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민 제 12시집 : 행복은 비워둔 자리를 찾는다 73
제 1 부 : 가을 끝자락 쯤
봄
겨울잠
부부
깡통
사막의 아이
낡은 집
낙지
재개발 구역
아버지 말씀
장맛비
자연의 법칙
흑기사 가족
하고 싶은 일하며 살았다
가을 끝자락쯤
놀이터 도둑이래요
빌려 쓴 몸
퇴원 이후
항상 고맙습니다
18
제 2 부 :이장님 말씀은
고마운 꿈
공(功)
사랑의 문
이장님 말씀은
해와 달
인생은
유일한 진실
안 씨와 맹인
왼손의 말
도둑과 형사
인도 암소
매미처럼
야인시대
만해 선생님 댁
큰 죄를 지으며
울보 노시인 박용래
시인 장관 정한모
왜 머리를 숙이고 사시나요
18
제3부:행복은 비워둔 자리를 찾는다
육(6) 구(9)
기억은
착각
바다 소식
돌덩이
사는 방법
침묵
세상 사는 맛
어디 없소
행복은 비워둔 자리를 찾는다
유리 벽 속의 연인
김두환 지프
지구 사랑
귀향 유감
4명의 아내
비질
직업은 대통령입니다
충주호
식장산
19
제 4 부 :코로나 세계 여행
마음의 문
시인
부지깽이 신세
시집 선물
매미 소리
세태 탓
세 번째 그녀
나폴레옹 사과
사냥꾼인 세월을
약국 앞에서
장로님과 호랑이
눈먼 전쟁
코로나 간호사 24시
코로나 세계여행
작은 비석 하나
코로나 22번 여인
나는 간다 훈계서 1장 들고서
염장이 강 씨의 일터 코로나 화장터
18
제 1부 : 가을 끝자락 쯤
봄
나뭇잎 떨어져
가을이 오나 했더니
눈까지 내리고
어느새 겨울까지
봄바람이 휩쓸어 갔네
쑥이 쏙 쑥 나왔네
겨울잠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면
물가의 개구리
숲속의 반달곰
폭포까지도 동면(冬眠)에 들었다
경칩이다 일어나라
뱀, 박쥐, 두더지 모두들
봄 새싹이 깨울 때까지는.
부부
늘 가까이 있을 땐 눈에 잘 보이지 않다가도
주변에 없으면 허전하여 찾아야 마음이 편한
같이 있을 때는 존재의 가치를 잘 모르지만
곁에 안 보이면 목이 빠져라 둘러보는 벽시계
별생각 없이 두 몸이 한 몸인 양 착각하다가
너무 가깝다면서 경계선이 점선으로 그려지는.
깡통
빈 깡통은 아무리 흔들어봐도
전혀 정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는 것이 없는 사람에겐
야호에 내보낼 메아리가 없다
속이 가득 찬 깡통은
흔들어도 소리를 안 낸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은
꼭 할 말 아니면 입을 닫는다
소리 나는 깡통 속에는
정답과 오답이 조금씩 차 있다
아는 답이 머리에 조금만 있어도
참지 못해 입을 박차고 나온다
사막의 아이
아이가 걸어왔다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며칠 몇 시간이나 걸어왔는지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랄 수 없는
사막 한가운데 어디쯤에서 버려진
한 아이가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저도 어디서 언제 왔는지 모르겠어요
10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 얼굴엔
사막 먼지가 눈물로 지도를 그린 채
어른들이 버리고 갔어요
아이의 첫 마디는 도와주세요
이곳이 어딘지 모르겠어요
천만다행으로 그곳을 지나던
인정 많은 노인 차량이 아니었다면
그 아이가 어디까지 걸어갔을지
또 얼마나 살아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아이의 운명이든. 혹은 신의 가호이든
아이는 그곳부터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어요
낡은 집
엄청난 태풍도 아닌
작은 소소리바람에도
대문과 방문이 덜컹거리고
양철지붕이 들썩거린 지가
여러 해가 되어 버렸어요
반 백년 이상을
별 탈 없이 살아온
내 영혼의 낡은 집
기둥과 서까래도 살피고
담벽과 구들짱도 고칠 때가 되었지요
이참에 싹 전부 헐어버리고
맑은 공기 항시 찾아드는
푸른 창을 가진 새집을 지으려다
기둥은 놔두고 서까래 몇 개만
교체한 후 살아보기로 했어요
종갓집의 퇴폐한 서까래
발라낸 내 몸의 헌 목재들은
연기 없는 숯으로 만들어
혈족 곳곳에 불 피워 가며
남은 여생 살아가기로 했어요
.
낙 지
심해를 주름잡던 왕년을 그리며
최후의 장정을 식탁 위에서 맞는
동해 낙지의 퇴임 만찬에 초대받은
할아버지의 목줄기가 꿈틀거리며
아버지의 눈빛이 접시에 반사되고
손주 녀석의 호기심이 반짝이며
삼대가 머리를 맞대고 앉아있디
길고 질긴 할아버지의 과거와
갈기갈기 잘린 오늘의 아버지 삶과
손주 녀석의 불확실한 미래의 삶이
낙지의 머리통과 긴 다리에 잡혀
도마 위에서 토막토막 잘려지어
참기름도 치고 깨소금도 받은 채
접시 위에서 바다인 양 헤엄친다
산다는 것은 참으로 독한 일이다
손주 놈이 입에 넣고 조각내 씹어도
할아버지가 잇몸으로 물어뜯어도
운명을 거부하는 산낙지 한 조각
자잘하게 잘려나간 산 낙지의 현실
입천장에 찰싹 붙은 채 최후의 생을
놓지 않으려고 빨판을 발버둥 친다
재개발 구역
쨍한 햇살에 눈이 부신 날
마주 보며 지나기도 힘든 좁은 골목
옹기종기 벽끼리 등을 맞댄 집들
군데군데 붉은 페인트의 상처 흔적
위험, 접근금지란 큼직한 글씨들
모아놓은 돈 잃고 떠밀려와 반 백 년
도회지의 재개발 구역의 마지막 봄
아지랑이조차 먼지에 흩날려 지워졌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 한구석에
산처럼 쌓인 회색빛 연탄재 무덤들
누군가는 사라진 온기에 하룻밤을
이젠 고향이 되어 버린 달동네 사람들
집 잃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다 여기로 짐짝처럼 밀어 넣었어
이 마을에서 맨 처음 터를 닦았는데
다시 바람에 밀려 나가는 사람이 됐군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모여든 달동네
살아오면서 이웃끼리 한 식구가 된 듯
서로를 돌아보며 착하게 삶을 이어갔지
비슷한 시기에 엇비슷한 나이 때로 살며
언제나 손주들한테는 당당하게 말했지
결혼할 상대 있으면 언제든 여기 데려와
할아버지는 가난한 삶의 버거운 무게를
내려놓지도 숨기지도 피하지도 않았어
이웃이 먼저 떠난 아랫집 처마엔
올해에도 제비가 새 둥지를 틀었네
아버지는 커다란 대못 2개를 가지고
둥지 아래에 널빤지를 고정시켜 주었지
집을 지어줄게 니네들은 잘 살아야지
재개발이 오륙 년 더 걸린다 생각하면
나는 아흔이, 아내는 팔십에 가깝겠네
하루가 아쉬워 이렇게 꽃밭에 누워있지
아버지 말씀
법 없이도 착하게만
88년간 성실하게 사시다가
생전에 남겨 주신 유산이라곤
아들 둘 딸 셋에
새 가지 친 손주들 여덟이 전 재산
파도치는 바다에 섬처럼 남겨두고
승천하신 농사꾼 우리 아버지
삼우제 날에는 자식들 모두
잔디도 뿌리 잡지 못한 산소에
국화꽃 몇 송이와 평소에 잘 드시던
음식도 조금씩 마련해 가지고
좋아하시던 빵과 요그르트도 챙겨
경황 중에 챙겨가지 못하신 틀니는
머리맡에 묻어드리고 왔다
아버지가 입으시던 옷가지며
아끼시던 소모품도 보내 드렸다
다 들지 못하신 알약이 제일 많았다
주무시는 듯이 조용히 눈을 감고
떠나시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나지막한 굵은 목소리도 귀에 쟁쟁하다
착하게 살라 헛된 욕심 부리지 말아라
장맛비
여름 장맛비가 지축을 흔들며
온갖 잡것 다 부딪치며 싸안고
하늘에서 개울로 ,강물로, 바다로
올해도 지난해도 성난 여름마다
소 떼들이 초원을 향해 달려가듯
빗줄기의 채찍을 맞으며 전투 중
쾌재의 소리인지 비명의 울음인지
강물의 큰 소리와 기세만 바라본다
피투성인 채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온몸이 깨지고 부서져 상처 난 빗물
시냇물이 붉은 흙탕물로 흘러 강으로
몸 곳곳의 생채기는 바다에 안기어
비로소 보듬어지고 아픔도 완화돼간다
붉은 강이 소리치며 바다로 달려가며
외치는 외마디 소리를 외면하며 지냈다
장맛비의 상처를 보듬고 살지는 못했다
자연의 법칙
신(神)은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하지 않고
지구 구석구석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잘나고 못난, 못된 사람까지 선택하지 않고
용서를 하며 은혜를 무한으로 베풀지만
인간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사람을 입맛에 맞게 선별하여
씹기도 하고 뱉기도 한다
자연은 그 나름대로 원칙이 있다
