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5:10-15, 그친 만나와 여호와의 군대장관
21.11.17, 박홍섭 목사
오늘 여호수아 5장 10-15까지 읽었는데 5장이 여호수아서 전체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여호수아서의 구조는 크게 4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 가나안 정복 준비(1-5장) 2. 가나안 정복(6-12장) 3. 가나안 땅 분배(13-22장) 4. 여호수아의 고별설교와 언약 갱신(23-24장)
1장-5장이 어떤 내용이라고요? 가나안 정복 전쟁을 위한 준비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복을 위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무엇을 준비시켰습니까? 1장은 가나안 진군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신 것처럼 여호수아와도 함께 하시니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주야로 묵상하라고 하셨습니다. 광야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에서 살기 위한 첫 번째 준비는 새로운 환경을 맞는 불안과 두려움을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몰아내고 말씀을 붙드는 믿음입니다.
2장은 기생 라합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미 가나안 사람들의 정신과 간담을 다 녹여 놓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심으로 이미 승리가 확보되어 있으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십니다. 3장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앞세우고 자신을 성결하게 하여 요단강을 건넌 사건으로 가나안 정복이 성결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4장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단강이 갈라져서 건너게 됨을 마음에 새겨 잊지 말라는 의미로 길갈에 기념석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5장은 할례를 명하고 유월절을 지키고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 앞에 나타난 사건입니다. 할례의 의미는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옛사람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고백과 결단이었습니다. 가나안 정복은 나의 생각과 계획으로 살았던 지난날의 삶을 베어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새롭게 살겠다는 고백과 결단의 마음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할례를 명했습니다.
오늘은 유월절을 지킨 후 만나가 그친 것과 여호수아 앞에 나타난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어떤 의미의 준비인지를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 보니 이미 들판에 밀이 익어 있었고 이스라엘은 그 들판의 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렇게 1월 14일 저녁을 유월절로 지키고 그 이튿날부터 무교절을 지키자 그때부터 40년 동안 내렸던 만나가 그쳤습니다. 만나가 그친 것은 이제 새로운 시대를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만나는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하나님이 공급하신 기적인 동시에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는 비상한 믿음의 훈련입니다. 그러나 이제 가나안에서는 하늘에게 만나가 내렸던 광야와 달리 자기가 땀 흘려 농사지어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때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유월절 준수와 더불어 만나가 그칩니다.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입성하여 여리고 동쪽 길갈에 진을 친 날이 1월 10일입니다. “첫째 달 십 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 길갈에 진 쳤고”(4:19), 그리고 1월 14일 저녁에 유월절을 지켰고 그 이튿날인 1월 15일 아침에 가나안의 곡식으로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으며 무교절을 지키자 만나가 그쳤습니다(5:10-12).
만나가 그친 사건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는 유월절과 묶여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제 여기 가나안에서 자기 손으로 농사짓고 수확하는 모든 것도 광야에서 만나를 주셨던 구원의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분이 하나님인 것처럼 내가 힘써 농사지어 얻은 가나안의 수확물도 하나님이 주십니다. 내가 씨를 뿌리고 파종하고 농사짓고 수확했으니 내가 잘나서 얻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광야에서 하루하루 하나님 의지해서 만나를 거두었던 것처럼 가나안에서도 하루하루 하나님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만나가 그쳤어도 만나를 먹고 살 때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정신을 잊지 않고 그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타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부자가 타락하지 않는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타락하지 않는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모든 것을 가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하며 사는 것입니다. 만나가 그친 가나안의 일상은 그렇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정복 전쟁을 위한 준비입니다.
그다음은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나타난 여호와의 군대 장관의 의미입니다. 여호수아가 칼을 들고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그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라고 대답합니다. 이는 여리고 성 전투를 앞두고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와의 군대를 앞세우고 이들보다 먼저 싸워주심을 보여주신 의미입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가나안과의 모든 싸움에 승리를 주시는 분도 바로 이분, 여호와의 군대 장관입니다. 주의 백성들 앞에는 세상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여호와의 군대가 있습니다. 그 군대를 지휘하시는 대장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보다 앞서 우리의 대적들과 싸워서 승리하시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그러니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합니다.
출 3:5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도 똑같은 요구를 했습니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사랑하는 여러분 가나안 정복 전쟁의 가장 중요한 준비는 거룩함입니다. 지금 모세와 여호수아가 서 있는 땅이 왜 거룩합니까? 그 땅 자체가 거룩하지는 않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거룩합니다.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 땅에서 주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준비는 내가 서 있는 땅이 여호와가 계시는 거룩한 땅이라는 의식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신전 의식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고 하나님께서 나보다 앞서 여호와의 군대로 나의 대적을 물리쳐주신다는 의식이 있으면 내 발에서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자신의 권리를 양도할 때 신을 벗었고 상을 당하고 통곡할 때도 신을 벗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신을 벗으라고 요구하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권리를 모두 하나님께 넘기라는 주권의 이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주인이고 나는 종이라는 고백이 신을 벗는 행위입니다. 당시 자유인들은 샌들을 신고 다녔고 종들은 맨발로 다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던 이제부터는 여호와가 주인이 되고 나는 그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는 고백과 결단이 신을 벗는 행위입니다.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 열심, 자기 계획, 자기 능력을 믿고 살지 말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살라는 요구가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출애굽을 위해 모세를 부르시면서 요구한 것도,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이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위해 여호수아를 앞세우면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 준비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 신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자신이 주인이 된 삶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신을 벗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시어 벗기십니다. 하나님께서 벗기시기 전에 우리 자신이 신을 벗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할까요? 5장은 할례와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고 만나가 그친 후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나타나셔서 신을 벗으라는 요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전쟁 준비가 할례와 유월절 준수와 여호와의 군대장관 앞에 신을 벗는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참된 승리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이 준비 잘하고 계십니까?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공급하심을 믿고 자신을 성결케 하는 준비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여 만나가 그친 후에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마음으로 살고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신전 의식의 준비와 내 발에서 신을 벗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준비 말입니다. 이 준비를 잘하고 있는지를 살피고 기도하는 저녁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