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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횡단이야기(2)
(청양의 한 초등학교에서 휴식을---)
홍민: 정말 보통 사람들이 계획하여 실천하기 힘들고,
특히 아버지의 연세에서는 더 더욱 힘든 일을 하셨네요.
하지만, 내려쬐는 폭염 속에서 걸으시는 동안에
혹시 에어컨을 틀어놓고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던가요?
그래서 포기하시고 차를 타고 싶다는 유혹 같은 것은 없었는지요?
나: 그런 유혹이 있을 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어머니와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음을
가끔 서로 확인 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로
첫 번째는 지금 우리가 이렇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여건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게 느끼면서 여행을 출발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더라도 만약에 너무 어려우면,
쑥스럽지만 웃으면서 금방 돌아 올 수 도 있다는
여유로운 생각을 하면서 시작했다는 점과,
둘째는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는
더위와 장거리 도보여행으로 인한 피로,
그리고 여기에 따르는 고생과 위험 등등을
우리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했지.
그것은 이번 여행 동안 우리부부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남을 의식하지 않아도 좋은 오직 우리 부부만을 위한 시간이요
따라서 어떤 격식에 구속받을 필요 없는
진정한 자유인으로 보낼 수 있는 시간으로 여기면서
여행을 출발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국토 횡단여행이란 말은 하나의 구실과
화려한 수식어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 부부만의 자유로운 시간"에서 찾고 싶었고
이런 마음으로 시작한 여행이었기에
웬만한 어려움은 오히려 쉽게 극복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아내: 아버지의 말씀에 나도 전적으로 동감하고 싶구나.
그리고 방금 말씀하신 것을
나는 여행 동안 계속해서 확인을 할 수가 있었단다.
(칠갑산 천정 못을 배경으로)
특히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다른 분들이 아버지보다는 나를 훨씬
더 걱정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걱정이나 우려와는 달리
그렇게 어렵다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었어.
여행 출발 3일째부터
발이 붓고, 물집이 생겨서 걷는데 조금 지장을 주기도 했고,
또 풍치로 인한 고열로 약간 힘이 들기는 하였지만
약간의 육체적인 어려움은 정신적인 행복감으로 쉽게 극복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나: 첫날, 새벽 5시경 대천 해수욕장을 출발하여 약 여섯 시간이 지난 후에
겨우 대천을 벗어날 수가 있었는데,
평소에는 차로 30분 정도면 도달 할 수 있는 거리를
도보로 여섯 시간이나 걸렸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약간 공허한 마음이 들더구나.
하지만 차를 타고 다닐 때 쉽게 지나쳤던 거리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고,
특히 청라 저수지를 지날 때 새벽 물안개가 자욱하게 펼쳐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여행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첫 신호로 생각했고
또한 그 정경은 우리로 하여금 이번 여행의 첫 번째 행복을 느끼도록 해주었다.
아내: 집을 나선지 네 시간이 조금 지난 아홉시 경 국밥으로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밖을 나오니 벌써부터 무더위가 우릴 마중하는데
그 때 아버지께 말씀은 안 드렸지만, 처음의 결심과는 달리
이번 여행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조금 되더구나.
하지만 지금까지 모든 일에 아버지를 믿고 의존해 온 나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잠시 동안의 걱정은 사라지고 이번 여행이
우리의 삶에 더 많은 행복과 자신감을 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홍민: 하지만 정신과 육체는 서로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따라서 정신적으로 행복하다는 것이 육체적인 고통을 조금
감소시킬 수 있겠지만,
그 고통이나 어려움을 전혀 못 느끼게 할 수는 없잖아요.
어머니 솔직하게 말씀해 보세요. 언제가 가장 힘들었습니까?
아내: 글쎄? 발이 부르트고, 이 아플 때? 너무 더워서?
그러나 여행이 거의 끝난 이 시점에서 너무 행복하고
또 군에 있는 너를 만나서 그런지는 몰라도
특별히 어려웠던 일은 생각이 나질 않는구나.
조금 전에도 말 한 것처럼 웬만한 육체적인 어려움은
정신적인 행복감으로 극복 할 수 있다는 것과
특히 군복을 입고 자율적인 행동이 용납되지 않아
힘든 생활하는 아들 앞에서
여행이라는 단어조차 사용하기도 미안한데,
너에게 뭐가 힘들었다고 말 할 수 있겠니?
(이런 물집을 세번 반복한 후, 삼척에 도착했다.)
