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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기도가 뭔지 또 수행가 뭔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고
어.. 또 보니까 어떤분들은 알아차림이 뭔지 깨어있음은 뭔지
지금 이순간에 존재한다는건 뭔지 현존은 또 뭔지
그럼 염불, 독경, 간경, 절 이런 수행하고는 뭐가 차이가 있는것인지
도대체 수없이 많은 용어들 요즘에는 또 명상이라는 용어들고 많이 쓰고 있는데,
이런 명상 위빠사나 이런 수많은 어떤 수행의 용어들이 도대체 어떻게 연결되어있는것이고
이것이 서로 다른거냐? 아니 같은거냐?
도대체 우리는 뭘해야 되느냐?
그렇게 많으면 뭘해야 됩니까?
이런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의외로 많으십니다.
그래서 수행이 뭔지에 대해서 오늘 정리해서 말쓰드리려고 하는데
수행과 명상 이런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아시게 되면
절이든 염불이든 간경이든 주력이든 위빠사나든 마음관찰이든 알아차림이든 깨어있음이든
그 모든것이 서로 다른것이 아니구나
아.. 그 모든것이 같은것이구나.
다만 그렇게 다양한 방편으로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근기의 사람들을 위해서 방편시? 된것이구나
라는것을 이제 아시게 됩니다.
여러분이 수행을 왜 해야 되느냐 하면.
초기불교 석가모니 부처님 말씀에 의하면 고집멸도 사성제를 말씀하시는데,
즉 우리 모두는 괴롭다. 언제가는 이게 소소히 뭔가 이루고 싶은데 이루지 못하는데서 오는 괴로움
이런 작은 괴로움들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괴롭다는거죠.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것은 우리는 누구나 경험할수밖에 없고
늙고 병들고 죽는데 있어서 괴롭지 않는 사람이 있느냐
그렇게 봤을때? 괴롭단 말이죠 이렇게 괴롭다는 전제하에 그렇다면
괴로움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느냐?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원인을...
벗어나기 위해서 괴로움이 왜 생기는지에 대한 원인을 설해주셨고,
또 그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하면 괴로움이 완전히 소멸되는 완전한 열반에 이를수 있다는것을 말씀해주셨고
또 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방법을 설해주셨어요.
그것을 우리 고집멸도에서 도성제라고 부릅니다.
사성제에서 도성제라는 말이 요즘 현대적인 말로 쓰면 수행입니다.
도성제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구체적인 방법에 이르는 길 열반에 이르는 길을 설명한다 말이죠.
그 방법 그게 도성제고 도성제가 바로 수행이다.
그럼 도성제가 뭐냐?
우선 도성제가 뭐냐를 알아보기 전에 간단하게 초기불교 작년에 공부 다 하셨으니까,
또 안 하시는분들은 그냥 좀 모르는대로 우선 넘어가세요.
금강경 공부하다가 차차 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이걸로 시간을 다 쓸수 없기 때문에
부처님이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이 뭔지를 봤더니 12연기에 의해서 보니까
무명 때문이라는겁니다. 어리석음 때문이다. 즉 우리는 본래 괴롭지 않는데,
괴롭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어리석기 때문에 어리석기 때문에
내 괴로움이 실체하는 것으로 착각하는겁니다.
또 괴로움의 주체인 나라는 존재가 실체하는게 아닌데 무아인데
내가 실제로 있는것으로 착각하는거예요. 실존하는것으로 착각하는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실재인 것으로 착각하니까 내 괴로움도 실재라고 오해하는겁니다.
실제 괴로운게 아닌데, 내가 이 생각으로 만들어 놓은 괴로움인것에 불과한것일 뿐인데
자식이 대학교는 어느정도로 가야 되고 취직은 어느정도로 해야 되고
신랑감 신부감은 어느 정도는 데리고 와야된다라고
또 내 남편은 어느정도의 위치에는 올라야 된다라고
어느 정도의 연봉은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그 고집 그 생각때문에
거기에 도달하지 못했을때 괴로운것일 뿐인데
그걸로 내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인줄 모르고 나를 실체화 시키는겁니다
나는 이정도의 사람이야 우리집안은 이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야
그렇게 생각해보면 그 생각보다 되지 못했을때 괴로워한단말이죠
이게 다 우리 생각이 만들어 놓은 허상에 불과한데
나도 실체가 아니고 내 생각도 실체가 아닌데 우린 그걸 실체한다고 착각하는거죠.
그러니까 진짜로 있는줄로 아는겁니다.
내가 성공하면 내가 진짜 성공한줄 알고 자만심에 빠지고
내가 남들보다 좀 못하면 실패했다고 착각하고 좌절하는겁니다.
사실 우리 인생에 성공도 없고 실패도 없고 언제나 매 순간 순간의 삶만이 있을뿐입니다.
순간 순간 그저 우리는 호흡하고 있고
길을 걷고 있고 그 순간 그저 이렇게 앉아있거나 밥을 먹고 있거나 할따름이예요.
성공한 사람들이 비싼 뭐 몇만원 몇십만원짜리 뷔페에 가서 배를 그 값비싼 음식으로 잔뜩 채운것과
소박하게 감자 고구마 하나 삶아 먹는것 그 아무런 차별이 없는겁니다.
다만 그 순간에 먹고 있다는 그것밖에 없는거예요.
