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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너도 하나님이 되어라[창 3:4-5]
오늘은 함께 읽은 창세기 3장 4.5절을 중심으로 해서 너도 하나님이 되어라는 좀 엉뚱한 제목으로 말씀을 좀 생각을 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사탄이 뱀을 사용해서 하와에게 한 말은 사실은 전부 하나님에게 해당되는 말이었습니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씀도 누구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말씀입니까?
성경에 하나님만 죽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말씀을 보셨습니까?
딤전 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하나님께서 만드신 태양도 사람이 가까이 갈 수가 없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죽지 아니함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지금 사탄이 누구에게 죽지 아니 할 것이라 하나요? 뱀이 하와에게
그런데 성경은 결코 죽지 아니함은 누구에게만 있다고 합니까? 하나님만
하나님 외에는 다 죽는다는 말이죠?
그 말씀은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게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도 누구와 연결되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을 때만 영원한 생명도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결코 죽지 아니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네가 무엇이 되어라는 말인가요?
여러분들은 고양이로 사는 것이 나을까요? 사람으로 사는 것이 나을까요?
왜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고양이보다 사람이 사는 질이 나으니까 그렇습니까?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짐승과 같다고 하죠?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사람 답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답게만 살아서 안 됩니다.
사람 중에서도 어떤 사람답게 살아야 할까용?
하늘 사람들 답게 살아야 합니다. 아멘입니까?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아들딸답게 살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아들과 딸들은 어리드래도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리드라도 하나님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까?
성경에 그런 말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요 10:34-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이 말씀은 구약성경 시편을 인용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의 내가는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하나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부르셨다고요? 신이라 불렀다.
이곳에 말하고 있는 신을 다른 말로 하면 무엇이라 부를 수가 있는 말입니까?
시편에 기록된 신은 히브리어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헬라어로 번역을 하면서 데오스라는 헬라어를 사용하였는데 그 기본어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런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행 17:29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이곳의 신도 하나님과 같은 말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무엇이 되었다고 합니까? 소생,
소생이 무엇을 가리키는 말입니까? 자녀들을 가리키는 말이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는 말씀입니다.
아담이 지음을 받았을 때 누구의 소생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소생
그렇다면 하나님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특성중 가장 강력한 특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능. 전지, 성품. 중 가장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하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다입니다. 이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하나님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아빠의 성품을 꼭 빼 닮은 아이들 있습니까?
그런데 성품은 꼭 빼 닮았는데 무엇은 하지 못합니까? 아빠가 하는 일들은 어린아이들은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로 지음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특성들로 우릴 초대하셨지만 우리는 가장 먼저 어디에 접근할 수가 있습니까? 그분의 성품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도록 창조함을 받았습니다.
그런 모습들이 우주의 거민들에게서 나타날까요?
아이가 어렸을 때는 아빠가 하는 운전도 못하고 집에서 필요한 일들도 못하지만 나이가 들면 배워서 할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혹 한번씩 슬픈 뉴스들이 나오죠?
어린 아이들이 아빠 차를 몰고 나오다가 사고를 낸 소식들이 한번씩 들립니다.
아이들이 누구 흉내를 내다가 일어난 사고입니까?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으로 다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하나님의 더 높은 은혜를 따라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계획을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너도 아빠처럼 운전을 할 수 있다고 꼬드긴 친구들이나 어떤 사람들처럼 사탄이 피조물중 가장 아름다운 뱀을 사용하여서 너도 하나님처럼 한번 되어 보라고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되어라는 말과 같은 말이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 거짓말은 어떤 것이었다고 들으셨습니까?
창세기 3장 5절의 있는 말씀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너희가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어떻게 된다고요?
밝아서 하나님과 같이 된다..?
여러분들은 눈이 밝은 것을 좋아 합니까? 어두은 것을 좋아 합니까?
그러한 질문은 바보 같은 질문이죠? 누구나 다 밝은 눈을 좋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은혜롭게도 많이 가리워져 있습니다.
가장 작은 것은 보지 못합니다.
그런 것이 은혜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까?
겨울에 볼 수 있는 눈송이를 현미경으로 보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합니다만 저는 현미경으로 눈을 본 일이 없습니다.
꽃들도 현미경으로 보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네요.
꽃들마다 가지고 있는 색상들은 사람의 색으로 이루어 낼 수 없는 수 많은 색상들이 있습니다.
나뭇잎들도 현미경으로 보면 아름답다고 합니다.
우리가 기다리던 주님께서 재림 하시면 하늘나라에서의 우리의 눈은 얼마나 밝게 볼 수가 있을까요?
증언의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가건 331쪽 “달빛은 햇빛과 같이 되고, 햇빛은 지금보다 일곱 배나 더 밝아질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지금의 달빛은 햇빛 같고 햇빛은 일곱배나 더 밝아 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 우리의 눈도 일곱 배가 더 밝아질까요?
아마도 햇빛이 그렇게 밝아진다는 말씀은 우리의 시야가 그 만큼 밝아 질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우리의 눈으로 지금 현미경으로 보는 것만큼 볼 수가 있을까요?
저는 지금 우리의 눈에 우리가 하늘에서 보는 것처럼 사물들을 볼 수 있다면 아마도 살아가는데 상당히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곱배를 밝아서 미생물을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세균들을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약 볼 수가 있다면 무엇이든 먹는일에 참 많은 어려움을 격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됩니까?
