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에서 도립도서관까지 주로 걸어 다닌다.
오늘은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갑자기 영산강 둑에 서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보고 싶었다.
어제는 하루 종일 봄비가 내렸다. 둑을 따라 걷다가 수변공원으로 돌아 나올 생각을 했다.
아침공기는 맑고 시원했다.
나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봄을 맨 눈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다.
강물은 새벽까지 내린 비로 흐렸다.
이 물을 다 하구로 흘려보내고 나면 차차 희고 푸른빛을 되찾을 것이다.
구름 그림자가 호수 면처럼 고요한 물 위에 떠있다. 봄이 완성을 향해 가고 있다.
풀과 나무는 색을 연두에서 초록으로 바꾸는 중이다. 벚꽃은 지고 잎이 돋았다.
영산홍과 자산홍은 색색이 온전히 만개하였고, 철쭉도 길을 따라 피었다.
이팝나무는 제 여린 몸에 흰 꽃을 주렁주렁 매달기 시작한다.
춘백의 붉은 꽃은 아직도 저리 굳건하다.
길 위의 나무다리 하나를 지났다.
나는 또 다른 먼 나무다리를 지나기 위해 일부러 길을 우회했다.
나는 다리가 좋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은 빠르게 너를 향해 가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새끼오리가 홀로 떨어져 물 위에 떠있다.
갈매기가 고정 침에 찔린 듯이 하늘에 떠있다.
나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참새 떼가 지저귀며 하늘을 높이 날고 있다.
경쾌하고 가벼운 소리에 내 발걸음도 빨라진다.
나무를 쪼고 있던 까치 한 마리가 고개를 들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나는 저만큼 까치를 무시하고, 꾀꼬리가 내는 소리를 뒤쫓는다.
운 좋은 날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4월이 중간 다리를 건너고 있다.
4월은 발걸음이 빠르다.
4월은 혁명의 달이다.
탈각의 달이다.
4월은 새 것을 만들어내는 달이다.
변해야 일어설 수 있다.
그래서 4월은 생명인 동시에 죽음이다.
4월은 장대처럼 높이 솟아있다.
4월은 멈춘 시간을 돌게 하는 계절의 한가운데에 있다.
그런데 나는 살기 위해 변하는 중인가?
나는 ‘4월은’ 하고 발음해본다.
4월은 내 말문을 틀어막는다.
나는 4월 혁명에 실패한다. 도서관이 코앞에 다가왔다.
나는 나의 아침 의례를 마치는 신호로 등에 지고 있는 가방을 추슬렀다.
오늘은 스카르두를 추억하는 날이다.
스카르두 가는 길이 눈에 선히 떠오른다.
앞으로 남은 여정은 최대한 축소해서 간략히 쓰려고 한다.
마음먹은 대로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여행기를 왜 쓰는가?
글을 쓰는 재미를 위해서?
그렇다.
그것이 고통은 아닌가?
그래서 때때로 쓰기 싫을 때도 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다.
내 속에 쌓인 것들을 토해내기 위해서?
그렇다.
휴지조각에 떨어져 버려질지언정 토해내야 한다.
아니면 썩어서 내 속에 독소로 쌓일 것만 같다. 새벽하늘이 맑아 일출을 기대하고 도이카르 언덕으로 갔다.
어제처럼 지극정성인 일행들이 모여 있다.
과연 오늘은?
나는 동쪽하늘 구름 위로 붉은 빛이 돌자 탄성을 질러 알렸다.
아! 그런데 장관은 훈자 제1봉 서쪽 라카포시 산에서 먼저 일어났다.
구름에 묻힌 태양은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대신 그 찬란한 빛을 가장 높이 솟은 이마에 쏘아주고 있었다.
설산 정수리가 아침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시스루 황금 옷을 걸친 설산 봉우리.
황금 얇은 비단옷이 스르륵 흘러내리면 희디흰 속살이다.
조바심에 사위가 고요해진다.
나는 ‘황홀’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산봉우리만 똑 떼어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마치 새벽 연못에 떠있는 연꽃 한 송이를 따서 손에 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태양은 끝내 떠오르지 못했다. 룸메이트 사진작가가 어제 오후 사진촬영을 나갔다가 호텔 마당에서 춤을 추는 여인을 만났다고 했다.