철칙에 벗어나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자연은 인간을 협상 대상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자연이 주는 경고에 대응하는 길만이 최선이다
흑기사 가족
가족이라야 단출하게 두 식구뿐이다
새끼를 간절히 원하는 불임부부이던가
그게 아니면 아마 부부는 아닌 것 같다
국제자연보전연맹 국제보호종이며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228호이자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2급인 흑두루미
2015년 첫 월동을 시작한 지 6년째
가족은 해가 바뀌어도 항상 더 늘지 않고
세종시 장남 평야에서 월동 하고 있다
흑기사 삶터 환경은 매우 보기 민망하다
보호종인 흑두루미가 서식하고 있는 곳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매우 최 악조건이었다
당초 보전하기로 약속했던 보호 농경지는
인간의 욕망으로 반 이상 빼앗기게 됐다
대형 덤프트럭이 수시로 흙을 파서 나르며
당장 이곳을 떠나라는 듯 공사가 한창이다
주인은 이사도 못 갔는데 공사만 절정이다
하고 싶은 일하며 살았다
돈이나 명예를 동행자로 선택하여
성공의 길로 가는 방법만을 골라서
달려가며 살려고 노력하진 않았다
착한 것을 보면 그냥 좋은 줄 알고
내 친구처럼 삶의 가치를 찾아내
이웃하며 행복의 바른길로 걸었다
좋아하는 일 즐겨 하며 살아왔고
이 세상 언제 떠나더라도 후회 없이
한 세상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았다
가을 끝자락쯤
많이도 걸어왔다
잠시 예 멈춰 서서
지나온 계절과
당장 맞이 할 겨울을
축복으로 받아들여야겠지
봄날은 위대했다
마른 가지에서 꽃이 피고
알에서 노란 병아리가
얼음장이 녹아내려
냇물이 강과 바다로 흐르는
지상의 활기찬 나무와
온갖 생명체들도
맑은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남쪽 먼바다에서 폭풍우가
낯설지만은 안했다
우리는 겸허히 받아들인다
계절의 순환과 세월의 새김을
낙엽이 다 지고 나면
눈이 내리고 움직임이 멈추고
겨울 속에 나도 갇혀 있음을
놀이터 도둑이래요
놀이터에서 오징어 게임을 하고 있을 때
한 어른이 어디에 사는 애냐고 물었어요
나는 옆 사슴 동에 산다고 말했지요
그런데 왜 사자 동에 와 놀고 있느냐
남의 놀이터에 와 놀면 도둑인 거 몰라
핸드폰도 제 자리에 놓고 따라오라 했어요
나는 말도 못 하고 무서워서 쫓아갔어요
너희는 커서 아주 큰 도둑이 될 거라며
경찰 아저씨한테 큰 소리로 전화를 했어요
너무 무섭고 큰일 났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평소 귀가 시간이 늦은 아이가 연락 두절
몇 시간 후에야 경찰한테서 전화가 왔다
신고가 들어왔으니 와보셔야 한다고 했다
통보를 받고 도착한 부모를 반갑게 맞으며
아이는 서러움에 벅차서 흐느끼며 울었다
아이를 진정시켜놓고 경찰에 물어보았다
입주민대표가 사는 단지의 놀이터에서 놀던
타 지역 어린이들만 골라 주거침임 죄명으로
도둑놈은 아니지만 도둑과 같은 짓이라고
관리실에 잡아놓고 경찰에 신고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기물 파손한 정황은 없었지만
사슴 동 아이가 사자 동에 와 노는 행위는
무단 주거침입죄에도 해당 된다는 주장
자기 나름대로 논리를 펴는 입주민대표
타 단지 아파트 놀이터에 와서 재미있게 논
우리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는지 어른들은
설득력 있게 명쾌한 설명을 못 해주고 있다
놀이터에서 놀았다고 어떻게 도둑으로 모냐
아이들을 강제로 데려갔으니 납치 아니냐
놀이터의 주인은 아이들일까 입주민대표일까?
빌려 쓴 몸
오늘도 새벽같이 박차고 일어나
이를 닦으며 거울을 들여다보고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인물인 양
착각 속에 하루를 믿어도 보고
기상부터 잘 때까지 시간과 싸우며
군중 속에 파도 타듯 떠밀려 가다
온갖 세파에 부딪히며 살아가면서
힘과 열정을 쏟아부었지요
매칼없이 달려온 레일 같은 세월
목적지가 이제 좀 보이시나요
당신이 바라던 곳에 이르렀나요
의지와 전혀 다르지는 않나요
여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와
앞을 바라보고 뒤를 돌아봐도
잠시 빌렸다가 돌려줘야 할 것뿐
진정으로 내 것은 하나 없네요
좋은 인연으로 우리들 만났다가
언젠가는 뭉게구름 흩어지듯
풀어놓아야 할 욕망과 의지
빌려 쓴 몸통마저 반환해야 할 판에
퇴원 이후
칠십 사 년을 별 탈없이 살아오면서
내 몸에 칼을 들이대 수술받는 일은
난생처음 있는 사건이었다
그것도 1년에 2번 씩이나
감기 몸살이나 혈압약 정도를 타려고
동네 병원에는 1달에 한 번 정도
들락거린 적은 혹간 있었지만
대학병원에 입원해 수술받기는 처음이다
3월 초에는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오른 손목이 탈골되어 수술했고
8월 초에는 콩팥에 돌덩이가 있어
다시 배를 뚫고 캐어냈다
노년의 삶은 병과의 전투로 시작된다
이제 내 몸도 쓸만큼 썼으니
곳곳에 생각지도 않은 고장이 나
불시로 겁박을 하는 것 같다
젊고 활기차게 매일을 살아가는 이들
나도 한때는 분명 그랬었는데
지금부터는 얼마 남지 않은 여생
건강이나 챙기며 착하게 살아가야지
항상 고맙습니다
존재의 씨를 뿌려주신 우리 조상님
그 신비로운 혈육의 씨를 싹 틔워
자손으로 꽃 피워 열매 맞게 해주신
부모님께 나 성인 되어 감사드리며
같이 만나 힘든 길을 별 투정 없이
따르며 동행하고 있는 아내가 고맙고
내가 가장이 되어 배정받은 아들딸들
며느리와 사위들과 어린 손주들이
그리고 형제, 자매 일가친척 모두가
항상 하늘 높게 고마울 뿐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순환하는 계절이
철칙대로 철 따라 변하는 산과 들이
항상 졸졸 흐르는 생명수 시냇물이
가족처럼 사는 지구 가족 들짐승과
하늘을 나르는 날짐승들이 고맙고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비가 고맙고
흰 눈 쌓인 울창한 숲이 고맙습니다
자연에 묻혀 포근함을 느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 여행 다닐 수 있고
눈 앞에 펼쳐지는 현상이 고맙습니다
삶을 이어가게 해준 직장에 감사하고
나와 인연을 맺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조건 없이 믿어주는 친구들이 고맙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생의 공간 안에서
은혜와 사랑을 흠뻑 받으며 살아온 나
세상은 고마움과 감사함의 연속일 뿐
가진 것 별로 없어도 잠잘 수 있고
배고프지 않게 삼시세끼 거르지 않고
여기까지 행복하게 살아올 수 있음에
머리 조아려 감사드리며 살아갑니다
18
제 2부 : 이장님 말씀은
고마운 꿈
어제 선생님 꿈을 꾸었어요
환상적으로 짜릿했어요
내일 또 다시 꾸고 싶어요
꿈은 꿈일 뿐이지
그래도 참 고마운 꿈이네
나도 혹시나 내일 기다려볼까?
공(功)
품에 넣지도
꺼내지도 못하는
중심점은
완벽한 원을 낳는다
둘러처진 생울타리
쏟아지는 햇살
따라서 도는 지구
스며든 의미(意味)
사랑의 문(門)
댐은 닫아둔 수문을 열어야
죽은 물도 살아나 생물을 살리고
인간은 사랑의 문을 열어야
깨끗한 피로 영혼을 더웁힌다
인간의 육신은 심장 하나로도
거뜬이 움직일 수는 있지만
양심의 혼불까지 밝히려면
사랑의 문을 확, 열어야 한다
이장님 말씀은
색시야 진짜 아다 아니지?
나 진짜 오리지널이라고 하던데
누가 색시를 천연산이라고 판정 했는데....
결혼식 전날 밤 이장님이 먼저 체크해보시고
나야말로 전혀 손이 타지 않은 동정 그대로랬어
그랬구나, 이장님 감정평가, 그건 틀림없어 .
해와 달
가치는 따지지도 않고
주군의 의사만 쫓아다니는
행복은 내가 스스로 찾지만
행운은 운명이 구해서 준다
지혜가 어리석음에 가리듯
해는 달에게 빛을 내주고
달은 몸으로 해를 막는다
해와 달을 인간은 쫓아간다
인생은
연어는 흐르는 물을 거슬러
천 길 높이 폭포도
포효하는 강과 바다도
삶과 죽음을 무릅쓰고
고향 찾아 안식에 들지만
인생은 지나온 세월을 찾아
젊음의 고향을 거슬러
과거로 역주행하지 못한다
다만 힘차게 달려온 세월
추억에 싣고 앞으로만 흐를 뿐
유일한 진실
어른과 어린아이가
싸워야 할 일이야 뭐 있겠나
전쟁 후의 명 심판은
애보다 못한 어른이 안 되게
판결을 내려야 한다
열에서 하나를 빼면
셈법으로는 아홉이지만
아니라고 우기는 아이와는
싸워 봤자 어른이 지고 만다
셈법의 정답을 밝히는 것만이
유일한 진실이 아니라면.
