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4:1-10, 여 사사 드보라, 22.11.30, 박홍섭 목사
사사기에는 이스라엘이 주변 나라들로부터 고통과 압제를 당할 때 그들을 구원하여 평안을 주는 통로로 사사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활약이 사사기 전체에서 이스라엘의 영적 각성과 신앙의 진보로 연결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는 더 악화됩니다. 오늘 본문도 이렇게 시작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입니다. 이번 한 번이 아니라 반복되는 행악이라는 의미입니다.
원문을 보면 우리 말 번역과 어순이 다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 그리고 에훗이 죽었다” 에훗이 죽어서 이스라엘이 악을 행한 것이 아니라 에훗이 죽기 전에도 이스라엘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에훗이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이 그들에게 80년의 평안한 세월을 허락하셨음은 큰 긍휼이고 은혜입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이스라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세운 사사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의 행악에도 불구하고 평안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칫 사사가 영웅화 될 수 있는데 주목해야 할 사실은 사사기의 사사들이 한결같이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들조차도 하나님 은혜의 산물입니다. 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 기드온, 돌라, 야일, 입다, 입산, 엘론, 압돈, 삼손 모두 그렇습니다. 다 평범하다 못해 못난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나오는 드보라는 12명의 사사 중에서 유일하게 여자 사사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 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가가 되었는데” 당시는 남존여비 정도가 아니라 여자는 거의 사람 취급받지 못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군대 장관 시스라의 압제로부터 구원하는 사사로 남자가 아니라 여자인 드보라를 선지자로 불러 앞세우고 남자인 바락은 그를 따르는 부관의 역할을 맡깁니다.
바락이 어떤 사람으로 나옵니까? 6-8입니다.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 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 하셨느니라.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네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니” 드보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승리의 약속도 함께 전해줍니다. 그러나 바락은 믿지 못하고 드보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가겠지만 당신이 가지 않으면 나도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여자를 보호하고 여자를 안심시켜야 할 남자가 여자의 보호를 자청하고 여자 때문에 안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못난 모습입니까?
그래서 드보라가 좋다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고 바락을 안심키십니다. 하지만 시스라를 죽일 수 있는 영광과 공은 네가 아니라 여인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9절이죠.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다음에 보겠지만 결국 시스라는 바락이 아니라 이방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손에 죽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구원자로 여 선지자 드보라가 사사로 세워지고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원수인 시스라를 처단하는 영광도 남자인 바락이 아니라 여인, 그것도 이방 여인 야엘에게 돌아가는 것을 보십시오. 무슨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까?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여러분이 잘 아는 믿음의 위인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거기 사사들의 이름도 열거됩니다. 그 명단에 드보라의 이름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대신 누구의 이름이 나옵니까?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이렇게 언급합니다. 드보라의 부관 바락의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바락이 누구입니까? 드보라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소심하고 못난 남자로 등장하여 그가 받을 영광을 이방 여인 야엘에게 빼앗기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드보라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대범하고 대단한 믿음의 사람으로 설명됩니다. 히브리서와 달리 사사기는 드보라를 믿음의 사람으로 내세우고 바락은 당시 남자들의 영적 상태를 대변하듯이 당신이 가지 않으면 나도 가지 않겠다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스라엘을 압제하고 있는 강한 야빈과 시스라를 이기는 도구로 더 강한 남자와 무기가 아니라 가장 약한 여성을 사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성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면 능히 가장 강한 시스라를 이길 수 있는 통로가 된다고 가르쳐주십니다. 드보라는 여성이고 바락은 찌질하고 하나님이 가라고 명령하시는 다볼 산도 시스라의 철병거 9백 승에 완전히 노출되는 가장 좋지 않은 전쟁의 환경입니다. 