부자인 사람들은 고구마 안먹습니까 즉 그냥 먹고 있는것인데
내가 밥과 김치를 먹고있을때 먹고 있으면 된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분별을 몰아가냐 하면은 야 저사람은 저렇게 비싼것도 먹고
저렇게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런데 우리는 이것밖에 못먹고
내자식에게 더 맛있는거 먹이고 싶은데 나는 이것밖에 못먹이는 못난놈이구나
이게 다 남편탓이구나 남편 돈 못벌어와서 그런거구나 하면서 온갖 분별을 몰아가는거예요.
그럴것 같으면 저 아프리카의 단한번도 단한끼 제대로 먹어 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아이들과 비교한다면 나는 너무나도 행복한데
그런거는 비교는 또 안한단 말이죠.
이것처럼 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상을 실재인것으로 착각해서
내 스스로 괴로워하는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안다면 무아라는 다만 내가 지금 괴롭다고 생각하는것은 실체가 아니고
내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이고 또 인연따라 모든것은 잠깐 잠깐씩 만들어졌다가 흩어지는것일뿐이구나
모였다 흩어지는것 일뿐이구나. 이것이 실체로 존재하는게 아니구나
행복이라는 감정도 그렇고 나라는 존재도 그렇고 잠깐 왔다가 잠깐 가는거구나라걸
연기법을 안다면 실체가 아니라는걸 안단 말입니다.
실체가 아니면 집착할 필요가 있습니까? 집착할 필요가 없다.
집착을 하지 않으면 바로 행복해질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집착하기 때문에 괴롭고 집착하는 이유는 실체라고 착각하니까 집착한다.
그래서 연기법을 깨닫게 되면 우리의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구나라는것을 알게 되고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라는것도 실체가 아니고
다만 인연따라 잠시 잠깐 만들어진 존재일뿐이구나
언젠가 소멸되는 존재일수밖에 없는것이구나
변화 발전하는 끊임없이 순환하는 존재구나 그렇다면 아예 집착할 필요가 없다라는걸 알게되죠
그러고 이러하기 때문에 사실은 실체가 아니고 공한것이구나 텅빈것이구나 무아이구나
그런데 내안에는 서로가 연결되어 있을뿐 어떤 하나의 나라는 실체가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연결되어 있으니까 상대방에게 자비를 베풀면 나도 자비를 받게 되고
상대방을 사랑하면 나도 사랑을 받게 되고 상대방에게 사기 치면 나도 사기를 당하게 되는거구나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렇게 상의상관적인 연결성에서는
세상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될것인가 자비롭게 대할수 밖에 없구나 라는걸 깨닫게 되는거죠
즉 연기는 곧 무아이고 곧 공이고 곧 자비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좋다거나 싫다고 말할수 없구나
극단적으로 잘낫거나 못낫다고 말할수가 없구나
중도를 알게 되는것이죠.
그래서 분별하지 않게 됩니다. 잘낫다 못낫다 내가 성공했다 실패했다.
이럴 분별하지 않게 됩니다. 있는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게 되죠
그래서 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겁니다.
그게 바로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것 이것을 중도라고 하는겁니다.
그래서 도성제라는 수행은 부처님께서 중도라고 말씀하셨어요.
즉 도성제를 쉽게 말해서 중도라고 할수 있어요.
치우치지 않고 있는그대로 보는것이기 때문에 중도입니다.
치우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 중도는 팔정도로 구분이 됩니다.
팔정도는 여덟가지인데 그걸 지금 자세히 다 하지는 않겠구요.
여덟가지 팔정도는 핵심의 수행법은 뭐냐하면 정념, 정정입니다.
즉 정정과 정념인데 이것은 우리가 온갖 산란한 마음 분별심 망상 번뇌에 오염되어 있는 마음을
어떤 한가지 대상에 딱 집중을 시키는 겁니다.
집중을 시킴으로써 번뇌 망상을 내려놓게 만드는게 정정이예요.
어느 한가지에 집중하는것 그래서 삼매에 이르도록 하는것 그리고 그 집중하는것이 아니라
집중을 하면서 집중하고 있다는것을 온전히 알아차리는것
내가 이순간 존재하고 있구나라는것을 충분히 알아차리는것
그래서 판단하지 않고 있는그대로 지켜보는것 그것을 정념 혹은 정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한가지 집중하는것과 알아차리는것 이 두가지가 부처님가르침의 핵심이예요.
그래서 이것을 지관이라고도 하고 지관겸수라고도 하고 정혜쌍수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큰스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수행은 하나다
지관겸수 정혜쌍수만 깨달으면 끝난다라고도 하시고
달마스님은 이것을 모든것은 마음을 관하는거 하나로 돌아간다.
그 모든 어떤 수행이든 부처님 가르침의 모든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마음을 관하는 하나로 귀결된다라고 했다말이죠
이 팔정도의 하나 하나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정견 바르게 보고 정사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바른 직업을 가지고 바른 노력을 하고 또 바른 집중과 바른 마음챙김 이것을 꾸준히 이어가기가
힘든다 말이예요. 그래서 여덟가지 하나하나 다 닦아가기가 일상에서 힘든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 그 구체적인 방법은 사념처에 있다는겁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것이
그래서 사념처에서 뭐라고 이야기 하느냐면은요
그 사념처가 어떤것이냐? 라고 했을때, 이렇게 나옵니다.