안 씨와 맹인
추운 겨울밤이면 남의 집 굴뚝을 끌어안고
낮에는 장터를 돌며 구걸하다 끼니 때우며
힘겹게 하루하루 살아가던 앉은뱅이 안 씨가
어느날 맹인을 만나 동병상련의 아픔에 겨워
둘은 끌어안고 울면서 동거동락 하기로 했지
맹인이 앉은뱅이를 업고 장터에 나타나면
서로 돕는 모습을 좋게 본 시장 사람들은
두 사람에게 넉넉한 인심을 베풀어주었지
이렇게 협력하며 비록 구걸하고 살아가지만
따로따로 살 때보다는 훨씬 행복해 보였어
몇 년을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가 했더니
안 씨는 잔꾀가 생기어 맛있는 음식만 먹고
맹인에게는 조금씩만 맛보기로 주고는 했지
그 후 안 씨는 점점 비만, 맹인은 쇠약해졌고
추운 겨울밤에 두 사람은 논두렁길을 가다가
맹인이 넘어지자 안 씨도 벼랑에 추락사했지.
왼손의 말
우리 관계는 형제인지 동포인지
형제라면 쌍둥이임이 분명하고
혹, 동포라면 피를 나눈 의형제?
한 부모 밑에 한날한시 태어나
칠십몇 년을 밤낮으로 동행하며
가면 같이 가고, 서면 같이 서고
앉으나 서나 눕거나 잠에 들어도
떨어져 사는 일은 생각도 못했지요
서로가 하는 일과 평가가 달라도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형님처럼.
식구들 중에서 가장 부지런하게
까불지 않고 선배님처럼 모시며
다섯 손가락 돌보며 살아왔는데
봄바람 심하던 어느 날 오른손 형이
사고를 크게 치고 깁스에 갇힌 날
나에게 모든 일거리만 넘겨젔지요
온 세상이 아무리 메말라간다 해도
권리가 없는 의무만 짊어진다 해도
우리는 투정 한 번 하지 않는 동포
나는 행복합니다 함께할 수 있음만도.
도둑과 형사
당신의 진짜 직업은 무엇인가요
남들 다 잠들었을 때 근무하는
빈부격차 해소 사회운동가이지요
훔치는 사업을 단독으로 했다고요
동업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나요
세상에 믿을 놈이 어디 있어야지요
작년엔 부인도 집을 나갔다던데요
다른 아내를 대신 훔쳐 오면 되지요
당신도 쉬는 날은 있어야지 안 나요
잡혀 온 날부터가 감방 휴가이지요.
딸 생활기록부에 아버지 직업란에는?
귀금속 이동센터 운영자로 쓰여있지요
센터 운영 중 가장 가슴 아픈 일은요
이 목숨 다해 힘들게 입수한 보석을
팔기 전에 아깝게 도둑맞았을 때이죠
이익은 못 봤지만 본전은 한 셈이지요
복역 후는 어떤 직업으로 바꿀 건가요
배운 것이 도둑질밖에 전혀 없는데요
앞으로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바늘 도둑 기초부터 심화학습 소도둑까지
일생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업성과는?
물방울 다이야반지를 훔쳐 TV에 나왔지요
실수로 잡혀 와서 주인과 대질심문 중에
고급공무원인 주인은 선물로 준거라네요
세상에 그리 인심 후한 사람 처음 봤네요
성실하게 진술해주니 조서는 좋게 써줄게요
형사님 참 쿨하네요 제가 훔친 것 중에서
값나가는 것으로 이 은혜에 보답하겠어요
코로나19로 세월이 거꾸로 돌던 어느 날
도둑을 취조하는 형사와의 대화도 겉돌고.
인도 암소
소를 신처럼 모시는 흰도교의 나라
인도의 하리아나주 파리다바드 큰 도로에서
떠돌이 소 한 마리가 차량에 부닥쳤다
병원으로 옮겨 엑스레이와 초음파 검사
진찰을 받은 암소는 실신한 상태였고
임신으로 배는 부풀어 산처럼 불룩하였다.
입원한 산모는 자신의 배를 발로 차며
고통을 호소하자 4시간에 걸쳐 수술을 했다
위장에서는 소화되지 않은 플라스틱 조각과
구슬, 바늘, 동전, 유리, 나사 등의 쓰레기
도시의 버려진 쓰레기를 음식물 대용으로
끼니 하며 출산을 준비해왔던 도시의 암소
의료진은 뱃속의 쓰레기 75k를 제거하고
수술로 출산을 도왔지만 새끼는 숨을 거두었다
산모 배 속에서 자랄 수 있는 새끼의 공간을
쓰레기가 빼앗아 아기는 죽었음이 틀림없다
엄마 소 역시 3일 후 새끼 따라 죽었다
신성시하던 소의 삶은 너무나 천박했다
매미처럼
오늘 내가 이 세상 걱정을 다 해서
엉켜있는 근심이 조금씩 풀린다면
근심 걱정을 가질 연유가 있나요
투정을 부려 내 불만이 해소된다면
맘에 안 차는 일에 참견도 하겠지만
나와 그대의 마음만 아파 절여오고
죽도록 싸워서 일만 잘 해결된다면
코피 터지며 쉬지 않고 싸우겠지만
몸과 마음에 큰 상처만 남겨 놓으니
슬프게 울어서 모든 일이 풀린다면
밤낮 가리지 않고 매미처럼 울겠지만
노랫말로 듣고 즐기니 어쩌자는 거야
야인시대
한 방송국의 드라마 방영 시청률이
하루하루 산처럼 치솟고 있을 때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들이
백바지에 챙이 넓은 모자를 눌러쓰고
중앙에서 여러 명의 주먹을 거느린
주인공의 얼굴을 내 사진으로 바꾸어
학교 게시판에 올려 화제가 되었었다
교실에 들어가니 모두 기다렸다는 듯
요즘 인기 드라마 야인시대 주먹의 왕
김두환에 대하여 이야기 좀 해달라며
수업에 들어갈 생각 없이 생떼를 썼다
선생님 고향이 같은 홍성이시지 않아요
김두환 국회의원 후보를 따라다니면서
선생님이 유세 원고를 써 주셨다면서요
나이 차이로 봐서라도 말도 안 된다며
극구 부인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 동료 교사가 부풀려서 한 농담조가
때에 맞추어 입소문으로 오고 간 모양이다
고향에서 국회의원 출마해 차점 낙선을 한
김두환 유세장에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었다
만해 선생님 댁
내가 태어난 홍성 금국리에서
저울산 넘어 옆 동네 성곡리에는
첫째 아기 낳자 미역 사러 간다며
집 나간 후 중이 되어버린
그 후 한 번도 집엔 오지도 않은
아주 고약한 아저씨가 살던
낡은 초가집만 있다고들 말했다
동네에서 좀 박식하다는 박 씨는
가정보다는 종교가 그보다는
나라가 더 소중하여 우선적이라는
알 듯 말 듯한 말을 해주시곤 했다
나는 도대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며
고개를 넘어 그 동네를 들락거렸다
조금씩 철이 들어 알게 된 것은
승려 시인이며 위대한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가터이었다
님의 침묵이나 알 수 없어요 등의 시를
책에서 찾아 마음속으로 찬찬히 읽으며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우쳐왔다
큰 죄를 지으며
펑퍼짐한 몸매인 70대 아내에게
몸매 끝내주는 처녀 같다 빈말했고
근근이 먹고사는 일용직 친구에
헬스장 같이 다니자고 권유했고
연립주택 세 들어 사는 주부에
새 아파트로 왜 이사 안 가느냐
3수로 전문대 간 자식 둔 부모에
가짜 표창장과 인턴 하나 못 구해
자식들 sky대 구경도 못 시킨 채
의학 .법학전문대는 꿈도 못 꾸고
노총각 노처녀 자녀와 사는 부모에
독신 남녀 분간도 하지 못하면서
손자ㆍ손녀 몇 명 두었냐고 물었고
퇴직 후 자식에 용돈 대주는 부모에
자식 대기업에 취직했느냐 물은 죄
오늘도 큰 죄를 지으며 사는 우리들
울보 노시인 박용래
계룡산 가을 갑사의 저녁 정취는
젊은 노시인 박용래의 울음바다다
토박이 윤석산 시인이 자리를 펴자
반포 이장희 시인이 흥을 돋우고
한성기 시인이 펼친 민화투 판으로
젊은 시인들이 대부분 모여들지만
막걸리 잔에 시를 탄 박용래 시인은
깊어가는 밤을 시로 부등켜 안고
유성 터미널에서 천안 쪽으로 가는
금남 여객 버스 뒷좌석에서 졸다가
딸이 짜서 만들어준 털모자를 쓰고
앞문 쪽으로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며
버스로 오르고 있는 늙은 젊은이를
끌어안고 마구 흐느끼며 울었지
이렇게 너를 여기서 만나 반갑다고
승객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조치원역 앞 허름한 막걸리 집에서
현지인 강금종 소설가와 장시종 시인을
불러내 주어라 마셔라 어깨동무하고
막걸리 사발에 눈, 콧물이 다 빠저도
몇 번이고 부딪고 또 부딪치며
볼과 볼을 비벼대며 부등켜안고
젊은 노시인은 춤도 추며 울었다
창밖에는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데
시인 장관 정한모
얼마나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가?
