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9:1-18) 임시방편으론 버티지 못한다.
1. 지혜가 그의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2.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3. 자기의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4.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5.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6.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7.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8.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9.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11.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 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네게 더하리라
12.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
오늘 읽은 말씀중심으로 <임시방편으론 버티지 못한다.> 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임시방편이라는 것, 그 뜻을 잘 아시리라 생각이 듭니다. 벌어진 일, 터진 일, 우선 간단하게 둘러서 맞추어 처리하는 것을 임시방편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stopgap, 그러니까 gap이 있잖아요? 구멍과 간격과 여백이 생긴 것을 메우는 것이 임시방편인데 생활 속에서 임시방편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합니다.
제가 미군부대에 있을 때 헬리콥터를 갖고 있는 육군에 속한 비행대에 소속이 돼서 비행기를 고쳤습니다. 헬리콥터를 고쳤는데 같이 고치는 미군 병사들에게 월남전에서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베테랑 미군병사들이 월남전에 가서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 물자조달이 쉽지 않을 때 헬리콥터가 총알을 맞지 않습니까? 헬리콥터가 총알을 맞아서 헬리콥터의 (겉)바디가 찢어져 나갑니다. 그런데 바디에 덧기울 특별한 재질(두랄미늄)의 헬리콥터 바디를 구성하는 그 금속조각이 조달이 되지 않을 때 임시방편으로 콜라 캔으로 기워서 리벳으로 고정을 시키고 비행기를 수리하면서 전쟁을 치렀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본래의 재료가 조달이 되면 다 뜯어내고 다시 해서 붙이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또 철근콘크리트 교각을 세워야 될 때에 임시방편으로 가느다란 쇠 파이프나 나무 각목 같은 것을 수십 개를 갖다 대서 버티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임시방편입니다. 빨리 정상적이고 제대로 되고 궁극적인 철근 콘크리트 교각으로 바꿔야 됩니다.
오늘 성경이 바로 그 이야기를 해줍니다. 두 군데를 우리가 주의해서 볼 것인데 첫 번째, 1절 이하를 보시면 “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사람들을 초대했다"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지혜로 살면 하나님을 경외함을 인해서 내게 주어지는 지혜는 ㅡ우리가 보통 말하는 이 세상 살아가면서 주어지는 일들을 스스로 경험과 지식과 타고난 어떤 임기응변의 대처하는 재빠른 판단 능력 등을 통해서 방법을 찾아가는 지혜가 아니라ㅡ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내게 주어지는 그 지혜로 사는 것은 다듬은 일곱 기둥으로 받쳐지고 있는 집 안에서 잔치를 벌이고 사는 것과 같다고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주님께서 당신이 오신 것을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로 비유하신 것과, 그리고 또 잔치를 벌여놓고 사람을 초대하고 있는 그러한 비유로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이지요.
지혜로 사는 것은 잔치를 벌이고 사는 겁니다. 일곱 기둥이 받쳐주고 있는 가운데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잔치를 벌일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사는 것은 일곱 기둥으로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임시방편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도 이 기둥에 대한 얘기가 나와요. 삼손이 여자에게 빠져서 자기의 힘의 비밀을 가르쳐줘서 머리가 밀렸을 때에, 힘이 다 빠져서 블레셋 사람들의 노리개가 되었습니다. 눈알이 빠진 상태에서 놋줄에 매여서 소나 말이 돌리는 물레방아를 돌립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큰 신전에 모여서 잔치를 벌이고 그때 삼손으로 하여금 재롱을 떨게 할 때 삼손이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오른 쪽, 왼 쪽의 건물을 받치고 있는 기둥을 끌어안고 기둥을 넘어뜨리면서 자기도 죽고 블레셋 사람들도 죽습니다. 기둥이 무너지면서 신전이 내려 앉아 버린 겁니다.
이것 비슷한 게 또 욥이 자녀들을 잃을 때 맏아들의 집에 모든 형제들이 모여서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들판에서부터 강한 돌개바람이 불어와서 집 네 모퉁이를 쳐 버립니다. 기둥을 부러뜨려 버리자 집이 폭삭 무너져 내려 다 죽어 버렸습니다.
