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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드라의 기적(1897.2018.2.25)
행14:8-10
할렐루야
우리나라 여자 컬링 선수들이 경북북지방에 속한 의성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마늘 먹고 힘을 내서 했는지 여자켈링 은메달을 차지 했습니다. 그 과정에 보면 귀에 익숙한 이름이 있습니다. ‘영미야...영미야’ 얼마나 영미를 찾는지 들으셨을 것입니다. 영미의 기적이 은메달을 가져왔습니다. 과정에서는 영미를 많이 불러서 기권도 받아내고 했는데 일본과 할 때에는 영미야를 조금만 불렀습니다. 그래서 연장전 까지 가서 겨우 이겼습니다. 조금전 결승전에서는 영미야를 한번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7엔드까지 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영미를 많이 불러가며 응원을 했습니다. 설교원고는 원래 금메달인데 이 설교 끝나고 나면 아마도 은메달로 확정 되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오늘 그 영미를 부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냐면 예수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들도 ‘예수님. 예수님..주님’ 많이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영미 많이 불러서 은메달을 딴 것처럼 우리들은 예수님 많이 부르셔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어제 경북지방회 때 제가 설교하면서 이 내용을 가지고 설교를 했고 또 하나는 지방회 때에 우리 지방 모든 교회가 스케이팅 단체추월 게임을 하는데 남자 단체전에서 서로 엉덩이를 밀어주면서 영차 영차 하면서 단합된 모습으로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지방도 교회도 단합된 감리교단을 만들어 가자고 설교 했습니다. 또 여자 단체전에서의 추월 게임에서 한 사람이 뒤쳐지는데도 그냥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들은 그러면 안된다고 앞에서 이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오늘 상주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는 단합된 상주감리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믿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학생, 사업가들도 믿음이 있어야 자신이 하는 일을 잘 이루어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 인생에도 믿음이 있어야 운명을 새롭게 개척해 나갈 수 있습니다. 더욱이 기독교의 신앙과 교회 생활을 위해서는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히11:6절‘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심을 믿고, 하나님께서 상 주심을 믿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을 믿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심을 믿어야,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저랑 같이 신앙생활 하시면서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마시고, 믿음이 있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중에도 염려하는 믿음(마6:30-31), 의심하는 믿음(요20:27), 연약한 믿음(롬 14:1), 헛된 믿음(고전 15:14)이 있습니다. 부족하고(살전3:10), 행함이 없는 믿음(약2:26)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부정적인 믿음입니다. 자꾸만 불행하다고 믿으면 정말로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망한다고 믿는 사람은 망하게 되고, 못한다고 믿는 사람은 못하게 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로서 이런 부정적인 믿음이 아니라 좋은 믿음,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크면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십니다.(마8:10)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17:20) 열매 맺는 믿음(요15:4), 구원받는 믿음(롬10:9-10), 온전한 믿음(히10:22), 부요케 하는 믿음(약2:5), 보배로운 믿음(벧후1:1), 거룩케 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유1:20) 이러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루스드라의 기적이 오늘 우리 상주감리교회 안에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바울과 바나바, 두 사도가 전도여행 중에 ‘루스드라(Lystra)’라는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그 지역에 살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일으킨 기적의 사건입니다. 바울은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외쳤고, 그는 일어나 걷고 뛰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루스드라의 앉은뱅이! 여러분! 앉은뱅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그가 얼마나 많은 상처와 고난가운데 살아왔는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주변에 있는 가족들 또한 그가 앉은뱅이라는 사실 때문에 많은 고통과 아픔을 겪었을 것입니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점점 더 절망과 좌절을 맛볼 수 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의 문제 때문에 그는 인생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떤 이유였는지 오늘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우리가 주목해야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어쩌면 인생을 체념하다가 이제 더 살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권면해서 그래 마지막으로 들어보자 이렇게 전도가 되어서 이 복음의 자리에 왔는지 아니면 인생의 갈급함과 애절함으로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목마름에 갈급한 마음으로 말씀의 자리에 데려다 주라고 본인이 원해서였는지 모르지만 오늘 이 사람의 태도를 보면 우리가 영적 교훈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말씀을 통해서 ‘앉은뱅이가 어떻게 일어났는가,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알아보고 말씀을 증거하고자 합니다. 여기에서 앉은뱅이는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 구원받을 만한 믿음으로 인해 앉은뱅이가 병에서 고침을 받고, 불가능이 가능케 되는 기적이 나타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처럼, 여러분들도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축복받을 만한 믿음이 있으면 축복을 받습니다. 행복할 만한 믿음이 있으면 행복하게 되고, 성공할 만한 믿음이 있으면 성공하고, 천국 갈 만한 믿음이 있으면 천국에 갑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불평할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는 내 마음속에 믿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여 주십니다. 오늘 참석한 성도 여러분, 모두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기적은 설교를 사람의 말로 듣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들을 때 나타납니다.
