갈 리가 있나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차라리 이것이 꿈이었으면. 고기를 낚은 일도 없고, 신문지를 깔고 침대에 혼자 누워 있는 중이라면 차라리 좋겠다.
그러나 사람은 이 정도의 일에 지지 않아. 하고 그는 말했다.
사람은 죽을지언정 고기에게 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내가 고기를 죽인 것은 참 안된 일이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더 큰 시련이 닥쳐올 텐데, 나에게는 작살마저 없으니. 덴투소 상어는 대부분 잔인하고 유능하며 힘세고 영리하다. 그러나 내가 저 상어보다 더 영리했어. 하지만 내가 더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다만 내가 저들보다 무장이 잘 되어 있었던 것뿐인지도 몰라.
쓸데없는 생각일랑 말라구, 늙은이.
그는 스스로를 꾸짖듯 말했다.
이대로 가다가 상어가 오면 그때 상대할 일이지, 벌써부터 걱정은 무슨 걱정이람.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 남은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으니. 오직 그것하고 야구뿐이다. 내가 상어의 골통을 찌르던 멋진 순간을 디마지오 가 봤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뭐 그리 대단한 솜씨는 아니었지만. 그건 사실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인 걸. 그러나 내 손이 뒤꿈치 뼈가 아픈만큼 불리했던 조건이었을까? 알 수가 없구나. 옛날에 한번 헤엄을 치다가 가오리를 밟았을 때 가오리에 찔린 적이 있었지. 그땐 하반신이 마비되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었어. 그때 말고는 뒤꿈치에 이상이 생긴 적은 없었지, 아마.
이봐, 기왕이면 뭐 좀 유쾌한 일이나 생각하지, 늙은이.
그는 중얼거리며 나름대로 계산을 해보았다.
이제 시시각각 집이 가까워지고 있다. 아까 40파운드를 잃었으니 더 가볍게 달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배가 조류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노인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아니야, 반드시 다른 방도가 있어. 하고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노 손잡이에다 칼을 묶어 놓으면 되겠지. 노인은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키 손잡이와 밟고 있던 돛자락을 이용해서 그렇게 만든 것이다.
자, 나는 틀림없이 늙은이에 불과해. 그렇지만 무장은 되어 있잖아. 미풍이 좀 세어지는 것 같았다. 배는 잘 달렸다. 그는 고기의 앞부분만을 바라보기로 했다. 그러자 얼마쯤 희망이 생겼다. 희망을 안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심지어 그것은 죄라고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늙은이, 지금은 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라, 지금은 죄 말고도 얼마든지 생각해야 할 문제가 많다. 또한 죄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죄가 뭔지 잘 모르겠고 또 그런 게 있다고 믿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렇더라도 아마, 그 고기를 죽인 것은 죄가 될 거야. 내가 살기 위해서, 또 여러 사람에게 먹이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죄일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든 죄가 아닌 게 없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죄를 생각하지 말자. 이제와서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또 돈을 받고 그러한 일을 해주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이나 그런 것에 대해 실컷 생각하라지. 고기가 고기로 태어난 것처럼 너는 어부가 되려고 태어난 거야. 성베드로 도 디마지오 의 아버지처럼 한때 어부였어.
노인은 자기에게 관련된 모든 일을 즐겨 생각했다. 노인에게는 읽을 것도 라디오도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으며, 죄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했다. 너는 다만 살기 위해서라든지 팔기 위해서 고기를 죽인 것은 아니다. 다만 긍지를 위해서, 또 어부이기 때문에 고기를 죽인 것이다. 너는 고기가 살아 있을 때도 사랑했고, 죽은 뒤에도 역시 사랑했다. 만약 진정 고기를 사랑한다면 죽이는 것는 죄가 아니다. 오히려 아니, 죄보다 더한 것은 아닐까?
늙은이, 자넨 생각이 너무 많군. 하고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그러나 너는 덴투소 상어를 즐겨 죽이진 않았었지. 그는 계속 생각했다. 그놈은 너처럼 산 고기를 먹고 산다. 어떤 상어는 썩은 고기나 먹고 돌아다니기도 하지만, 그놈은 아름답고 고상하며 아무런 두려움도 모르는 멋진 고기다.
맞아! 나는 정당방위로 그 고기를 죽였어. 노인은 소리내어 말했다.
그리고 나는 놈을 솜씨 좋게 해치웠다. 게다가, 하고 노인은 생각해 보았다. 실제로 모든 동물들도 대부분 다른 동물들을 죽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고기잡이가 나의 목숨을 연명시켜 주는 것처럼 나를 죽이기도 한다. 그는 아이가 자기를 살려주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나 자신을 너무 속여서는 안된다.