결국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원하는 게 뭐예요? 궁극적으로 따져보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평강이 유지되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마음이 불안합니다. 마음에 걱정이 됩니다. 그러면 움직입니다. 내 마음에 걱정과 불안이 없어질 때까지 상황을 변화시킵니다. 그렇잖아요? 이 상황에 대해서 마음이 뭔가 불편하면 이 상황을 변화시키면서 내 마음을 안정된 곳으로 평강 가운데로 행복가운데로 기분이 좋은 상태로 기분이 째지는 상태로 유지하려고 행동하고 노력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게 하나님께 받은 지혜가 아니면 다 임시방편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제 대학입시가 얼마 남지 않았네요. 대학입시가 임시방편이에요. 대학을 못 들어가서 난리를 칩니다. 마음이 불안합니다.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좋은 대학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의 평화와 내 마음의 행복감에 대해 대학입시 합격한 것은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그것은 얼마 못가요. 3월에 입학하고 한 학기 끝날 때쯤 되면 벌써 들어간 당사자도 그렇고 부모도 그렇고 다른 걱정 때문에 또 행복이 사라지고 걱정으로 가득차고 근심에 의해 지배되게 됩니다. 임시방편이에요.
취직을 못하고 있으면 취직만 되면 내 인생이 핑크빛 무드로 올라설 것 같아요. 그런데 취직됐습니다. 취직해서 가보니까 회사에서 회사원으로 생활한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닌 거예요. 을씨년스러운 거예요. 시베리아 벌판에 내 놓은 것 같습니다. 취직을 해서 회사 안에 들어가면 따뜻할 줄 알았어요. 보호될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에요. 취직이라는 것도 임시방편입니다.
사업하는 사람이 야, 이번 건수만 잘 되면 한 백억 건지는 건데. 백억 벌어도 그것도 임시방편이에요. 백억을 내 주머니에 집어넣을 때에만 행복하지. 그거 집어넣고 난 다음에는 마찬가지에요. 마음의 행복이 마음의 기쁨이 내 마음이 업 돼야 좋은 것 아닙니까? 기분이 좋아야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기분이 좋은 것이 오래 가지 못해요. 다 임시방편이에요.
오늘 본문에 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라고 합니다. 조금 새로운 표현을 씁니다.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다.’ 이 명철이 없으면 모든 것이 다 임시방편이라는 겁니다.
지금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내가 해결책을 발견하고 노력해서 이룬다고 하는 모든 게 다 임시방편입니다. 결혼도 임시방편이고, 결혼하지 못해 안달하지요. 결혼해 봐요. 결혼하기 전에 결혼하고 싶어 하면서 결혼에 대해 갖고 있던 모든 생각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말 겁니다. 마음에 기쁨과 행복이 하나도 없어요. 결혼이 주는 것 아닙니다. 결혼해서 저는 17년 동안 자식을 못 낳았어요. 자식을 낳으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았어요. 그러나 자식 낳는 것도 임시방편이에요. 내 마음의 행복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모두가 다 임시변통(makeshift)이라는 겁니다. stopgap. 단순히 지금 현재 마음의 공백을 메워 주는 것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질 않아요.
그런데 특이한 표현이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라고 하고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어요. 거룩하신 자를 하는 것은 우리가 경제적 난관에 부딪혔다고 합시다. 경제적 난관에 부딪혔으면 우리가 바라는 것은 어려운 지금의 상황과는 다른 상황으로 가고 싶어 하는 거예요. 지금의 상황과는 구별된 차이가 나는 개선된 상황으로 가고 싶어 하는데 이게 뜻대로 말하면 거룩입니다. '거룩'이라고 하는 것은 ‘구별된다, 차이가 난다.’라는 뜻이에요.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노력과 문제와 과제와 난관에 부딪히고 위기를 닥쳐서 우리가 하고 싶은 모든 게 다 거룩을 향한 몸부림입니다. 지금과는 구별된 그러나 구별돼도 더 악화된 게 아니라, 더 좋은 쪽으로 구별된 상태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것 이게 바로 거룩이에요. 지금과는 차이가 나는 상태로 가고 싶어 하는 게 거룩입니다.
