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고개~장군봉~서기산~만세임도
내 좁아터진 속 안에는 더부룩하게 탐욕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 놈이 나를 천성적인 허풍쟁이와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지금의 내 속내를 스스럼없이 토로하기를 머뭇거리게 하고,
이 나이에 그러면 안 되는 일에 웃통을 벗어붙이고 나대는 것도,
아직도 비가 구슬구슬 내리면 미칠 것 같은 몽환적 목메임도,
다 내 안에 있는 탐욕이 가르친 거다.더욱이나 마모되거나 연소
되어버린 기억을 있는 것처럼 떠벌이며 안간힘을 쓰는 것도
탐욕,이놈의 짓거리이다.이것을 열정이나 신념이라는 수사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기도 하지만 다 부질없는 허풍일 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일생이 소멸될 때까지 이 탐욕과 껴앉고
뒹굴며 엎치락뒤치락하는 가늠은 계속될 거 같다.
강진군 성전면 소재지와 해남군 계곡면을 가르는 나지막한 고개,
제안고개의 언덕배기 남쪽 방면의 가파른 절개지를 치고 오른다.
(10시50분).하늘을 찌를 듯한 편백나무 숲의 그윽함과 늘 푸르름
을 잃지않고 있는 상록수림의 기름칠을 한 듯한 이파리들이
금빛햇살을 가득 받아 반짝거린다.다갈색의 솔가리가 내려앉은
산길 한복판으로 삼각점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거개의 삼각점이
봉우리 꼭데기에 자리하고 있는 거에 비춰보면 특이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고사리로 뒤덮혀 있는 두 기의 묵묘를 지나면
기맥의 산길은 널찍한 규모의 밭 한가운데를 점령군처럼
가로지르게 된다.
목초지
그 밭은 가축들의 사료용 초지로서 목초는 하루나 이틀 전에
이미 베어 놓은 듯 아직 거두어 들이지 않고 목초지에 널부러져
있다. 목초지 우측 저만치에는 멋대가리 없이 송전철탑이 우뚝
서 있다.기맥의 산길은 목초지를 뒤로하고 달구지 길 같은 행색의
산길을 따라 이어진다.감나무밭을 지나가고, 대나무 숲을 지나
완만한 내리받이 산길을 내려서면 2~3백평의 묵정밭 모양의
공터에 울타리까지 둘러 친 공한지를 가로지르게 된다.
성전면 방면의 산협의 마을과 해남면 쪽의 마을 사이의 산길이
나 있는 정골재다.
산길은 또 다시 대나무 숲 속으로 꼬리를 잇는다.언덕 같은
기맥의 산길 한복판으로 삼각점이 다시 눈에 띤다.이 근처의
평지나 다름없는 산길에서 눈에 띤 삼각점이 제안고개에서
별뫼산을 오를 때 처음 눈에 띠고부터 벌써 세 개째나 된다.
그리고 묵정밭을 지나가게 되는데, 이곳저곳에 더덕넝쿨들이
보인다.더덕을 재배하던 밭인 모양인데, 수확을 하고 남겨진
지스러기들이 군데군데 남아있는 거다.편백나무 숲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가파른 비탈을 올려치면 둥긋한 멧부리 한복판에
권위의 상징인 삼각점이 자리하고 있는 해발 315m의 깃대봉에
오르게 된다.
강진의 들판과 산하
깃대봉 정상에서의 조망은 별로 기대할 것은 없다.봉우리 주변의
울창한 수목들이 울창하기 때문이다.그러나 해가 떠오르는 동쪽
으로 격자무늬의 강진의 시원스러운 들판이 눈을 씻어준다.
깃대봉을 뒤로하고 큼지막한 노송 한 그루가 수문장 노릇을 하는
붕긋한 봉우리를 넘어서고 거뭇거뭇하게 마른 이끼가 들러 붙어
있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울멍줄멍한 등성이를 이어 나간다.
그러한 바윗길을 지나면 깃대봉의 행색과 어슷비슷한 멧부리에
오르게 되는데 이 봉우리가 해발 335m의 장근봉이다.
이 봉우리에는 어느 산꾼이 '장군봉'이라는 명찰을 달아놓았는데
'오만분의 일'지도 상에는 장근봉으로 표기를 하고 있는데,장군봉
이라는 지명이 더 익숙하다.해남 땅에 엎뎌있는 크고 작은 흑록의
멧덩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장근봉을 뒤로하고 일렁이는 바람도
없는 초하의 날씨에 팥죽땀을 쏟아가며 들쭉날쭉 거리는 기맥의
산길을 잇는다.편백나무 숲 길을 벗어나면 기맥의 산길은 널찍한
임도를 만나게 되는데, 이때에는 임도로 접어들지 말고 임도 오른 편
어귀의 산길로 들어서야 한다.산길은 뚜렷하고 반듯하다.
울창하게 우거진 초록의 숲 길에 산불초소가 자리하고 있다.
강진의 시원스러운 들판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산불초소를 지나 완만한 치받이 산길을 올려치면 320m봉이다.
이곳에서 산길은 오른 쪽 3시 방향으로 꼬리를 잇게 된다.
산길 좌측의 나무가지 사이로 앞으로 넘어야 할 흑록의 멧덩이
들이 조망이 되고, 그 너머 서기산의 멧부리도 아스라하게 조망이
된다.완만한 내리받이 산길을 내려서면 여기저기 허물어진
돌무더기들이 눈에 들어온다.강진과 해남의 산협 부락 사이의
산중 이동로가 나 있는 당재다.
당재를 뒤로하고 치받이 오르막을 올려치면 어린 소나무 숲 길이
이어지고 그 숲 길을 벗어나 다시 한 번 치받이 산길을 올려치면
해발 328m봉이다.300미터 급의 멧덩이들을 오르고 내리는 행위가
거듭되고 멧부리의 행색도 태반이 어슷비슷한 봉우리들이다.