충절과 충효의 고장인 충남 부여
석성면 석성리에서 1923년 출생하신
참교육자 , 석학, 문단의 대들보로
문화예술원장과 문공부장관도 하시며
순수문학인 최초로 시를 쓰신 관료
신문 잡지 등에 좋은 작품 보이셨고
구드래조각공원에 정한모 시비가 있지
문화의 꽃이 피는 아름다운 한국
앞으로도 훌륭한 시인 정치가들이
거친 세상, 어려운 나라를 가꾸며
시 쓰듯 깨끗하게 다독여만 준다면
우리 순박한 민초들은 작은 비바람에도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존심 곧게 세우며 성실하게 살 턴데
희망이 소원에만 머물까 걱정도 되네
교과서에서 ⸲나비의 여행⸴ 이란 시를
배우며 시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다
80년대 초반 30대에 월평동의 예식장
최원규 시인 여혼의 축하 연회장에서
처음 인사드렸더니 손을 꼭 잡으시며
나의 졸 시 한 구절을 줄줄 외우시며
칭찬으로 사이다 한 잔을 따라 주셨어
선배 문인들도 놀라며 박수를 쳐주었지
왜 머리를 숙이고 사시나요
삼천리 금수강산 두메산골에서
파도치는 동해 서해 남해에서
등이 굽고 손발이 무디어져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피땀 흘려
배부르게 쌀밥 먹을 날 꿈꾸며
부르튼 입술 깨물며 견디어 온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 누나들
인형 만들다 생머리 잘라 팔고
가발 공장 취직하여 받은 돈으로
구로, 구미, 공단에서 번 돈으로
굶주린 동생들 공부도 시키며
그렇게 무섭던 보릿고개 넘겼고
탄광 광부로 독일에 간 아버지
간호사로 이국만리 고향 떠난 누나
총알이 빗발치는 베트남 전선에서
모래 폭풍 몰아치는 중동 땅에서
피땀 흘린 대가로 번 돈 저축해
경부 고속도로를 최초로 건설했고
낫과 호미나 만들던 대장간에서
허허벌판 빈 땅에 제철소 세우고
외국자본에다 기술까지 수입해다
한강의 기적도 만들어 낸 억척들
우리들의 할아버지 아버지 형님들
찬란한 산업화를 일구어낸 역군들
라디오조차 만들지 못하던 코리아
TV, 냉장고, 자동차, 조선산업까지
원자로 건설, 반도체 ,통신 핸드폰
세계 1등 제품들 만들어 수출하여
세계 10위 수출, 12위 경제 대 강국
주인공은 기업인과 산업 역군들
허리 한 번 못 피고 힘겹게 살아온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역사의 주인공이신 누나, 형님들
5천 년 나라의 가난을 물리친 님들
국가 발전에 걸림돌 된 적 있나요
왜 지금도 머리를 숙이고 사시나요
18
제 3부: 행복은 비워둔 자리를 찾는다
육(6) 구(9)
두 숫자를 거꾸로 놓고
내가 보면 분명 9이고
네가 보면 6이지만
위치를 바꿔 바로 보면
입장도 함께 돌아서서
내가 6이고 너는 9이다
다시 숫자 둘을 엎어뜨려
위와 아래로 교차해 놓으면
정답은 하나로 무한대 극치다
기억은
어리석게도 원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고민은 한숨으로 영혼을 말아먹는다
핵심을 파악, 해결책을 찾아 실행하자
그대의 과거를 고통스럽게 하는 일에
기억은 항상 앞장서 친절을 베풀지만
행복으로 밀어주는 일에는 뒤로 뺀다
고민을 하든 안 하든 결과는 똑같은데
기억은 꼭 필요할 때 우리 곁을 떠난다
답이 없는 문제는 내지를 말고 폐기하자
착각
신부님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요
저는 하루에도 여러번 씩
거울을 보고 또 보면서
저의 미모에 자만하며 우쭐했습니다
제 교만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어떤 중년 부인이 고해성사를 했다
생각은 죄가 아니고 착각일뿐이지요
혹간 착각을 죄로 착각하는 분도 있지요
자매님은 걱정 안 하셔도 되겠네요
부인의 고해성사를 경청한 신부님은
칸막이 커튼을 조금 들어 올려
그녀를 훔쳐보며 이제 안심하시라고 했다
바다 소식
싱싱한 생선이 있어요
동해 바다에서 방금 잡아온
펄펄 뛰는 생선이 있어요
어씨네 생선가게에는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허름한 차림의 한 노인이
생선 한 마리를 쿡쿡 찔러보며
코에 대고 냄새도 맡아보자
생선가게 주인 어씨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왜 멀쩡한 생선을 만지며
냄새를 맡아보고 야단법석이오
노파는 낮으막한 소리로 말했다
냄새를 맡은 것이 아니라 귀에다
고향 소식을 잠시 물어 좀 봤소
주인 어 씨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래 생선이 뭐라고 말하던가요?
원폭을 피해 일본 바다를 등진 지
여러 해 지나 바다 소식은 모른다고
그래도 내가 일본어는 좀 알아듣거든.
돌덩이
애지중지 쓰다듬으며 살아온
내 뱃가죽에다 터널을 뚫고
굴삭기를 들이댔다
칠십 평생 처음 시도한 큰 공사
커다란 돌덩이를 발굴해 냈다
다이아몬드 비슷한 보석이나
하다못해 구리 부스러기로도
환생하지 못한 놈이 겨우 숨은 곳
바람도 공기도 비껴가는
낡은 오줌통을 택했단 말이냐
몸통이 크거나 작거나 간에
자기 몫이 요긴하게 주어져
귀염받는 애들도 허다한데
겨우 1.5cm 돌덩이 무기로
170cm와 맞장뜨려한 겁 없는 놈
사는 방법
어차피 이 세상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한 인생
세월 탓하며 마음 상해봤자
나만 가슴 아프게 사는 것
남에게 피해 안주고 내 속 편하면
나도 잘 사는 사람 아닙니까
사장님이라 하루 세끼 더 먹고
사원이라 한두 끼 거르는 거 아니고
박사님이 많이 배웠다고 해서
잘사는 법에 박식한 것도 아닌데
작은 욕심 버리며 살면 될 것을
하루하루 발버둥치며 살아들가는지
뭐가 그렇게 부러운 것이 많고
왜 갖고 싶은 게 그리 많은지
하루에 돈 몇푼 벌자고 남 울리며
마음에 상처 입고 사는 사람 보다
몇 천원 벌면서도 고마운 줄 알고
마음 편히 사는 방법이 최선 아닌가요
침묵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새싹이 돋아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까지
기다리는 농부의 인내와 같이
고요한 물은 깊이 흐르고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듯
세상이 시끄러울 때
침묵하며 얼마간 기다려 보면
잊힌 소중함을 찾을 수 있다
말은 1.2년이면 다 배우지만
침묵은 평생을 배워야 안다
침묵 속에서 참 진리를 찾는다
세상 사는 맛
그때가 나에게는 참 좋은 때였지
철이 통 안나 아무것도 도통 모르던
누가 이렇다 하면 그런 줄 알고
내가 바보인 줄도 모르며 살아갈 때가
부모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냥 그런 줄 알면서 살아올 때가
남부럽지 않게 넉넉한 집에 살면서
넓고 편안한 침대에 누워 잔다 해도
언제나 총천연색 꿈꾸는 것도 아니며
기름진 음식 마음껏 먹으며 산다고
윤기 나는 인생의 삶은 아니지요
남들도 다 그럭저럭 살아가데요
세상사 다 그렇고 그러네요
항상 만족스럽게 웃던 입가에도
언젠가엔 씁스름한 미소만 자리잡고
피해만 보며 살아간다던 내 손에
만원 짜리 몇 장 들고 만세를 부르는
세상 사는 맛 그저 그렇고 그렇지요
어디 없소
쉴 때는 세상 모든 것을 잊고
일할 때는 일에만 전념하다가
매사에 자신을 알고 겸손하며
앞장서던 길 후배에게 터주고
욕심없이 물려줄 수 있는 사람
자신에 주어진 몫에 대하여
투정부리지 않고 소유하다가
피해를 타에 입히지 않으면서
타오르는 벅찬 욕망을 스스로
자제하며 잠재울 수 있는 사람
삶을 성실히 가꾸며 살아가다
개구리 올챙이 때 생각 잊지않고
잘못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람
하던 일 후배에게 맡기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사람
매사에 긍정적인 마음으로
주어진 현실에 언제나 감사하며
불쌍한 이웃에 지갑을 풀 줄 알고
제일 먼저 남을 생각하는 사람
마음씨가 화롯불 같은 사람
행복은 비워둔 자리를 찾는다
내일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 같다는
오늘의 쓸데없는 걱정은
단 한 번만 하고 이제 끝내자
나 모르는 사이 일어났던 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가능성이 희박한 일들은
말끔하게 잊어야 행복이 온다
