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다.
현지식, 입에 꼭 맞지는 않지만 그래도 먹을 만 하다......
약간의 밥과 소스가 입에 맞지 않은 야채와 그리고 토마도 수프로 점심을 먹었다.......
입맛이 없을때는 고추장과 콜라가 그래도 위로가 된다..
점심식사후에 블라딕보스톡 향토박물관으로 이동
거리가 멀지 않아 걸어서 이동했다.
아르세니예프 박물관앞에서 잠시 기다린다.....
아르세니예프의 개인 소장품들을 기증하며 만든 박물관이라고 한다.
이 박물관은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역사 깊은 박물관이다. 여행가이자 현지 조사가였던 아르세니예프의 이름을 따서 1890년 설립되어 벌써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자연과 생태환경, 동식물과 광물 표본, 민속학, 고고학, 역사, 예술 등에 관한 사료 40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프리모르스키(Primorsky) 지역의 고대부터 현대까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블라디보스톡시의 탄생부터 현대에까지 이르는 모든 것과 극동 지역 소수 민족의 유물, 2차 세계대전 때의 로켓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 지역에서 통용되던 다양한 화폐도 볼 수 있다. 1900년 파리 박람회에서 민속학 자료 부분에서 동상을 받는 등 1997년, 1998년 세 차례 국제적인 박물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이 박물관 명칭은 블라디보스토크와 인근의 8개 소규모 박물관의 연합를 말한다. - 하나투어 에서
들어가면서 자연사 박물관같은 동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각종 유물들과 생활가구들이 있고 특히 2층에는 고대 역사관에는 간석기. 뗀석기등 세형동검과 청동거울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발해의 유적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중간에 휴식을 취하면서 설명을 듣기도 한다.
각종 인장들과 동전들을 보기도 하고
마지막 층에는 전쟁박물관 같은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극동의 유럽이라고 불릴 만큼 유럽풍의 건물들이 즐비하다
테라노바 이름이 예쁘다.
옷가게이다.
청년들이 좋아한다는 아르바트거리이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언덕 좌우로 유럽풍의 건물들이 즐비하고 커피점과 맛집이 있다.
우리는 잠시 커피점에 들렸는데.....
하나 둘 모여 모두가 커피점으로 들어왔다.
여행사 사장님이 특별히 커피를 사 주셨다.
청년들에게 아주 인기있는 커피점으로 '해적카페' 였다. 커피는 한잔에 천원정도 한다.
아르바트 거리에서 나와 독수리 전망대로 향한다.....
저 멀리 보이는 버스가 우리가 타고 온 버스이다.
2~3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면 독수리 전망대에 이른다.....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부동항인 블라딕보스톡 항구가 보인다..... 우측이 들어오는 곳이고 좌측으로 항구가 이뤄져 있다.....
사진에 보이는 현수교는 금각대교이다.
이 항구의 이름은 '금각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러시아 문자를 키릴 문자라고 하는데 이는 동방정교회 선교사였던 키릴 형제가 만들어 줬다고 해서 그리 불린다.
키릴 선교사 형제의 동상이 독수리 전망대에 있다.
저 멀리 보이는 동네가 구개척리로 보인다.
독수리 전망대 아래에는 기념품 가게가 있다.
이곳에서 간단한 기념품을 사고 우리는 동방정교회로 향했다.
동방정교회는 기독교 3대 종교중에 하나이다.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로마카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 그리고 개혁교회(프로테스탄트)이다. 이 세교회를 모두 기독교라 부른다.
특히 동방정교회는 그리스정교회, 러시아정교회 등의 명칭으로 구분되어 불리기도 하는데 동유럽과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일반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각 교회는 독립된 제도와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서로 밀접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고 공통점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에게 수위권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방정교회의 마리아 상.
동방정교회에서 나와 신한촌으로 이동한다.
구 개척리에서 쫓겨난 고려인들은 산 위에 동네로 이주 당했다.
이곳에 학교와 권업신문등을 만들어 명실상부한 고려인촌으로 만들었다.
안타까운것 신한촌 기념비 외에 다른 유적이 없다는 것이다.