그는 뱃전으로 몸을 굽혀 상어가 물어뜯어 놓은 고기의 살점을 한 점 떼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씹으면서 고기의 질과 맛을 음미했다. 그 고기는 쇠고기처럼 살이 단단하고 물이 많았으나 붉지는 않았다. 힘줄도 없었다. 시장에서 최고가로 팔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냄새가 물속으로 퍼져 나가는 것만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노인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무언가 불행한 일이 닥쳐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미풍이 불었다. 동북쪽으로 약간 방향이 바뀌는 듯 했으나 미풍이 잦아들 것 같지는 않았다. 노인은 멀리 앞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돛도 선체도, 배에서 올라오는 연기같은 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날치가 이물 쪽에서 뛰어올랐다가 뒤로 빠져나가 버리고, 누런 해초 조각들만 무심하게 떠 있을 뿐이었다. 새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노인은 고물에 기대어 앉아 쉬면서 기운를 차리려고 애썼다. 이따금 마알린 고기를 씹으면서 두 시간 정도를 보냈을 때였다. 노인은 쫓아오던 상어 두 마리 중 앞의 놈을 보고야 말았다.
아!
노인은 절망적인 비명을 토했다. 그건 도저히 다른 말로 옮길 수도 없는 그런 것이다. 못이 사람의 생손을 뚫고 나무에 박힐 때 무의식 중에 나올 법한 그런 소리이리라.
갈라노. 하고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그리고 노인은 앞놈 뒤로 유유히 따라오고 있는 두 번째 놈의 지느러미도 보았다. 갈색 삼각형 지느러미와, 스치고 지나가는 꼬리의 동작으로 보아서 이놈들은 코가 삽같이 생긴 신락상어가 틀림없었다. 그들은 피냄새를 맡고 흥분되어 있었다. 상어들은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잠시 멍청해져 냄새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반드시 다시 냄새를 찾아내곤 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노인은 돛을 비끄러매고 키의 손잡이도 끼워 놓았다. 그리고는 칼을 묶어놓은 노를 잡았다. 하지만 손이 아파서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노인은 될 수 있는 대로 노를 힘 안 들게 쳐들려고 노력했다. 그리곤 손을 풀기 위해서 가볍게 폈다 오므렸다 했다. 그는 고통을 참아내기 위해서, 또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결심으로 두 손을 꽉 쥐었다. 노인은 상어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 보았다. 이제 상어의 넓적하고 평평하고 또 삽처럼 뾰족한 머리도 보였다. 끝이 흰 넓은 가슴지느러미도 보였다. 놈들은 상어 중에서도 가장 가증스러운 상어였다. 이런 종류의 상어는 냄새가 고약하고, 산 것이나 죽은 것이나 가리지 않고 먹으며, 배가 고플 때는 심지어 노든지 키든지 마구 물어뜯기까지 한다. 해면에 잠들어 있는 거북이의 다리나 발을 잘라 먹는 것도 바로 이놈들이다. 배만 고프면 생선의 피 냄새나 비린내가 나지 않아도 물 속에서 사람들에게 덤벼들기도 한다.
아. 노인은 다시 짧은 비명을 토했다.
갈라노, 너냐! 어서 오너라, 이놈 갈라노야. 상어가 다가왔다. 그러나 아까의 마코상어와는 행동이 좀 달랐다. 한 놈이 몸을 돌리더니 배 밑으로 들어가 버려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놈이 몸부림치며 고기를 물어뜯어 낼 때마다 배가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한 놈은 가늘게 찢어진 눈으로 노인을 쳐다보고 있다가 반원형 주둥이를 크게 벌리며 쏜살같이 덤벼 들었다. 그놈은 이미 물어뜯긴 자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갈색 정수리에서부터 골이 척추와 만나는 뒤통수에 이르기까지 줄이 선명하게 이어져 있었다.
노인은 노에 묶인 칼을 이용하여 그 부분을 냅다 찔렀다. 그런 다음 다시 고양이같이 생긴 상어의 누런 눈을 향해 칼을 내리꽂았다. 상어가 고기를 놓고 떨어져 나갔다. 우습게도 그놈은 죽으면서도 물어뜯은 고기를 삼키고 말았다.
