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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석 스크랩 길 위를 서성이다가
바람 바람 추천 0 조회 27 16.02.03 13:32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좋은수필(1월호)

'좋은수필' 2016년 1월호에 실린 제 글입니다.


 

 

 

                                                                                      길 위를 서성이다가

                                                                              김 채 석

 

소슬하게 불어 가는 바람 소리와 함께 새 소리가 고운 숲 속 산책길이든, 먼저 와버린 새벽 강의 물안개가 반가운 이른 아침 강변길이든, 방황하다 스미듯 무심코 스쳐 지나는 낯선 여행길이든, 동안의 숱한 삶의 여로에서 수많은 길을 걸으며 이유 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의 연속이었다. 이는 서로가 둘이 아닌 하나의 강물처럼 흘러왔고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마음에서 정녕 떠나보내지 못하는 길이 하나 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내가 걷는 그 길은 곱디고운 노란 은행잎이 쌓이고 쌓여 불어오는 바람결에 밀려온 파도가 출렁이듯 금빛 물결을 이루는 곳, 바로 도서관 가는 길이다. 집에서 도서관까지 가는 길은 대략 1.5km 남짓이나 될까? 은행나무가 길 양옆으로 늘어서듯 반기는 이곳은 지나는 계절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해 마냥 서성이게 하는 그런 길이다.

 

그런데 이 길을 걸을 때마다 언제나 느끼는 감정은 단 하나, 단지 길바닥에 수채화 물감처럼 노란색으로 수북이 쌓여 있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이파리 하나하나가 자음과 모음이 되어 계절의 이야기나 시를 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그 느낌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마치 나태주의 풀꽃을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생각이 스민다. 새가 그들만의 언어로 지저귀듯 떨군 나뭇잎도 한 잎 한 잎이 한 자 한 자 언어가 되어 자연스레 쓰는데 쉽고 편한 것에 익숙한 우리네들은 얼마나 글을 안 쓰면 손편지나 손글씨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싶으니 많이 부끄럽다. 한편에서는 슬로 시티니, 느림의 미학이니, 여유로운 힐링이니 하며 운운해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무언가에 쫓기듯 늘 어수선하고 분주한 것 같다.

 

어떤 장소 어떤 곳에서도 자신의 의사나 생각을 상대에게 바로 전할 수 있어 편리가 넘치도록 과분한 세상, 어찌 보면 문명의 이기가 준 큰 선물일지도 모르겠으나 이로 인해 병들어 가고 있는 것 또한 아니라고 할 순 없다. 이유는 이름을 숨기거나 도용해서 무차별적 언어 테러와 함께 은어나 비속어가 순수함을 더럽히듯 아름다운 우리말 우리 글을 오염시키지 않는다고 말하기엔 어딘가 편하지 않다.

 

하여 조금은 불편하고 번거로워도 예전에 골목 담장에 하얀 분필로 낙서하던 철부지 어린 그 시절을 추억 삼아 누군가에게 옛 이야기하듯 그리움을 담은 손편지를 한 번쯤 써보아야겠다. 아니, 당장에 써야겠다. 분명 손편지를 쓴다는 것은 계절 따라 길 위를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잎과 같이 글 한 자 한 자에 정성을 모으고 따뜻함을 담는 일이기도 하지만, 어떤 노동의 대가나 수확의 기쁨은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듯 너무나 불편하지 않은 것은 되레 나태의 종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계심이 온몸에 백신처럼 퍼져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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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02.04 12:00

    첫댓글 ㅎㅎ. 분필. 그도 오랜만에 듣는 말입니다. 요즈음 선생님들도 분필을 쓰시는지? 우리 선생님들의 분필은 조는 아이들의 잠을 깨우는 도구이기도 했는데, 어찌 그리 정확하게 맞추시던지. 요즘 같으면 난리도 아니겠지만 그 풍경이 그리 살벌하게 오지 않는 건....아마도 우리 시대의 축복인듯 싶습니다.

  • 작성자 16.02.04 18:05

    백묵 보다는 분필이 더 정이 가더군요. 그리고 분필을 던지는 생생님은 그나마 낳았고, 흑판 지우게가 날아다녔죠. 아마.

  • 16.02.09 21:00

    좋은 수필,
    축하 축하.

  • 작성자 16.02.09 21:15

    감사합니다.

  • 16.04.02 18:03

    글 도 아름답지만 사진도 글 못지 않게 좋습니다. 글 제목과도 잘 어울립니다. 저는 시각예술을 하다보니 사진도 관심있게 보아집니다.

  • 작성자 16.04.03 09:54

    글을 먼저 쓰고 난 후에 글 내용의 장소에 가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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