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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심방을 받으면 좋으랴(2180.2023.2.19)
눅19:1-10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목사님이 좋아하는 성경구절 가운데 하나가 요10:10절‘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했습니다. 매년 2월이나 10월이 되면 심방을 하게 됩니다. 심방을 통하여 어떤 분들은 일년동안 기도한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 가정에 필요한 말씀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고 숨어 있는 아담에게 찾아가셨습니다. 그를 부르시고 그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비록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지었지만 자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나뭇잎으로 앞만 가리고 있는 그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이것은 심방의 기원과 치유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낮고 천한 세상에 오신 것도 심방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 준 예가 됩니다.
21년도에는 코로나 때문에 목사님이 심방을 못하게 되어서 창18장을 통하여 설교제목을 하나님이 방문해주시는 한해가 되라는 말씀을 주신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고 늘 찾아 오십니다. 아브라함은 그동안 자기 경험을 통해 자기가 만들고, 자기가 생각한 인간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고민하는 삶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아브라함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격려하시고 받아주셨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이렇게 말씀 드리는 것은 오늘 영광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소중한 만남이 더 깊이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크다고 보고 금년에는 여러분의 각 가정에 하나님이 방문하는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시기를 바라면서 더 하나님을 사모하게 되시고 예배 가운데서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은혜와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사모함과 하나님을 만난다는 의미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의 가치가 무엇인지 모두가 알고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가치인지를 깨닫게 되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사모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모든 기회들을 놓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신앙생활을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나요? 여러 가지 이론들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학적인 정의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성도님들에게 신앙생활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 신앙생활은 실제입니다. 신앙생활은 결코 이론도, 철학도, 신념도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실제입니다. 실제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실제로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가 이루어지고, 실제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나로 인하여 기뻐하시고, 실제로 하나님 때문에 내가 기뻐하는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과 함께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모두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며 살아가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느 세미나에 참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느 강사님이 자기 교회는 ‘심방을 안 하는 교회’라고 자랑하셨습니다. 현대 사회는 ‘심방이 필요 없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그분 주장은 현대인의 개인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가정이 다양한 형태라는 것이죠. 그런 개인 사생활을 들어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가정주부들도 직장생활을 하기에 민폐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교회는 일년내내 심방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교회는 부흥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목사님의 주장에 ‘참 좋겠다’고 하며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지난주 수요일에 시연합회 증경회장들이 모여서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심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 목사님이 봄 심방하겠다고 광고를 하고 받고 싶은분만 받으라고 했더니 전체교인들 중에 5가정만 신청했다고 하면서 세상에 이럴수는 없는 것이라며 투덜 댔습니다. 제가 그래서 광고를 그렇게 하면 받을 사람 없다라고, 받고 싶은분만 신청하라고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라고 투덜댈 필요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냥 다 한다고 해도 받을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받고 안받을 사람은 죽어도 안받는다고 그것은 그 성도의 신앙생활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심방온다면 너무 좋아했는데 지금은 싫어한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래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도 어느 성도 가정에 제가 심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예배상에 헌금봉투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심방감사헌금’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봉투를 자세히 보니 겉에 ‘심방감사헌금’이 아닌 ‘신방감사헌금’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잘못 알고 있구나’해서 제가 ‘신방’을 ‘심방’으로 슬쩍 고쳐서 교회 헌금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도 그 가정에 심방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또 ‘신방감사헌금’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없을 때 조용히 가르쳐 드렸습니다. ‘신방’이 아니고 ‘심방’입니다. 그랬더니 자기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는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러 오시니 하나님이 방문하는 것 같은 마음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방’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할 말을 잃고 멍하게 생각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심방이 뭡니까? 주님의 종이 성도의 가정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인도하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변하여 다들 바쁘게 사는 세상이 되다보니 ‘심방’을 귀찮고 번거로운 것으로 여기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심방’이 없다면 그 성도는 온전한 신앙생활하기가 어렵습니다. 목회자와 교제도 없고 성도와의 교제도 이루어지기 어려우니 신앙생활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신 목적 중에 하나는 교제입니다. 그러나 교제가 단절되면 자기를 들어내질 않게 됩니다. 결국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혼자서 해결할 방법을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혼자 전전긍긍하다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고 넘어지고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신, 불신을 막론하고 모든 가정은 수도 없이 많은 심방을 받고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외가 없습니다. 심방은 다 받습니다. 근데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어떤 심방을 받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누구의 심방을 받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심방을 받고 싶으냐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여러분 가정을 심방안해도 여러분 가정을 심방하는 자가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누가 심방을 옵니까?
