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무치의 오후 햇살은 따갑다.
고비 사막의 마른 바람을 머금은 태양은 대바자르의 붉은 벽돌 위로 쏟아져 내려, 도시 전체를 거대한 건조기로 만든다.
80미터 높이의 실크로드 타워가 정오를 지난 태양 아래 웅장한 수직의 그림자를 드리울 때,
나는 이 화려한 시장의 기원인 '이도교(二道橋)'의 의미를 되새기며 바자르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흔히 이곳을 '신장의 창'이라 부르며 붉은 이슬람 양식의 건축물에 감탄하지만,
정작 발밑에 무엇이 흐르고 있었는지는 잊곤 한다.
'이도교'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두 번째 다리'를 뜻한다.
과거 이곳에는 우루무치 강(Urumqi River)의 줄기가 세차게 흘렀고,
그 강 위로 놓였던 두 번째 다리 주변에 상인들이 모여들며 시장이 형성되었다.
지금 그 강물은 보이지 않는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하천은 복개되어 차디찬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아래로 매몰되었다.
한때 대상(Caravan)들의 목을 축여주고 낙타의 갈증을 씻어주던 생명의 물줄기는
이제 '복개‘라는 이름의 거대한 덮개 아래 갇혀 버린 것이다.
우리가 밟고 선 이 견고한 땅 밑에는,
수백 년간 실크로드의 갈증을 달래주던 하천의 원혼이 여전히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강이 흐르던 시절, 이도교는 단순한 다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군사들이 머물던 '한성'과 위구르인들의 터전인 '회성'을 잇는 유일한 통로이자 경계였다.
강물은 사라졌지만, 낮의 햇살은 그 경계를 더욱 선명하게 비춘다.
실크로드 타워 아래 남녀노소가 모여 춤을 추고,
갓 구운 '낭'의 고소한 냄새와 꼬치를 굽는 기름진 냄새가 진동하는 시장통 너머로,
입구마다 세워진 검문소의 차가운 금속 탐지기가 번뜩인다.
2009년의 유혈 사태가 남긴 상흔은 투명한 햇살 아래서 더 시리게 다가온다.
평화롭게 석류 주스를 마시는 여행객 곁으로 무장한 순찰대의 발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릴 때,
이곳이 '긴장 위에 세워진 유리 성'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2018년 이후 밀려든 한족의 거대 자본은 바자르를 '로컬 시장'에서 '글로벌 테마파크'로 탈바꿈시켰다.
하천을 덮어버린 아스팔트처럼, 자본은 투박했던 위구르의 삶을 세련되게 덮어버렸다.
대를 이어 악기를 만들던 장인들의 가게 옆에는 깔끔한 인테리어를 갖춘 대형 프랜차이즈가 들어섰고,
전통 방식의 수공예품 곁에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신장 기념품'들이 매끄럽게 진열되어 있다.
자본은 위구르 문화를 말살하는 대신, 돈이 될 만한 요소들을 철저히 '상품화'하여 박제해 놓았다.
이제 이도교는 위구르인의 '생활 터전'이기보다, 외부인이 소비하는 '이국적 전시관'에 더 가까워진 듯하다.
인파를 헤치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자, 화려한 건물 뒤편 햇볕에 그을린 노인이 앉아 있다.
그는 현대적인 결제 시스템이나 관광객의 카메라엔 관심이 없다는 듯, 낡은 악기 두타르(Dutar)를 조율한다.
그가 현을 튕기자 낮게 깔리는 선율이 대바자르의 붉은 벽돌 사이를 메아리친다.
그 소리는 땅속 깊이 묻혀 버린 우루무치 강의 물소리 같기도 하고,
어떤 억압과 자본의 물결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사람들의 숨소리 같기도 하다.
아스팔트로 강을 막을 수는 있어도, 그 땅을 적시고 흐르던 사람들의 기질까지 가둘 수는 없음을 그 투박한 선율이 증언하고 있었다.