대념처경이라는 초기불교 니까야에 나오는 가르침인데요.
"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또 팔정도에 이르기 위해서 또 열반을 얻기 위해서
해야할 유일한 수행법이 있으니 구체적인 유일한 수행법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사념처다 " 이렇게 설하고 있습니다.
즉 도성제에 이르기 위해서 팔정도를 닦아야 되는데 팔정도에 이르기 위해서
또 열반을 얻기 위해서 유일한 수행법이 있으니 그것은 사념처다
이런 사념처가 뭐냐하면요 네가지 염처인데요 염처라는것은 뭐냐하면
염이라는것은 쉽게 말해서 관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관찰하는거예요. 사념처
네가지 관찰되야할 처 곳입니다. 즉 부처님 가르침 핵심은 관하는거예요. 관찰하는것.
관찰이라니까 이해를 잘 못하실텐데 있는그대로 지켜보고 관찰하는겁니다.
그런데 관찰할때 관찰해라하면 뭘 관찰해야되는지 모른다 말이예요.
그래서 아까 말한것처럼 어떤 한 대상을 정해주고 그 대상에 대상을 관찰해라 이렇게 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어떤 대상에 관찰하라고 하셨냐면은요
사념처 네가지에 관찰하라고 네가지 관찰대상을 말씀해 주신거예요.
그게 바로 신수심법입니다. 즉 몸을 관찰해라, 수 느낌과 감정을 관찰해라
심 마음을 관찰하고, 법 법을 관찰해라하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 수행의 핵심은 관찰하는겁니다.
그런데 대승불교로 넘어오면서 불교가 역사 2500년을 이상 역사가 이어오면서
초기불교에서 부처님께서 신수심법 네가지를 관찰하라고 하다보니까
아 이 네가지를 관찰하면 되는거구나 그런데 이 네가지를 관찰하라고 해도
잘 못하는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하니까 이 사람들을 위해서 다양한 관찰 방법들이
구체적 방법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게 바로 염불이고 절이고 간경이고 진언이고 다라니이고 간화선이고 그렇습니다.
다시말해서 관찰해 그러니까 잘못관찰해요 그러니까 염불 부처님 명호를 던져주면서
나무아미타불를 염불해봐라 그러면서 입으로는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서 내귀로 똑똑히
내가 염불하고 있는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염불하고 있다는 온존재를 온전히 알아차리고 관찰해라
그래서 염불하는 대상에 마음을 집중해봐라 그러다 보면 염불하는 대상에 집중이 되서 염불선이 된다 말이죠.
그리고 진언 다라니 이걸 주고서는 옴마니반메훔 됐든 신묘장구대다라니가 되었든
그럴 독송함으로써 독송하는 그 자체가 중요한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착각하는게 신묘장구대다라니 신묘한 힘이 있기 때문에
그걸 독송만하면 엄청난 힘이 있다 이게 아닙니다.
그 독송을 통해서 마음을 관할수 있기 때문에 그것에 힘이 생기는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안다면 아미타불 염불하든 관세음보살 염불하든 지장보살을 염불하든 상관이 없다.
중요한건 어떤 보살을 할것인가 어떤 부처님을 명호를 외울것인가가 중요한것이 아니고
아음을 관하기 위한 도구기 때문에 마음을 관하고 집중하기 위한 하나의 집중의 대상으로써
방편으로 잡은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화두도 마찬가지예요. 관을 못하니까 화두를 주는겁니다. 화두 의심을 주어서
의심에 집중하게 만드는겁니다. 의심에 아주 산란한 마음 다 내려놓고 오직 의심
의심 하나에 답이 나오지 않는 의심하나에 의심을 몰아가게 만든다 말이죠
그래서 마음을 지관하게 만들어주는 겁니다.
간화선의 간자가 볼간입니다. 본다는 거예요. 화두를 본다
수행은 모두가 보는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외도의 수행법의 특징은 뭐나하면요.
보라는것이 없습니다. 있는그대로 보라는것이 없습니다.
이것만 하면 된다 하고 얘기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절을 할때 절하는 동작을 온전히 관찰하고 있지 못하다면
생각이 딴데 가고 절만했다. 그것은 절을 한것이 아니고 운동한겁니다. 그냥 운동한거예요.
한시간 참선했는데 마음은 계속 한 55분 58분 망상을 떨다가 2분만 집중했다
그러면 그냥 괜히 한시간 있었던것인데 그것도 물론 괜히 있는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시간 오래 있는 망상 떨었더라도 오래있는 연습을 하기 시작하면
몸에서 거기서 연습이 배이기 시작하면 그게 차차 처음에는 망상이 생겨요
그런데 차차 알아차리게 된다말이죠.
그리고 한시간 앉아있었는데 내가 오십분 이상을 망상을 떨고 앉아 있었다라고
알아차리면 여러분은 엄청난 수행을 한겁니다.
왜냐하면 평소에는 24시간 내내 망상 품고 있거든요 근데 내가 망상을 품고 있는줄도 모르고 망상을 피우고 살아요
하루에 6만개의 생각이 일어난다고 하니까 여러분이 직접 관찰하는 생각은 몇개입니까 6만개중에
몇개 안되거든요. 그러니까 즉 6만개가 일어나는데도 여러분들은 그냥 편안한줄 압니다.