나는 아침 식탁에 앉아있는 무희 여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중년의 여인은 우아한 미소로 응대했다.
얼굴 표정이 온화하고, 목소리가 낮았다.
“어제 추었던 춤은?”
“마스라 폴. 웨이우얼의 전통 춤.”
“당신은?”
“내 이름은 쉐이란. 춤을 좋아하는 웨이우얼 사람.”
내가 거듭 확인하자 ‘쉐이란’은 나뭇가지에 핀 설화(雪花)이다.
‘마스라 폴’도 들은 대로 옮기는 것이므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는 어제 석양 무렵 호텔 마당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춤을 추었다.
마당이 상하 이중이라 아랫단은 은폐되는 곳인데 용케 눈에 띄었다.
관광길에 의상을 갖춰 입고 독무를 추었다.
겸손하게 말했지만 나는 그를 프로 춤꾼으로 짐작했다.
나는 그녀의 기품 있는 미소에서 슬픈 여인의 춤을 떠올렸다. 아침 7시 독수리 둥지를 날았다.
또 다른 미지의 세계로 가기 위해 날개를 편다.
버스는 산을 끼고 한참 서쪽으로 가다가 훈자 강을 지나더니 남쪽으로 길을 고쳐 잡았다.
강이 훈자를 통과할 때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우리는 모두 서쪽으로 가는 중이다. 버스는 강을 왼쪽에 버려두고 산맥 사이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버스가 멈춘 곳이 라카포시 산 아래 동네였다.
새벽에 빛났던 설산 봉우리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거기에 웃으며 서있다.
나는 기념품 가게에서 청동 잔 하나를 20불에 샀다.
녹이 슬어 있는 20센티미터 정도 높이의 균형 잡힌 잔이었다.
나는 잔의 길고 가느다란 목에 유혹을 느꼈다.
주인이 내 속마음을 눈치 채고 흥정을 거부했다. 오늘은 이동거리가 길다. 길기트까지 3시간을 갔다가,
거기서 다시 200킬로미터 떨어진 스카르두에 도착해야 한다.
10반 반. 길기트에 도착했다.
버스는 혼잡한 시내를 빠져나와 산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굴곡이 심한 자갈길이었다. 카르가(야세니) 마애불을 뵙기 위해 가는 길이다.
마애불은 불교가 서쪽으로 세력을 펴던 시기의 거점 경로에 자리 잡고 있다.
마애불을 보며 걷는 동안 나는 가이드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3년 전에 콤사츠 이슬라마바드 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내가 무슬림이 인도에 무굴제국을 세웠으나 불상의 목을 쳤다고 지적하자,
그는 모든 다른 종교를 존중하며, 급진적 원리주의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선한 파키스탄 인이다. 나는 수직절벽에 서있는 마애불이 계속 온전하시기를 바라며 경배를 드렸다.
YMK와 송경희가 합장하는 것을 보았다. 점심은 바디스티안 외곽으로 빠지는 길목의 인더스롯지(Indus Lodge)에서 먹었다.
스페인 빠에야를 파키스탄 식으로 해석한 요리인데 고기 고명이 푸짐했다.
4인 식탁에 쟁반 하나가 놓였으나 8인이 먹어도 충분할 정도의 양이었다.
이곳 사람들의 많은 식사량이 짐작되었다.
안락미 볶음밥 위에 야크고기, 닭고기, 양고기 소시지와 구운 채소를 올렸다.
짐작대로 고명도 다 먹지 못하고, 밥은 겨우 맛만 볼 정도였다.
아까웠다. 한국이라며 포장을 부탁했을 것이다. 오후 1시. 스카르두 가는 길은 중앙분리대가 있는 고속도로에서 시작되었다.
고속도로 구간은 짧게 끝났다.
버스는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예의 2차선 도로로 접어들었다.
도로는 갈수록 비포장 구간이 많아지고, 포장도로라도 곳곳에 낙석이 흘려내려 속도를 낼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산이 높아 계곡 사이로 겨우 길을 뚫다보니 낙석은 흔한 일일 수밖에 없다. 계곡 비탈진 곳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산다. 논밭을 가꾸고, 가축을 치며 산다.
그 옛날 이 깊은 곳까지 세금을 받으러 다녔을까?