현미경으로 보는 것처럼 우리의 손을 본다면 손은 온통 무엇으로 덥혀 있고요.
더러운 벌래로 덮여 있고요.
우리 입으로 가져가는 음식들도 더러운 벌래들로 가득한 것을 본다면 무엇을 먹고 살아가겠습니까?
그러니 죄의 세상에서는 적당하게 보이는 것도 은혜라 생각합니다.
저도 이제는 안경을 벗으면 사물을 보는 일에는 지장이 없지만 책의 글자를 읽을 수가 없습니다.
수년전 집사람 눈이 좋지 않아 힘들어 할 때 나도 같았으면 더 많은 이해를 할 수 있을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요즘 가까운 것을 보는 눈은 제 눈보다 아내 눈이 더 잘 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는 눈을 인하여 감사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런데 사탄은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것을 보라고 속삭일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전 7: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전 7:21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저는 이 말씀을 모든 일에 적당하게 하라는 말씀으로 이해를 합니다.
적당은 대충이 아니고요 알맞게 하라는 말씀이죠.
의인이 지나치면 악인이 될 수가 있고요. 지혜가 지나치면 우매자가 될 수 있고요.
더 많은 것을 들으려고 우리의 귀를 키우면 우리를 저주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있다고 말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알맞게 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런데 사탄은 자꾸 부추기죠.
그래가지고 어떻게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잘 살 수 있느냐고요.
그래가지고 어떻게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느냐고요.
그래서 하라는 것을 하면 교회에서도 괴상한 사람이 되고요.
우리 이웃에게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웃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처럼 되라고 한 사탄의 마음에 어떤 마음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 있었던 마음입니까?
예 사탄에게 있었던 마음이죠? 성경은 이런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사 14:12-14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이곳에 나오는 계명성의 히브리어는 힐렐인데 아 용어가 헬라어로 번역할 때 어떻게 번역되었다고 들으셨나요? 루시퍼라고 합니다.
사탄의 이름이죠.
이 루시퍼가 어떻게 하다가 사탄이 되었는지를 설명해 주는 말씀이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14장 12절부터 있는 말씀입니다.
그가 마음에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하나요?
하나님의 뭇별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이 말들이 무슨 말이라 생각하십니까?
피조물이 감히 무슨 마음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피조물은 하나님처럼 될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면 나중에 아빠가 될 수가 있을지라도 피조물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은 강아지가 사람 되는 것 보다 더 힘든 일이라 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피조물은 아무리 위대한 능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은 누구와 관련이 있기에 그런 능력이 있는 것입니까?
그런데 감히 루시퍼가 자기를 만드신 창조주의 자리를 탈취하려고 하였다는 것은 제가 언제 말씀드린 강아지가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사탄이 한 일과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사탄은 창조주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탄의 미혹에 넘어간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피조물의 자리로 내려 오셨습니다.
극과 극입니까?
오늘 드린 말씀과 연계해서 생각한다면 십자가는 무엇을 보여 준 사건이라 생각하십니까?
사탄의 성품과 하나님의 성품이 대조되어 나타난 곳이라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다 쫓겨난 루시퍼는 그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되어 오셨을 때 어떻게 하고 싶었을까요?
천사보다 잠깐이지만 못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예수님을 가지고 놀고 싶었을 것입니다.
겟세마네에서 갈보리 십자가가 세워진 그곳까지 아마도 사탄의 존재가 어떠하다는 것이 가장 잘 들어난 곳이라 생각됩니다.
반면 겟세마네에서 갈보리 까지 도한 하나님의 성품이 어떠함을 가장 잘 들어난 곳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사탄의 정체와 하나님의 성품이 가장 잘 들어난 곳이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것이죠.
사탄은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사람을 통해 이루어 보고자 하였을까요?
창 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과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말은 그래서 한 것일까요?
하늘에서 쫓겨난 사탄은 사람을 통해 성공을 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눅 8:31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예수께서 거라사의 광인을 고쳐 주시기 위해 갔을 때 거라사 광인이 예수님께 한 말입니다.
그 말이 광인의 말이라고 볼 수가 없죠.
누구 말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까? 거라사 광인의 심령을 사로잡고 있는 사탄의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사탄은 어디에 들어갈 줄을 알고 있다는 말입니까? 무저갱
무저갱이 어떤 곳입니까?
계 20:1-3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용이 누굽니까? 바로 루시퍼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가 결국 잡혀서 무저갱에 1000년동안 갇혔다가 마지막 심판에서 불에 영원히 멸망을 당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도 안될 그 일을 왜 사람들을 통해 시도해 보려고 할까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고 결국 자기의 자리를 차지할 사람들에게 그대로 줄 수가 없다는 것이죠.
함께 멸망을 당하고자 하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너도 하나님이 되어라고 미혹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시여 여러분들도 스스로 무엇인가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벌써 사탄의 미혹으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생각해도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곳에 있다면 내려 오시기 바랍니다.
우릴 위해 자기를 버리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우리를 버리는 것만이 사는 길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버리기도 힘이 드시죠?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버릴 수도 있고요. 이길 수도 있습니다.
도와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탄의 미혹들을 이기고 주님 오시는 날 이김에 동참한 자들로 주님을 영접하게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