난 내마음은 편안한걸로 착각하고 사는거예요. 복잡하디 복잡한데..
6만개의 생각이 싸우고 있는줄도 모르고 나는 그냥 잘 살고 있는줄로 착각하는거예요.
그런데 수행을 시작하면 좌선을 시작하고 명상을 시작하면
마음속에 온갖 생각과 망상이 일어나는것이 보이니까 나는 왜 이렇게 수행이 안되지
나는 왜 이렇게 수행을 못하지 한시간 허비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착각하고 있는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한시간 허비하고 있었던것이 아니라
딴데는 그 수없이 많은 망상을 보지못하고 있다가
보려고 앉아 놓으니까 아 내가 한시간중에 50분을 이상을 망상을 피웠구나라는걸 보고있게 된겁니다.
그것이 바로 놀라운 수행이란 말입니다.
망상을 피우는 망상이 일어나는것은 아무 죄가 아닙니다.
여러분 망상을 피우는것 그거 아무 죄가 아닙니다. 그것을 죄의식화하면서
나는 수행에 자질이 없나봐 나 나는 수행을 못하는 사람인가봐
나는 근기가 낮은가봐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평균적으로 5만개 6만개 7만개의 그 망상을 피우고 사니까 항상
그건 문제가 아닙니다. 잘못도 아니고 여러분이 근기가 낮은것도 아니고 당연한겁니다.
다만 안보고 있다고 이제 보기 시작했으니까 망상이 많다는것을 깨닫는것 자체가 우리의 수행입니다.
그러니까 수행에는 좌절이 없습니다. 수행에는 그냥 보는건데 무슨 좌절이 있어요
우리는 언제나 안보고 살다가 이제 비로소 보니까 좌절감이 느껴지는데
그건 좌절할것이 아니라 성공하고 있다는것과 똑같습니다.
그리고 수행은 목적이 없어요. 수행을 해서 부처가 되겠다가 목적이 아닙니다.
엄청난 착각이였던 거예요 지금까지.
내가 수행을 통해서 언젠가 부처가 되겠다. 이것은 수행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걸 수행의 목적으로 가지니까 혹은 내가 수행을 통해서 뭔가 경계를 얻겠지 고요한 마음을 얻겠지
너와 내가 둘이 아님을 체득하겠지. 뭔가 막 황홀한 경지를 느끼겠지
이런 목적 의식을 가지고 수행한다는것은 잘못된 수행이다.
그러니까 수행은 뭐냐면요. 지금 이순간에 그저 존재하겠다.
망상피우고 존재하고 있다가 망상피우지 않고 그저 이순간에 존재해보겠다.
즉 우리들은 지금까지 인생을 머리속에서만 삽니다.
6만가지 생각속에서 사니까 머리속에서만 인생을 살아요
그런데 머리속에서만 살던 인생을 살던 삶을 돌이켜서 지금 이순간을 살겠다
꽃한송이를 보고 감동한다는것 자체는 그 순간에 그 꽃과 내가 둘이 아니게 그 꽃을 분별없이 지켜볼때 가능합니다.
꽃을 보고있지만 눈으로 보고 있지만 잡생각을 하고 있을때 그 꽃의 아름다움은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직 그 꽃을 보면서 감동받을수 있을 때는 그 꽃과 함께 현존하고 있을때 관찰하고 있을때 깨어있을때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제 말씀드린것처럼 결론적으로 수없이 많은 모든 수행들은 관찰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분별없는 관찰 이것이 핵심입니다. 분별없는 관찰 이것이 수행입니다.
그래서 분별해서 생각 이런걸 다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하는 거예요. 판단하지 않고
그러니까 여러분이 나는 왜 수행을 못하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건 벌써 판단입니다.
그것은 수행이 아닌 거예요.. 잘하고 못하고가 없는겁니다. 수행에는
그냥 보는것이 있을뿐이지
그래서 제가 오늘부터 이제 조금씩 수행에 대한 전반 제가 우선 간단하게 이렇게 말씀을 드렸고
지금 간단히 벌써 25분이 지났으니까 간단하게
여러분 처음 초기불교에서 말씀하신 이 부처님 가르침이 제가 어떤 사람이 제가 이렇게 자꾸 얘기하니까
스님은 초기불교주의자입니까 여러분 초기불교주의자가 따로있고 대승불교주의자가 따로있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것이 최고의 가르침이죠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에 입각해서 제가 가르치는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저기 무슨 특정한 수행법을 가르쳐 드리는게 아닙니다.
부처님의 수행법이면서 불교의 모든 수행법을 아우르는 수행이면서
지금 동서고금에서 등장하고 있는 지금 서양유럽에서 수없이 등장하고 있는
그런 어떤 명상법들을 통섭하는 수행입니다.
그러니까 여러가지 수행이 있는것이 아니라 근원은 하나인데
그 근원을 제가 말씀드리는겁니다. 그 근원에 이르는 다양한 방편들이 있는데,
제가 쉬운것부터 조금식 차근 차근 안내해 볼테니까 여러분들께서 조금씩 조금씩 따라와 보시고
어렵고 힘들어도 뭐 그렇게 개의치 마시고 조금씩 꾸준히 해보시면
이렇게 하는 여러 수행가운데 아 이런것이 내가 조금 더 집중이 잘되었구나하는 깨닫는 경우가 있을거예요.