행3장의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와 똑같습니다. 세상 말로하면 팔자와 운명에 매인 인생입니다. 여기 ‘앉은뱅이’란 말은 전혀 희망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그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으니 그가 받은 인생의 상처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본인도 본인이지만 그의 부모 또한 고통이 컸을 것입니다. 그 인생은 한마디로 저주받은 인생입니다. 그는 인생의 모든 소망을 포기하고 털썩 주저앉은 상태에서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그 사람도 미문의 앉은뱅이처럼 손을 벌려 구걸하는 것이 그의 생의 전부였습니다.
8절‘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루스드라는 이고니온으로부터 약29Km 떨어진 동남방에 위치한 로마의 식민지요 군사적인 요충지입니다. 여기 루스드라 전도에서 잊지 못할 추억의 에피소드가 이루어진 곳입니다. 그 하나는 도착하자마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고친 기적의 일로 바울과 바나바가 우상을 대상으로 신격화 되는 사건이 일어난 곳입니다.
루스드라 전도가 나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주를 힘입어’ 유대 회당을 장악했고, ‘주를 힘입어’ 핍박을 감수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표적과 기사를 행했으며 ‘주를 힘입어’ 이고니온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을 갈라놓는데 성공했으며‘주를 힘입어’드디어 루스드라와 더베를 향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루스드라에 나면서부터 걸어보지 못한 앉은뱅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서서 사는 존재로 처음부터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인간의 죄와 죽음과 심판의 공포를 얽어매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일어서지 못하도록 두 다리에 힘을 빼 버렸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인간을 가만히 앉아있게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인간을 앉은 상태로 얽어매고 있는 사슬들을 끊어버렸습니다. 한 인간에게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해방을 줍니다. 복음은 한 영혼을 일깨우는 능력이고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뛰어 일어나도록 발목에 힘을 주고 무릎에 힘을 줍니다. 우리는 바로 그 놀라운 현상을 오늘 본문에서 본 것입니다.
행14:8절‘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오늘 본문 말씀의 앉은뱅이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기 때문에 한번도 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쳤다거나 병에 걸려 후천적으로 앉은뱅이가 된 것이라면 잘 치료해서 언젠가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앉은뱅이는 그런 희망마저 없었습니다. 이 앉은뱅이가 바울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들었다는 것은 바울이 전파하는 말씀을 귀 기울여 진지하게 듣고 깨달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비록 우리가 앉은뱅이가 되었다 할지라도, 병들었다 할지라도, 사업에 실패하고 어려운 역경에 처했다 할지라도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또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에 걸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그 말씀을 청종하고 믿고 깨달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롬10:17절‘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자꾸 들어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말씀을 듣는 일에 자꾸 변덕을 부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지속적으로 우리의 삶에서 역사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루 세끼의 밥을 챙겨 먹는 것처럼 항상 주의 말씀을 생각하고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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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2:13절‘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언자, 주의 종 등을 통해서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깨닫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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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신11:27절‘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라는 말씀처럼 반드시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입니다. 마7:16절‘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는 말씀처럼 믿는 것 같으나 실상 그 마음속에 믿음이 없기 때문에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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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3:23절‘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깨달으면 그 말씀을 통해서 열매가 나타납니다.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깨닫지 못하니까 열매가 없지, 깨닫는 사람은 반드시 열매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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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배시간에 찬송을 많이 부릅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앞에 소원도 간구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천지가 말씀을 통해서 창조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하시기 때문에 말씀을 듣는 순간에는 집중을 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 마음속에 그 말씀이 씨앗처럼 심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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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마음에 위로를 받고, 희망과 용기를 가지게 되고 건강에 도움을 받게 되며, 마음속에 있는 불안과 두려움, 공포도 사라지게 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비밀을 알고자 노력하면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축복을 주시고, 기적을 나타내시고, 성공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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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고민하는 문제가 있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내 인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걱정하고 방황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문제의 해결이 오늘 말씀에 있는 것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듣고 그냥 한 귀로 흘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운명이 결정되고, 여러분의 직업이 결정되고, 여러분의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고, 여러분의 고통과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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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든’우리는 롬10:17절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신앙은 듣는 자세가 엄청 귀합니다. 바로 들어야 믿음이 들어갑니다. 들을 때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목청이 터지도록 큰 소리로 외쳐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제대로 듣고, 깨닫고,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들을 귀 있는 자들을 들을지어다’ 계시록에서도‘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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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때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아멘 하는 태도입니다. 행2장을 보면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가 끝나자 그 설교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취한 반응이 나옵니다. 특히 2:37절을 보면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에 찔림이 오자 회계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무리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이를 가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행7:54절의 말씀을 보면 스데반의 긴 설교를 듣고 난 사람들이 취한 태도가 나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이 왔고,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도 마음에 찔림이 왔습니다. 