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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쉼 끝에 영화모임 다시 시작합니다.
가장자리의 새로운 공간에서 몇 차례 시험상영해 본 소감은 대만족^^
재개하는 영화모임의 첫 작품은 <히로시마 내 사랑> 감독 알랭 레네, 1959
기억의 문제를 다룬 고전입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밤과안개> 알랭 레네 감독의 다큐영화를 더 볼 수도 있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도 있으실텐데, 함께 모여서 다시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이후 안정적인 새로운 공간에서 영화모임을 본격적으로 어떻게 진행해갈지도 의논하는 날이었으면 합니다.
[히로시마 내사랑] 패전 14년만에 히로시마의 고통의 속살을 제대로 다룬 영화
히로시마와 느베르가 공유한 것
일본과 프랑스. 두 나라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은 별로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두 나라가 무대이다. 전혀 공통점 없어 보이는 두 나라, 두 도시를 묶어주는 연결고리는 시대(시간)이다. 우리는 흔히 공간적인 배경을 같이 공유할 때 공감하게 되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특별한 기억을 생산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같은 장소라는 공간적 공통분모 위에서 가능하다.
그렇다면 장소를 전혀 달리하는 상황에서 경험은 공유되고 기억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공간이 다르지만 같은 시간적 배경에서 어떻게 사랑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고 고통을 공유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치를 선보이고 있다. 공간적으로 일본과 프랑스는 대륙을 달리하는 거리가 있다. 특히 일본의 히로시마와 프랑스의 느베르라는 두 도시는 지극히 이질적이다. 이름조차 생소한, 어떤 사건도 공유한 적이 없고 서로 나눌 기억도 없다. 어떤 인연도 없는 두 도시를 살아간 두 사람, 한 일본남자와 한 프랑스 여인 사이에는 어떤 만남, 어떤 아픔을 공유할 수 있을까? 어떤 기억,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놀랍게도 동시대를 경험한다는 사실,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공간적 공유만큼이나 생생하고 생생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두 도시, 두 주인공이 공유하는 유일한 채널은 시간, 시대이다. 2차 세계대전이 있었던 1940년대 초반이라는. 그 시대적 배경에는 전쟁이라는 공통된 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것도 성격은 전혀 다르다. 프랑스는 연합국의 입장에서 침략자 독일과 교전 중이었고, 일본은 반대로 침략자의 입장에서 미국의 핵공격을 받은 상황. 전쟁이라지만 같은 전쟁이 아니다.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상황에서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공감, 어떤 사랑, 어떤 고통, 어떤 기억을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공감하고, 단순히 고통을 나누고, 단순히 하룻밤을 보내는 사랑이 아닌, 지독히 아프고, 지독히 고통스럽고, 지독한 사랑에 가슴을 저밀 수밖에 없는 사랑. 그런 공감을 그려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구반대편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낸 두 사람이 만났다
영화 ‘내 사랑 히로시마’는 이질적인 한 여인의 내면의 기억, 경험, 고통들을 토해내게 하는 장치로 전혀 다른 공간적 배경을 설정함으로써 그 여인의 내면의 상처, 고통들이 치유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프랑스 영화배우 엘르(에마뉘엘 리바)가 원폭의 도시 히로시마에 평화를 주제로 한 영화 촬영차 왔다가 프랑스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일본인 건축가 루이(오카다 에이지)를 만난다. 그녀는 루이를 보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프랑스의 느베르에서 그녀가 사랑했던 독일군 병사를 떠올리게 되는데…….
영화의 시작은 매우 가벼운 하룻밤 연애장면 같은 것이다. 그런데 영화 시작과 함께 보여지는 두 남녀의 알몸은 거칠다. 낙진이 떨어진 피부와 같은, 고통에 떨고 있는 살갗이 꿈틀거리는 모습인데, 카메라는 이것을 오래 비추면서 쉽게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면서 서서히 정상적인 피부,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 어쩌면 그것은 이 영화가 고통 속에서, 그것이 전쟁의 고통이든, 다른 이유로 인한 인간 내면의 깊은 상처에서 나온 것이든 고통 속에서 빠져나와 사랑을 나누는 과정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모른다"
이 영화의 도입단계에서 나누는 대화는 매우 중요하다.
