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나무 커뮤니티'의 다음카페에
연재중인 '김준근 자문위원'의 글을
5회씩 정리하여 함께
나누겠습니다.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다낭 도시를 프랑스 르몽드
신문에서는 베트남 경제의 용으로 부각시켰다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 야후 최고 경영자 베트남
방문,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삼성전자, LG 전자 진출 하며 최고 권력자 최고
경영자 들이 베트남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풍부한 노동력, 돈 으로 환산할구 없는 자원 등이 지금 세계을 유혹하고 있다.
하지만 이 유혹에는 항상 깊은 웅덩이가 있기 마련이다.
앞으로 베트남 과거, 현재을 오가며 재미 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보려 합니다.
1. 베트남 역사속 근성
먼저 베트남에 많은 이야기 를 하기전에
역사 와 근성을 먼저 알야야 한다고 생각 하기에 간단하게 적어 봅니다.
1995년 베트남 역사 박물관을 갔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된다,
아주 오래전 현재 베트남은 3개 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북쪽 지역은 베트남, 중부 지역은 (2국) 남쪽지역은
캄보디아로 3개국으로 되어있었다.
북쪽 베트남 과 중부 2국과이 전쟁이 시작되어
중부2국은 멸망을 하게되며
내침김에 남쪽 캄보디아 와 전쟁으로 이어져 결국
캄보디아가 동서쪽으로 밀려나면서
현재 (목바이)국경이 형성되면서 베트남 이
탄생한다.(한반도 1.5배 면적)
그후 중국 의 지배하에 있다가 2차대전시 일본 를 거쳐
프랑스 통치 받다
월남전이 일어나 결국 독립국가 를 이루게
된다.
(한권의 책을 몇 줄로 요약해서 죄송합니다, 지루 하실까봐...)
월남전을 치루면서 세계최강 미국을 끈질기게 괴롭히다
결국 승리로 전쟁을 마무리한 베트남 인들은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베트남 정치인들은 대부분(95%) 전쟁 에 참여한 전쟁영웅들이 정치인
들이다.
국민중 50세 이상은 겉으로 웃고 있지만 외국인 에게 마음은 항상 경계를 하고 있다
만약 여러분중 누군가 베트남 에서 현지인들과 싸움을
절대 피해야 한다,
누구의 잘못을 가리기 전에 그 외국인은 죽음을 맞보게
된다.
(실제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본인도 한번 겪어
봤습니다.^^
다음 에는 호치민 부터 재밌는 이야기 적어 보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2. 박호(베트남 어) 호 아저씨 즉 호치민을 부르는
언어다.
어떠한 직함도 어떠한 권위도 없는 이웃짐 아저씨 처럼 부르는 칭호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 중심부에 호치민 묘가 있다,
그 안에는 호치민이 살아 있는 것 처럼 편한히 누워
있는 것을 볼수 있다,
호치민 묘 엎에는 호치민이 살았던 생가가 아주 잘
정돈되어 수많은 관광객을 맞이 한다.
프랑스 식민지 때 호치민은 북쪽 에서 프랑스 군과 전쟁을 시작 한다.
그러면서 마지막 혈전을 별여 결국 승리 하는데 바로 그 전쟁이 딘벤푸 전쟁이다.
딘벤푸 전쟁을 끝으로 월맹이 탄생하고 17도 선으로 남쪽은 미국의 힘을 빌어 자유 월남이
탄생한다.
그러다 호치민은 통일을 꿈꾸며 남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 국민이 알고 있는 월남전쟁인
것이다.
남쪽은 미국의 요청으로 전투부대(백마부대,해병대),
의료부대(비둘기 부대) 등이 파병 된다.
전투 부대는 17도 선 에 위치한 다낭, 후에 에 배치
되고 의료부대는 붕타우 지역에 배치 된다
이때 한국군 사상장는 3,200명 부상자는 3만명
정도로 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호치민은 통일 을 보지 못하고 전쟁중 노한으로 사망하며
통일이 된후 자유월남 의 수도 사이공을 없에고 호치민 으로 칭호 변경 된것이다.
그래서 영원히 우리가 알고 있는 사이공은 영원히 없어지게 된다.
베트남 모든 화폐에는 호치민 얼굴만이 새겨져 있다.
모든 관공서에는 베트남 국기와 공산당기 호치민 초상화 만이 있을 뿐이다.
혹시 베트남에 오시면 절대 베트남 돈을 국민이
보는앞에서 찢거라 회손 시키지 마세요
공안 당국에 고발 조치됩니다.
감사합니다.
3. 고엽제와 한국군의 전쟁참여..
주말은 잘 보내셨나요?
