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광고카피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지만 221년 전에 만들어진 모차르트의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는 오늘날에도 상당히 자극적인 제목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오페라는 오랜 세월 동안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공연이 금지되는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이런 사연이 전화위복이 되어 어렵다는 오페라의 벽을 허물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데 일조를 한다. 사람들은 오페라를 자세히 알아보려고도 않고 무조건 어렵고 재미없는 것이라고 손 사레를 친다. 스타킹과 같은 인기 있는 프로에서 오페라의 아름다운 노래들을 수없이 접하면서도 정작 그게 어느 오페라의 아리아인지는 알려고도 않는다. 하지만, 호남오페라단의 제34회 정기공연물 ‘여자는 다 그래’는 오페라가 막장 드라마같이 유치하지 않으면서도 그만큼 웃기고 재미있는 것이라는 것을 대중에게 깨우쳐 준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청중은 고상한 향락을 충분히 즐길 줄 알았다. 웃을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폭소를 터뜨리면서 작품에 몰입하였다. 자극적인 대중예술에 길들여진 우리 젊은이들에게 이런 정서가 있다니 그동안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고단함과 외로움이 단번에 보상을 받는 듯 한 자못 흐뭇한 시간이었다. 이번 공연이 호남오페라단의 창단 25년주년 특별기획공연이란다. 그동안 대한민국 창작 오페라에 명운을 걸고 고군분투하던,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호남오페라단이 몇 년 전부터 소극장 오페라에 정성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오페라 인구의 저변확대라는 사명감과 현실적 요구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일수도 있겠지만 그 방향설정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아무리 좋으면 뭐하나 관객이 오지 않는데…. 공연장소의 선정부터 합창을 배제시킨 것이랄지, 관현악단을 최소화한 것 모두가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한 고육책이지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관악기와의 밸런스 유지를 위해 현은 적정수로 보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번안 오페라는 원어로 듣는 맛을 잃어버려 원작의 손상이 불가피함에도 불구하고 호남오페라는 이번 공연에서 청중이 재미있게 듣고 웃을 수 있도록 대사를 우리 현실에 맞게 수정하였다. 대사 중에 소녀시대나 송혜교, 김태희가 튀어나온다. 김어진의 연출도 이제 오페라가수는 노래만 잘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우치듯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가수들이 자연스런 연기와 노래로 관객에게 교감을 이룰 수 있게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였다. 무대에 선 가수들은 자칫 제 흥에 겨워 애드립으로 작품의 격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있는데 다행히 균형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현장의 피드백도 중요하지만 마당놀이가 아닌 바에야 지나침은 금물이겠다.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는 주인공이 따로 없고 출연자 여섯 명 모두가 주인공인 흔치 않는 오페라이며 유독 중창이 많은 오페라이기도 하다. 2중창, 3중창, 4중창, 특히 2막의 6중창 부분에서는 서로의 입장과 처지가 각각 다르면서도 한 노래로 버무려 지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경탄을 자아낸다. 그만큼 개인기뿐만 아니라 가수들의 앙상블과 협력이 중요한 오페라이다. 오늘 공연은 여섯 명의 노래 선수들이 아귀가 딱딱 맞는 연기와 좋은 앙상블을 이루어 보는 재미를 더했다. 끝으로 호남오페라로서는 부지휘자 조지웅에게 마지막 날 바통을 쥐게 한 것이 쉽지 않은 용단으로 생각되나 조지웅은 가장 어렵다는 오페라 지휘를 무난하게 감당하여 장래가 기대된다. 더구나 그의 해설은 노련하고 의젓하기까지 했다. 한마디 곁들인다면 멋있는 지휘보다 멋있는 음악을 이끌어 내는 것이 지휘자에게는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모처럼 재미있게 큰 박수를 보낸 공연이어서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지성호 작곡가
출처 : 전북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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