강도와 절도의 심방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도둑놈이 심방온다는 말입니다. 와서 다 빼앗고 강간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요10:1절에 주께서 ‘내가 양의 문이라’고 하셨는데 그 문으로 들어 가지 않고 변칙적으로 넘어 들어가는 심방이 그것입니다. 저들은 삯을 위해 심방합니다. 불의한 목적으로 심방합니다. 남의 양을 노략질 하기 위해 심방합니다. 압살롬처럼 양의 마음을 도둑질하기 위해 심방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욕을 위해 양의 집을 기웃거리는 절도와 강도의 심방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에 강도가 심방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형사들의 심방이 있습니다. 요즈음 중,고등학생 10명 중 6명이 흡연의 경험이 있고, 3명은 상습 흡연자이고 여학생도 생각이상으로 많은 숫자가 흡연을 하고 있다고 통계가 나왔습니다. 또한 흡연으로 인하여 페의 기능이 약해지면서 기흉이라는 병을 얻어서 병원에 수술을 받으러 오는 학생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요즘에는 남자들보다 여자 학생들과 처녀, 그리고 부인들이 기흉에 많이 걸려서 수술을 받으러 병원을 찾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여러분들의 자녀들은 어떤지요? 혹시 길거리에서 죄를 범하고 쫓기는 자녀들은 없는지요? 범죄가 만연한 오늘날 자녀들을 키우면서 내 집에 형사들이 찾아오는 심방이 없었다면 우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 출신들은 신앙적으로 잘배우고 해서 이런 일이 없습니다만 상주경찰서에 전에 무엇을 훔치다가 잡혀온 학생들 등등 있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면 젊은 아이들이 무섭습니다.
박수무당의 심방이 있습니다. 공연히 남의 집을 쏘다니면서 예언을 한다고 겁을 주거나 공갈을 치며 살살거리는 축복 예언을 해 주면서 불순한 흑심을 채우려 드는 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과거에서부터 은혜 충만하다는 부녀자들 가운데 사마리아의 시몬처럼 성경을 야욕 채우는 방편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많은 것이 우리 나라의 풍토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다고 소문만 나면 그의 부도수표 같은 남발 축복과 복점 같은 예언에 취하여 그들의 무분별한 심방을 즐겨 받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엊그제 티비에 탐사보도라는 프로그램에서 천공에 대한 이야기하면서 그 사람의 강의를 한번 들으려면 00만원 내고 들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점 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심방을 극히 조심하지 않으면 쉽게 마귀의 구렁텅이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기도하여 깨어 있어야만 이런 심방을 받지 않게 됩니다.