여 주인공 엘르는 히로시마를 특별히 기억하고 있고, 많은 연구를 했으며 히로시마에 체류하는 동안 박물관을 4번이나 돌아보고, 병원과 히로시마의 사람과 곳곳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뉴스를 열심히 챙겨보고 원폭의 참상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남자 주인공 루이는 자신이 목격한 히로시마를 이야기하는 엘르에게 아무것도 못 봤다고 말한다.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또한 독특하다. 일차적으로는 엘르를 통해 히로시마를 이야기하는 구조다. 엘르가 히로시마를 계속 이야기하게 하는 것은 루이다. 엘르가 히로시마의 구석구석을 이야기할 때마다 루이는 짧게 ‘너는 히로시마를 보지 못했다’는 한다. 엘르가 병원을 보았다고 하면 병원을 못 보았다고 하고, 엘르가 박물관을 4번이나 보았다고 하면 박물관을 못 봤다고 하는 식이다. 이런 루이에게 질세라 엘르는 계속해서 자신이 본 것, 아는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영화의 줄거리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1만도나 되는 뜨거웠던 평화광장을 기억하고, 항상 히로시마의 운명을 슬퍼했다고 했지만 루이는 “당신이 뭘 안다고 슬퍼했느냐”고 말한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과거의 참상 대신에 새로운 생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엘르는 “뉴스도 봤어요.”하면서 잿더미 속에서 벌레들이 기어 나왔고 개들도 카메라에 잡혔고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에는 생존자들이 보이고 보름째 되던 날 나팔꽃, 수선화들이 전에 없이 강한 생기를 뿜으면서 생명을 꽃피우는 장면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루이는 ‘당신은 모른다’고 할 뿐이다.
루이는 엘르가 무엇을 못 보았으며 무엇을 모른다는 것인가? 거기에 대해 영화는 대답하지 않는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엘르가 루이를 만난 것을 기억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장면.
엘르: 나도 잊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아요. 나도 기억력이 좋아요. 망각이 먼지 알아요. 당신처럼 나도 망각과 싸웠지만 당신처럼 나도 잊고 말았죠.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잊고 마는 망각의 공포에 맞서 매일 힘겹게 싸웠지만 당신처럼 나도 잊고 말았지요.
기억할 건 기억해야만 해요.
난 당신을 만났고, 당신을 기억해요.
날 사로잡은 당신은 누구죠?
이런 곳에서 사랑에 빠질 줄이야.
당신이 내 몸에 이리도 꼭 맞을 줄이야.
시간은 많아요. 제발...날 삼켜버리세요.
왜 하필 당신일까? 이런 도시, 이런 밤에 당신은 그리 눈에 띄지도 않는데
날 기쁘게 해줘요.
여기까지의 장면 또한 첫 장면과 닮았다. 대사 없이 거친 피부의 무엇인가가 꿈틀거리는 고통스런 장면에서 서서히 사랑의 몸짓으로 옮아갔듯이. 여전히 거친 피부, 그 고통의 뿌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그 고통을 잊고 새로운 사랑을 찾고 목말라했듯이.
그러나 영화는 더 이상 히로시마를 설명하기를 멈춘다. 엘르에게 히로시마를 보지 못했다고 단정 지은 것은 히로시마를 말로 설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병원과 박물관, 사람과 사람을 보았다는데도 병원이 병원이 아니고, 박물관이 박물관이 아니라는 얘기는 무엇인가. 엘르가 본 것으로는 히로시마가 설명될 수 없다면 감독은 관객들에게 히로시마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망각의 공포가 교차하는 지점-엘르의 상처와 히로시마의 상처
이 영화는 바로 이런 것을 고민한다.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전쟁을 경험하며 고통스러웠을 수많은 인간들의 기억과 상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전쟁과 평화를 말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억과 망각이라는 대칭구조에서 찾는다. 잊고 있었던 기억, 그녀가 스무 살에 느베르에서 보고 겪었던 실체로서의 사랑과 전쟁의 상처와 고통. 엘르 자신이 처절하게 앓아야 했고 지워버리고자 몸부림쳐야 했던 생생한 아픔을 퍼 올리는 것. 그것은 끊임없이 히로시마를 모른다고 했던 그 히로시마를 이해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히로시마의 슬픔, 히로시마의 아픔, 그 고통의 세월을 견뎌온 히로시마의 삶과 사랑에 대해, 수십 번을 둘러보고 아무리 깊이 공감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말하지 말 것. 감독은 그 히로시마를 엘르의 기억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정반대의 대륙, 이질적인 도시 느베르의 한 소녀의 사랑과 고통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알랭 레네(Alain Resnais) 감독의 천재적인 발상이며 이 영화의 감동을 극대화시키는 재미다.