나: 처음 하는 도보여행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시행착오가 우리를 간혹 어렵게도 만들고
또 당황하도록 만드는 일이 몇 가지 있었지.
여행의 둘째 날 저녁이었는데,
우리는 거리상으로는 얼마 안 되지만, 칠갑산을 힘들게 넘었고,
또 여행 첫날의 충만한 기분으로 인하여 오버페이스를 하여 조금 지쳐있었는데,
저녁 8시경 공주군 우성면에 도착하여 숙소를 찾으니 보이지 않아서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우리가 도착한 우성면에는 숙소가 없고
숙소는 지금부터 8Km를 더 가야 된다는 말을 듣고 너무 황당했었다.
어쩔 수 없이 근처에서 저녁을 간단히 먹고 밤 10시30분까지
다시 8Km를 더 걸어 가야했던 일과,
또 공주시내까지 밤중에 가는 길이기 때문에 산으로 이어지는 국도를 택하지 않고
터널을 통과하다가 갓길이 너무 좁아서 위험을 느끼며
1Km가 넘는 터널을 통과 할 때 처음으로 어려움을 겪었지.
홍민: 우리나라는 각 도시의 시내 지역을 벗어나면 인도가 별도로 없어서
도보여행 하기가 무척 힘들고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는데 어땠어요?
아내: 정말 힘든 구간이 많이 있었어.
그것은 우리가 길을 잘 몰라서 2차선 국도로 가지 않고
차량통행이 많은 4차선 국도로 갈 때 특히 힘들었지.
특히 공주에서 조치원 구간을 갈 때와
청주에서 증평을 경유하여 괴산을 갈 때였는데
주말이어서 차량 통행이 무척 많았고,
또 갓길은 좁아서 우리가 조금만 잘못하면
큰일을 당할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까지 느꼈었다.
그 당시 나는 아버지께 이번 여행을 중도에서 그만두자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었어.
그러나 그 이후에는 2차선 국도와 지방도를 찾아서 다니니까
조금 나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릴 정도야.
나: 나중에 너희들이 우리처럼 도보여행을 할지도 모르니
신발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해바라기 그늘 밑에서)
나는 가벼운 운동화를 (이것은 도보 여행가 김남희씨가 소개한 말)신고
어머니는 평소에 신고 다니던 등산화를 신고 출발했는데
어머니와는 달리 나는 발이 쉽게 뜨거워져서 너무 힘들었다.
처음 생각에는 그것이 도보여행자가 당연히 겪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미련하게도 150Km이상을 그 가벼운 운동화를 계속 신고 다녔지.
그러는 동안에 내 발은 아스팔트의 지열로 인하여 어머니보다 더 많은 물집이 생겼고
결국은 문제가 운동화에 있다고 생각하고는
수안보 온천에서 등산화를 구입하여 바꿔 신었는데
그 이후는 발도 편하고 발이 뜨겁지도 않아서 걷기에 얼마나 좋던지.
그래서 이런 도보여행에서는 신발 선택이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꼈다.
홍민: 도보여행을 하시면서 도중에 많은 분들을 만나셨나요?
나: 우리처럼 여행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에 대비하여 명함을 많이 준비했지.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는 아들과 둘이서 3일 예정으로
도보여행을 다니는 두 사람을 잠시 만났을 뿐,
우리처럼 한여름에 도보여행을 하는 무모한 사람(친구들의 표현)들을
만나지 못했어.
나: 간혹 식당이나 여관에서 주인들과 대화 할 시간이 있어서
우리의 여행을 이야기하면,
공통적으로 처음에는 우리의 이야기를 못 믿었고, 다음에는 '멋있다',
‘언젠가 우리도 하고 싶은데 가능 할까?'라고들 했지.
그리고 간혹 사람들은 '뭐 하러 고생을 사서 하나'라고 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꼭 성공 하세요' 라고들 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격려를 해주더라.
하지만 방향을 몰라서 길을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외버스 터미널 가는 길을 가르쳐 주든지
아니면 차량으로 이동하는 고속도로,
또는 국도 4차선 길을 가르쳐 주었는데,
우리가 걸어서 가는 길을 다시 물으면
걸어서는 갈 수 없다는 말을 하면서
우리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국토횡단 이야기(3)에서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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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기대..흥분..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군요. 국토횡단 여행하면서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꼭 나오는 단어들이 눈에 띄는 군요. 멋있다. 언젠가 우리도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 꼭 성공하세요. 등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을 보면서 사람들이 더 어렵게 생각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어려운 길에서 느끼는 자유는 더 애뜻했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