신한촌 기념비는 고려인이 관리하고 있는데 그날 몸이 아파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우측에 있는 건물(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권업신문터와 한민학교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1911년 5월 러시아 당국이 콜레라 예방 이유로 구개척리에 거주하던 한인들을 신한촌으로 이주시켰다. 이후 신한촌에 각종 한인단체의 사무소가 들어서면서 항일독립운동, 혁명운동의 본거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려인들이 강제이주를 당하면서 신한촌이 사라졌는데, 1999년 3.1 독립 선언 80주년을 맞이하여 신한촌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민족의 최고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며, 이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은 민족적 정신이며..' 라는 비문에서 부터 고려인들의 독립운동에 대한 열정이 엿볼 수 있다.
한민학교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오랜 한인거주지역인 개척리의 계동학교를 확대, 개편하여 문을 열었다. 그러나 얼마 뒤 한인 집단거주지역이 개척리에서 신한촌으로 강제로 옮겨짐에 따라 한민학교도 함께 이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12년 3월 권업회 교육부와 신한촌 한민회가 공동으로 2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양옥 교사를 신축하였는데, 현관 정문과 교실마다 태극문양을 새겨 넣어 민족주의교육을 표방하였다. 교직원은 교장·교감 이하 교사 26명으로, 전학생을 기숙사에 수용하였다. 교과과정은 4년제의 고등소학과 중학 과정으로 되어 있었으나, 성경·윤리·국어·외국어·수학·역사·음악·체육 등 기초 교양과정과 아울러 매학년마다 다양한 실업과목도 이수하도록 되어 있었다. 특히, 민족의식 고취에 중점을 두어 교육을 하였다.
1937년 연해주에 거주하던 한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될 때까지 남아 많은 학생들을 배출하였다. 일제에 의한 민족 수난기에 국외 한인사회에서 북간도의 명동학교, 서간도의 신흥학교와 더불어 민족주의교육을 실시하던 대표적인 학교 가운데 하나이다.
시장에 들러 열차안에서 먹을 간식을 사고
음료수와 물을 준비한 후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기 위해 블라디보스톡 역으로 향한다......
짐 검사 때문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창문 밖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보인다.
우리는 기차 역에서 양치와 세면을 하고 간단한 옷으로 갈아 입은 후 기차 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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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석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러시아의 우랄산맥 동부의 첼랴빈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약 7,400㎞를 1905년에 연결한 대륙횡단철도이다. 유럽과 극동을 연결하는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간의 9,334㎞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동시간이 약 7박 8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정식명칭은 ‘대시베리아철도’이다. 이 철도는 1850년 극동지방의 군사적 중요성 증대, 식민, 대중국무역 등을 목적으로 계획되었다. 예정선은 시베리아 가도를 따라 건설하기로 계획하고 1887년에 조사해, 1891~1892년에 걸쳐 착공하고 1897년 부분적으로 개통되었다. 9334km를 운행하는 열차로 세계에서 가장 긴 직통열차로 유명하다. 철도의 전철화는 1929년에 개시되었으며, 2002년에 전 구간이 전철화되었다.
간식과 컵라면, 그리고 각 방별로 간식과 물을 챙겨들고 열차에 탑승하고 있다.
첫댓글 아니! 옷은 갈아입고는 있는 겝니까? 놀라움은 차치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제 꿈입니다. 언젠가 저 열차를 타고 성 페테르부르크에 갈 겁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부럽습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철도라는 게요. 북한과 통일만 되면 우리가 가장 긴 열차가 될 수 있을 텐데요. 부산이 아마 극동 아시아의 종착지가 될 거고, 포르투갈과 연결해서 서쪽 끝과 동쪽 끝을 잇는 길이 될 겝니다. 아쉬워요. 기차타고 유럽에 가지 못한다는 건요. 대륙이 있는 반도지만 섬처럼 살아가고 있으니, 민족성이나 다 폐쇄적일 수밖에 없지요. 오히려 1920년, 1930년보다도 폐쇄적이에요. 사람들의 생각이 말이죠. 암튼 말입니다.
이제 추위에 적응하셨나봐요. 춥다는 말이 없으시네요
이틀 지나니 그것도 익숙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