그러나 전자는 ‘어찌할꼬’ 하면서 회개했고, 후자는 ‘이를 갈며’ 스데반을 돌로 쳐죽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아멘’하고 받아들이면 축복을 받지만 이를 가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오늘 본문의 앉은뱅이는 말씀 듣는 태도가 귀합니다. 바울이 그를 ‘주목하여 보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주목하여 보았다는 것은 깊은 관심과 사랑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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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적은 내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질 때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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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앉은뱅이를 보았더니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구원받을 만한’이라는 말은 ‘치료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믿음이 그 속에 있었음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육신만 치료한 것이 아니라 영혼의 치료까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병 고침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조건이 믿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구원받을만한 믿음’이라고 했는데 ‘구원’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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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습니다. 모든 환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물에 빠졌다가 건짐 받는 것도 구원입니다. 원수들로부터 구출 받는 것도 구원입니다. 위험으로부터 구출되는 것도 구원입니다. 죄악 세상에 빠지지 않는 것도 구원입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은 것도 구원입니다. 배고픈 사람의 허기를 채우는 것도 구원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 것도 구원입니다. 죄로부터 용서함 받은 것도 구원입니다. 육체적인 질병으로부터의 구원이 있습니다. 천국 가는 것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을 얻습니다. 영생을 얻습니다. 구원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지만 결국 구원의 완성은 천국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정도로 충만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앉은뱅이는 믿음이 충만했기 때문에 그 믿음을 바울이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구름이 움직이기 때문에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믿음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의 얼굴 표정을 통해서 믿음이 나타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얼굴에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것이 보입니다. 당장 죽을 것만 같이 항상 사색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의 얼굴은 기쁨이 충만해서 환합니다. 말하는 것도 다르고 행동하는 것도 다릅니다. 자신감과 용기가 넘치기 때문에 악한 사탄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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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병을 치료받을 만한 믿음이 있어야 병고침을 받습니다. 귀신을 쫓아낼 만한 믿음이 있어야 귀신이 쫓겨남을 당하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이 있어야 불가능이 가능케 되고, 축복받을 만한 믿음이 있어야 그 사람에게 축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믿음, 바로 그것이 기적의 조건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눈에 보이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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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한 집에 머물러 계실 때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왔습니다. 그 중에 한 중풍병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집 안에 들어갈 수 없자, 지붕을 뜯고 들것에 매여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막2:5절, 11-12절에 예수님께서 그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중풍병자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일어나 나갔습니다. 모여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자기 병에서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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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왜 불행하게 삽니까? 왜 성공하지 못합니까? 왜 꿈을 달성하지 못합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에 꿈도 희망도 상실한 것입니다. 사실 믿음의 반대는 바로 의심입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다 사라지는 것처럼 근본적인 믿음이 있으면 의심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과 의심은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 가운데 아주 작은 의심이라도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근본적으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믿음만 있으면 어두움이 사라지듯 의심은 떠나갑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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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자녀들에게 항상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흔들리면 자녀들은 더 흔들립니다. 부모의 신앙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려면 죽는 순간까지도 꿋꿋한 신앙과 믿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통해서 축복하여 주십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나는 언젠가 꼭 성공할 거야, 우리 가정은 축복을 받을 거야,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실 거야.’라는 반석 같은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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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포기하면 하나님도 포기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께 매달리고 기도하면 야곱이 얍복강 나루터에서 나에게 축복하지 않으면 결코 보내지 않는다고 끝까지 매달려 결국 응답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도 응답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말씀에는 구원받을 만한 믿음은 눈에 보인다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을 아무리 가지고 있어봐야 그 믿음 속에는 역사도, 기적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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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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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4:10절‘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바울은 소곤소곤하게 작은 소리로 말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앉은뱅이에게 외쳤습니다. 왜 바울이 큰 소리로 외쳤을까요? 그것은 영육간에 치료받아야 할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자세를 보여준 것입니다. 아마도 가만가만히는 도저히 속이 타서 말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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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큰 소리로 말한 것은 그 앉은뱅이로 하여금 불안과 불순종을 순식간에 떨쳐버리고 결단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바울은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명했습니다. 그냥 일어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일어서되 똑바로 일어서라고 소리친 것입니다. 일어나라고 한 것은 명령입니다. 큰 소리의 명령은 단호한 믿음의 의지를 말합니다. 아무리 큰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 믿음을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한 것입니다. 