그러나 나머지 다른 한 놈은 여전히 고기를 물어뜯고 있었다. 살점이 뜯겨 나갈 때마다 배가 흔들렸다. 노인은 뱃전을 돌려서 상어를 물 밖으로 끌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돛을 내려 버렸다. 상어가 나타났다. 그는 기회를 놓칠세라 뱃전에 몸을 기대고 찔렀다. 그러나 껍질이 단단해서 살만 찢어졌을 뿐 깊이 찔린 것 같지는 않았다. 너무 힘껏 찌르느라 손뿐만 아니라 어깨까지 아파왔다. 그러나 상어는 또다시 머리를 쳐들고 쏜살같이 올라왔다. 상어의 코가 물 밖으로 나오더니 고기한테 달려 들었다. 상어가 고기의 살점에 코를 박고 있을 때 노인은 평평한 정수리 한 가운데를 겨냥하고 칼을 찔렀다.
계속해서 칼날을 뽑아서 다시 같은 곳을 찔렀다. 그래도 상어는 주둥이를 처박고 고기에 매달려 있었다. 이번에는 왼쪽 눈을 찔러 보았다. 그래도 상어는 떨어지지 않았다.
이놈! 그래도 안 떨어져?
노인은 최후의 일격을 가하듯 칼날로 척추골과 두개골 사이를 찔렀다. 이번에는 칼이 쉽게 들어갔다. 상어의 연골이 쪼개지는 것을 느꼈다. 노인은 노를 뽑았다. 그리고 상어의 주둥이를 벌리려고 칼날을 주둥이 사이로 밀어 넣었다. 상어의 입 속에서 칼날을 비틀자 상어가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노인은 말했다.
죽어라, 이놈 갈라노야. 어둠 속 깊이깊이 가라앉아서 먼저 간 네놈의 친구인지 어머인지나 만나 봐라. 노인은 숨을 몰아쉬며 칼날을 닦고 노를 놓았다. 돛이 바람을 안고 있었다. 그 모양을 보면서 노인은 배의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고기의 사분지 일이나, 그것도 제일 맛있는 부분을 잃어버렸군. 노인은 침통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것이 꿈이라면, 아니 차라리 내가 고기를 잡지 않았었다면 좋으련만. 미안하다, 고기야. 결국은 모든 일을 그르치고 있구나. 그는 말을 잃고 말았다. 이제는 고기를 쳐다보기조차 싫었다. 너무 많은 피를 흘리고 물에 씻기고 불어서 고기의 색깔은 거울 뒷면의 탁한 은빛 같았다. 그래도 아직 그 줄무늬는 보였다.
그렇게 멀리 나가지 말 걸 그랬다, 고기야. 하고 그는 또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너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도 더 좋았을 텐데... 미안하다, 고기야. 그는 계속 혼잣말을 했다. 이젠 칼이 잘 묶여져 있나 살펴보고 끊어진 데가 없나 봐야지. 아직도 상어가 더 올 테니 손도 제대로 쓸 수 있게 운동을 해 두어야지.
이럴 때 칼을 갈 숫돌이 있으면 좋겠는데. 노인은 노 손잡이에 칼이 잘 묶여져 있나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정말 숫돌을 가지고 나왔어야 하는데. 물론 다른 것들도 모두 가지고 나왔어야 했었어,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늙은이 그런 생각을 하면 뭘 하나. 자네는 안 가지고 나왔는데. 지금은 없는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야.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라구.
여러 가지 좋은 충고를 해주는군. 하고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싫증이 났어. 그는 키를 겨드랑이에 낀 채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대로 맡겨놓고 손을 물에 담그고 있었다.
마지막 놈이 얼마나 뜯어 먹었는지 모르겠다. 하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덕분에 배는 훨씬 가벼워졌어. 그는 물어 뜯긴 고기의 아래쪽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상어가 쿵 하고 치받을 때마다 살점이 뜯겨 나갔을 것이고, 이제는 그 고기가 바다의 모든 상어들을 다 불러들일 만큼 고속도로처럼 널찍한 길을 닦아 놓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이 고기는 한 사람이 겨우내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생각은 하지 마라. 최대한 휴식을 취하면서 남은 고기나 지킬 수 있는 방도를 생각해 두어라. 지금쯤 바다에 온통 고기 냄새가 퍼져 있을 텐데, 내 손에서 나는 피비린내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내 손은 피를 많이 흘린 것도 아니다. 상처도 걱정한 만큼 큰 것도 아니고, 피를 흘렸으니까 쥐도 안 날 것이다. 이제 뭐 또 생각할 게 없을까. 그는 생각해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는 아무 생각도 말고 다음에 올 놈들이나 기다려야 한다. 정말 이것이 꿈이라면 좋겠다. 그러나 혹시 또 모를 일이지 않은가? 어쩌다 결과가 좋게 될지도 말이다.