변제 불가능한 생각은
모두가 쓸데없는 걱정이다
망각의 자유야 진정
기술이 아닌 행복이다
이젠 잊어버려도 좋은 것들만
마음 깊이 묻고 꺼내려는 사람들
우리는 잊어야 가벼워진다
행복은 비워둔 자리를 찾는다
유리 벽 속의 연인
그대가 잘못한 일이 있에도
입 밖으로 발설하지 않다가
필요할 때만 활용하려는 그녀
친구의 단점을 모두 알고도
두 마음 중 오직 하나만으로
단지 칭찬만 일삼는 그대
갖고 싶은 것 많이 소유하고도
만족을 모르고 욕심만 부리며
불만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녀
자신보다 강해 보이는 사람엔
비굴할 정도로 머리 굽히며
약해 보이면 목줄 세우는 그대
나쁜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녀의 마음을 훔쳐 가진 후
적절히 양심을 팔아먹는 그대
일상사 필수, 의식주 생존에만
삶의 최우선 가치를 가둬놓고
영혼의 평화를 찾지 못한 그대
김두환 지프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홍성 내 고향 옆 동네에는
우리 가족이 사는 초가삼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기와집을
부러움의 눈으로 신비롭게 바라보았다
백야 김좌진 장군의 집이라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인 것 같다
친구들과 하굣길에 지프 한 대가
먼지를 날리며 한길을 지나갈 때
코찡찡이들은 뒤를 따라 마구 쫓아 달렸다
시골에서는 보기 힘든 지프였다
갑자기 차가 후진하더니 나만 골라 태웠다
선택받지 못한 나머지는 부러워 차 뒤를 쫓고
왜 나만 찍어서 태웠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퉁퉁하지만 키는 별로 크지 않은 신사
무뚝뚝한 쉰 목소리의 그 아저씨는
고향에 돌아와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2등으로 낙선한 김두환 주먹왕이었다
지구 사랑
인간이 조금 양보한 풀꽃의 자리
인간이 조금 배려한 동물의 지위
인간이 조금 아껴 남겨준 먹거리
인간이 조금 낮춰 보인 그 눈높이
인간이 조금 덜 챙겨도 좋은 공간
희망이 꽃피는 이 지구의 곳곳에
인간의 자비로운 눈빛과 그 손길
연약한 생명에 큰 힘이 되어주고
꽃들과 더불어 사는 벌 나비처럼
가족 되어 공생하며 사는 지구사랑
귀향 유감
유년의 신비로운 꿈과 그리움
소년과 청장년의 정겨운 추억이
눈에 삼삼 어리는 마음의 고향
그리던 엄마의 품에 젖어보네
까치발하고 서면 넘어갈 듯
담쟁이넝쿨로 뒤덮은 토담 길
초집 위로 다가온 눈앞의 안산
코흘리개 정겨운 친구들 만나
풋고추 따다가 고추장 찍어
입맞춤하던 막걸리 통사발
농사일 밖에 세상 물정 몰라도
불편 없이 살아온 순박한 이웃들
동네 한 바퀴 하늘 한 번 쳐다보며
추억 찾아 오가다 만나는 친구들
어림짐작으로 황토 바다 위의
부표를 콕 찾아낼 수는 없지만
두부모처럼 반듯반듯 다듬어진
텃밭과 다랑이 논둑 낯익은 길
동심과 자연이 정겹게 어우러져
추억의 꿈을 이루던 그림 같은
풍경은 어디로 산화돼 날아갔나
정든 고향집 ,볼때기 살 같은 땅
정성껏 찾던 조상 묘까지 잃은 채
초등학교 코흘리개 친구들 하며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이웃사촌과도
봄바람에 민들레 씨 날려 흩어지듯
인근 도회지나 깊은 산골로 날아가
튼튼히 뿌리내리며 잘살고 있는지..
4명의 아내
간 큰 남자가 일생을 아내 4명과 함께 오순도순 평화롭게 살고 있었지요
첫째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나 깨나 곁에 두고 살아가다가 다시는 못올 길을 떠나며 동행하자고 했지만, 아내는 고개를 돌려버렸지요 남자는 큰 충격을 받았고요 육체는 아내와 같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함께 살아왔지만 남편이 죽으면 아내처럼 생각한 이 마음을 함께 데리고 갈 수는 없군요.
상대방과 피투성이가 돼 싸우면서 쟁취한 아내이니 만큼 사랑 또한 최고였던 둘째 아내는 든든하기 그지없는 아성과 같았지요. 둘째에게도 같이 떠나가자고 했지만 역시 거절했지요 전리품처럼 힘들여 차지해 든든하기가 성과 같았던 둘째 아내인 재물도 나와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하네요.
마음에 딱 맞아 항상 같이 어울려 다니며 즐거워했던 셋째 아내도 떠나는 길에 성문 밖까지 배웅해 줄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같이할 수 없다고 하네요 마음이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던 일가 친척, 친구들도 성문 밖까지는 따라와 주지만 끝까지 함께 가 줄 수는 없지요 세월이 지나면 조금씩 나를 잊어버릴거고요
넷째 부인에게는 평소에는 별 관심이 없어 하녀 취급을 하며 온갖 굳은 일은 도맡아 했지만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 순종적인 여자이었지요 아내는 남자가 가는 곳이면 지옥이라도 따라가겠다고 말했지요 넷째 부인인 영혼만을 데리고 머나먼 나라로 떠났네요
살아있는 동안은 별 관심도 보여주지 않고 궂은일만 도맡아 하게 했지만 죽을 때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넷째 부인 마음뿐이네요. 어두운 땅속 밑이든 서방정토든 지옥의 끓는 불속이 던 나와 같이 가는 아내는 마음뿐이네요
생전에 마음이 자주 다니던 길이 악행의 자갈길이었으면 늘 다니던 그 자갈길로 선과 덕의 밝고 환한 길이면 늘 다니던 그 환한 길로 살아있는 동안 가는 길이 사후의 문으로 함께 들어가는 영혼이 아닌가 보네요
비 질 (Vigil)*
-생애 마지막 날의 만찬
집단으로 발악을 하고 있었다
그 소리는 울부짖음이 분명했다
토사물로 지도를 그린 입언저리
붉게 물든 눈과 얼굴에 난 상처
오물이 까맣게 말라붙은 허벅지
철창 밖으로 내밀고 있는 양다리
하루의 연명은 너무 힘들었다
불과 6개월만 허락된 전 생애
한나절을 굶은 군중 속 허기는
땀방울로 목은 겨우 축였지만
이빨도 온통 빠져버린 상태로
기진맥진해 쓰러져 누워 있었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에 익숙한
동지끼리 살을 부딪치며 실려온
트럭의 여름 칸은 열기로 숨막혔다
이들도 모두 개성을 갖춘 생명체다
운명을 피해 탈출하고 싶은 그들에게
최후의 만찬은 배추, 감자, 호박으로
물과 음식을 주며 고통스런 참상을
인간동물에 환기시키고자 증언하며
죽음을 온전히 마주한 끝자락 인사
돼지로 태어나 짧은 생애를 살다가
주군에게 고깃덩이 한 점을 남기려
도살장에 잡혀온 비인간 동물들에게.
*비 질 (Vigil)*:축산동물들 죽음의 증인이 되는 활동
직업은 대통령입니다
화물차 한 대를 정지시킨 교통 경찰관은
교통단속에 걸린 운전기사에게 정중하게
당신은 교통법규를 위반했습니다
기사는 공손하게 미안합니다
운전면허증을 좀 보여 주십시오
옷을 새로 갈아입느라 깜빡 잊고
면허증을 안 가지고 나왔네요 죄송합니다
면허증은 항상 소지하셔야 하지요
앞으로는 명심하여 실천하겠습니다
교통경찰은 수첩과 펜을 꺼내면서
기사님의 이름과 직업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름은 라몬 막사이사이고 직업은 대통령입니다
교통 경찰관은 깜짝 놀라서 부동자세로
각하! 제가 눈이 나빠서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각하는 교통법규를 위반하셨으므로
법에 따라 정해진 범칙금을 내셔야 합니다
물론 당연하지요 다음부터는 조심하겠습니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한복판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한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은
일반 시민과 똑같이 범칙금을 납부하였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러한 대통령을 기다린다.
충주호
어깨동무한 구담 ,옥순, 도담 삼봉은
까치발하고 호수 밖 세상을 구경하고
꼬마 바다 옮겨놓은 맏형격인 큰 호수
장회나루터에서 단양팔경 시심을 싣고
베트남 하룡베이와 꿈속에서 악수하며
청풍문화재단지, 랜드에 와 풀어놓는다
오 솔레미오 내륙의 바다, 충주호수여!
