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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초에 친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생전 할아버지께서는 거제도 수산마을 이장을 30여년 하시면서 남해안 별신굿과 관련하여 일을 하셨었다.
예전 할아버지가 나온 책을 정리할겸 생각도 나고 해서 블로그에다 올려본다.
참고>내용 속 사진(마을어른)으로 등장하고 오완기(76세)할아버지라고 나오신다.
출처 2004 민속악소식 겨울호 기획글
서인화 / 전 국립민속국악원 학예연구사
현 부산국립국악원장
soinhwa@ncktpa.go.kr
거제도 수산마을 별신굿
지난 11월 12일부터 14일까지 거제도 수산마을에서 별신굿이 열렸다. 2003년 문화관광부가 '문화,역사마을 만들기' 사업지로 거제 수산마을을 선정한 후, 관련 사업을 추진해오던 '문화,역사마을 만들기 거제시 추진협의회'와 거제문화원이 수산별신굿 재현행사를 주최한 것이다. 휴일을 이용해 정영만 일행의 남해안 별신굿을 보려고 거제도를 찾았는데, 뜻밖에 행사가 공식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대사산이(굿의 우두머리 악사)정영만은 특유의 여유로 굿을 자연스럽게 연출했다. 정영만(1956~)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남해안 별신굿의 중심인물이 된 세습무로, 지난 2003년 KBS창립 30주년 특별기획 5부작 '소리'중에 '다도해의 제사장'이라는 타이틀로도 소개된 바 있다.
남해안 별신굿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거제도를 중심으로, 통영시 일대의 어촌과 한산도, 사량도, 죽도 등지, 그리고 부산 인근 남해안 연안마을에서 행해져 왔다. 어느 마을굿과 마찬가지로 제의를 중심으로 한 축제를 통하여 마을 주민을 통합시키는 사회 및 예술적 기능을 갖춘 공동체 의식이다.
거제도의 경우, 구조라, 양화, 갈곶, 학동, 망치, 죽림포, 지세포 등 여러 지역에서 별신굿을 행해왔지만, 지금은 수산마을에서만 행하고 있어서, 문화관광부가 수산마을을 '문화,역사마을 만들기'사업지로 선정했던 것 같다.
푸른 남해를 마주한 거제시 동부면 학동리 수산마을 선착장에서 펼쳐진 굿에서 큰머리를 올리고 놋쇠판으로 만든 긴 비녀를 꽂은 무녀의 모습, 남해안 무가 특유의 선율, 통영신청을 통해 전승된 삼도수군 통제영의 세면가락(삼현가락), 그리고 적지않은 젊은 학생들과 악단의 연주자들이 굿 악사로 참여하고 있는 모습 등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 글을 쓰면서 자세한 부분에 대해 정영만 선생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수산마을 별신굿의 진행
남해안 별신굿은 현재 거제도 수산마을과 죽도에서 전승되고 있다. 마을마다 굿이 달라서 섬마을에서 하는 것과 육지를 끼고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하는 것이 특징이 다르다고 한다. 수산마을은 육지를 끼고 있는 경우이다. 정초에는 정영만 일가에서 여러 지역을 다니며 지역에 맞게 조금씩 다른 별신굿을 해왔다고 한다.
수산마을은 원래 정월 초하루에 별신굿을 한다. 그 재현행사인 이번 굿은 11월 12일 저녁, 마을 당산 신령에게 별신굿의 시작을 알리는 '들맞이 당산굿'으로 시작되었다.
자정부터 새벽에 산신께 굿을 한다고 고하는 산제(위만제)는 비공개적으로 행했다고 한다. 다음날 13일부터 14일까지 본래 많은 굿거리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예상치 않은 비바람때문에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다. 여기서 본래 계획된 일정을 소개하면, 먼저, 이른 아침에 일월성신에게 복덕을 기원하는 '일월맞이'를 한 다음, 메구를 치면서 당산에서부터 용왕굿터까지 마을을 돌면서 잡귀를 몰아내는 '골메기굿'을 한다.