다음에 나타난 놈은 신락상어였다. 만일 사람 머리가 들어갈 만큼 넓은 주둥이가 달린 돼지가 있다면 바로 그런 돼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놈은 돼지가 죽통을 향해 달려들 듯이 다가왔다. 노인은 그놈이 고기를 물게 놔 두었다가 노에 비끄러맨 칼로 단 한번에 골통을 찔렀다. 그러나 상어가 몸통을 뒤집으며 퉁겨나갔기 때문에 칼을 빼앗기고 말았다. 노인은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노를 잡았다. 노인은 그 커다란 상어가 물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모습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살아 있을 당시의 크기에서 조금 작아지고 그러다가 아주 작아지면서 천천히 가라앉는 모습을 보면 언제나 황홀하곤 했었는데, 그러나 이젠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않았다.
나에겐 아직 갈고릿대가 남아 있어.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별 소용은 없을 거야. 그래도 아직 노가 두 개에다, 키 손잡이와 짤막한 몽둥이가 하나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결국 나는 저놈들한테 지고 마는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나는 이제 너무 늙어서 몽둥이로 상어를 때려 죽일 수도 없다. 그러나 내게 노와 짧은 몽둥이와 키 손잡이가 있는 한은 끝까지 싸워 볼 것이다. 노인은 다시 두 손을 짠물에 적시려고 바다에 담그었다. 벌써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으며, 바다와 하늘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는 아까보다 바람이 더 세게 일고 있었다. 곧 육지가 보였으면, 하고 그는 생각했다.
자네는 지쳤군, 늙은이. 그는 중얼거렸다. 정말 속속들이 지쳤어. 해지기 바로 직전에 다시 상어들이 덤벼들었다. 노인의 고기가 바다에다 닦아 놓은 넓은 길을 따라 정확하게 놈이 다가오고 있었다. 먼저 갈색 지느러미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놈들은 냄새를 찾아서 이리저리 몰리지도 않았다. 서로 나란히 헤엄치며 똑바로 배를 향해 달려왔다. 노인은 손잡이를 끼우고 돛을 비끄러매었다. 그리고 고물 밑창에서 몽둥이를 꺼냈다. 그것은 부러진 노를 약 2피트 반의 길이로 자른, 노 손잡이로 만든 몽둥이였다. 손잡이가 달려 있기 때문에 한 손으로라야 효과적으로 쓸 수 있었다. 노인은 그것을 오른손으로 꽉 쥐고는 손목 관절을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상어들이 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둘 다 갈라노 상어였다. 첫 번째 놈이 고기를 물면 콧등이나 정수리를 겨냥하고 쳐야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상어는 두 마리였다. 노인은 가까이에 있는 상어가 고기의 은빛나는 배에다 주둥이를 처박는 것을 보자 몽둥이를 높이 들고 상어의 정수리를 힘껏 내리쳤다. 몽둥이가 부딪칠 때 고무처럼 단단한 감을 느꼈다. 그러나 뼈에 부딪친 듯한 딱딱한 느낌도 들었다. 상어가 고기한테서 미끄러져 나가려 할 때 다시 한번 콧잔등을 세차게 갈겼다. 다른 한 놈은 물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더니 주둥이를 다물고 나타났다. 상어의 주둥이 양 옆으로 허옇게 살점이 삐져나온 것이 보였다. 노인은 몽둥이를 휘둘러서 놈의 머리를 쳤다. 그러나 상어는 노인을 경계하면서도 다시 고깃점을 물어뜯었다. 상어가 그 살점을 삼키려고 빠져나올 때 노인도 다시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단단한 고무 같은 곳을 쳤을 뿐이었다.
오너라, 이놈 갈라노야. 하고 노인은 말했다.
어서 오너라.
상어가 쏜살같이 달려와서 다시 고기를 물고 주둥이를 다물었고, 그때마다 노인도 역시 몽둥이로 내리갈겼다. 그것도 아주 호되게, 될 수 있는 대로 몽둥이를 높이 쳐들었다가 내려친 것이었다. 이번에는 골통 밑바닥 뼈에 몽둥이가 닿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상어가 살점을 천천히 뜯고 떨어져 나갈 때 또 한번 같은 곳을 후려쳤다.
