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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6일부터 18일까지 #ABC = #안나푸르나_베이스_캠프 로 12박 13일의 트레킹 후기 3탄
2025.02.11.화
#안나푸르나_트레킹 6일차
오늘은 #시누아_2300M -> #뱀부_2335M -> #도반_2303M -> #히말라야롯지_2920M -> #한쿠동굴_3100M -> #데우랄리_3230M 로 가는 여정이다.
갈 길이 멀다고 5시 30분 기상, 6시 반 식사를 했다. 이제는 짐 싸는 것도 익숙해져서 나름 재빠르게 착착 진행되지만 고도가 높아지면서 얼굴도 붓고 손가락 끝도 무뎌져서 손톱이 깨지고 피부가 일어난다. 어제 흙먼지로 양말목이 너무 더워져서 오늘은 스패츠를 착용해보았다.
원활한 워밍업을 위해 이종현쌤의 리드로 맨손체조를 하고 있는데 동네 개가 합류한다. 이곳은 개들의 천국이다. 목줄은 당연히 없고, 아래 롯지에서 위 롯지까지 여행자들을 따라 평화롭게 다니며 간식도 얻어먹고 영역 마킹도 한다. 다음 생엔 자유롭고 느긋한 히말라야의 개로 태어나면 어떨까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
출발 첫 계단부터 경사가 장난이 아니어서 50분정도 걷다가 #Upper_SINUA 에서 다 같이 티타임을 했다. 마차푸차레가 점점 가까워지는 게 느껴진다. 다시 힘을 내서 2시간 정도 걸어 계곡 속에 위치한 #뱀부 에 도착했는데 이미 선두팀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중간팀과 후미팀은 그들의 속도에 반항이라도 하듯 자체 티타임을 가지며 따뜻한 생강차로 숨을 돌렸다.
숲과 경사진 산 길을 1시간 반 정도 더 걷고 도착한 #도반 에서 한참을 기다린 선두팀은 우리에게 너무 늦지 말라고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위험할 수 있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어쩌랴, 너무 힘들다. 체력과 정신력도 차츰 고갈 되는 거 같다. 그래도 서로 얼굴 보면 농담 주고받으며 즐겁고, 선두팀은 저 언덕 위에서 힘내라고 파이팅을 외쳐주고, 손 안 탄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보면 마냥 좋다. 이 사람들과 언제 이런 곳을 또 올 수 있을까. 하루하루가 힘들지만 소중하고 아깝다.
도반에서 점심을 먹자마자 비가 올 것 같다며 서둘러 출발했다. 난 일부러 먼저 가방을 매고 출발했는데도 선두팀원들이 휙휙 지나쳐간다. 내 발이 느린 건 분명하다. 마침 돌 경사길에서 ABC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쳤는데, 어제부터 눈이 와서 너무 아름답다고 한다. 이번 시즌 첫눈이란다. 며칠 전까지도 눈도 안 오고 만년설도 반은 녹아서 황폐해보였다고 하는데, 이번엔 제대로 된 설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점점 커진다. 근데, 한 외국인이 스틱에 의지한 채 다리를 절뚝거리며 내려온다. 내려오다가 미끄러졌다며 진통제 있으면 나눠달란다. 안재영쌤과 미향언니의 가방에서 얼른 내어진 근육통약을 허겁지겁 삼키는 걸 보니 어지간히 아픈 모양이다. 안그래도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오는 걸 무서워하는 난 ‘넘어지면 큰일 난다’ ‘팀에게 피해를 준다’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화려한 깃발과 황금색의 탑이 있는 #템플 과 가물면 물이 떨어지는 걸 볼 수도 없다던, 지금은 물이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 를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노이정쌤과 오경훈쌤은 당황해서 스패츠를 거꾸로 차고, 난 우비를 꺼내 입으며 맞게 입은 건지 확인을 받았다. 도시의 지성인들이 산속에선 덤앤더머들이 되었다.
비는 점점 굵어지고 있었고, 난 #히말라야_롯지 에 겨우 다다랐다. 히말라야 카페에서 커피 마시자던 호기어린 말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중간팀은 각자의 컨디션에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우비로 더워질 걸 예상해 우비 밑에 긴팔 기능성 티셔츠만 입은 난 멈추면 추워져서 천천히 라도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바위와 돌 경사길에 소복이 쌓이고 있는 우박은 점점 눈으로 변했고, 난 설연휴 때 북한산과 둘레길 설산 등산을 했던 경험을 살려 다행히 겁먹지 않고 조심히 한발 한발 올라갔다. 그때 바위 밑에서 패닉된 얼굴로 앉아 계시던 허순자쌤. 날 보더니 너무 반가워하시며 같이 가자고 혼자 가다 무서웠다고 하신다. 우리 둘은 스틱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천천히 올라갔다.