히로시마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느베르 소녀의 고통
이후 영화는 엘르의 고통스런 과거를 비춘다. 독일군을 사랑했던 프랑스 느베르의 18세 소녀 엘르. 전쟁 중에 침략군의 병사를 사랑한 것이다. 사랑했던 병사는 눈앞에서 마을사람들이 쏜 총에 죽는다. 전쟁이 갈라놓은 사랑의 아픔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누구나 사랑할 수 있고, 이별할 수 있다. 문제는 이야기조차 할 수 없게 한 고통이다. 사랑했던 기억조차 지워야 하는 운명의 사랑. 엘르의 아버지는 적군을 사랑한 딸이 치욕스럽다며 지하에 가둔다. 엘르는 그 지하 감옥에서 사랑의 기억, 이별의 아픔만으로도 벅찬데 그 벅찬 사랑의 기억마저 지워야 하는 고행과 마주해야 했던 것이다. 그녀는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잊고 마는 망각의 공포에 맞서 매일 힘겹게 싸워야 했다”고 회고했다. 엘르의 그 고통은 어쩌면 히로시마의 그것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단 9초만에 20여만명이 죽고 다치는 전쟁의 희생이 되었으면서도 어느 누구에게 하소연 한번 할 수 없는 고통이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엘르는 생애 처음으로 루이에게 그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던, 숨길 수밖에 없었던 내면의 고통스런 기억을 토해낸다. 그것은 14년만에야 먼 나라 프랑스인의 경험을 빌어 토해내는 히로시마의 고통스런 히로시마의 낙진으로 얼룩진 속살 같은 고백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고백을 통해 엘르는 14년만에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치유되는 경험을 맛보게 된다. 히로시마 또한 1945년의 기억에서 14년 만에 히로시마의 고통이 어떤 것이었다고 세상에 전할 수 있게 된 것이기도 하다.
[ Nuit Et Brouillard ]
제작연도 | 1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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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알랭 레네 |
출연 | 미셸 부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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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여년이 지나 버려진 수용소의 현재 모습은 흑백의 기록화면으로 이어진다. 12년 전 빈 들판엔 수용소 건설이 진행되었고 ‘밤과 안개’ 작전으로 유대인들이 수감되기 시작했다.
영화는 흑백의 과거를 현재의 컬러 화면과 병치시키며 기억의 문제를 끄집어내 인간 역사의 어두운 측면을 보여주려 하였다. 내레이션은 전쟁과 살육의 공포가 기억 속에서 무디어지기는 했지만, 그 공포를 조성했던 인간들의 잔혹성은 끝나지 않았으며 또 어디선가 다른 폭력들이 이어지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1. 작품의 배경
알랭 레네의 초기영화 중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또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작품은 다큐멘터리인 〈밤과 안개〉일 것이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이 작품을 일컬어 그 당시까지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시적으로 들리는 작품 제목은 실제 1941년 11월 나치 독일에서 히틀러가 시행했던 ‘밤과 안개’(Nacht und Nebel)라는 작전명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는 나치 정권에 저항하는 자들은 누구나 밤과 안개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명칭이었다.
14살에 영화에 입문한 알랭 레네는 영화 외에도 만화, 회화, 문학 등 다양한 예술에 관심을 보였다. 초창기에는 꾸준히 예술가에 대한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들었다. 〈반 고흐〉(1947), 〈폴 고갱〉(1950)을 거쳐 6명의 감독이 카르파치오, 로트렉 등 화가 6명의 작품세계를 다룬 〈픽투라〉(1951, 레네는 여기서 고야 부분을 맡았다)까지가 그러하다. 피카소의 동명 그림을 소재로 한 〈게르니카〉(1950)에서는 한 사회가 다른 사회에 가한 폭력의 공포를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단편 다큐멘터리들은 알랭 레네의 영화세계에서 ‘형성기’에 해당된다.