우루무치 대바자르의 낮은 화려하지만 서글프고, 생기를 잃고 엄격하다.
그것은 실크로드의 먼지 섞인 기억과 현대사의 아픔,
그리고 정치적 야욕과 거대 자본의 욕망이 뒤섞여 만들어낸 이 시대의 가장 복합적인 풍경화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이리저리 살피다 보니 피로감 급격히 몰려 온다.
잠시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 것은, 가스불이 아닌 뜨겁게 달궈진 모래로 끓이는 기묘한 커피 한 잔이었다.
‘사막커피’
주인이 구리 포트인 ‘체즈베’를 뜨거운 모래 속에 넣고 요리조리 휘저으면,
차가운 액체였던 커피가 순식간에 검은 거품을 일으키며 솟아오른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 아래 달궈진 모래를 천연 인덕션으로 삼았던 유목민들의 지혜가 담긴 조리법이다.
불꽃의 직접적인 열기가 아니라,
모래가 머금은 은근하고 균일한 열기가 커피 가루 구석구석을 깨워 가장 진하고 부드러운 맛을 끌어낸다.
내 손에 쥐어진 커피잔은 종이컵이기는 했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이즈니크 양식의 화려한 문양이 그려진 잔 테두리에는 꿀을 바르고 잘게 부순 호두와 아몬드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신장의 풍요로운 대지가 선물한 견과류다.
한 모금 들이키면, 처음에는 사막의 밤처럼 진하고 쓴 커피의 본질이 혀를 휘감고,
곧이어 잔 테두리의 달콤하고 고소한 견과류가 그 고단함을 어루만져 준다.
문득 이 한 잔이 과거 실크로드를 오갔던 카라반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상상해 본다.
이슬람의 율법 안에서 술 대신 마셨던 '이슬람의 와인', 혹은 끝없는 모래 폭풍을 뚫고 나갈 힘을 주었던 '에너지 드링크'였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커피를 다 마신 뒤 컵 바닥에 남은 가루의 모양을 보며 내일의 행운을 점쳤을 것이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여인이 건넨 짠 커피(인내심을 시험하는 풍습)를 묵묵히 마시며 일생의 사랑을 맹세했을지도 모른다.
커피 옆에는 갓 구워낸 따뜻한 빵, '낭(Nang)'이 놓여 있었다. 현지인들은 이 신성한 빵을 절대 칼로 자르지 않는다.
손으로 직접 찢어 커피에 푹 찍어 먹는 것이 그들의 예법이다.
딱딱했던 빵이 진한 커피 향을 머금어 부드러워지는 그 찰나는,
서로 다른 문화가 실크로드 위에서 만나 섞이고 조화를 이루었던 역사의 압축판처럼 느껴진다.
대바자의 소음이 배경음악처럼 멀어지고, 입안에 남은 커피의 여운을 음미한다.
사막커피는 단순히 목을 축이는 음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뜨거운 모래 위를 걸어온 사람들의 서사이며, 낯선 이방인을 환대하는 따뜻한 손길이었다.
바자르의 타워 아래서 마신 이 한 잔의 커피는, 내 여행 가방 속에 담긴 그 어떤 기념품보다 진한 향기로 기억될 것 같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커피는 필터로 거르지 않기 때문에 다 마시고 나면 바닥에 진득한 커피 가루 찌꺼기가 남는다.
다 마신 커피잔을 뒤집으면 가루가 흘러 내리며 무늬를 만들고 그 모양으로 점을 치는 것을 ‘타세오그라피'라고 한다.
조심스럽게 컵을 뒤집어, 만들어진 무늬의 의미를 맞추어 보니 '길이 엉켜있어, 곧 작은 폭풍이 닥치지만 지혜롭게 헤쳐나간다.'라는 점괘.
조금 찜찜했지만 흥미로운 농담이라 생각했는데.....
마실 정회동
첫댓글 오호?!
사막커피 점쾌가 흥미롭습니다.
여행중 간과했던 점을 많이 일깨워 줍니다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