기름진 땅, 울창한 숲속 깊은 계곡
빼어난 경관을 품고 자라온 호반
머물고 싶은 연 내륙 관광명승지
월악산, 송계계곡, 구인사, 단양팔경
고수동굴, 노동동굴, 수안보온천
충주, 단양, 제천 3개 시 군 땅에
젖줄로 병풍 그려 펼친 금수강산
삼면이 바다로 강보에 둘려 쌓인
한반도의 허파, 대한민국 중부권
열일곱 형제 중 선택받고 태어났어도
바다가 없어 목이 마르던 충청북도
조선조 퇴계 이황, 토정 이지함 선생
신선 김홍도, 정선이 일찍이 찾아와
점찍어 놓고 놀다 간 여덟 폭 산수화
식장산
서쪽에는 보문과 북에는 계족산 아우가
아침 해 처음 맞이하는 동쪽에 우뚝 선
대전시에서 제일 높은 식장산(623.6m)
계룡산, 대둔산, 서대산을 이웃으로 두고
고산사, 개심사, 식장사 등 유명 사찰과
한때는 대전시민의 유일한 식수원이었던
벚꽃의 명소인 세천 저수지가 터를 잡은
대전 동구 판암동, 세천동, 산내동 일원과
충북 옥천군 군서면·군북면에 뿌리를 두고
대전의 터주 산으로, 자연생태보존림
골짜기 계곡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
노루, 살쾡이, 너구리, 박쥐 등 포유류
파충류, 양서류 등의 보금자리, 생태의 보고
울창한 숲, 많은 유적과 전설이 담긴 산
서북으로 대전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동북으로는 대청호의 푸른 물도 보이네.
아기를 둔 효심이 지극한 젊은 부부가
노모를 모시고 초근목피로 살고 있었어
어머니가 드실 고기반찬 한 첨이라도
올리면 어린 아들이 먼저 집어 먹었어
아이가 효심을 가로막는 장애라 생각해
땅 밑을 파고 묻으려고 숲속으로 갔지
샆 끝에 걸리는 그릇 하나를 발견 했어
부부는 그릇을 챙겨 집으로 돌아 왔어
아이를 살리라는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빈 그릇에 매일 곡식이 가득 차는 거야
비우면 또 차고, 비우면 또 가득 차고
부부는 노모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다가
노모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그 그릇을
다시 산에 묻었다 해서 식장산이라 하고
백제 시대 성을 쌓고 군량미를 저장한
먹을 것이 많이 감추어져 있는 산이지.
19
제 4부 :코로나 세계 여행
마음의 문
댐은 닫아둔 수문을 열어야
죽은 물도 살아나 동식물을 살리고
사람은 마음의 문을 열어야
따스한 정이 사랑으로 흐른다
인간의 육신은 하나의
심장만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정신은 또 다른 특별한 심장
양심이 있어야 영혼을 지킬 수 있다
시인
사환, 평사원, 사장님도
임시직 정규직 고위직도
농부 어부 상인 공장장도
시 안에서 만나면 다 친구다
시를 읽고 쓰는 일은 시인에겐
계층과 계급 빈부의 차이가 없다
가난뱅이나 부잣집 마님
죄인은 죄를 뉘우치며 새 삶을
깡패는 약자를 도우려 할 때
가슴이 얼음장인 사람도
시를 읽고 쓰면 시인이 되어
가슴이 따뜻해지고 선인이 된다
연약하고 아픈 사람들과
살아 있는 동식물을 좋아하고
권력의 칼 앞에서는 방패로
새 인간과 사물을 재 창조하며
수백 년 좋은 시 남겨 사랑받는
자유인, 철학자가 진짜 시인이다
부지깽이 신세
그래도 한 때는 나에게도
희망찬 재목의 꿈도 꾸었지
부잣집 대들보는 과분하더라도
농가의 석가래는 될 수 있다는
올곧게 아침 태양만 바라보며
반듯하고 길게만 자라온 탓에
남의 몫을 핥는 고양이나 쫓고
개구쟁이 아들놈 종아리나 치는
아궁이 불꽃이 확확 피어나도록
쏘시개 감이나 헤집어도 보다가
막힌 수챗구멍이나 뚫어보려다가
쇠막대에 세월을 넘겨주고 땔감으로
시집 선물
농부가 텃밭에다 배추씨를 뿌리고
땀을 흘리며 밤낮 정성으로 가꿀 때
컴퓨터 자판 위에다 경제성 허약한
영혼의 씨를 심고 시인은 물을 준다
부지런한 농부는 거름을 주며
농약을 뿌려 해충도 막아내지만
순박한 배추밭 주인은 오로지
해와 비에 잠시 맡겼다가 거둔다
모양과 크기와 색깔까지 뛰어난
배추는 상인들 눈에 들어 뽑혀 나가고
벌레 먹고 크기마저 신통치 않은 비품은
상품성 접어둔 인심용 대체품목이다
수요자가 팽개친 등외품 상품을
수확해 인심 쓰며 선사하는 공급자
배추 값도 안 되는 시집이나 만들어
기호성 떨어지는 선물로 내미는 시인
매미 소리
굼벵이가 땅속을 뚫고 나와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펼치며
가로수 위에 새롭게 탄생하며
해탈과 재생을 체험하는 신선
유년에는 캄캄한 지하 속에서
터널을 탈출하는 인고의 7년 후
오직 1달간 세월 맛보기 일생
짝짓기 후 알을 낳으면 운명(殞命)
동족 동성의 소리는 귀를 막고
수컷의 구애하는 사랑의 노래
암컷은 연인의 세레나데만 골라
들으며 달려와 짝짓기를 한다
연인을 부르는 추억의 휘파람 소리
행복했던 유년의 여름밤 매미 소리
마음을 두지 않으면 얻기 어려운
여름밤 행복의 노래, 매미 소리
세태 탓
코코로나19가 전국을 헤매다 대전에 빌붙기까지는
폭풍과 홍수를 몰고 오는 태풍도 삥 돌아서 갔다
대전청사 숲의 공원을 안고 도는 둥지 네거리
서울행 고속버스도 세태에 맞추어 잠시 멈추었다
출퇴근 길, 횡단보도 앞엔 오가는 사람이 꽤 있다
새벽 5시도 안 되었는데 과일 장사 신 씨 아저씨
소형 트럭 덮개를 열고 오렌지와 사과를 진열한다
첫 번째 과일 가게가 열리자 바로 뒤에 느긋하게
통닭구이 계 씨 아저씨 트럭 문도 함께 개시한다
엊저녁 늦게까지 불이 켜있어 트럭이 잘 보이더니
불도 꺼져 움직이지 않고 그 위치에 그대로 있다
자리 몫을 잃을까 봐 몸만 집에 들렸다 오는가보다
그래서 오전은 자리를 차지할 걱정 없이 느긋하고
대신 과일 가게 신 씨 이저씨는 새벽부터 바쁘다
평일에는 과일 가게, 주말이 오면 통닭 가게가
아침부터 점심때까지는 신 씨 아저씨가 신나고
저녁에 가까워질수록 구 씨 아저씨가 바쁘시다
과일 가게 앞에는 여자 손님들이 많이 모이고
통닭구이 가게 앞에는 남자 손님들이 대세다
간혹 어린아이 손을 잡고 와 구이를 기다리다
통닭을 받아 자가용에 싣고 빠져나가기도 한다
코로나바이러스19가 휩쓸고 지난 도시의 거리
과일 가게와 통닭구이 아저씨들은 보이지 않고
마스크 쓴 사람들만 뜸 뜸이 오고 가고 있다
과일과 통닭구이도 온라인 속으로 잠겨버렸다
몫은 이미 주어진 몫과 찾아 얻는 몫이 있다
시간의 몫은 자신이 치열하게 싸워 차지했어도
상황이 잘 뒤집히는 연유는 세태 탓이 아닐까?
세 번째 그녀
세 번째 그녀와의 5년간 동행
신혼의 기분 속에서 늘 살았다
이웃집 젊은 매니어의 소개로
인연을 맺은 후 하루 2시간씩
시간과 장소를 별로 가리지 않고
더웁거나 춥거나 안갯길도 뚫고
이슬비보다는 싸락눈, 함박눈이 더 좋았다
그녀를 철석같이 믿으며 몸을 맡겨놓고
마음까지 몽땅 주며 밀회를 즐겼다
그녀 역시 잘 따르며 주군에 순응했다
첫번째도 두번 째 만남도 아니지만
첫눈에 반할 정도로 빠져들어 버렸다
중매인이 신뢰성 강한 이웃 지인이었고
그 몸매나 신선함이 고희를 넘은 나에게는
너무 과분하게 젊은 상대라 생각이 들어서
신발과 모자, 옷차림도 신경 써야 했다
첫번과 두번째는 꽤나 큰 모임 장소에서
손님인 나에게 은밀히 눈길을 주며 따라와
몇 해를 함께하다 세월 따라 힘도 약해지니
늙은이보다 젊고 힘센 주군 찾아 떠나갔다
봄은 왔지만 봄같지 않게 냉칼스런 봄바람
3월 초 주말을 맞으려 맘 부푼 금요일 아침
집 앞에서 그녀와 말다툼도 없이 한바탕 했다
거리 한복판에 둘이 드러누워 나뒹구려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손이 움직이지 않고
오른 정강이에 피멍울도 확연히 비첬지만
그녀는 훌훌 털고 일어나 집을 나가버렸다
자전거 사고로 손목이 골절된 지 1주일째
병원 7층에서 멍하니 도롯가를 내려다본다
봄을 뒤집고 휘저으며 부르는 유혹을 받으며
나폴레옹 사과
프랑스 소년 사관학교 앞에 있는 과일 가게에는
휴식 시간마다 사과를 사서 먹는 학생들로 붐볐어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보고만 있는 학생이 있었지
가게의 여주인은 가난한 그 학생의 사정을 알고서
수시로 조용히 불러 사과 하나씩을 공짜로 주었어
그 후로 30여 년이라는 세월이 어느새 흘러갔지
여주인은 허리가 굽고 볼품없이 늙은 여인이 됬고
여직껏 그 점포에서 사과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늠름한 장교 한 분이 이 가게를 찾아왔어
사과 한 개를 사서 아주 맛있게 먹으면서 말했지
할머니가 주시는 사과 맛은 예전과 똑같습니다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의자에 앉으라 권하면서
제 자랑 같지만요 우리나라 황제 나폴레옹께서도
소년 사관학교 시절 가끔 사과를 사서 드셨지요
벌써 30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학생은 할머니가
사과를 공짜로 주셔서 얻어먹었다고 들었는데요
군인 양반이 잘못 들었어요 돈을 내 사서 먹었지요
한 번도 그냥 공짜로 얻어먹은 일은 없었어요
나폴레옹 황제가 소년 시절에 겪은 어려웠던 일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어 극구 부인했지
할머니 지금 황제의 소년 시절 얼굴을 기억하십니까?