앞장 선 난 눈에 덮인 선두팀의 발자국을 찾으며 조심히 걸었고, 마침내 #한쿠동굴 에 조용히 앉아계신 부처님과 마주하며, 저 멀리 데우랄리의 롯지들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여기서 우리팀 최연소 윤루리양은 엄빠 보고싶다며 건코코넛을 먹으며 울었단다. 선두팀의 빡센 속도를 따라잡느라 꽤 힘들었던 모양이다. 22세도 힘들어하는데, 평균연령 59.9세인 나머지 사람들의 힘듦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되리라. 암튼 난 추위가 티셔츠를 차갑게 만들기 전에 급하게 단백질바를 흡입하고 다시 출발했다.
근데, 눈이 많이 와서 발자국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중간 중간 양 갈래 길이 있는데 어디가 맞는지 헛갈리는 상황에서 발광우비를 입은 현지 포터가 보인다. 우리 팀은 아니지만, 포터이니 의례 데우랄리로 가는 것일 거다. 발걸음을 재촉해 그를 쫒아가서 물어보니 데우랄리로 간단다. 근데, 이 사람 발이 좀 빠른 게 아니다 같이 출발했는데, 어느새 쩌어기에 있다. 마침 나타난 누런 개 한 마리가 옆을 지나 올라간다. 개와 개 발자국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감사합니다’를 계속 되뇌며, 제대로 숨도 못 돌리고 내리막 오르막을 마구 쫒아 가는데, 어느새 개는 사라지고 발광우비 포터가 계곡을 바위와 물 사이로 건넌다. 허순자쌤이 잘 따라오시는지 확인하며 그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데우랄리.
근데, 우리 숙소는 맨 꼭대기의 롯지인가보다. ‘나 왔어요.’ 라고 불렀지만 대답이 없고, ‘코리안?’ 이라고 물으니 다들 위쪽을 가리킨다, 마지막 힘을 다해 계단 코너를 도는데 사천왕 같은 상이 나를 보고 웃는다. 너무 힘들어서 하마터면 욕할 뻔 했다. 욕할 힘으로 다시 올라가니 저 위에서 해성선배가 ‘다 왔어.’라며 손을 흔든다. 뒤를 돌아보니 허순자쌤은 타박타박 잘 따라오신다.
드뎌 오늘의 롯지에서 선두팀과 조우! 그래도 난 중간팀 첫 입성이었다. 추워질까 봐 살겠다고 걸은 게 나름 속도를 올려준 거 같다. 뒤따라 온 허순자쌤은 도착 후 마침내 눈물을 터뜨리셨다. 중간에서 홀로 무서웠던 거랑, 왜 이런 데를 와서 이 고생하는지, 이게 뭔지에 휩싸이신 거다. 나도 코끝이 찡했지만, 우는 사람은 한 사람이면 족할 것 같아서 얼른 방에 들어가 짐 정리에 나섰다. 뒤이어 오는 사람들 다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토로하며 따뜻한 차와 쿠키를 나눠 먹었다.
그런데, 천식 때문에 오르막에 취약한 조진석쌤이 아직 안 오신다. 맨 뒤엔 항상 현지 셀파 쌍계와 마실쌤이 같이 계시지만, 그래도 꽤 굵어진 눈발에 걱정이 커진다. 몇 십분 후 어둑해져 도착한 후미팀 전원. 힘들어서 도저히 한발도 못 떼겠을 때, 우리 롯지에서 포터 한명이 따뜻한 차와 쿠키를 들고 마중을 갔단다. 그걸 먹고 겨우 힘을 내서 올라올 수 있었다고 하신다. 도시의 잘난 것들은 여기선 다 바보들이다. 현지 셀파와 포터, 쿡팀의 도움이 없다면 우린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1인당 300루피의 돈을 내고 식탁 밑에 틀어주는 따뜻한 난로에 둘러앉아 신발을 말리고 다리를 녹이며 오늘의 모험담을 나누고, 뜨끈한 국물로 속을 채우고 나니 하루하루가 참 스펙타클하고 또 지나고 나면 별 일 아니게 되는 인생이 통으로 훅 다가온다.
2025.02.12.수
#안나푸르나_트레킹 7일차
#데우랄리 롯지에서 새벽에 화장실 가며 본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달빛에 빛나 눈 쌓인 마당과 산들이 하얗다. 어제의 힘듦을 보상받는 순간이다.
밤사이 눈은 그쳤지만, 세상은 더 하얗다.