노인은 상어가 또다시 덤벼드나 살펴보았다. 그러나 둘 다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한 마리가 빙빙 돌면서 물 위를 헤쳐 오는 것이 보였다. 다른 한 마리의 지느러미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놈들을 죽일 수 있다고는 생각지 말아야겠다고 노인은 마음먹었다. 물론 한창 때라면 죽일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러나 두 놈 다 몹시 심한 상처를 입었으니 기분은 좋을 수 없겠지. 두 손으로 방망이를 쓸 수만 있었다면 첫 번째 놈은 확실히 죽일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지금이라도 당장 그렇게 할 수 있는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완전히 고기를 외면하다시피 했다. 이미 반은 뜯겼음을 알 수 있었다. 노인이 상어와 싸우는 동안 해가 지고 말았다.
곧 어두워질 거야.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럼 아바나 의 불빛도 보이겠지. 너무 동쪽으로 나왔다면 낯선 해안의 불빛이라도 보일 것이고. 이제는 거리상으로 짐작해 보아도 해안에서 그리 멀지는 않을 텐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아바나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걱정들을 안 했으면 좋겠는데, 물론 그 아이만은 걱정하고 있을 거야. 그러나 그 애는 끝까지 믿고 자신을 가질 거야.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인정이 넘치는 마을에서 살고 있으니까. 고기는 너무 심하게 뜯겨 버려서 더 이상 고기를 상대로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때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반어야. 하고 그는 말을 시작했다.
너는 지난 날 분명 고기였는데, 내가 너무 멀리 나갔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어. 정말 미안하구나. 내가 우리 둘을 모두 망쳤다. 그러나 우리는 상어를 여러 마리 죽였어. 바로 너하고 나하고 말이다. 여러 놈에게 상처도 입혔고 말이다. 고기야, 너는 그동안 몇마리나 죽였었니? 네 머리에 있는 그 창날 같은 부리가 쓸데없이 붙어 있는 것은 아니겠지. 만일 이 고기가 지금도 자유롭게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고 있다면 상어하고 어떻게 싸울 것인가. 노인은 고기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 즐거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참에 상어하고 싸우도록 주둥이에 맨 밧줄을 끊어 버릴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노인에겐 지금 도끼도 칼도 없었다. 만일 그런 것이라도 있어서 노 손잡이에다 비끄러맬 수만 있다면 훌륭한 무기가 될 텐데. 그러면 우리 둘이서도 얼마든지 상어하고 싸울 수 있을텐데. 만약 한밤중에 상어가 덤벼들면 어떻게 하지? 그땐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싸우는 거야. 하고 그는 말했다.
죽을 때까지 싸우겠어. 그러나 이제 날은 어둡고 사방 어디에도 환한 빛은 없었다. 성냥불만한 불빛도 없다. 다만 바람이 불고 있었고, 그 바람은 꾸준히 배를 끌고 갈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미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두 손을 모아 쥐고서 손바닥을 만져보았다. 손바닥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저 손을 폈다 오므렸다 함으로써 희미하게 남아있는 생명의 고통을 의식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등을 고물에 기대어 보고서야 자기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만일 고기를 잡기만 하면 기도를 드리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지쳐서 기도조차 할 수가 없다. 부대를 가져다 어깨를 덮는 것이 좋겠다.
그는 고물에 누워서 키를 잡았다. 그리고 하늘이 밝아 오기만 기다렸다. 고기는 아직 반이 남아 있다. 아마 전반부는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운이 조금은 있을 테지. 아니야, 불현 듯 그는 중얼거렸다. 내가 너무 멀리 나갔을 때부터 이미 내 행운은 깨진 거야.
어리석은 생각은 말아라. 하고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정신차리고 키나 잡고 있도록 해. 아직 운이 많이 남았는지도 모르니까. 그는 생각했다.
행운을 파는 곳이 있다면 지금 당장 좀 샀으면 좋겠다. 하지만 뭘로 사오지? 하고 그는 자신에게 다시 반문했다. 잃어버린 작살과 부러진 칼과 못 쓰게 된 이 두 손으로 도대체 무엇을 사올 수 있단 말인가?
그럴 수 있지. 하고 그는 말했다.