이단 심방이 있습니다. 이단들의 심방은 이미 소문난 심방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음흉한 마음을 감추고 지겹고 능글맞게 추근거리며 다가옵니다. 도대체 그들의 그 능글맞은 뚝심과 열성은 가히 마성적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아무리 천사로 가장할지라도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가 이단입니다. 요즘에는 새로로운 이단들이 더 많아 졌습니다. 기존의 교회들을 비방하고 자기들의 다니는 교회만이 진정한 교회이고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 모두 이단들입니다. 이단에 한번 빠지게 되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가정도 잃고, 물질도 잃고, 사람도 잃습니다. 심지어는 자식도 팽게치 고 빠져들게 됩니다. 이런 이단들에 잡히지 않으려면 더욱 열심히 기도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이 최상의 무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축복 심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을 정답게 맞은 아브라함의 가정, 여리고 성의 삭개오나 고넬료의 가정이 바로 축복심방을 받은 대표적인 가정입니다. 늙어 아이를 가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사자들을 대접함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이삭을 얻었고, 그로 인하여 그의 가문은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의 조상이 되는 축복심방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또한 삭개오의 심방도 그야말로 대축복의 심방이었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이 주님의 선언은 삭개오에게 구원의 은총을 선언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죄인 삭개오를 심방하시겠다고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오늘 본문에 삭개오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삭개오’라는 이름의 뜻은 ‘순결하다’ ‘의롭다’ 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가 순결하고 의롭게 살라고 그렇게 이름을 지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는 세리였습니다. 세무 공무원이었습니다. 당시는 로마가 이스라엘을 식민통치하던 시대이기에 세무 공무원은 로마의 앞잡이, 매국노라고 욕을 먹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은 세리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고 짐승취급하며 악독한 죄인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과 식탁을 같이 하거나 그들 집에 들어가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은 왕따를 당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그들도 사람으로 대해주셨습니다. 그들도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 중에 마태는 세리였는데 그가 마태복음을 기록하는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사람을 대할 때 그의 직업이나 출신, 또는 외모나 학력으로 차별하고 평가하는 것은 무서운 죄인 것을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세리나 창녀나 고아를 만나면 그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리고는 그들 가정에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코로나 이후에 저는 심방 하기에 앞서서 이 말씀을 갖고 심방을 통해 주시는 복에 대해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삭개오는 어떻게 예수님의 심방을 받았을까요?
누가 심방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주님은 삭개오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삭개오는 우리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심방을 받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요? 당대에 유대인들 중에 예수님의 심방을 받은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심지어 제자들 중에도 예수님의 심방을 받지 못한 제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 취급당하는 세리 사람들에게 왕따 당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심방을 받은 것입니다. 삭개오는 어떻게 예수님의 심방을 받았을까요?
예수님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교통의 도시인 여리고 시의 세리장, 즉 세무서 서장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도시를 거쳐 가는 사람들의 입에서 들리는 ‘예수’라는 분에 소문과 소식을 많이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라는 분이 병자를 고쳤데’,‘말도 말아 그분이 문등병자도 고쳤데, 어디 그뿐인가? 앉은뱅이도 고치고 중풍병자도 고치셨단다’심지어는 ‘떡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였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그러니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또 들리는 다른 소식은 그분의 제자 12명중 ‘마태’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세리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리인 삭개오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세상에 어떤 분이기에 죄인 취급당하는 세리를 제자로 삼는가’ 예수님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관심이 생기니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심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강렬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회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오려면 오고 말려면 말고’이래서는 은혜도 없고 하나님의 종이 와 봐도 별것을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결단과 열정이 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어느 날 소식이 들려옵니다. ‘나사렛 출신 예수’라는 분이 여리고를 통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즉시 일손을 놓고 길가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워낙 많았습니다. 그러니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의 얼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이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은 강한 열망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강한 열망이 있었기에 쉽게 포기하고 돌아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길을 앞서 가서 돌 무화과 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만들었던 것은 그의 결단과 열망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온전히 만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고 싶은 강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을 만나고 그래야만 우리 인생의 복된 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야 합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려 할 때 몇 가지 어려운 환경이 있었습니다. 세리라는 직업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는 여리고의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고위직에 사람이 당대 유대인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이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다가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 부는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열심히 일해서 벌었을 수도 있겠으나 사람들은 세리로서 세금포탈과 착취로 벌었다고 오해받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 같은 세리를 어떻게 대해 줄까 하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다 그는 키가 작았습니다. 키가 큰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키 작은 사람은 키 이야기를 하면 열받는답니다. 키작은 사람의 별명이 ‘짜리몽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상당히 힘들답니다. 그러니 삭개오도 키도 작은데 몰려나온 사람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주님을 만나기가 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니고데모처럼 밤에 몰래 찾아와도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환경을 극복할 만한 그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뭘까요? 그것은 소문을 통해 들었던 복음이고 그 복음을 통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가슴 깊은 곳에서 그분을 만나면 내 인생이 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 알 수 있냐고요? 오늘 그는 주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는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릅니다. 아무나 그렇게 부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가롯유다도 ‘랍비’라고 하던지 ‘선생님’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그는 ‘주님’이라 부릅니다. 그러니 그는 자기가 갖고 있는 장애물을 뛰어 넘었던 것입니다. 8절‘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그는 자기의 죄를 회개합니다.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고 누구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4배를 갚겠다고 약속합니다. 이것은 대단한 결단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이렇게 예수님이 삭개오 집에 찾아오는 것이 심방입니다.