우선 몸에 대한 관찰을 하기에 앞서서 우선 자세를 앉는게 중요한데
자세는 결가부좌와 반가부좌가 있습니다.
오른발을 왼발 허벅지 위에 올리고 아무쪽이나 편한 오른발을 왼발 허벅지 위에 올리고
왼발을 또 오른발 허벅지 위에 올리고 그래서 양쪽발 두개가 다 허벅지 위로 올라가서
그 발바닥 두개가 다 하늘을 바라보게... 앉아보세요.
엉덩이를 약간 높히면 좋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 안되죠. 여러분 웅성웅성하시는 모습이 안된다는 말씀이신데 안되는게 정상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사람들이 좀 숏다리라서 잘 안올라가요.
그래서 안되시는 분은 두쪽발중에 한쪽만 올리시면 되요. 한쪽만
그런데 연습을 해서 엉덩이를 좀 높힌 다음에 양쪽을 좀 해보면 자세가 딱 결가부좌가 나오기만 되면 놀라운 자세입니다.
이거 자세 자체에서 벌써 아주 놀라운 어떤 명상이 깊어질수 있는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것과 똑같아요.
큰스님들 열반하실때 좌탈입망하고 앉아서 열반하시잖아요.
절대 넘어지지 않지 않습니까. 그 이유가 이 결가부좌를 딱 취하고 있으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졸때 그 반가부좌만 해도 졸때 허리가 구부정 해져요 졸때 허리가 구부정해집니다.
그런데 결가부좌를 하면 졸면서도 허리는 딱 서 있습니다. 한번해보세요.
허리를 굽히고 싶은데 굽히면 너무 힘들어요. 결가부좌를 할때는.
피는게 대개 자연스럽고 그래서 결가부좌가 좋습니다.
그런데 이게 안되는 분은 한쪽만 먼저 올려놓고 다른 한쪽발은 앞으로 요렇게 좀 앞으로 내서
비슷하게만 만들어놨다가 5분 지나고 나서 올려보면 그때는 쏙 올라갑니다.
그래서 그렇게 일단 반가부좌내지는 결가부좌 자세를 하시고 몸을 좌우로 살짝 한두번씩 흔들구요.
앞으로도 살짝 흔들어서 엉덩이 끝부분이 땅에 딱 닿게 하고 허리를 딱 피시고
완전히 힘을 빼야하는데 오직 허리 하나에 살짝 힘을 주는겁니다.
결가부좌할때는 허리에 힘을 줄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반가부좌를 할때 허리에 조금 힘을 좀 줘서 구부정해지지 않게 딱 허리에 힘을 주구요.
손은 왼손은 밑으로 오른손은 위로 올라가게해서 엄지손가락을 요렇게 맞대면 됩니다.
그래서 배꼽밑에 편안하게 내려놓으면 됩니다. 위로 뚝 뜨고 있으면 힘이 들어가지고 어떻게 안되니까
편안하게 내려놓으면 됩니다. 발위로 편안하게 올려놓고
그리고 허리를 핀다음에 고개를 딱 세운 다음에 턱을 살짝 잡아 당기면
머리끝에서부터 엉덩이끝에까지 탑의 중심에 쇠가 높이 일자로 탁 있어가지고
탑을 균형잡아주는것처럼 머리끝부터 엉덩이밑에까지 일자로 짝 중심이 잡힌다는것을 느낄수 있고
조금 어떻게 말하면 머리뒤로 한가닥으로 따신 보살님들 머리채를 뒤에서 요렇게 탁 잡아서 뒤로 들면
머리가 들리면서 턱이 저절로 잡아 당겨지면서 일자로 척 되잖아요
그런 느낌을 위에서 뭐가 잡아 당기구나하는 느낌을 가져보시는거죠
그 상태에서는 눈은 완전히 감지는 않는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집중이 정 안되거나 처음에 너무 집중이 안된다 할때는 잠시 감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이렇게 반만 살짝 뜨는게 완전히 뜨면 집중이 너무 안되고 완전히 감으면 잠에 떨어지기 때문에
반만 뜨면서 앞에 뭐가 있는지는 대충 보이는 상태 그런 상태가 좋습니다.
그래서 이 상태에서 오늘은 몸을 한번 관찰하는 아마 1학기때 한번 해보셨는데
가장 기본이되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안내하는대로 따라서 해보시면 관찰한번 해보시면 되겠습니다.
죽비 세번을 치면 제가 안내하는대로 한번 따라와 보시기 바랍니다.
탁 탁 탁
먼저 온몸의 힘을 다 빼봅니다.
두눈을 한번 관찰해봅니다.
내눈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리고 내눈이 어떤 느낌인지..
내눈을 한번 느껴봅니다.
이번에는 코를 한번 느껴봅니다.
코를 관찰해보구요.
내코가 아 이런 느낌이였구나. 하고 코를 한번 느껴봅니다.
코가 거기에 있음을 알아차려봅니다.
그리고 눈과 코의 힘을 빼봅니다.
입을 한번 관찰해봅니다.
입안에 침이 고이는것도 한번 알아차려보고
혀가 어떻게 놓여있는지도 한번 알아차려보고
입안이 따뜻한지 어떤지 가만히 바라봅니다.
이번에는 귀를 한번 관찰해봅니다.
내귀가 이런 느낌이였구나.
귓속으로 귀가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한번 관찰해봅니다.