바다에서 허송세월하며 지낸 48일이란 값을 치르고 행운을 사려고 했다. 그런데 그 값에 거의 팔 것처럼 될 뻔했었지.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행운이란 여러 가지 형태로 찾아오는 것인데 누가 그것을 미리 알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만 나는 행운이 어떤 형태로 오든 그것을 좀 갖고 싶다. 그리고 행운이 요구하는 값을 치르겠다. 어서 환한 불빛이 보였으면 좋으련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봐 늙은이. 자네는 한꺼번에 너무 여러 가지를 바라는군. 그러나 내가 당장 바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노인은 좀 더 편한 자세로 키를 잡으려고 애썼다. 아픔을 느끼게 되자 그는 자기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밤 열 시쯤 되었을 때 도시의 불빛에서 반사된 빛이 보였다. 그러나 그 빛도 처음에는 달이 뜨기 전 하늘이 약간 밝아진 것처럼 겨우 알아볼 정도였다. 그러더니 바람이 점점 강해지고 파도가 일었다. 마침내 대양 저 건너편에 불빛이 보였다. 그는 빛의 안쪽을 향해 키를 돌리며 이제 곧 물가에 닿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 상어가 또다시 공격해올지 모른다. 만약 상어가 오면 무기도 없이 컴컴한 데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노인은 몸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꼈다. 온몸 구석구석이 고통스럽게 쓰라렸다. 상처와 함께 몸의 모든 긴장했던 부분이 풀어지면서 차가운 밤공기로 인해 더욱 쑤셔 댔다. 이제 다시는 싸우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자정께쯤 노인은 또 싸워야만 했다. 이번에는 싸움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상어가 떼를 지어 몰려 왔는데, 지느러미가 해면에 긋는 선과 고기한테 덤벼들 때의 인광만이 보였다. 노인은 몽둥이로 상어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수시로 살점을 뜯어먹는 소리가 들렸으며, 배 밑에 있는 놈이 고기를 물어뜯을 때마다 배가 흔들흔들했다. 그는 몽둥이로 어디쯤이라고 짐작되는 곳과 소리나는 곳을 필사적으로 후려쳤다. 그러다 마침내는 몽둥이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그는 키에서 손잡이를 떼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는 상어들을 몰아내기 위해 정신없이 두들겨 팼다. 그러나 상어들은 이제 이물 쪽으로 몰려가더니 서로 번갈아 가며, 또는 한꺼번에 덤벼들어 고기의 살점을 뜯어내는 것이었다. 그들이 또 한번 몰려오려고 한바퀴 돌 때 노인은 바다 밑에서 고기의 살점들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한 놈이 고기를 향해서 덤벼들었다. 이제 노인은 모든 것이 끝난 것을 알았다. 그놈은 뜯기지 않는 고기 머리까지 물고 늘어졌다. 노인은 상어의 머리를 향해 키 손잡이를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또 한번 휘둘러 쳤다. 키 손잡이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노인은 내친 김에 부러진 끝으로 상어를 찔렀다. 노 끝이 둔탁하게 상어의 몸통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끝이 뾰족한 것은 틀림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찔렀다. 상어는 물었던 것을 놓고 맥없이 떨어져 나갔다. 그것이 몰려든 상어 떼 중에서 마지막 놈이었다. 고기는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었던 것이다.
노인은 이제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입 속에서 이상한 맛을 느꼈다. 그것은 구리쇠 같은 맛이었는데, 갑자기 입이 달아서 잠시 겁이 났다. 그러나 양이 많지는 않았다. 그는 그것을 바다에다 뱉어 버리고 나서 말했다.
갈라노야, 이거나 먹어라, 그리고 사람 죽인 꿈이나 꾸어라. 노인은 마침내 구제될 길 없이 완전히 지고 말았다는 것을 알았다. 배의 고물로 돌아가 보았다. 키 손잡이의 부러진 끝이 키를 잡기 좋게 키 구멍에 잘 맞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어깨에다 부대를 두르고 배의 방향을 바로잡았다. 이제는 배가 아주 가볍게 달렸다. 그는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었다. 이제 모든 것은 다 지나가 버렸다. 그는 어서 빨리 모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솜씨 있게, 기민하게 배를 몰고 갔다. 잠시 후에 상어 떼가, 식탁에 남은 찌꺼기를 주우려는 사람처럼 고기의 잔해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러나 노인은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았다. 키를 잡는 일 외에는 이제 모든 일에 무관심했다. 무거운 짐이 없으므로 배가 아주 가볍게 잘 달린다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배는 아직 괜찮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배는 온전했다. 키 손잡이 이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키 손잡이는 쉽게 바꿔 달 수 있으니까. 그는 이제 조류의 안쪽으로 들어왔다고 느꼈다. 해안을 따라 늘어선 해변 부락의 불빛이 보였다. 그는 자기가 어디쯤에 와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집에 돌아가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바람은 우리의 진실한 친구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다. 바다에는 우리의 친구도 있고 적도 있었다. 그리고 침대라는 것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침대도 내 친구다. 그런데 바로 침대가 말이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침대란 정말 훌륭한 친구이다. 내가 지쳐 버렸을 때는 편안하거든, 그 침대란 놈이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 미처 몰랐었어. 그런데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지친 것일까. 그는 곰곰 생각해 보았다. 바다에서의 일이 꿈만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단지 내가 너무 멀리 나갔던 탓이야. 마침내 노인이 작은 항구에 들어왔을 때, 테라스의 불은 이미 꺼져 있었다. 사람들도 모두 잠자리에 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미풍이 계속 불더니 이젠 심하게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항구는 조용하다. 아무 인기척도 없었다. 그는 바위 밑 좁은 자갈밭에다 배를 대었다. 도와 줄 사람도 물론 없었다. 그래서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배를 뭍에 바싹 갖다 대었다. 그리고 배를 바위에 단단히 묶어 놓았다.