저는 이사를 한 관계로 쉬지 못하고 감시 하느라 바쁘게 지냈습니다.
여기도 포장 이사를 하는데 지키고 있지 않으면 분실품이 많이 발생을 한답니다.
95년도 전쟁박물관을 방문했을때 참혹한 사진을 보게
된다.
한국군이 축구하는 사진이 한장있는데 놀랍게도 축구공이
아닌 사람 머리 이었다.
사진설명도 같은 설명을하고 있었고 그것을 본 나는
한동안 충격속에 있었지만
어느날 참전하셨던 한국 어르신의 설명으로 이해를 하게
되었다.
한국군이 월맹군에게 포로로 잡히면 엄청난 고통을 가지고 오는 고문을 당하게 되며 죽임을
당했다,
거기에 대응책으로 한국군이 월맹군을 잡으면 손,발을 잘라서 몸에 장식을 하고 목을 잘라
축구를 했다
그런 것을 월맹군이 보고 한국군과 대치를 회피하였고
더불어 한국군의 강한 정신력을 키우려고 강행했다고 한다.
몇년뒤 한국과 베트남 의 관계가 좋와 지면서 한국군의 관련된 사진을 사라진다,
한국군은 전투부대 (백마,해병대)최전방 다낭지역에
배치된다.
미국은 최전방에 한국군을 배치 하고 미군은 남쪽 매통강
지역 과 중부 지역에 배치 한다.
이때 월맹은 라오스 캄보디아 산악지역을 지나 베트남
남쪽 구찌 지역에
땅굴을 파고 주든하고 있으면서 사이공 진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구찌땅굴을 총 연장길이로 320KM 이며 1,2,3 층으로 아주 잘 지어져
있었다.
낮에는 주민으로 밤에는 베트꽁 으로 미군들을 괘롭히게 된다
이에 미군을 모기,벌레 등을 퇴치한다고 고엽제 를 살포하게된다.
사실 고엽제는 정글을 황폐화 시키기 위하여 살포
하였지만 공식적 발표는 벌레퇴치 였다,
미군은 고업제 살포시 판초이와 방독면을 착용하였고
한국군은 오히려 벌레퇴치를 위해 고엽제를 맞게 된다.
당시 고엽제 피해는 증상이 없었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후유증은 나타나고 있다.
4. 라이따이안 (한국인2세) 이야기...
처음 한국을 따이한 에서 코리아 으로 지금은 한국 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부른다.
65년 부터 73년 까지 한국군은 31만명이 파병
된다,
도대체 한인인 2세는 몇명즈음일까? 모두 궁금해 하고
있다.
어디 한국인 2세 뿐인가 미국인2세 등 수많은 2세들이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미국인 2세는 찾아 보기 힘들다.
종전을 하고 미국은 국가 차원에서 2세들을 거의 모두
미국으로 데리고 갔다,
하지만 한국인2세는....96년 즘인가 한국에서 나이지긋한 분이 저를 찾아와
당신의 자식이 있는것 알고 찾아보고 싶다고 하여 나트랑 지역을 수소문하여 결국 찾았다.
자식의 엄마는 순간 그자리에서 주저않아 하염없이 통곡와 눈물을 흘렸고
30살이 갓 넘은 아들은 이제 와서 뭐하러 찾아 왔냐 하면서
결국 얼굴을 보지 못한 체 돌아간 기억이 새롭게 납니다.
한국 문화원, NGO 단체 에서 한국 아버지 찾아 주는
일을 한적이 있었지만
이것이 가정 파탄을 몰고 올줄은 아무도
몰랐다.
한국에서 안정적인 가정을 이뤄 사는데 갑자기 베트남에서
자식들이 있다고 한다면
현재 우리사회 부인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얼마 가지 않고 문화원 에서는 없었던 일로
되돌린 일이있었다.
96년도인가 (사)정해복지 에서 한인2세를 위한 기술학교를 섭립한다.
그때 양훈모 회장님과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참 그때는 홀로 단신으로 항상 기운찬 모습으로 활동하였는데 지금은 세월이 언제 갔는지
....^^
저도 말술인데 우리 양훈모 회장님은 허후~~ 술 드시다가 코피 까지 흘리셨습니다
ㅎㅎ
지금 한인2세 들은 이제 나이가 40을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린아이들이 아니고 어른이 되었으니 걱정들 하지마세요
지금 저와 같이 생활하는 친구도 한인2세 입니다.
한국 이름이 김운 아버지가 비둘기 부대 의사
였었대요 지금은 돌아 가셨구요,
저는 이친구 를 한국 사람이라 생각하고 같이 생활하고
있답니다.