그런데 경제적 난관에 부딪혀서 은행에서 돈을 대출받아서 그 경제적 난관을 메웠습니다. (stopgap, gap을 stop시켰습니다.) 그러나 한 달 뒤, 두 달 뒤 은행에 돈을 갚아야 되는 일이 생기잖아요. 이 카드에서 돈 빼서 저 카드에 빚을 갚고 또 이 카드의 빚을 다른 카드로 갚고 결국은 어디선가는 갚아야 되는 임시변통일 뿐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지금과는 다른 상황으로 가고 싶은데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달랐습니다. 개선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또 문제가 생깁니다. 달랐습니다. 또 다른 쪽으로 옮겨 갑니다. 또 개선시키고 싶습니다. 또 다르게 됐습니다. 성공했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개선시키고 다른 쪽으로 갔습니다. 구별되는 쪽으로 좋은 쪽으로 긍정적으로 구별되는 쪽으로 옮겨갔습니다. 가도 가도 가도 계속해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얘기는 궁극적으로 그곳에 도착하면 더 이상 다른 것을 찾을 필요가 없을 만큼 완벽하게 행복한 곳이 바로 하나님아버지 계신 곳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앎으로, 지금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임시변통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다른 분, 궁극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간다는 것이고 그곳에 계신 분을 안다는 것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지금 경제적으로 난관이 있다면 어느 은행에 가서 어느 지점장에게 가서 부탁을 해볼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먼저 지금 이 자리에서 다르고 또 다르고 아무리 다르게 해 봐야 임시변통일 뿐인 우리의 삶의 패턴을 중지하고, 궁극적으로 다르신 분 더 이상은 다를 필요가 없는 그분에게로 마음이 가는 겁니다. 돈 문제 자식문제 결혼 문제 취직 문제 인간관계 문제 건강 문제 등 무슨 문제이든지 간에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임시변통 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학 입학도 임시변통이에요. 결혼하는 것도 임시변통입니다. 어떤 임시변통이전에 궁극적으로 거룩하신 분 궁극적으로 완전히 달라서 그곳에 가면, 일곱 기둥으로 세워져 있는 완전한 평강이 있는 그곳으로 마음을 옮겨 놓는 겁니다. 그렇게 마음을 옮겨 놓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이 상할까 노심초사하는 경외의 삶이 이루어지면, 일곱 기둥으로 받쳐지고 있는 집안에서 잔치를 하듯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돈 문제 건강 문제 자식 문제. 취직 문제. 무슨 문제든지 간에 그 문제자체에 대해서 내 경험과 내 지식을 가지고 임시변통을 행하기 이전에, 직업이 없는 사람이 직장을 구하는 것 임시변통이에요. 어떤 의미에서 임시변통이라고요? 직장에 들어간다고 내 마음이 궁극적으로 행복해지지 않아요. 우리가 쫒기고 있는 거예요. 일자리가 있어야 되는데, 일자리가 있어야 되는데. 결혼해야 되는데 결혼을 못하고 있구나. 건강해야 되는데 쫒기고 있는 거예요. 쫒기고 있지만 그것이 해결된다고 궁극적으로 내 마음이 행복해 지거나 안정되거나 평강가운데 있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걱정이 찾아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예 임시변통을 끌어들이지 말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 명철입니다.
거룩함이 뭐라고요? 지금과는 다른 것, 너무너무 궁극적으로 달라서, 그 분을 붙잡으면 그 분을 알면 이제 이 세상이 행복한 마음상태가 되어서 보니 길이 보이는 거예요. 쫒기는 마음, 걱정에 눌린 마음, 근심에 사로잡힌 마음으로는 길이 안 보여요. 그런데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행복한 상태가 되어서 이 세상을 보니까, 문제일 것도 없고 길이 안 보일 것도 없고 다 평탄하게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명철이라고 하는 겁니다. 밝을 明에, 밝을 哲 밝아졌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은 그들은 하나님 경외가 아직 마음에 없던 자들이에요. 오직 모세 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거룩하신 자를 알고 있었어요. 모세가 소명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네가 선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 신을 벗어라."라고 하십니다.
이제는 거룩한 장소에 서서 거룩한 나와 함께 걸어가려면, 이제까지 네 뜻대로 걸어 다니던 신발은 벗어버리고 내가 이끄는 대로만 가라. 그래서 모세에게 등불을 주신 것이에요.
홍해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뒤에는 바로가 쫒아 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완전히 깜깜하고 길이 안 보여요.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봅니다. 그리고 홍해 밑에 놓여 있는 길을 발견해 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거룩하신 그 분을 봤고 알고 있기 때문에, 홍해가 막혀있고 뒤에는 바로 군대가 쫓아오고 있는 이 상황에서 홍해 밑바닥에 있는 길을 보는 거예요. 이게 바로 명철입니다. 밝아요. 길이 보이는 겁니다. 지혜와 명철이 바로 이런 겁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마음을 하나님께 두는 거예요. 하나님의 마음을 늘 살펴봅니다. 하나님이 기분나빠하지 않을까? 하나님이 마음 아파하시지 않을까? 늘 봅니다. 그게 경외예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거룩하신 그 분. 이 세상에서 어떤 임시변통으로도 얻을 수 없는 궁극적인 행복을 내게 안겨 주실 만큼 완전히 다른 그 분. 긍정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다른 그 분. 그 분에게로 지금 사소한 문제들 앞에서, 그 문제에 대한 임시변통을 생각해 내지 말고 궁극적으로 그 문제가 내 문제가 아닌 것처럼, 내 마음이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가기만 한다면 그곳에서 일곱 기둥으로 받쳐진 평강의 집을 만나고 이제 잔치가 진행되면 된다는 것이에요.
