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와 위트의 발랄함, 모순의 허용
창문너머 도망친 100세 노인
향기
프롤로그
가물가물한 기억 까톡! 화요일로 하도록 다들 시간 좀 맞춰 주시면 안될까요?... 네 알겠습니다. 네 화요일로 정하도록 하죠....
나는 확인을 했는데, 머리에 안 새겨 넣고 .... 화요일이면 장구모임이랑 겹치는 데... 얼핏 생각을 하며 뭐... 어찌 될거야 하며 생각을 얼버무렸다. 그리고는 대답을 안했다.
22일 화요일
pm 3시 20분
From 김형진: 제가 올해는 책갈피 활동이 힘들 것 같아요. 뮤지컬을 더 열심히 하라고 하고, 또 연구점수도 따야해서 이것 저것 챙겨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요. 너무 여기 저기 벌여 놓고 뒤처리도 못하니까 사는게 뭔지,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요.
나: 그렇겠네. 충분히 이해는 가네 형진씨. 그래도 내가 책갈피를 독서연구회로 올려 놓고 자기 이름도 올려 두었으니 아예 발을 뺀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김형진: 그럼요. 좋은 분들인데 못 뵈어서 진짜 아깝지요. 조금만 정신 차리고 나서 할게요...
pm 6시 40분 청구아파트 102동 앞
계수님 포착
나: 어디 가세요?
계수님: 선생님 저는 딴 데 가요...
나: (다 다른 데 가는 거 아닌가?) 네... 다음에 뵈요...
pm 7시 15분 통초 시청각실
풍물연구회 중요논의를 위해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핸드폰에 언수님으로부터 전화 울리다가 만다.
나: (전화를 왜 하셨지? 금방 끊기는 걸 보니 잘못 하셨나? 어? 그리고 보니 박미옥선생님 부재중 번호도 있네? 오늘 무슨 일 있나?)
From 박미옥: 니 왜 안오노? 니가 출력 해 올거라고 우리가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다아이가. 시작도 몬하고 있다!
닐스, 칼손, 로냐, 요나탄, 군나르, 로비스.... 내가 알고 있는 스웨덴 이름이다. 물론 영철, 미영, 서영, 동욱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표 이름이 될 순 없겠지만 마사코, 이로히토, 하루키 등의 일본 이름에서처럼 풍겨오는 문화적인 이미지는 있다. 변변한 해외여행 못해 본 나로서는 조르바나 박경철의 글에서 그리스를 느꼈고, <완벽한 가족>을 통해 스페인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통해 스웨덴의 냄새를 맡았다. 사회민주주의 정치와 국민복지가 발달한 곳,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를 피해 간 나라, 대도시도 그리 번잡하지 않을 것 같은 나라가 스웨덴이다. 또, 북반구에 있으면서 극쪽에 맞닿아 있어 백야현상이 나타나는 곳, 피오르드식 해안가에서 안개가 피어 오를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슬픈 울음소리에 정신을 잃어버리면 귀신에 홀린 것처럼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신비한 곳 스웨덴을 이 책을 통해 만났다.
도망친 100세 노인을 읽으면서 베테랑 번역가가 엮은 작품답게 번역이 주는 이질감을 거의 느낄 사이도 없이 서사에 빠져들어 정신 없이 이야기를 따라 읽었다. 유머도 우리식으로 녹여 내어 옆구리를 치고 드는 듯한, 방심하고 있으면 웃지도 못하고 지나갈 수도 있는....
나는 실제로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트루먼 대통령, 스탈린, 마오쩌뚱과 같은 인물들의 어느 한 귀퉁이에서 알란과 꼭 그렇게 만났을 것만 같은, 아만다와 헤르베르트 아인슈타인 허구의 인물(인 것 같았다)들도 그럴싸하게 이야기로 버무려 놓았다. 우리나라의 정황도 자세하고 정확하게 풀어내고 있는 걸 보면 작가의 통찰력은 프로이다.
죽기 직전까지 계속되는 삶
내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항상 덥수그레한 바지 저고리에 뒷짐을 진 분이었다. 항상 큰집 마루 대청에 똑같은 자세로 지내던 분이 어느 순간 밖을 돌아다니기 시작하셨다. ‘방구 한자리 묵을래’가 18번이었다. 나는 나이가 들면 생각이 정지하고 삶은 전진을 그만두는 줄 알았다. 나이 40 정도가 되면 모든 인생의 원리를 다 아는 줄 알았다. 생떼 같은 아들 셋을 6.25 전쟁에서 잃은 생의 근원적인 슬픔 같은 건 어린 내가 알 길이 없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채로, 당신은 이해받지 못한 채로 아들 며느리에게서 조차 퉁박을 받으며 생을 마감하셨다.
내가 생각하는 편안한 삶, 편안한 노년이라는 말 안에는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과 어떤 정신적인 갈등 같은 것이 사라진 삶, 생의 연장과 안락함만을 추구하는 듯한 거부적인 뜻이 포함되어 있다. 알란의 삶은 죽기 직전까지 우리의 생각 역시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삶의 이야기의 윤활유, 유머와 위트
삶은 진지하면서도 웃음이 깃들어 있다. 웃음이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호의와 애정을 포함하는 것 같다. 알란은 화를 낼 줄을 모르고,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한다. 알란이 쏟아내는 무심한 말들에 우리는 환호하고 즐겁다.
알란은 정치와 무슨 무슨 이념에 무관심하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도 곤란한 일이다. 이념은 인간의 행복을 기여하기도 하지만, 행복을 파괴하기도 한다. 공자가 제자들과 깊은 산속을 지나고 있었다. 한 아내가 호랑이에게 시부모와 남편, 아들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었다. 왜 안전한 마을로 내려가지 않느냐고 묻자 그곳에는 정치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가지 않는다고 했단다. 알란은 그 평범한 진리를 일찌감치 알아챘는 것 같다.
모순의 수용
살인을 한 사람에게는 그에 응당한 처벌을, 차를 훔친 자에게는 감옥에게......
삶은 그렇게 무 자르듯 간단하지 않다. 논리와 언어가 삶을 대변해 줄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다. 우리의 일상도 그렇지 않은가? 몇사람을 죽인 알란과 그 일당을 우리는 처벌할 수 없다. 그 형사반장 아르?도 그걸 시인했다. 많은 철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두 번 이상 읽어야 하는 책을 겉핥기 식으로 한번 밖에 못읽어서 쓰는 데 엄청나게 힘들었다. 그의 무신경한 유머와 유쾌함, 빠른 이야기 전개로 신나는 책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