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9년 여섯 촌장들이 아들을 데리고 알천의 언덕 위에 모여서 백성을 다스릴 임금을 뽑기 위한 논의를 하던중 남쪽 방향의 양산 아래 있는 나정이라는 우물가에서 오색영롱한 빛이 비치고 백마 한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한다. 이들이 그곳에 가보니 박같은 알이 있어 이를 깨어 보니, 잘생긴 사내아기가 나왔다 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연유로 그아이를 혁거세라 이름 지었고, 박에서 태어났다 하여 성을 박씨라 하였다. 그가 곧 박씨의 시조인 박혁거세이다.
같은 날 사량리에 있는 알영정이라는 우물에서는 용이 나타났는데, 왼쪽 갈비에서 어린 여자 아이가 나왔다 한다. 이 아이는 얼굴과 입술은 고왔으나 입술이 닭의 부리를 닮아 보기가 흉해서, 월성 북쪽에 있는 냇물에 목욕을 시켰더니 부리가 떨어졌다. 사람들은 이 아이가 나온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알영(閼英)이라 이름지었다.
기원전 57년 이 두 아이가 13세가 되자 박혁거세는 왕이 되었고, 알영을 왕비로 맞아들였으며, 나라의 이름을 서라벌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신라 왕실의 56대 왕은 박, 석(昔), 김의 3성이 돌아가며 하였는데, 그중 박씨 성을 가진 왕은 시조인 박혁거세를 포함하여 모두 10명이다.
박씨는 녀러 본관 중 단 1본도 외래 귀화족이 없으며, 모든 박씨는 박혁거세를 유일한 시조로 받들고 있다. 박씨끼리의 혼인을 피하는 이유도 이러한 까닭이다.
박씨는 박혁거세의 증손인 파사왕(신라 5대왕)과 일성왕(신라 7대왕)에서 갈라 졌으며, 일성왕계는 그의 26세손인 경명왕(신라 54대왕)과 경애왕(신라 55대왕)대에서 다시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