주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시면서 당신과 함께 연합하기를 원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든 임시변통에 대한 우리의 노력과 어리석은 try, 어리석은 수고, 정말 돌아오는 것 없이 계속 개미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는 임시변통적 삶을 죽여 버리는 겁니다. 궁극적인 평강과 행복의 길에 우리 마음이 들어서게 하자는 것이 주님의 십자가사건의 의도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문제가 주어지고 걱정거리가 주어지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움직입니다. 임시변통을 찾으려고.
여러분이 임시변통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게 다 임시변통이에요. 결혼 못한 아가씨들, 총각들은 결혼을 꿈꾸지 말고 결혼이라고 하는 상황이 지금은 다르지 않습니까? 좋게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 결혼해봐야 소용없이 또 마음에 걱정이 생겨요. 또 다른 것 찾고 또 다른 것 찾고 그러지 말고 아예 궁극적으로 다른 하나님을 찾으세요. 지금 남편감을 찾지 말고 신부 감을 찾지 말고.
사업하는 사람들은 흑자인 단계를 찾지 말고 아예 거룩하신 하나님을 찾으세요.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만큼 지금과는 다르게 좋은 그 분을 딱- 찾아 버려요. 그리고 나면 사업에도 결혼에도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계획해 놓으신 길이 보일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걸 목적으로 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끝입니다. 결혼해봐야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불행하기는 마찬가지예요.
궁극적인 것을 지금 얻으세요. 거룩하신 자를 지금 아세요. 어떻게 압니까? 이 세상에 대한 모든 내 마음의 사랑이 다 죽어야 하나님이 보이고 알려집니다. 주님의 십자가밖에는 없어요.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 십자가를 붙잡고 '주님! 내가 지금 이 문제 앞에서 죽었습니다. 머리에 가시면류관 썼기 때문에 생각을 못하겠고, 내 손과 발이 못이 박혔기 때문에 해결을 위한 움직임을 조금도 하지 못하겠고, 내 배에 창이 들어왔기 때문에 내 마음의 소원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등허리가 갈기갈기 찢겨 살점이 떨어져 나가듯이 내 마음에 살이 되었던 내 마음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다 떨쳐 냅니다. 주님! 주님십자가에서 함께 죽게 해 주세요.' 이 기도를 통해서 십자가에 걸머진 약속을 따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게 되면 이 세상길은 훤-히 보여요. 이게 명철 아닙니까? 이 명철을 따라 살아 갈 때에 일곱 기둥으로 받쳐져 있는 집안에서 송아지잡고 향유 섞인 혼합된 포도주로 잔치를 벌이고 있듯이 그렇게 기쁨의 삶이 주어진다고 약속해 주고 계십니다.
오늘 아침에 기도하실 때 우리가 해야 될 것 뭡니까? 내게 닥쳐 있는 상황과 난관과 문제와 위기 그것에 대해 임시변통을 찾지 마세요. 대통령이 개입해서 나를 해결해줘도 임시변통일 뿐이에요. 내 마음의 행복이 궁극적으로 자리 잡지 못합니다. 궁극적으로 온전히 거룩하셔서 온전한 행복을 거머쥐고 계시는, 하나님을 아는 기도의 시간을 갖게 되시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 주님의 십자가에 다시 한 번 연합해서 죽고, 주님의 부활과 연합해서 다시 태어나서 이 세상 오늘 하루를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대통령이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10년을 책임진다 해도 임시변통일 뿐입니다. 무슨 일이 이루어지고 주어진다고 우리의 업 된 기분이 영구히 지속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이세상의 변화무쌍한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일희일비하지 않게 하시고 임시변통을 찾아 헤매는 삶을 중단하게 하시며, 이제는 궁극적으로 행복과 기쁨과 평강의 처소 되시는 우리 하나님아버지를 알게 해 주셔서, 우리의 삶이 밝은 하늘의 빛 아래 명철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 오늘도 기도하며 우리 주님의 십자가에 연합하기를 소원합니다. 2,0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 오늘의 나의 사건이 되어서 내가 진정으로 마음으로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죽고, 하나님 한 분만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할 수 있는 기도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