〈밤과 안개〉는 1955년 프랑스의 제2차 세계대전 역사위원회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영화는 유대인 수용소와 희생자를 담은 문서보관소의 흑백필름과 10년 뒤 그 건물과 장소를 촬영한 컬러 필름을 조합하여 만들어졌다. 알랭 레네는 제작 당시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에서 가져온 필름만 사용하고 독일에서 온 필름은 사용하지 않았을 정도로 전전 독일에 대한 강한 불신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홀로코스트와 나치의 수용소를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제작 당시에 프랑스 당국과 마찰을 빚었다. 본래 영화에는 프랑스 군모를 쓴 간수가 잠시 등장했는데 검열 당국에서 보기에 명백히 프랑스 비시 정부가 홀로코스트에 관여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두달의 협상 끝에 영화 제작자들은 프랑스 헌병의 제복을 덮어서 역사상의 증거를 묻어버리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협상에도 불구하고 〈밤과 안개〉는 1956년 칸영화제에서 결국 배제되었다. 다른 참가국의 국가적 감정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이었다.
크리스 마르케와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 〈조각상 또한 죽는다〉(1953)를 통해 프랑스의 제국주의가 아프리카의 문화에 가한 폭력을 보여줘 프랑스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알랭 레네가 또다시 구설에 오르게 된 것이다. 〈조각상 또한 죽는다〉는 단 한번의 공식 상영 뒤에 정부로부터 상영금지 조치를 당한 바 있다.
2. 주제 : 기억의 재현
이 작품은 프랑스 당국과의 갈등 외에 개봉 뒤 다른 측면에서도 논란을 일으켰다. 영화를 본 관객은 이것이 과연 역사적 사실로서의 홀로코스트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가공할 규모의 유대인 절멸 작전이 수행되었던 강제수용소의 모습을 카메라는 길고 차분한 트래킹 촬영을 통해 보여주었다. 무심하게 연출된 수용소의 평범한 모습은 사람들이 홀로코스트에서 기대했던 충격이나 경악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후 알랭 레네는 이 영화의 정치적 의도를 묻는 질문에 “요점은 알제리였다”라고 대답하였다. 표면상으로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과거를 불러내며 이를 망각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만, 이면에서는 프랑스가 식민지 알제리에 가한 폭력을 망각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도 전달하고 있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알랭 레네는 ‘유대인’이라는 표현보다 ‘강제추방자’(déporté)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였다. 홀로코스트와 식민지에서의 폭력 등 더 큰 맥락에서 대량학살에 대한 반대의 의사를 포괄하기 위해서였다.
〈밤과 안개〉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이미 사멸된 기억으로서의 학살을 직접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현재적 증거로서의 과거이다. 알랭 레네는 구체적 인물, 집단, 국가에 책임을 묻기보다는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집단적인 책임을 묻는다.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과거에 대한 책임이 있다. 따라서 망각에 저항하는 것이 궁극적인 실천이 된다.
한편 알랭 레네는 일관되게 기억의 재현 문제를 다루었는데 초기 다큐멘터리인 〈밤과 안개〉에서부터 극영화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1961), 〈전쟁은 끝났다〉(1966) 그리고 이후 〈멜로〉(1986)에 이르기까지 그는 현재의 모든 순간에 깃든 과거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고 주장해왔다. 특히 〈히로시마 내 사랑〉(1959)과 〈뮤리엘〉(1963)에서는 전쟁이라는 역사의 상처를 배경으로 해 일치하지 않는 기억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3. 영화적 기법 : 교차편집과 트래킹숏
홀로코스트를 고발하는 이 작품은 흑백과 컬러 영상을 조합하여 강제수용소의 풍경과 황폐화된 현재의 모습을 초연하게 제시한다. 수용소의 과거는 1942~45년에 촬영된 흑백의 역사적 기록 화면으로 되어 있고, 현재는 컬러 영상으로 촬영되었다.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진행하는 교차편집과 현재 수용소의 폐허를 훑는 트래킹숏은 〈밤과 안개〉 그리고 알랭 레네의 초기 영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폐허처럼 펼쳐진 수용소를 촬영한 컬러 화면이 흑백 화면으로 컷되는 과정에서 형태적 유사성을 활용하였다.
가령 철조망 쳐진 수용소 울타리의 말뚝들의 트래킹숏은 행군 중인 나치군대의 다리를 촬영한 앙각 화면으로 조형적으로 일치된다. 단지 규칙적인 구멍들만 뚫렸을 뿐 칸막이도 가림막도 없는 참담한 화장실의 모습을 훑던 현재의 화면은 ‘청결은 건강이다’라는 수용소의 흑백 표어로 이어진다. 교차편집과 트래킹숏은 적절한 조형적 마찰을 활용해서 일종의 충격효과를 양산한다.