이번에는 머리를 관찰해봅니다.
머리에서 열이 나는지 뜨거운지 묵직한지 가벼운지 머리를 관찰해봅니다.
머리의 힘을 빼봅니다.
내려와서 뒷목을 한번 관찰해봅니다.
뒷목에 힘이 들어가있지는 않는지 뻐근하지는 않는지 내목은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것이었는지 바라보고..
목의 힘을 뺍니다.
양 어깻죽지을 관찰해봅니다.
어깻죽지에 힘을 빼봅니다.
어깻죽지를 가만히 관찰합니다.
묵직하거나 뭉쳐있거나 딱딱한 느낌들을 느껴질수도 있습니다.
해석하지말고 좋다 나쁘다 해석하지 말고 그냥 어깨를 관찰해봅니다.
이번에는 오른쪽 팔을 팔뚝을 한번 관찰해봅니다.
오른쪽 팔뚝의 힘을 빼봅니다.
손으로 내려와서 오른손을 관찰해봅니다.
손바닥에 뜨거운 열기가 일어나는것을 관찰하고 찌릿찌릿한 느낌을 관찰합니다.
이번에는 반대손을 한번 관찰해봅니다.
반대의 팔뚝을 관찰해봅니다.
이번에는 등쪽을 한번 관찰해봅니다.
등을 위에서 부터 천천히 내려가면서 등을 관찰해봅니다.
아랫배로 관찰의 시선을 옮겨봅니다.
아랫배에서 숨이 들어오고 나갈때
아랫배가 적당히 ? 가만히 관찰해보니다.
엉덩이로 가서 엉덩이부분이 방석과 맞부딪히면 접촉된 부분의 느낌을 한번 가만히 관찰해봅니다.
어떤 무게로 땅과 방석과 접촉하고 있는지를 관찰해 봅니다.
어떤 느낌인지를 한번 관찰해봅니다.
이번에는 허벅지부분을 양쪽 허벅지를 가만히 관찰해보면서 다리가 불편하면 불편한 느낌을
있는그대로 알아차리고 관찰하고 그리고 힘을 빼봅니다.
종아리를 한번 관찰해보고 종아리의 힘을 빼봅니다.
다리가 아프거나 뻐근하거나 불편한 느낌을 일어나더라도 그 일어나는대로 인정해주고 허용해줍니다.
시비하지 않고 불편한 느낌을 그대로 느껴줍니다 하고 받아들입니다.
이번에는 발목과 발등과 발바닥 발가락을 가만히 관찰해봅니다.
이번에는 온몸 전체가 이렇게 앉아 있음을 알아차리고 온몸 전체의 힘을 빼봅니다.
몸과 마음이 고요한 가운데 한 가지 움직이는것이 있음을 한번 어떤 것이 움직이는지를 한번 관찰해봅니다.
그 움직이는 한가지는 호흡입니다.
호흡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움직임이 있고
그리고 아랫배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움직임을 자각해봅니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난다고 알아차린채
지금부터 호흡이 들어오고 나간 다음에 100하고 숫자를 붙이고
두번째로 들어오고 나간 다음에 99 또 98 이런식으로 호흡 거꾸로
100 에서부터 세면서 호흡에 숫자를 붙이면서 잠시 호흡을 관찰해봅니다.
.
.
.
.
.
탁 탁 탁
호흡을 의식적으로 관찰하려고 하니까
호흡이 더 자연스럽지 않게 쉬어지는것을 아마 느껴질수도 있는데
그럴때는 그렇게 호흡을 내가 의식적으로 자꾸 조절하려구나 하는것을 알아차리고
그대로 내버려두고 그냥 보기만 하는겁니다.
지금 아마 여러분들이 하셨던것처럼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몸과 접촉하는 순간들이 많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몸을 돌보고 몸을 접촉하고 몸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몸에 병이 나거든요.
몸에 스트레스가 생기고 그런데 몸을 사랑한다는것은 뭐냐하면 몸을 수용하고 사랑한다는것은 뭐냐하면
사랑해 사랑해 하고 너 너무 예뻐하고 거울보면서 야 잘생겼다하고 그게 사랑하는게 아니고
맛있는 음식 먹여주는게 그게 사랑하는게 아니고
뭐가 사랑하는거냐면 있는그대로 보는게 진정한 사랑이예요.
왜냐하면 지혜가 곧 자비이고 있는그대로 보는것이 곧 자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좋아한다는 건 좋고 나쁜 사람을 나눠놓고
그중에 좋아하는 사람만 선택적으로 좋아하거든요.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좋고 나쁜게 분별이 있는 사랑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있는 그대로 볼뿐 좋고 나쁜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몸이 망가지는것은 몸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즉 몸을 관찰하지 않기 때문에 그럽니다.
내가 충분히 몸과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럽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순간도 몸을 돌볼 생각은 안해요.
몸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온몸을 잠시 관찰하고 있으면
온몸 가운데 주로 어디가 뻐근한지 어느날 어깨가 뻐근하기도 하고 어느날 어깻죽지가 뻐근하기도 하고
하루에 수많은 일을 하다가 잠시 잠시 관찰하면 몸에서 긴장된 모습이 탁탁 보여집니다.
그러면 바로 그 부분을 관찰함으로써 그 부분을 사랑해줄수 있고 그 어려움을 풀어줄수가 있어요.