2.주님은 어떻게 심방하셨나요?
주님의 심방자세는 어떠했습니까? 주님은 오늘 본문 10절에‘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심방은 그저 친교나하고 먹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할 일이 없어서 심방하는 것도 아닙니다. 심방의 목적은 주님을 올바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을 그 가정과 사업장에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자기 사명을 바르게 깨닫고 살도록 길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런 심방을 하신 주님의 자세를 살펴보세요. 아주 중요한 것이 몇 가지를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죄인에게 친히 찾아와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냥 거쳐야 하는 길이기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죄 가운데 있는 삭개오를 만나려는 목적을 갖고 간 것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려 하신 것입니다. 심방은 하나님이 직접 찾아 와주시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지나가는 길에 들리는 것 같이 보이나 그것은 우리 시각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구원하려고 목적을 갖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도 하나님의 종이 여러분 가정과 사업장을 심방하려 할 때 주님이 직접 찾아와 주시는 것으로 믿고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내 이름을 알고 불러 주십니다. 삭개오는 이 사건 이전에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나무 위를 올라가 내려다보는 삭개오를 향해 주님은 그 나무 아래서 그의 이름을 불러 줍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제가 그 장면을 상상하면 삭개오는 그 나무에서 떨어질 뻔 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주님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순간에 기절할 뻔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처음만나는 분이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 것일까? 기절초풍할 일이지요. 저도 나이가들면서 점점 건망증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성도들을 목회하는 동안에 잊지 않으려고 새벽시간에 성도들 위해 한분한분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합니다. 다른 것들은 종종 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 주님은 여러분의 이름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주변 사람은 몰라주어도 우리 주님은 우리 이름을 알아주십니다. 그러니 주님이 기억하고 계시는 그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삭개오 집에 들어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이름만 불러 준 것이 아닙니다. 한 술 더 떠서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하십니다. 그러니 어찌 놀라지 않았겠습니까? 당대에 유대인이 세리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이 안 되는 일입니다. 7절‘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했던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시각으로는 아주 파격적인 행동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삭개오는 좋았습니다. 6절‘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했습니다. 한마디로 신나서 죽을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이럴 때 표현을 뭐라 할까요? 아마도 그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인도하면서 어린 아이처럼 팔딱 팔딱 뛸 정도로 좋아 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의 집에 들어오신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목사가 찾아가지만 주님의 종이고 사자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곧 주님이 찾아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심방은 하나님이 내 생활 속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경 곳곳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인간의 삶속에 찾아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천사모습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는 문 앞에 앉아 있다가 하나님과 천사일행의 심방을 받습니다. 그는 그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들을 지극 정성으로 접대합니다. 그 결과가 아들을 얻겠다는 약속을 받게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이 심방을 잘 받아 살아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야곱에게도 얍복 강변에서 찾아왔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도 찾아왔고 지쳐있는 엘리야에게도 찾아왔고 신약시대에 감옥에 있던 베드로에게도 찾아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풍랑 당한 바울에게도 찾아와 위로하셨습니다. 꿈속에서도, 환상 속에서도, 그리고 천사 모양으로도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니 심방을 부담스럽거나 귀찮은 것으로 여기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그것은 일생에 가장 큰 복이고 기회인 것입니다. 그러니 삭개오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반겨주어야 할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회개토록 인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 집에 들어가셔서 부흥회를 하신 것도 아닙니다. 오랜 시간 설교를 하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 집에 들어가 교제하며 식사를 대접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삭개오가 스스로 자원하여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남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을 4배나 갚겠다고 약속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오늘날 부자는 얼마나 가져야 부자라 할까요? 한 50억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결단입니다. 그리고 남의 것을 속여 빼앗았으면 4배를 갚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회개가 강압적이 아닙니다. 자발적인 회개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주님을 온전히 만남으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그래서 주님과 온전한 교제가 이루어지면 회개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시면서 자발적으로 스스로 일어서라고 말씀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어두움은 빛이 임하면 자동적으로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받으면 자동적으로 어두움이 사라집니다.