중앙집권정치가 가능했을지 의문이 생긴다.
첩첩산중 깊고 깊은 골짜기마다 사람들이 박혀 산다.
산비탈에 해안포대 입구처럼 사각형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보석 채취 광산들이라고 한다.
어쩌다가 입구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한다.
버스는 계곡물길을 따라 하염없이 비탈길을 오른다.
버스가 산맥과 산맥을 잇는 평원의 중간쯤에 섰다.
가이드가 평원 끝자락을 물고 있는 낭가파르바트 산을 가리킨다.
세계 9위봉, 8,125미터. 설산인 것은 확인되지만 정상은 구름에 가려있다.
내가 모레 이 길을 되돌아 나올 때 너는 꼭 너의 정상을 숨김없이 보여주기 바란다. 스카르두 시내 진입 직전 호수 앞에 멈추었다.
나는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호수는 설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호수의 해거름녘 물안개가 맞은편 산자락을 덮으며 차츰 키를 키워가는 중이다.
아랫도리를 점령당한 설산은 봉우리만 가볍게 공중에 떠올려놓고 있어 꽤나 몽환적으로 보인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비경 아닌 곳이 없다.
버스는 호수를 감싸 돌다가 마지못해 시내로 진입했다.
다시 무질서한 시내교통과 번잡한 인간세상으로 돌아왔다.
버스는 한참 시내를 헤매대다가 마침내 설산을 향해 언덕을 타고 오른다.
눈앞에 설산이라도 이제는 무덤덤하다. 인간이란 게 이렇다.
그것을 보기 위해 불원천리 달려와 놓고 벌써 질렸다는 것이다.
아니다. 이렇게 싸잡아 가다가는 욕먹을 수 있으니 나만 그렇다고 해두자.
그동안 이름 없는 수많은 설산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그런데 지금 저 앞의 설산은 이름이 무엇일까?
설산이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스카르두도 설산들에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 잡고 있다. 써밋엠버시(Summit Embassy) 호텔은 크기는 작으나 신축인지 깔끔한 외관이다.
한국의 모텔 수준 규모의 건물이었다.
열 명 가까운 종업원들이 마당에 나와 환영화환을 걸어주고,
일행의 동선마다 따라다니며 동영상을 찍어댄다.
환대가 극진하니 피곤도 날아가 버린다.
가이드 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이라는데 모르겠다.
로비로 들어서자 웰컴 드링크가 기다린다.
깨끗한 유리컵에 담긴 샛노란 망고 주스다.
지금까지 내가 맛 본 과일주스 중 단연 최고였다.
적당히 차가워서 더욱 신선하고,
적당히 달콤해서 더욱 입에 달라붙는 천상의 음료.
내 기준이므로 이것은 허풍 엄살이 아니올시다. 방은 넓고 깨끗하고, 창 너머로 설산까지 보인다.
그런데 여기도 난방장치가 없다.
도움을 요청했더니 주인이 직접 찾아와서 민원을 챙긴다.
추가 이불과 손바닥만 한 휴대용 전기난로가 왔다.
내복을 껴입고 자면 된다.
나는 샤워가 귀찮아 겨우 낯과 발만 씻었다 저녁식사는 두 곳의 식당에서 나눠 진행되었다.
나는 방 앞의 식당으로 갔다.
샹들리에가 높은 불빛을 내리비추는 따뜻한 분위기의 식탁과
유쾌한 웨이터들의 서빙과 파키스탄 정찬까지 모든 게 다 훌륭했다.
그러나 나는 한 술 뜨기도 전에 입맛을 잃고 말았다. 나는 그동안 사이좋게 지내왔던 어느 한 분과 부딪쳤다.
나는 시 ‘살구꽃’을 쓴 직후여서 시골집에 살구나무를 키우고 있다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살구나무의 생태에 대해 묻는 내게 버럭 화를 냈다.
내 공격적인 말투에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랬을까?
그러나 아무튼 나도 그의 막무가내 무례한 태도에 기분이 잡쳤다.
선의가 악의로 곡해 받은 것이다.
숱한 여행을 하면서도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다 차가운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러나 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오늘 하루 먼 길을 달려온다고 피곤해서 그렇지 뭐.
그래 어서 자고, 내일 새로운 날을 맞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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