그래서 스트레스가 몸에 와서 집적이 됩니다. 쌓여요
그런데 관찰하게 되었을때 그 쌓인것이 풀어집니다.
이건 요즘에 의학계에서 증명이 되어가지고 수많은 병에서 마음관찰이 아픈 병을 관찰하고
아픈 부위를 관찰하는것이 놀라운 치유 효과가 있다는것이 서양에서 너무 많이 증명이 되어서
이제는 정식 치료 기법으로 병원에서 쓰고 있습니다.
아플때 아픈 부위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해석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너가 왜 나한테 왔니? 빨리 좀 없어져라 하고 얘기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해주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
지금 여러분 두통이 있다. 두통을 관찰만 해도 두통이 사라집니다.
잘 관찰이 안되면 지수를 정하면 됩니다. 1부터 10까지
많이 아플때 10, 반만 아플땐 5, 조금더 아플땐 7 이런식으로
한 이삼분안에로 계속 지수를 매겨보는겁니다.
지수를 정해보려고 관찰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위빠사나나 마음관찰이라는 얘기 하나도 쓰지 않고
두통이 있는 사람들에게 A4 용지 하나 주고 오분 단위로 1부터 10까지 얼마나 아픈지를 계속 체크해라
그래가지고는 한시간 체크하고 나서 이 종이를 가지고 왔는데 처음 10, 9, 8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점점 떨어져서 나중에는 거의 제로에 가깝게... 두통약을 먹을 필요가 없게 바뀝니다.
이 마음 있는그대로를 관찰하는것이야 말로 내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것이고 화해하는것이고
여러분 비로소 몸과 함께 이 자리에서 존재하게 되는겁니다. 깨어있게 되는것이고
몸과 둘이 아니게 깨어있게 되는겁니다.
그때 나다 너다하는 차별도 없고 그냥 있는 그대로 보는것만 있을뿐이지
거기에는 옳고 그르고 맞고 틀리고 괴로운것도 없죠.
사회생활 자식문제 온갖 고민도 다 내려놔지고
그래서 이자리에서 몸과 하나 되게 하는겁니다.
이렇게 몸에 집중을 해서 그 알아차림을 유지 하는것을 신념처라고 한다.
이번주 숙제입니다. 이번주 숙제는 여러분이 다음주까지 지금 하셨던것을 이거 순서 절차 자세히 상관없습니다.
이걸 요즘 지금 서양에서는 MBSR이라는것에서는 바디스캔 명상이라고도 부르는데
스캔하면은 위에서 부터 쭈욱 스캔하고 내려오잖아요.
그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관찰의 빛을 내려가면서 비춰보는겁니다.
그래서 머리끝을 관찰하고 눈을 관찰하고 코를 관찰하고
관찰하고 나서 그 부분의 힘을 이렇게 빼보는 연습을 하는겁니다.
그래서 온몸을 한번 관찰해주고 그것이 바로 놀라운 몸을 치유하는 효과도 동시에 있고
그렇게 되었을때 마음 치유도 함께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상처 받은게 몸에 와서 붙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특히나 이렇게 관찰하다가 보면 어느 부분이 특정하게 많이 뻐근하거나
많이 아프거나 이런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조금 더 오래도록 관찰을 하는데
그래도 오래 관찰을 하다보면 한부분을 아파서 오래 관찰하다 보면 잡념이 자꾸 생겨요.
그럴때는 바라보다가 특히나 많이 뻐근하고 이런 부분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보는것이 우선인데
거기에 방편으로 어떻게 해주면 좋으냐면 아픈부분이 있을때
나는 이렇게 지금 목뒤덜미가 많이 뻐근하고 아프지만 나 자신을 있는그대로 수용합니다.
아픔에도 불구하고 아픈 나 자신을 있는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아픈것을 거부하지 않겠습니다. 허용합니다. 충분히 아파주겠습니다라고 아픈것을 받아들입니다. 수용합니다.라고
또 무엇 때문에 이렇게 뭉쳐있고 아픈지 모르지만 원인을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것이 나의 잘못인것이 분명하니
나에게서 나온것이 분명하니 그 원인에 대해서 원인을 만들어낸 나 자신을 용서합니다. 용서합니다.하고
또 이렇게 이정도 아프고 내가 쓸어지고 당장 죽지 않게 된 그것만으로도
이렇게 내가 관리도 못해주었는데 이만큼 내몸을 끌고 와주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또 거울에다 대고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하고 이렇게 네마디를 수용합니다. 용서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수용 용서 감사 사랑에 수용서감사랑을 이렇게 한번 나즉막히 이야기 해줘보는거죠.
그러고 나서 어느정도 시간이 되면 이제 다음 또 내려가 다른 부분을 관찰해보고 이런 방식으로
이번 일주일 동안 몸을 한번 있는그대로 관찰하고 특정의 아픈 부분이 있으면 수용 용서 감사 사랑 통해서
조금 더 부드럽게 부드럽게 더 적극적으로 풀어보면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연습을 매일같이 하루에 단 10분도 좋고 20분도 좋고 30분도 좋고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때해도 좋고 점심 먹고와서 하고 일과 시작하기 전에 하고
청소하기 전에 하고 설겆이 하기 전에 하고 틈틈이 자주 하셔서 그냥 하기만 하면 이게 도움이 안되요.