그는 돛대를 내리고 돛을 감아서 묶었다. 그의 행동은 민첩하고 정확했다. 그 다음 돛을 어깨에 메고 해변을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가 얼마나 피로한가를 절실히 깨달았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춘 채 뒤를 돌아보았다. 가로등의 반사된 불빛으로 배의 고물에 고기의 거대한 꼬리가 빳빳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등뼈가 하얗게 노출되어 생긴 선과 주둥이가 튀어나와 있는 검은 부분이 매우 대조적이었다. 그 사이는 텅 비어 있는 앙상한 모습이었다.
그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꼭대기까지 와서 그는 힘없이 넘어졌다. 돛대를 어깨에 멘 채 그대로 잠시 동안 누워 있었다.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너무나 힘들어서 돛대를 어깨에 메고 앉은 채 망연히 길 쪽을 바라보았다. 고양이 한 마리가 볼 일을 보러 저 멀리 길을 건너가고 있었다. 노인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냥 그 길을 쳐다볼 뿐이었다.
이윽고 그는 돛대를 내려놓고 우선 몸부터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다시 돛대를 집어서 어깨에 멘 채 걷기 시작했다. 자신의 판잣집까지 가는 동안 그는 다섯 번을 앉아서 쉬어야만 했다.
판잣집 안으로 들어가서 벽에다 돛대를 세워 놓았다. 어둠 속에서도 그는 익숙하게 물병을 찾아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담요를 끌어당겨 차례로 어깨와 등과 다리를 덮은 다음, 신문지에 얼굴을 파묻고는 두 팔을 밖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위로 편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소년이 판잣집의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보았을 때도 노인은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소년은 바람이 심해지자 노인의 판잣집이 걱정되어 찾아온 것이었다. 소년은 노인이 곤하게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노인의 두손을 보고 울기 시작했다. 그는 커피를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길을 내려가면서도 소년은 내내 울었다.
여러 어부들이 노인의 배 주위에 모여서 배 곁에 묶여 있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바지를 걷고 물 속에 들어가서 줄자로 뼈의 골격을 재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그 곳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벌써 가 보았었기 때문이다. 어부 한 사람이 배를 점검하고 있었다.
노인은 좀 어떠시냐? 한 어부가 소리쳤다.
계속 주무시고 계세요. 하고 소년이 소리쳤다. 소년은 사람들이 자기가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절대로 할아버지를 깨우지 마세요.
코에서 꼬리까지 무려 18피트야. 골격을 재고 있던 어부가 소리쳤다.
그럴 거예요. 소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테라스로 내려가서 커피 한 깡통을 청했다.
뜨겁게 해 주세요. 그리고 밀크와 설탕을 많이 치세요.
뭐 다른 것은 필요 없니?
아니오, 나중에 뭘 드실 수 있나 알아보구요.
정말 대단한 고기야. 하고 주인이 말했다.
이런 고기는 처음 봤어. 그리고 어제 네가 잡은 두 마리도 괜찮았었다.
그까짓, 내가 잡은 고기는 아무것도 아닌 걸요. 하고 소년은 말하다 말고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너도 뭐 좀 마시련? 하고 주인이 물었다.
아니오. 하고 소년이 말했다.
대신 사람들한테 산티아고 할아버지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곧 돌아올게요.
내가 마음 아파한다더라고 전해라.
고마워요.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년은 뜨거운 커피가 든 깡통을 조심스럽게 들고 노인의 판잣집으로 갔다. 그리고 노인이 깰 때까지 옆에 앉아 지키고 있었다. 노인은 딱 한 번 잠을 깰 듯 하더니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소년은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커피가 식어 버린 것이다. 그는 길을 건너 커피를 데울 나무를 얻으러 갔다.
마침내 노인이 깨어났다.
일어나지 마세요. 소년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우선 이걸 마시세요. 그는 커피를 잔에 조금 따랐다. 노인은 그것을 받아서 마셨다.
마놀린, 그놈들이 나를 이기고 말았어. 하고 노인이 말했다.
정말 나한테 이겼단 말이야.