한편 알랭 레네는 〈밤과 안개〉와 이어진 극영화인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각각 나치 수용소와 원자폭탄에 대한 선정적이지 않은 기록 영상을 활용하였다. 특히 이 두 영화에서는 트래킹 촬영이 돋보였는데, 〈히로시마 내 사랑〉의 대담한 미학적 시도에 충격을 받은 고다르는 “트래킹은 모럴의 문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4. 문학과 영화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아방가르드 문학가인 장 카이롤은 〈밤과 안개〉의 내레이션 각본 작업을 담당했다. 그의 내레이션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폭력을 망각하거나 폭력에 무책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충격적 항의문과도 같았다.
알랭 레네는 복합적 예술 장르인 영화와 문학을 미학적이고도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결합시켜온 대표적 작가 중 하나이다. 어려서부터 모험과 낯선 것에 관심을 보여왔던 그는, 앙드레 브르통, 쥘 베른, 줄리앙 크라크,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
자신이 존경하던 로베르 브레송이 〈죄악의 천사들〉(1943)에서 극작가 장 지로두와 함께 작업한 것에 고무되어 그 자신의 작업에도 작가들을 끌어들였다. 〈게르니카〉에서는 초현실주의 시인 폴 엘뤼아르와, 〈밤과 안개〉에서는 소설가 장 카이롤과, 〈스티렌의 노래〉(1959)에서는 레이몽 크노와 작업했다. 이후 누보로망 소설가였으며 이후 영화감독을 하기도 했던 마르그리트 뒤라스나 알랭 로브그리예와 함께 기존의 문학적 관습에서 벗어난 시나리오를 통해 낯선 영화 문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한편 〈밤과 안개〉의 시나리오를 담당한 장 카이롤은 이후 알랭 레네의 〈뮤리엘〉시나리오를 담당하기도 했다.
미셸 부케(내레이터)
소각장 외관은 그림엽서처럼 보인다. 오늘날 관광객들은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 내레이터풀들로 무성한 수용소의 풍경을 트래킹 촬영하는 영상은 그림엽서처럼 평온하고 서정적이다. 학살의 기억과 공포의 감각까지 화면에 제시되지는 않는다. 감독은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기억의 덧없는 본성이 가공할 폭력과 잔학 행위를 망각시킬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지적한다.
‘난 아무 책임 없소’라고 카포가 말했다. ‘난 아무 책임 없습니다’라고 장교가 말했다. ‘난 아무 책임 없다···.’ 그럼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
- 내레이터작품에서 대량학살에 관여한 사람들은 책임을 회피하며 죄책감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으나 결과적으로 거대한 악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변명이다. 이후 한나 아렌트는 무사유(無思惟)가 만든 이러한 무책임함을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 1956년 장 비고상 단편영화상
• 1957년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
이 영화의 음악은 독일의 현대음악가 한스 아이슬러가 맡았다.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제자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던 그는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스승과 결별한 뒤 자신만의 독자노선을 취했다. 독일 공산당에 가입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고 브레히트와 공동작업을 했으며 훗날 미국으로 망명해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함께 연구를 하기도 했다.
그는 프리츠 랑의 〈사형집행인도 죽는다〉(1943), 프랭크 보제즈의 〈스패니쉬 메인〉(1945) 등의 영화음악을 맡기도 했는데 〈밤과 안개〉는 그의 대표적인 영화음악으로 평가된다. 그는 영상과 대비 또는 모순되는 음악을 구사했다. 나치 점령 당시 수용소의 참혹한 모습이 비춰질 때 아름다운 플루트 선율이 나오거나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흐른 뒤 폐허가 된 수용소 터의 모습이 나올 때 둔중한 음악이 나오는 등, 아이슬러의 음악은 미셸 부케의 건조한 내레이션과 어우러져 영화에서 감상주의를 배제하고 균형감을 만들어낸다.
〈머나먼 베트남〉(1967, 클로드 를르슈 외) : 알랭 레네, 크리스 마르케, 장 뤽 고다르, 아네스 베르다 등이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여 만든 다큐멘터리.
〈뮤리엘〉(1963, 알랭 레네) : 〈밤과 안개〉의 작가 장 카이롤이 각본을 쓴 영화로 기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쇼아〉(1985, 클로드 란츠만) : 당시 뉴스 필름이나 기록 화면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나치의 유대인 학살의 희생자들, 생존자들, 협력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기억을 소환하는 다큐멘터리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밤과 안개 [Nuit Et Brouillard] (테마로 보는 세계영화작품사전 500,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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