수도가 얼었는지 화장실 물이 나오지 않는다. 싼데 또 싸는 시전을 펼치며, 무거운 건 다들 안으로 참는 듯하다. 나도 그랬다.
그래도 잘 먹어야 힘이 나니까, 든든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스패츠에 아이젠 까지 완전 무장하고 #MBC = #마차푸차레_베이스_캠프를 거쳐 최종 목적지인 #ABC 를 향해 출발. 어제 중간팀이 낙오 아닌 낙오 되어 길 찾기가 힘들었다는 피드백 때문에 해성선배가 중간팀 리더가 되어 앞뒤를 살피며 고도를 높여갔다. 가파른 오르막에서는 순간순간 심장이 너무 뛰어서 잠시 쉬어야했고, 뒤를 보면 너무 아름다운 설경에 눈과 뇌가 맑아졌다.
선두팀은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보다 30분 일찍 도착하고, 중감팀은 3시간 만에 MBC에 도착, 라면과 밥으로 맛난 식사를 즐기고, 마침 물을 한가득 받아둔 통이 있는 화장실에서 아침에 못 치른 거사들을 치뤘다.
햇빛이 반짝이던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가득 끼더니 눈이 올 것 같다. 부랴부랴 다시 채비하고 #ABC 를 향해 출발. 고도가 높아지기에 고산병에 조심하며 열 발자국 가고, 30초 쉬는 모양새로 차근차근 움직였다. 구름이 내려앉고 안개가 가득차서 온 세상이 하얗다. 10미터 앞뒤도 잘 안 보이는 상황에서 앞뒤 사람들은 확인하는 해성선배를 보니 어제 사람들이 너무 늦게 와서 많이 놀라긴 한 거 같다. 해성선배는 중간 어딘가에서 아이젠을 분실했고 마침 송영섭쌤이 도시형 아이젠을 엑스트라로 가져온 걸 빌려서 신다가 종아리가 터질 뻔 했기에, MBC에서 오영철대장님과 하나씩 바꿔 끼고 올라갔다. 한쪽만 선명한 선배의 아이젠 발자국은 마치 외발괴물 같았고, 난 그 외발괴물을 쫒아 순백의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모험가 같았다.
초반보다는 완만한 길이지만, 고도는 더 높아지니 숨소리가 괜히 더 조심스러워진다. 때때로 앞뒤 간격이 벌어지면서 새하얀 설산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 밀려오고, 산소부족으로 졸리고 하품이 나면서 이렇게 서서히 죽어가는 것도 행복하겠구나 생각이 들 때 간식주머니에서 단 거를 먹으면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온다.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2시간 반 만에 드디어 #ABC_4130M 도착. 모두 무사히 ABC에 도착하는 것, 이번 여행의 목표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곳은 엄청 춥다. 방도 눈 오는 야외 복도도. 다행히 공용식당에 식탁 밑에 틀어주는 유료 난로가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그날그날의 모험담과 내일의 계획, 앞으로의 희망을 나누게 한다.
#안나푸르나_베이스_캠프 에서 #정월_대보름 을 보다!
안개와 눈보라 때문에 달을 볼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났지만, 정말 봤다. 휘엉청한 대보름달!
이번 여행에서 우리에게 설경 위 보름달을 선사하고자했던 해성선배와 오영철대장님은 밤새 날씨 앱을 서치하며 히말라야 늑대들처럼 하늘만 봤고, 마침 11시 반쯤 각 방문을 두드리며 우릴 깨웠다.
흐르는 구름 사이로 달이 보였다 안보였다를 반복하는 광경은 너무도 비현실적이었고, 그 빛에 더 두드러져 보이는 #안나푸르나 와 #마차푸차레 의 산세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영화 <미스트>처럼 산 아래서 몰려오는 짙은 회색 안개가 삽시간에 우릴 덮치면서 달도 별도 산도 다 눈앞에서 사라졌다. 모든 예술은 자연에서 탄생하고, 자연을 모방한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다시 새벽 3시경 방문을 두드린 해성 선배. 나가보니 구름 한 점 없이 휘엉청한 보름달이 선명하다. 아까의 바람과 안개는 사라지고 너무도 평온하고 고즈넉하다.
히말라야에서 할 건 다 하고 볼 것도 다 봤단다. 쾌청한 하늘, 선명한 풍광들, 완벽한 트레킹, 맛있는 식사, 친절한 네팔 스탭들, 푼힐의 일몰과 일출, 비, 우박, 눈, 안개 등 모두 다.
참 만족스럽다.
우리의 다음 여행지는 어디가 될까? 목표를 이루고 나면 다음을 꿈꾸게 된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