하지만 고기가 할아버지를 이긴 건 아니었어요. 저 고기는 아니란 말예요.
그렇지, 정말. 내가 놈들한테 진 것은 나중이었다.
페드리코가 배와 어구를 점검하고 있어요. 고기 머리는 어떻게 할까요?
페드리코더러 쪼개어서 고기 덫에나 쓰라고 해.
그 창날부리는요?
갖고 싶거든 네가 가지렴.
좋아요. 정말 갖고 싶어요. 하고 소년이 말했다.
이제 그 일을 잊고 다른 계획을 세워야지요.
다들 날 찾았었니?
물론이죠. 해안 경비대와 비행기까지 날았는 걸요.
하지만 바다는 너무나 크고 배는 작으니까 발견하기 어렵지. 하고 노인은 말했다. 순간 노인은 새로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기 자신과 바다를 상대로만 말을 하다가 진짜로 얘기를 나눌 상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말이다.
그 동안 네가 얼마나 아쉬웠는지 몰라. 하고 그는 말했다.
너는 뭘 좀 잡았니?
첫날은 한 마리, 둘째 날에도 한 마리, 그리고 셋째 날은 두 마리 잡았어요.
잘했다.
이제 우리 같이 잡으러 다녀요.
아니야, 나는 운이 없어. 이제 나는 운이 다 했나 봐.
아니, 운이라니요? 하고 소년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운을 갖고 갈게요.
너희 식구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상관없어요. 난 어제 두 마리를 잡았어요. 하지만 나는 아직 배울 것이 많이 있어요. 우리 이제부터 같이 나가요, 네?
좋은 작살을 하나 구해서 늘 배에 싣고 다녀야겠어. 아마 고물 포드 차의 스프링 조각을 이용해서 날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구아나바코아에 가서 갈아 오면 돼. 아주 날카로워야 한다. 부러지기 쉬우니까 버려서는 안 돼. 내 칼은 이미 부러졌어.
아예 칼도 하나 더 구하고 스프링도 갈아 오지요. 이번 강풍이 며칠이나 갈까요?
사흘쯤, 아니 좀 더 오래 갈지도 모르겠다.
제가 모든 걸 잘 챙겨 놓을게요. 하고 소년이 말했다.
할아버지는 이제 그 손이나 잘 보살피세요.
손이야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고 있으니까 별 문제는 아냐. 하지만 지난 밤에 뭔가 이상한 것을 뱉었었는데 마치 가슴 속의 뭐가 깨진 것 같았어.
그것도 고치세요. 하고 소년이 말했다.
누우세요, 할아버지. 제가 깨끗한 셔츠를 갖다 드릴게요. 뭐 좀 드실 것 하고요.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온 신문이 있으면 아무 거나 좀 가져 오너라. 하고 노인이 말했다.
난 앞으로 배울 것이 많고 할아버지는 뭐든지 다 가르쳐 주셔야 하니까 빨리 나으셔야 해요.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셨어요?
좀 심했지.하고 노인이 말했다.
드실 음식과 신문을 가지고 오겠어요. 약방에 가서 손에 바를 약도 사가지고 올게요.
페드리코한테 고기 머리는 그 사람이 가지라고 꼭 전해라.
네, 잊지 않겠어요.
소년은 문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닳아빠진 산호암 길을 내려가면서 또다시 울었다.
그날 오후에 테라스에 관광단 일행이 도착했다. 빈 맥주 깡통과 죽은 꼬치어가 흩어진 사이로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그들 중 바다를 보고 있던 한 부인의 눈에 무언가 띄었다. 항구 바깥쪽에서는 동풍이 불어 쉴 새 없이 큰 파도가 일고 있었고, 그때마다 조류에 밀려 떠올랐다 흔들렸다 하는 거대한 꼬리가 달린 엄청나게 긴, 흰 뼈대가 보인 것이다.
저게 뭐예요? 그녀가 웨이터에게 물었다. 그녀의 손 끝은 이제는 조류에 쓸려 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커다란 고기의 긴 등뼈를 가리키고 있었다.
티뷰론이지요. 하고 웨이터가 말했다.
상어의 일종이죠. 웨이터는 그 동안 이 해변에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려 했다. 그러자 그녀가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상어가 저렇게 멋있고 아름답게 생긴 꼬리를 가지고 있는 줄 몰랐는데요.
나도 몰랐어. 부인의 동행인 남자가 말했다.
그때 길 위에 있는 판잣집에서는 노인이 또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들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얼굴을 파묻은 채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소년은 미동도 없이 옆에 앉아서 노인을 지켜 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