도움이 되지만 금방 하루 이틀 하다가 금방 그만 두실겁니다. 우리네 특성입니다.
하루 이틀 그만 두니까 뭔가 도반이 있으면 놀라운 공부를 시켜줘요.
여러분이 절에 굳이 나오는 이유가 뭐겠어요? 그냥 명상강의 듣고 나면 되는데
굳이 나오는 이유는 하나예요. 도반들의 덕 좀 보고 스승의 덕도 보고 뭔가 공부하는데 도움을 받잖은겁니다.
그래서 이 마음관찰한 바디스캔한 몸을 관찰한 신념처 수행을 한 하루하루 한 내용을 수행했던것들을
관찰일기를 하루하루 몸을 관찰한 일기를 목탁소리 지대방에 가면
거기 불교아카데미라는 게시판이 있고 거기 붓다미션 게시판 혹은 강의후기 게시판이 있어요
거기 두개 게시판에 적음으로써 내가 몸을 관찰했더니 이러이러한것이 알아차려지고 관찰되었다.
또 이러이러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것들을 거기다 쭈욱 자세히 적어주시면
많은 분들이 들어와서 그 내용을 보면서 아 나는 이 이거는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이렇게 할수도 있었겠구나.
또는 아 이렇게 하니까 이런이런 도움이 될수 있겠구나
내가 좀 깜빡하고 안하고 좀 농땡이를 쳤는데 야 이분들이 이렇게 하는걸 보니까
아 이분들은 잘하시구나 나도 열심히 해야되겠다. 이런 어떤 서로서로 분발심도 일어나고
또 내가 캐치하지 못한 부분들을 상대방을 통해서도 보고 알게되는 아주 좋은 공부가 됩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들어가셔서 이렇게 한번 그 후기를 꼭 좀 남기시면서 함께 공부를 해나가는
그래서 오늘 3개월 4개월 동안 그렇게 뭔가 이게 공동체입니다.
수행의 공동체에서 직접 제가 다 모든분들을 인터뷰해줄수 없으니까 저도 그걸 매일 읽고
그 다음주에 또 특별히 질문을 한 것들이랑 해드릴 이야기가 있으면 해드리고 할테니까,
그렇게 한번 하셔서 그렇게 공부를 일주일 동안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제가 녹취 삼매가 빠졌나봐요.
아... 중독되네요.
중독은 조심해야죠?
와~참 대단한 중독입니다.
아무튼 수고하신 덕분에 다시공부하니 너무 좋네요.
다시 또 읽어보고 공부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녹취 삼매~~ 좋아요 좋아 ㅎㅎ
향광심 법우님 파이팅!!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_()_
녹취삼매 좋습니다! 좋아요~~
무엇이든 삼매에 빠져본 사람이 성불도 빨리 할수 있지 않을까요?
바디스캔명상 다시 읽어보니 그때 수업했던 경험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저는 마음이 심란할때 가끔씩했는데 오늘부터 매일 해야겠습니다.
이 무더운 여름날 녹취삼매로 공부가 더욱 깊어져 가는 향광심 법우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_()_
그 방법 그게 도성제고 도성제가 바로 수행이다.
집착을 하지 않으면 바로 행복해질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집착하기 때문에 괴롭고 집착하는 이유는 실체라고 착각하니까 집착한다.
여덟가지 팔정도는 핵심의 수행법은 뭐냐하면 정념, 정정입니다.
여덟가지 하나하나 다 닦아가기가 일상에서 힘든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 그 구체적인 방법은 사념처에 있다는겁니다
이 네가지를 관찰하라고 해도
잘 못하는사람이 생겨나기 시작하니까 이 사람들을 위해서 다양한 관찰 방법들이
구체적 방법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게 바로 염불이고 절이고 간경이고 진언이고 다라니이고 간화선이고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절을 할때 절하는 동작을 온전히 관찰하고 있지 못하다면
생각이 딴데 가고 절만했다. 그것은 절을 한것이 아니고 운동한겁니다. 그냥 운동한거예요.
내가 수행을 통해서 언젠가 부처가 되겠다. 이것은 수행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걸 수행의 목적으로 가지니까 혹은 내가 수행을 통해서 뭔가 경계를 얻겠지 고요한 마음을 얻겠지
너와 내가 둘이 아님을 체득하겠지. 뭔가 막 황홀한 경지를 느끼겠지
이런 목적 의식을 가지고 수행한다는것은 잘못된 수행이다.
지금부터 호흡이 들어오고 나간 다음에 100하고 숫자를 붙이고
두번째로 ----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두번째로 들어오고 나간 다음에 99 또 98 이런식으로 호흡 거꾸로
100 에서부터 세면서 호흡에 숫자를 붙이면서 잠시 호흡을 관찰해봅니다.
잘 관찰이 안되면 지수를 정하면 됩니다. 1부터 10까지
많이 아플때 10, 반만 아플땐 5, 조금더 아플땐 7 이런식으로
한 이삼분안에로 계속 지수를 매겨보는겁니다.
지수를 정해보려고 관찰하게 됩니다
이렇게 몸에 집중을 해서 그 알아차림을 유지 하는것을 신념처라고 한다.
이걸 요즘 지금 서양에서는 MBSR이라는것에서는 바디스캔 명상이라고도 부르는데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향광심법우님.
감사합니다 두손모음
감사합니다 _()_
감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