그러나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좋은 환경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힘과 권력을 좇다가 더 큰 힘의 압제와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 힘과 권력의 상징인 남자와 무기가 아니라 여인들을 사용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소망은 힘과 권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약한 여자인 드보라와 더 못난 남자인 바락과 가장 좋지 않은 환경인 다볼 산에서도 얼마든지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사기의 일관된 메시지 아닙니까? 옷니엘, 왼손잡이 장애인 에훗, 소모는 막대기를 가진 농부 삼갈, 여자 사사인 드보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보내신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삶의 원리대로 살지 않고 가나안의 원리대로 살고 있습니다. 가나안의 원리, 세상의 원리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힘과 권력으로 성공과 부를 이루고 그 자리를 계속 지키는 싸움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다르게 사는 믿음의 싸움이 아니라 더 큰 부와 성공과 힘의 싸움에 빠져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힘과 권력과 성공이 답이 아님을 가르쳐주기 위해 더 큰 힘의 압제를 받게 하시고 더 큰 고통을 겪게 하십니다. 힘으로는 이스라엘이 이기지 못하는 현실을 징벌로 허락하시고 그 압제와 고통 속에서 부르짖게 하십니다. 그리고 부르짖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사들은 한결같이 힘없고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군대장관 시스라의 철병거 밑에서 20년 동안 심한 압제를 받게 하신 하나님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사로 여 선지자 드보라를 세우심을 보십시오. 바락이 아니라 이방 여자 야엘을 통해 시스라를 처단하는 것을 보십시오. 모두 여성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말씀으로 일깨워준 사람도 여자였고 무서운 적장 시스라를 말뚝으로 박아죽인 사람도 여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힘과 권력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힘과 권력을 추구했을 때 그토록 바라고 꿈꾸었던 평안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과 압제가 왔습니다. 옷니엘 때는 8년, 에훗 때에는 18년, 그리고 드보라 때는 20년입니다. 억압과 압제의 길이도 늘어났고 고통의 수위도 높아졌습니다.
이스라엘이 힘과 권세를 추구했을 때는 정작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가 가지고 있는 철병거 구백 승과 맞서 싸울 남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5:6-7을 보십시오.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관원)이 그쳤으니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 멀쩡한 대로를 놔두고 오솔길로 다녔던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 드보라를 일으켜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게 하시기 전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릴 관원이 없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형편이고 영적 상태가 이러했습니다.
사사기가 분명하게 전하고 있는 메시지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빙자하여 지금보다 더 큰 힘과 더 높은 지위와 안락함을 목표로 해서 살고, 예수의 이름을 동원하여 더 평안한 삶을 꿈꾸고 산다면 더 불안하게 되고 더 고통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이스라엘을 건지기 위해 사용하신 사사가 평범한 주부인 여 선지자 드보라였습니다. 그녀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한 남자의 아내이자 자녀들의 어머니인 그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그녀는 그 말씀으로 바락을 깨웠고 20년 동안 잠들어 있었던 이스라엘을 깨웠습니다. 그녀는 칼을 들고 직접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일으켰습니다. 아주 구체적인 말씀을 바락에게 주었고 그 말씀으로 바락과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일으켰습니다.
오늘 교회의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목사가 교인들이 어려울 때 돈을 주겠습니까? 학생들이 공부를 못할 때 과외를 해주겠습니까? 교인들이 아플 때 대신 아파주겠습니까? 오직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으로 교인들의 영혼을 깨울 뿐입니다. 그러나 교인들이 그 말씀을 붙들고 각자의 삶을 믿음으로 살 때 돈과 과외와 비교할 수 없는 승리를 얻게 됩니다. 우리의 힘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힘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집도 아닙니다. 말씀 붙들고 각자의 삶을 믿음으로 사는 그 정신입니다. 돈이 없다고 돈만 있으면 다 되는 것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돈이 있다면 있어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십시오. 학벌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사십시오. 재주가 있어도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주의 말씀을 생명처럼 붙들고 의지하십시오. 주의 말씀이 없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살아보십시오. 그때 드보라를 사용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가나안 왕 야빈이 가졌던 철병거 구백 승보다 더한 하나님의 힘을 은혜로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