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정이 곤하셨는지 새벽산책 채비를 하는데 오선생님은 기척이 없으셨다. 아마도 나오고 난 뒤 바로 기침하셨을 듯.
새벽안개가 심하다.
조용한 거리. 오래된 고풍스러운 건물,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만끽하며 걷는 기분이 꽤 좋다.
하루가 늦게 열리는 느낌이다. 거리에 사람이 없고 보통의 부산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 블록을 넘어가니 조그만 연못이 깨어나고 있다. 주변으로 적당히 긴 산책로도 있고 소박한 운동시설도 있고 공공화장실도 있다.
중국여행에서 큰 난제 중에 하나가 화장실 이용이었는데 며칠간 경험으로 보아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곳곳에 깨끗한(한국과 비교하면 안 되지만) 화장실을 만들어 놓았다. 물론 무료 이용이다. 단, 화장지는 없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구화산으로 올라가 숙박. 여행짐을 갈무리해야 해서 서둘어 숙소로 돌아왔다.
오선생님이 의관정제하시고 짐을 정리하고 계신 것은 보니 나가는 소리에 일어나신 게 분명하다. 룸메 잘못 만나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는 거 같아 미안하다.
밤늦게까지 스님을 포함한 일행들이 독경을 하고 부산했는데 이른 새벽에 또 목탁소리와 함께 조금은 소란스러웠다,
그런데 목탁소리가 거의 랩 수준으로 빠르던데 불경 독경도 시류에 따라 변한 건가?
구화산 풍경구에 도착. 안개가 아직 덜 걷혔다.
구화산 풍경구는 불교성지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다수의 사원과 불교 유적이 있어 많은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방문한다.
구화산은 선종과 관련이 깊으며 교각스님으로 인해 우리와 인연도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에 대한 호감이 높다.
구화산(1,342m)은 구화산의 원래 이름은 용의 아들 9마리가 하늘을 바라보는 형국이라 해 구자산이었는데, 당현종의 총애를 받던
양귀비의 눈밖에 나 관직에서 쫓겨난 이백(태백)이 양자강에서 이 구자산을 바라본 후, 용의 아들이 아니라 부처님을 받들고 있는
9송이 연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는 산이 틀림없다고 해서 구화산으로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양자강을 끼고 천하 명산 황산산맥 지맥인 구화산은 당초 도교 사원이 많이 있던 곳이었는데 김교각스님이 8세기 초
이곳에 와 75년간 고행정진 한 후 등신불이 되자 중국 4대 불교 성지 중 유일하게 등신불을 모신 성지가 됐다.
妙有分二氣 靈山開九華
묘유분이기 영산개구화
묘한 기운이 두 곳으로 나뉘어 기상하며, 신령한 산에 아홉 개의 꽃을 피웠다.
풍경구 안에서 운영되는 버스를 타고 구비구비 산길을 올라오니 산봉우리들이 지척이다. 불교 성지답게 아름다운 자연경관,
흩어지는 향내음과 눈길 닿는 곳은 크고 작은 절집과 오래된 양식의 건물들. 그 사이를 오가는 성지순례자들이 부산하다.
문제가 생겼다. 카메라가 에러가 나는데 임시조치를 해도 돌아오지를 않는다. 이런 제길.....
보조카메라는 배터리 부족.. 헐~~~
오늘 밤을 지낼 호텔에 일단 짐을 풀고 간단한 차림으로 화성사로 향한다.
호텔의 상태가 매우 좋다.
일단 아이폰으로 촬영. (이번 여행기의 사진은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이 대부분)
이 자리를 빌려 보조배터리 충전케이블을 반 강제로 찬조해 주신 평안님과 아랑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분들 아니었으면 여행기는 없을 뻔.
호텔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근사하다. 참 좋다.
화성사.
구화산 성지에서 주요 불교 사원 중 하나로, 화엄종과 관련이 있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난 사원이다. 전통적인 중국 불교 건축
양식에 따르며, 화려한 조각과 장식이 돋보인다.
동진 때 인도의 베도화상에 의해 처음 창건되었고 교각스님의 수행도량이다.
그런데 여기도 많은 관광객, 순례객들이 뒤섞여 산만하고 복잡하다.
좋다는 조각이며 불상 등을 보고 있을 상황이 안 돼서 대충 보고 나왔다. 내일 새벽에 와서 조용히 봐야지 하면서...
절집 앞 반원형의 방생지.
낭낭탑(娘娘塔)은 소실되고 현재 방형 기단만 남아 있다. 신라 여인을 위해 세워졌다는 애틋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낭랑탑 기단 위에는 명안천이 있는데, 이 우물은 김교각 스님의 어머니가 신라에서 아들이 있는 구화산으로 찾아와 울음을 그
치지 않아 눈을 상했는데, 교각스님이 화성사 앞 우물에서 물을 길어 어머니의 눈을 씻기자 눈이 나았다 하여 불려진 샘 이름이다.
화성사 대웅보전
대웅보전 후면에 아름다운 조형물.
수월관세음보상 입상과 33 관음 화신.
혼잡한 화성사를 빠져나와 한적한 골목길을 걸어 육신보전으로 향한다.
한국에 두고 온 가을풍경을 육신보전 입구에서 만난다.
입구를 들어서자 커다란 대웅보전이 위압감을 준다. 한국 사찰과는 다른 중국 사찰의 위용이라 할까?
보편적으로 뭐든지 다 크다. 대웅보전을 돌아가니 육신보전으로 오르는 엄청난 계단인이 등장한다.
아… 어쩌냐 신라왕자 출신으로 중국에 건너가 모두가 추앙하는 지장보살이 되신 교각스님의
등신불을 친견하는 것이니 무조건 올라가야지.
한참을 올라가다 한번 돌아 다시 올라간다. 이런 젠장~~
헉헉 거리며 다 왔나 했더니 나타난 계단.
내려오는 사람들 표정을 보라. 올라가는 건?
이때는 몰랐다.
이번 여행이 계단정복 여행이라는 걸.
왔노라!
계단을 다 오르고 다시 몇 개단 내려와 도착한 육신보전 앞마당도 돌바닥.
아니 이 많은 돌들을 어디서 가져다 만든 거지?
3층에 교각스님 등신불을 모신 7층 탑
99세에 김교각은 주위의 모든 승려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입적했는데 사찰에서는 그의 육신을 돌항아리에 넣었다. 3년 후에
열어보니 그때까지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해서 사람들은 그를 지장의 화신이라 여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김교각스님을 지장보살이라고 확신한 당시 사람들이 그의 육신에 금을 입히고 3층 석탑을 세웠는데 후인들이
그 위에 세운 사찰이육신보전이다. 797년 지었으며, 청나라 때 중건되었다.
육신보전을 빙 둘러 줄을 서있길레 뭔가 했더니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감히 저 줄 끝에 서지 못하고 ….
육신보전 구석구석을 봐야겠는데 여유가 없다.
구름같이 밀려드는 사람들.
뿌였게 뒤덮은 향 태우는 연기.
소란스러움.
이미 점심이 가까운 시간.
서둘러 내려와 자유롭게 거리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백세궁으로 향한다
마실정회동
첫댓글 알면 더 보이는 법인데......
저 긴 줄에 서봤다는 1인입니다. 허무했습니다.ㅠㅠ ㅎㅎㅎㅎ
머리에 보자기를 뒤집어 쓰고 속세를 버려야 보인다는…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