한인2세 들이여 비록 대한민국이 그대들 에게 해 준것은 없지만
아버지 원망하지 말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당당하게 세상 앞에 우뚝 서라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대들을 항상 기억할것이며 응원할 것이다......
다음에는 베트남 정치인, 공무원 이야기 입니다.
베트남에 대학 세워준 '키다리 아저씨' 이충범 변호사, 세 번째 훈장
2013.10.
02.
“‘사과를 딸 때 사과나무 심은 사람을 잊지 않는다’는 베트남
속담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사과나무를 심어준 ‘키다리 아저씨’입니다.”
베트남 투득대 1회 졸업생들이 최근 이 대학 설립자인 이충범(56·사진)
법무법인씨에스 대표변호사에게 한 얘기다.
이 변호사는 1996년 베트남에 투득대를 세우는 등 베트남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달 21일 쯔엉떤상(64) 주석으로부터 우의 훈장을 받았다. 이번이 세 번째
훈장이다.
투득대는 선반·자동차정비 등 기술을 가르치는 전문대(3년제,
학생 8500명)다.
사재 3억원에,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기업으로부터 기자재를 지원받아 설립했다.
20년
가까이 베트남 학생들을 지원한 이유를 묻자
이 변호사는 “사춘기에 방황한 경험이 있어선지 소외된 사람에게 눈길이 갔다”고
답했다.
경기고 재학 중 무기정학을 당하고 4수 끝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젊은 시절을
염두에 둔 얘기 다.
85년 27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 변호사는
89년 변호사 42명을 모아 ‘정해복지재단’을 세웠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과거 한 블로그에 등록되었던
‘베트남 용다리’라는 게시물이 누리꾼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베트남 용 다리’는 베트남
중부지역의 최대 상업도시인 ‘다낭(Da Nang)’에 위치한
한강(Song Han)에 2009년부터 건설이 시작되어 올 해 완공 된 것으로
알려졌다.
길이 666미터, 폭이 37.5미터로 3.5조 동(약 1859억 원)가 투입된
‘용(龍)’모양의 ‘베트남 용 다리’는 실제로 ‘물’과 ‘불’을 뿜어내도록 만들어 졌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베트남 용 다리’를 밤에 처음 보면 깜짝 놀라 겠다”,
“용 다리 보러가야겠다”, “진짜 같다”등 다양한 댓글을
남겼다.
▶영상
바로보기=http://youtu.be/gdSZ8pt39ZA
한국에서 만든 리얼한 '용'을 한번 보여주고 싶습니다..
휴~ 오늘은 좀 쉬지요 저는 글 쓰는 재주가 없습니다.
근대 글 쓸려구 하니 정리가 좀~~ 힘이 드네요
전에 한인 2세는 몇명인지 물어 보셨는데 사실 집계가 없읍니다.
책에 나오는 것 추정 뿐 실제로 2세들은 신분을 밝히기 싫어 하니깐요
제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하셔서 ~~
저는 95년에 처음 베트남에 왔습니다.
29살 때인지라 먹고 살려고 참 많은 일을 했지요
방랑기가 있어서 인지 혼자 여러나라 네덜란드, 영국, 미국, 호주 등을 다니며
생활하다 베트남에 뿌리(?) 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에대한 욕심은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일을 좋와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 무역사무실 : 무역,베트남유통, 항공사업부, 여행사, 부동산 등의 업무
@ 1공장 : 피혁 잡화(지갑,핸드백) 주거래처 (에스콰이어, SONOVI, 일본)
수출
@@ 2공장 : 합포 (원단,스폰지 접착)
@@@ 3공장 : 속옷(브라자,펜티) 아웃도어 생산 주거래처(비비안, E-마트,이렌드)
수출
# 무역사무실, 1공장, 2공장 : 대표
## 3공장 : 총괄 이사
하루가 무척 고단합니다. 하지만 일이 좋와서요,,
혹시 베트남에 오시거나 베트남 관심있는 점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성실히 답변 해
드릴께요
여러분들 화이팅 입니다. 언제나 에너지 폭팔 하세요..
PS : '희망나무 커뮤니티' 다음카페에서 편집하였습니다.
첫댓글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간결하고 요약된 베트남 소식을 연재하여 주시는 김준근님과 이를 편집하여 올려주심에...
즐겁고 행복합니다~
이렇게 편집해 주시니 또한 느낌이 새롭네요, 멋쟁이십니다!!!
베트남 이야기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베트남의 살아 숨쉬는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감사드립니다....
항상 겸손한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감사로 베트남에서 승리하시길..~..
베트남이야기 재밌있게 읽고있네요 늘새로운 소식 기대됩니다!
항상 겸손과 건강과 감사가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