3. 심방 받은 결과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삭개오 심방은 구원을 얻고 복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심방의 가장 큰 열매는 택함 받은 백성이 구원을 확신하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바른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심방의 복입니다. 삭개오 입장에서는 이런 선언보다 더 큰 복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늘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살던 사람입니다. 부자기에 돈은 넉넉했으나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많았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그것, 그것이 뭘까요? 그것은 사람대우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사람들이 대우해 주고 인격적인 교제를 해주는 그것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찾아오시더니 그 놀라운 복이 그 집에 선포되는 것입니다.
9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이것이 심방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잃은 양들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신분을 회복하고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바르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 깊은 곳에 있던 상처가 치유되고 그를 괴롭혔던 죄에 대한 무거운 부담을 다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부러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를 찾아와 주신 주님에 은혜를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주님이 원하는 잃은 양을 찾는 사역에 동참했을 것 같습니다. 돈을 벌고 부자로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었던 그에게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바뀐 것입니다. 그의 변화된 가치관, 그리고 그 믿음이 그를 새롭게 했을 것입니다.
수넴 성에 한 귀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부인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위한 배려가 너무나 자상했고 심방 받는 태도 또한 무척 감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그 여인은 사라처럼 무자하였으나 아들을 얻는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님들도 모두가 말씀 앞에 무릎을 조아리고 사모하여 믿음으로 심방 받고 각기 소원을 이루며 풍성한 축복을 받는 심방 기간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떤 의식이 끝나면 신앙생활도 함께 문을 닫아 두었다가 다시 의식이 시작되면 다시 문을 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계속 하나님과의 만남을 유지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배가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예배드릴 때와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원하십니다. 분명히 믿기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님들을 분명 방문하신다고 믿습니다. 확실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방문하셨는지 전혀 모르고 세상에 사로잡혀, 내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가면 안 됩니다. 큰일 납니다. 너무 큰 손해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심방은 어떻습니까? 저는 이번 주부터 여러분이 정해진 시간에 가서 심방을 하려고 합니다. 원하는 가정에 말씀을 가지고 갈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이 심방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바빠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심방을 받기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주께서 감동을 주셔서 심방을 하려 할 때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솔직히 안 왔으면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가정에 억지로 가서 드리는 예배가 은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자세를 바꾸어야 합니다. 심방과 예배를 주님을 맞이하듯이 기쁨으로 맞이하면 주님은 그 심방을 통해 여러분 개인과 가정 그리고 직장에 놀라운 복을 베풀어 주실 줄 믿으시기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을 방문하실 때 우리 성도님들도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아브라함 처럼 하나님을 알아 뵙고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삭개오처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문, 예수님의 임재 때문에 우리 성도님들의 삶에 놀라운 영광이 임하시고 문제는 떠나가고 축복은 성취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댓글 아멘💖
기도하며 심방 예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정에 주실 축복의 말씀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목사님~♡ 사모님~♡심방 기간 동안 더욱 더 건강 잘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