한번도 걸어 본 적도 없고, 일어서 본 적 조차 없는 사람에게 일어서라고 외치니 주변 사람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그들이 붙들어 일으켜도 못 일어날 앉은뱅이에게 스스로 일어나라고 외치는 바울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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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본문말씀을 옛 사본으로 살펴보면 바울은 앉은뱅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3:1-10절 말씀에도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가다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보고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힘을 얻어 뛰고 걸으며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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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앉은뱅이가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행3장의 미문의 앉은뱅이가 구원받은 때와 비슷합니다. 즉 걸을 뿐만 아니라 뛰기도 했다는 표현은 치유가 곧 바울의 소리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앉은뱅이가 차츰 걷게 된 것이 아니라 단번에 완쾌되어 뛰고 걸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바로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분입니다. 행3장의 앉은뱅이는 유대인이었고 본문의 앉은뱅이는 이방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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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외친 말은 바울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는 곳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바울도 할 수 없고 베드로도 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할 때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중풍병자를 고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중풍병자와 앉은뱅이를 고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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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만든 사람은 자전거를 고칠 수 있고, 자동차를 만든 사람은 자동차를 고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고치고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앉은뱅이가 뛰고 걸었다는 것은 불가능에 도전한 것입니다. 앉은뱅이는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병에서 고침을 받아 일어서서 뛰어 걷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체험으로는 도저히 가망성이 없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역사하신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면 불가능을 가능케 할 수도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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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3:1-5절 말씀에도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실 때, 손 마른 사람이 있는 것을 보시고 그 사람을 향해서 ‘네 손을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이 회복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있으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어떤 병이라도 다 고침을 받고 놀라운 역사와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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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핑계를 대고 변명을 해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자에게는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님께서 그의 순종을 통해서 역사하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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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믿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몸과 마음과 물질과 정성을 바쳐서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여 주십니다. 가난과 저주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온전한 십일조와 감사의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병 고침을 받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부르짖고 간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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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봉사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은사와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심은대로 거두고 행한대로 갚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아무리 부모가 자녀를 도와주고 싶어도 순종하지 않고 떠난 자녀를 도와줄 수는 없습니다. 또한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학생은 공부를 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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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제 마음속에 교만과 불신과 탐욕을 다 떨쳐버리고 깨어지고 녹아져서 앞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최후에 승리를 합니까? 최후의 승리는 바로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아니라, 순종하는 사람에게 최후의 승리와 그 영광도 주어집니다. 남에게 올바른 것을 가르치고 전도하는 사람, 순종하고 따르는 사람에게는 발전과 성장이 있지만 교만해져서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집니다’ 하면서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최후의 승리가 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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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다니는 교인들 중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켜 ‘집거위 교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집거위 같은 교인들은 매 주일마다 뒤뚱거리면서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열심히 듣습니다. 그런데 듣는 순간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날개를 펴고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아가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아멘’이라고 대답만 할 뿐 예배가 끝난 후에는 날개를 펼쳐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뒤뚱거리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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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을 믿어도 달라지는 것이 없고 삼년을 믿어도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십년을 믿어도 여전히 달라지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음이 새로워지고, 축복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파리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매가 없는 나무는 찍어서 불에 던지우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독수리처럼 살겠습니까? 집거위처럼 살겠습니까? 앞으로 집거위가 되지 마시고 독수리처럼 날아다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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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루스드라의 앉은뱅이처럼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져서 기적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절대 낙심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하고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역사하십니다. 여러분, 어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까? 부자 될 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부자가 되고, 행복할 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행복해지고, 건강을 누릴 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건강해지고, 승리할 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승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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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전체적인 것입니다. 병든 자가 병고침 받는 것도 구원이요, 가난한 사람이 부하게 되는 것도 구원이요, 문제 해결 받는 것도 구원이요, 웅덩이와 수렁에 빠진 사람이 건짐을 받는 것도 구원이요, 어려운 문제 속에서 도움을 받는 것도 구원이요, 인간생활의 모든 역경과 환난을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구원은 한 가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모든 것입니다. 오늘 참석한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