할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생각만 했지
장교는 갑자기 사 먹던 사과를 의자에 놓고 일어나서
할머니의 두 손을 꽉 잡고 끌어안으며 눈물만 흘렸어
할머니! 제가 바로 그때의 생도인 나폴레옹 황제입니다
30여 년 전에 집안이 가난해서 사과를 사 먹지 못할 때
할머니께서 사과를 공짜로 주신 나폴레옹 생도입니다
사냥꾼인 세월을
세월을 사냥 나가 사냥감이 된 노인이
한세상 온누리를 헤메다가 먹잇감에 좋은
학 한 마리를 찾아내어 총을 겨누었지
학은 자신을 겨누고 있는 줄도 모르고
뱀을 사냥하려고 노려보느라 사냥꾼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냥 할 준비만 했어
비단뱀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제 죽음은 모른 채 두꺼비를 잡으려고만
두꺼비도 매한가지 무당벌레만 견주며
미동도 하지 않고 노려보고 있었지
무당벌레도 진딧물에 정신이 팔려
두꺼비를 의식하지 못 하고 있었지
노인은 어느날 조용히 총을 내려놓고
자신의 걸어온 길 위를 되돌아 보았어
누군가가 자신을 사냥 하려는건 아닐까
총은 볼 수 없지만 이때 그를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는 적 아닌 동행자을 만났지
노인을 조준하고 있는 사냥꾼인 세월을.
약국 앞에서
열 일 제치고
새벽부터 몇 시간씩을
군중 속에서 줄 당기다 끌려가듯
깊은 생각 속에 주위를 담가본다
유모차를 끈 새댁도
휠체어를 탄 할머니도
지팡이에 의지한 할아버지도
움직이는 방향은 반보씩 전진
시민은 아무 말도 없이
마약 봉지 같은 하얀 마스크 두 장을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나왔다
파란 하늘은 노랗게 빙글빙글 돌고
달콤하지도 신기하지도 않았다
칠십 삼 년 만에 맞는 첫 경험은
황당, 그리고 실망, 오직 분노
지우고 싶은 중요 일과이었다
장로님과 호랑이
코로나19의 기세가 온 세상을 뒤흔들 때
장로님 한 분이 청정지역 깊은 산속에서
마스크를 잠시 벗고 구원의 기도를 드리는데
중국에서 달려온 호랑이와 마주치고 말았네요
눈을 감고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드렸지요
어렵고 위험한 위기에서 탈출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마친 후 살며시 눈을 떠보니
장로님 앞에서 호랑이도 무릎을 꿇고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채 기도를 하고 있네요
거룩하신 호 선생도 혹시 교회 신자이신가요?
장로님은 식전 식후 기도도 안하시나요
이제는 꼼짝없이 호랑이 밥이 되었구나
죽을 때 죽을망정 정신 똑바로 차리고
찬송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를 부르다가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장로님도 모르게
'코리나'란 노래, 코리나, 코리나를 불렀지요
Corinna Corinna, I love you so,
무서워서 악을 쓰며 산속이 떠나가도록 큰 소리로
그 후 얼마 후 가슴을 조이며 눈을 떠보니
기도를 하던 호랑이가 슬그머니 뒤돌아가네요
이젠 살았구나 '호 선생 식사는 왜 안하시고'..
호랑이 대답은 아무리 인간과 격리되 살지만
온통 인간 세상에 코로나19가 번지고 있는데
마스크도 안 한 인간 먹거리를 왜 탐하겠나요?
눈먼 전쟁
창과 칼로 상대방을 겨누며
활을 쏘는 삼국시대도 아니고
장총과 수류탄을 빼어들고
적진에 뛰어드는 전쟁도 아닌데
처음에는 중국 우환 땅에서
한국 땅에 살그머니 침략하여
대구, 경북에서 전쟁이 일었고
전국으로 퍼지고 세계가 싸움터다
마스크에 우주복 닮은 복장에
사람을 만나도 손을 내밀지 않고
등을 돌리고 눈맞춤도 피하며
적을 피해 칩거로 동면에 들어갔다
코로나 간호사 24시
소독 티슈 한 장 꺼내서
간호사실 청소 후닥닥 하고
5분 내에 갈아입은 방호복
다른 병실로 바람처럼 달려가
9시 지나 벽 바라보며
컵라면으로 아침 식사
하루가 며칠 같아 마스크도 부족
음압 격리병동에서 방호복을 입은 채
환자 식사와 약을 들고
다시 병실로 향하고
확진자 10명을 돌보는 음압 격리병동
가장 작은 수술복을 집어 들었다
병실 청소할 때는 KF94를 쓰고
확진자 환자복은 세탁해서 쓸 것
환자복은 소독액 분무기로 처리
과거 모습을 찾기 힘들 만큼
간호사실은 그새 자리를 두 번 옮겼다
비좁은 탈의실은 의료진 식사 공간으로
병동 곳곳에서 병상 확충 공사 소리만.
코로나 세계여행
태어난 해는 2019년 겨울
중국의 우환이 출생지다
세계 여행하기를 좋아한 내가
맨 먼저 휘저으며 다닌 곳은
인구도 많고 경계심도 느슨한 곳
인간이 집과 정거장이 되어 준 곳
언론 통제로 진실은 숨겨주는 곳
첫 승전은 의사 리원량 적장 침몰이다
용감한 동지들은 취향에 따라
유럽 대륙으로, 미국으로, 전 세계로
여권이나 비자도 없이 신속하게
비행기에 무임승차 하고 떠났다
내가 좋아하는 곳은 자유분망한 곳
인간들이 초밀접하게 모여있는 곳
가장 혐오하는 나라는 독재국가
대문에 붉은 딱지 붙여놓은 나라다
철썩같이 믿어온 대만과 북한까지
이웃의 홍콩이나 몽골 인도까지도
나를 꺼리며 받아주려 하지 않을 때
한국이 대문은 물론 안방까지 열고
숙식을 제공하며 친구 동반도 허락했다
대구에서의 정착은 신천지의 공로다
인파가 많이 모이는 곳은 나의 삶터
검문이 심해진 한국은 곧 떠나야겠다
작은 비석 하나
삶은 유혹하지만 나는 갑니다
가족과 봄나들이와 단풍놀이도
스케이트를 타고 연을 날릴 수도
평범한 아버지를 원하고 있을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이에게
평민 영웅 유산 놓고 가야 합니다
보증서 한 장, 유일한 행낭을 들고서
세상의 선량한 인류를 위하여
우한 폐렴 확산을 알렸지요
나를 기념하려는 이가 있다면
이 세상을 왔다 갔음을 알려줄
<리원량>이란 이름은 있었지만
아는 것도 두려움도 없었다고
작은 비석 하나 세워주면 됩니다
하느님이 나에게 그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신종 전염병 발생을 경고했는데
유언비어 유포로 경찰조사 받고
우한폐렴 환자 진료하다 감염돼
임신한 아내와 부모님을 남겨두고
홀로 세상 떠난 34세 의사 <리원량>
코로나 22번 여인
꽃피는 3월 초 한 의료원을 찾아
입원을 신청했지만, 문전박대
코로나 검체 검사를 요구했지만
밀린 인원이 많아 집으로 쫓겨갔다
증상이 심해져 세벽에 또 병원을 찾았지만
1시간가량 기다림 끝에 사망, 후 검사
코로나 최종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사망 통보를 받은 유족들에게는
병원 접근 금지 명령이 전달 됐고
명복공원 화장장으로만 오라고 했다
남편도 확진 판정을 받아 자가 격리
아들과 시동생 단 두 명만 왔다
전염 가능성 이유로 화장 장면도
근접 접근 불허로 차 속에서 지켜보았다
임종을 지켜보지도 못한 두 딸과 남편은
기막힌 현실에 피눈물이 난다고 했다
병원에서 치료도 받아 보지 못하고
장례도 못 치르고 가족과 헤여젔으니
사랑하는 아내,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22번은 시립화장장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물론 사진 촬영도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간다 훈계서 1장 들고서
억울한 누명을 벗는 것은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정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
전 인류에 메시지 유언을 남기고
한 아이의 아버지며
현재 둘째 임신 중인 아내를 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생 사실을
친구들에게 절대로 외부에 알리지 말라
가족과 친지에게 몸조심하라는 문자를 보낸 후
유언비어는 바이러스보다 더 나쁘다는
유언비어 배포 혐의로 경찰 조사 받고
폭로 40일 만에 진료하다 자신도 감염돼
34세의 젊음을 불사른 의사 리원량(李文亮)
중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바이러스 감염 사실을 처음 알렸으나
당국은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는 혐의로
태평한 세상에 소란피우지 말라며
조사를 받고 훈계서를 쓰고 풀렸다
어둠속에 등불을 켜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갑니다. 훈계서 한 장 가지고
동이 트지 않았지만 나는 갑니다
내 묘지명은 한 마디로 충분합니다.