해발 320m봉을 넘어서면 거대한 송전철탑이 기다리고 있으며,
그 철탑 밑을 빠져 나와 완만한 치받이 오르막을 헐떡거리며
오르면 해발 355m봉인데, '장산봉'이란 이름의 명찰을 어느
산꾼이 매달아 놓았다.
장산봉을 내려서면 산길은 이발소에서 이발을 마친 모습처럼
가지런하게 다듬어져 있는 모습이다.제안고개를 떠나고부터
입때까지의 산길도 뚜렷하고 반듯한 느낌의 산길이었지만
어느 정도 잡목들의 거추장스러움은 없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다.그렇지만 장산봉을 뒤로하고부터는 잘 다듬어진
대간 급의 산길로 행색이 바뀌어 버린 게다.조릿대의 숲 길을
지나고 해발 350m봉에서 좌측 9시 방향으로 급선회를 이루며
꼬리를 잇는 산길을 따르면 고사리밭이나 다를 게 없는 두 기의
묵묘의 곁도 지나치게 된다.
그런 뒤에 올려친 341m봉을 내려서면 등성이 좌측으로 작천면과병영면 일대가 한눈 가득 들어오고, 들판에 엎뎌있는 무수한 크고
작은 흑록의 멧덩이들도 한눈에 들어온다.산길은 다시 기맥의
등성이를 가로지르는 임도로 들어서게 된다.
좌측으로 나 있는 임도의 방향은 강진의 월남 마을 방면이고,
우측으로 향하는 임도는 해남의 계곡면 쪽이 된다.기맥의 산길은
임도를 곧장 가로질러 나 있는데, 산길안내이정표가 가리키는
서기산 쪽이다.서기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치받이 오르막은
급경사의 오르막은 아니지만 초하의 더위와 산행의 막바지에
흔히 나타나는 인내의 한계와 무기력증으로 압박을 느끼기에
힘겨운 오르막으로 인식을 하게 되는 구간이다.
그러므로 실상은 그리 힘겨운 치받이 오르막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제안고개를 떠나고부터 줄곧 300미터 급의 고만고만한
멧덩이들만 손쉽게 상대하다가 500미터 급을 갑짜기 상대하려니
지레 겁을 먹은 거다.해발 511m의 서기산 정상은 정상을 알리는
말뚝이 서 있는 삼거리에서 몇 십미터 더 이동을 하면 이동통신탑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헬기장이다.헬기장 정상에서의 조망은
화려하고 장쾌하다.강진과 해남 일대가 한눈에 부감이 되며
앞으로 이어나갈 땅끝기맥의 산줄기도 한눈에 조망이 되는
조망의 멧부리가 아닌가.
기맥의 산길을 계속 이으려면 조금 전의 서기산 정상말뚝이
서 있는 삼거리로 되돌아가야 한다.그곳에서 좌측의 가파른
내리받이 산길을 따라야 한다.강진 시가지와 너른 강진의 들판이
연신 눈길을 끈다.한동안 이어지는 내리받이 산길은 어느 틈에
치받이 산길로 바뀌더니 해발 400m의 멧부리를 내놓는다.
둥긋한 봉우리 한복판은 신갈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들로 발디딜
틈이 없으며 멧부리 정수리는 돌무덤 외양을 하고 있는 봉우리
이다.돌무덤봉을 뒤로하면 기맥의 등성이는 전망대 노릇을 하는
너럭바위와 크고 작은 바위들이 줄을 잇는 암릉구간이다.
덕룡산~주작산 연봉
강진의 풍요로운 격자무늬 들판과 주요 시가지가 부감이 되고,
덕룡-주작산의 연봉과 만덕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암릉 구간을 벗어나면 기맥의 등성이는 시나브로 고도를 낮추어
나간다.산악자전거 경주를 치뤘는지 MTB경주를 위한 흰색
리본이 연이어 모습을 드러내고 '비행기바위'라고 하는 표시물도
화살표와 함께 나무에 질끈 동여있다.
오랜 전에 이용이 됐음직한 헬기장 행색의 공터를 지나고,
고만고만하고 행색도 다를 게 없는 멧부리 두엇을 넘어서면
반달모양의 석축으로 기반을 다진 곳의 한가운데를 지나가기도
한다.
잘록한 안부에 다다른다.좌측으로 오늘의 날머리로 내려서는
만세고개인데, 마땅한 산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200~300미터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면 임도를
만나게 되므로 그렇게 하산을 시도해도 문제는 되지 않을
터이다.나를 포함한 선두 그룹의 몇 사람은 만세고개에서
곧바로 좌측으로 그렇게 내려서지 않고 맞은 쪽의 치받이
오르막을 치고 올라 해발 293m봉을 넘어서고,삼각점으로 권위를
부여받은 해발 283m봉을 거푸 넘어선다.삼각점봉을 넘어서면
곧바로 헬기장을 만나게 되며, 머지않아 기맥을 가로지르는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이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발걸음을 놓으면
오늘의 날머리 덕서리 만세마을에 이르게 되는 거다(16시).
만세고개
만세마을의 마을회관 마당 왼켠에는 정자가 하나 세워져 있으며,
오른 쪽 뒤란에는 수돗가도 마련이 되어 있다.온종일 산행을
한 뒤에 찌들은 몸을 씻어내려는 늙은 사내들이 웃통을 벗어
부치고 땀을 닦아내느라 여념이 없다.그런 뒤에 입성을 말쑥하게
바꾼 기맥의 산꾼들이 산악회 총무가 맛나게 삶은 돼지 수육을
벗삼아 출출함과 갈증을 달래는 한 때를 보낸다.(2017,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