유언비어라고 낙안 찍힌 우한 폐렴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하여 발설 했다고
비통한 말마저 마음 놓고 할 수 없이
침묵의 강요는 국가와 시대의 수치인
아직 동이 트지 않았지만 나는 갑니다
염장이 강 씨의 일터 코로나 화장터
앞으론 할 일이 제발 없었으면
소망하는 코로나 상황실에서
조난 신호가 가슴을 두드렸다
또 부탁드릴 일이 생겼어요
방금 코로나로 사망한 분인데
시신에 손대려는 사람이 없어요
서둘러 화장(火葬)해야 하는데
의료진도 장례업자도 회피해요
강 씨는 걸음이 불편해 보였다
나는 남이 안 하는 일을 하는 사람
저도 두렵고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코로나 사망자는 타 죽음과는 달라요
사후 24시간 안에 화장을 마처요
화장이 먼저고 장례는 다음 순서
임종도, 장례도 제대로 못 하구요
염습도 제대로 하지 못하지요
입은 옷은 벗기지도 않고 그대로
이중 비닐 팩으로 밀봉한 시신을
관에 넣어야 하니 염습이 되나요
시신을 밀봉해 입관하고 화장장으로
유족이 밀접 접촉자나 확진자인 경우
유족 대신 염장이가 화장장에 있다가
유골을 유족에게나 납골당에 넘겨요
죽음 이후의 시간도 재촉하는 코로나
3시에 사망해 6시에 화장한 사람도
3시간 만에 죽음이 마무리된 거지요
영정도 위패도 없는 빈소는 소독약만
맑은 정신으로 걸어서 입원하신 아버지
가족 얼굴도 못보고 유언도 못한 10일
아버지 얼굴 좀 보고싶다 울부짖으며
방호복 입은 아들은 5m 밖에서 흐느끼고 .
18
전민 시론
시는 나의 삶 그 자체다
시는 내가 걸어온 인생길의 발자취이고 나의 삶 그 자체다 시를 쓰며 여생을 일거리처럼 살고있는 것이 나의 삶이기에 인생은 즐겁다 시작 활동을 통하여 바른 시대를 꿈꾸며 나 자신을 성찰하고 건강한 이상향을 그려내 좋은 시로 옮겨보려 노력하고 있다 시는 나에게 있어서 생명이자 사랑과 같다 생명이라는 말은 막중한 의무를 가진 말이며 경건한 사명을 짊어진 도의적인 말이다 또한 인생과 일상의 모든 사물을 사랑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시는 처음부터 쓸 수가 없다. 시는 나에 있어서 고통이자 고독과도 같다 시는 의무도 사명도 아니고 내가 평생 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도 아니다 사랑은 시의 단서이다. 감격적인 것과 조그마한 흥에도 사랑 아닌 것은 없다 시는 사랑과 대등하다 시는 사랑과 동일한 근원과 성격을 가지고 발생한다. 사람에 대한 나의 사랑, 주위의 모든 사물에 대한 사랑,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내 시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
고통의 감각이 서서히 전달되어 오면서 시에 대한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서서히 서서히 가슴은 뛰어오르게 한다. 또한 한없이 청징한 고독의 근원 같은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 '시는 나에게 있어서 고독'이라는 말을 다시 음미하게 된다 고통은 정서의 불균형에서 오는 불안감과 초조감 같은 느낌도 아니고, 육체적 감각으로 헤아릴 수 있는 통증이나 불쾌감도 아니다. 끝없는 상승과 추구의 자세, 구도자의 고통, 차라리 화려한 희열을 내부로 은폐하고 있는 상처와 같다 고독은 갈증을 해결하려고 마시는 커피와 같은 것은 아니다. 갈증을 해결하는 데에 그것은 불완전하다.
육체의 목마름이 아니라 정신의 갈증 때문에 나는 독을 마시는 심정으로 커피를 마시곤 한다. 독배를 들었을 때의 그 사람의 고독, 고독은 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 자꾸 더 빛나는 광채를 회복하게 한다. 그것은 덜어내어도 덜어내어도 그만한 눈금으로 다시 차오른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우리가 각각 제 크기에 비례하는 마음의 여백, 조금씩 다른 크기의 고독의 그릇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시에 있어서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나의 시는서정성의 근원적 힘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사물을 보는 상상력과 자신에 대한 통찰력이 상승 기류를 타고 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회향(回鄕) 의식이 있고 이상향을 그리는 마음이 있다. 그것은 주로 유년의 삶과 관계가 깊다. 시의 내용에는 그리움으로 가득하고 돌아간 땅에서의 삶에 대한 소망과 꿈으로 나타난다. 시 자체가 나 자신의 알몸으로 시인의 꿈과 그리움을 말해 주고 있다. 또 한편 나의 시는 나 자신의 일을 직접 다루기보다는 타인의 일이나 사회적인 일을 다루면서 그 사이에 자신의 정서를 끼워 넣는 식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시가 참 많이 시인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시는 서정적인 면이 강하다고 본다 시의 서정성은 운율 의식과 결합하면서 힘을 발휘한다. 시가 어려워서 좋을 것은 없다. 시가 어렵다는 것은 시속에 심오한 사상이 깊숙이 들어있거나 표현 방법이 고단수의 은유로 되어 있거나 독자와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리라. 시는 한마디로 독자들이 이해하기가 쉬우며 진실, 소박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단조로워 보이기도 하다. 설익은 기교를 과대 포장하여 돋보이게 한다든지, 장황하게 너스레로 호들갑을 떨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읽는 사람들에게는 가슴을 적셔오는 잔잔한 감동을 주고 싶다. 프랑스 뷔퐁(Georges Louis Leclerc, Comte de Buffon 1707-1788)은 ‘글은 곧 그 사람’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리가 머물고 있는 사회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소통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그 소통의 범위와 정도는 다 다르다고 본다. 일반의 평범한 사람, 심오한 철학자나 종교인이 똑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시인 자신이 추구하는 시정신이나 표현법, 시인관으로 한 편의 시를 창작한다는 것은 자신은 물론, 그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꿈을 제공해 줄 것이다 눈을 통해 가슴을 울리는 사랑의 영롱한 빛, 인간과 자연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그리움으로 빚어 놓은 시, 푸른 하늘 위로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다가 누구인가의 마음결이 속절없이 그리웠던 유년의 추억은 참 아름답다 모든 것이 다 내 차지고, 세상은 볼수록 아름답기만 하고, 모든 것이 내가 생각한 대로 이루어질 것 같고, 본 대로 느낀 대로 시가 되어 가슴을 따스하게 더웁혀 줄 것만 같았던 어제까지의 파란 하늘을 영원히 마음 밭에 깊이 묻어두어도 좋은 황금 시절을 비록 잡지는 못했다 해도 몸과 마음이 이렇게 건강하여 시를 읽고, 쓰면서 하루하루를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행복. 자신의 삶에 대한 존재 확인이 얼마나 보람 있고 아름다운 인생의 표본이 아니겠는가?
무욕과 관조의 폭을 확장해가고 싶다. 그러나 문명에 오염된 현대의 길을 가면서 헤쳐야 할 가시 숲을 외면할 수는 없다. 폭력, 부패, 기아, 전쟁, 분단, 환경문제, 그리고 악습의 사회문제 등 시인의 시적 에스프리는 변용의 터널을 거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향토적 순수성이나 건강한 인간성을 심어내는 온후한 힘은 시를 읽는 맛을 더해준다 많은 시편들이 비극의 땅에 세우는 희망의 기둥 같아서 시 읽는 마음이 미더울 것이다. 아름다움이며, 희망이며, 일할 수 있는 여유이며 자유로움이다. 촌락의 이야기이며 향수처럼 아름다운 고향의 옛 풍경에서 옛정이 서린 그리움의 정착지이며 성숙한 감각의 고향이다. 어떤 승지도 승경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움직이는 풍경화로 채색되고 있는 것은 굳센 인물들의 삶의 모습이 활력 있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현실 문제를 더 많이 포용하고 문명 추구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상실 기능의 인간성 문제, 환경문제 등 현대적 맥락의 주제들을 밀착해서 다루고 싶다. 후반부 인생을 사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 자신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지나온 날들을 회상하며 오늘의 인생을 자투리로 인식하지만 그 자투리 인생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귀하게 소중하게 대하면서 잘 써먹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남들이 비워두고 떠난 그 땅에 농작물을 심어 가꾸는 농부의 심정같이 나의 시를 ‘여백의 미학’이라고 이름 붙여 부르면 어떠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