원래 골메기 굿은 메구패가 굿을 치며 온 마을 집집마다 도는 것이지만, 이날은 한 집만 들렀다. 다음, 바다를 관장하는 용왕님을 맞는 '용왕맞이'를 하고, 이어 제청과 마을에 부정한 것을 씻어내는 '부정굿', 일종의 조상굿으로 여성신인 '가망'(가망할매)에 대한 '가망굿', 팔도 명산의 선왕(서낭)들을 다 불러 평안과 풍어를 염원하는 '선왕굿', 조상신이며 남성신인 제석에게 복을 비는 '제석굿', 용왕님께 풍어를 비는 '용왕굿'을 한다.
이렇게 신들을 모두 청한 다음 상을 차려 큰 굿을 시작된다. 먼저, 동네 문서를 보관하는 괘(지동괘)를 열어 두고 굿을 하는 '지동굿', 손님신에게 마마에 걸리지 않도록 기원하던 굿으로 곡식을 중하여 여기고 부모 공양을 잘하라는 의미를 담은 '손님풀이'가 있다. 특히 지동굿을 할 때는 마을 어른이 마을 문서함(지동괘)을 들고 꽹과리, 북, 태평소 가락을 부는 악사들과 함께 행렬을 지어 굿청으로 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오랫동안 마을의 이장을 지내고, 수산마을과 남해안 별신굿의 산 증인이기도 한 오완기(76세)할아버지가 그 역할을 맡았다. 오완기 할아버지는 지동굿이 진행되는 동안 줄곧 제상 앞에 앉아서 음식도 드셨다. 어떻게 산 사람이 굿청의 제상을 받나 궁금하게 여겼는데, 이러한 진행방식은 조상과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을 담아 전통적으로 행해온 것이라고 한다.
별신굿에서 해금을 연주하는 정영만의 딸 정은주에 따르면, 죽도에서 별신굿을 하면서, '좌우밥상'이라고 해서 집안마다 어른들에게 밥상을 정성껏 차려서 만수무강하시라고 절하고 술도 따라 드리는 의식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이러한 경로사상의 발현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좌우밥상'은 2~3일 하는 굿의 둘째 날, 특정한 굿거리가 아니라 아침이나 점심의 적당한 시간에 하는데, 과거에는 굿이 최고의 축제였기 때문에 며느리가 시집온 날 가져온 방석을 농안에 두었다가 이날만은 꺼내어 깔아 드리고, 기생들의 권주가도 들어가면서 동네 어른들이 함께 환갑잔치처럼 이 시간을 즐겼다고 한다.
'지동굿'과 '손님풀이'는 묶어서 '손굿'이라고 한다. 남해안 별신굿을 큰 굿과 잔삭다리로 구분할 때, 여기부터 큰 굿에 해당된다. '손님풀이'는 본래 1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긴서사무가이고, 숙달된 대모(큰무당)만이 할 수 있다. 이어,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고금역대', 평소에 지은 업보에 따라 지옥이나 극락으로 가니 선행을 하도록 권하는 '황천문답', 유고식 제문이 많이 들어있는 '축문(열두축문)', 죽은 넋의 천도와 환생을 기원하는 '환생탄일', 저승을 관장하는 열명의 대왕(十王)에게 죽은 넋의 천도와 살아있는 이들의 발복을 비는 '시왕탄일'이 있다. 이날은 이러한 큰 굿중 '축문'과 '환생탄일' 사이에, 마을에서 이전에 죽었으나 굿을 못해준 영혼을 위한 '원혼굿'을 넣었다. 이때는 본 제상 옆에 따로 제상을 따로 차렸다.
다시 작은 굿으로 이어진다. 무신, 장졸들의 넋과 굿을 하는 동안 맞아들이지 못한 영혼을 위한 등 '군응굿'을 하고, 이어 떠도는 영혼이나 제청에 좌정하지 못한 잡신들을 먹여 보내는 '시석'을 한다. 마지막으로 '가래소리'를 부르며 동네의 묵은 액운을 멀리 보내는 띠뱃놀이로 끝난다.
수산별신굿 재현행사에서는 점심식사 시간 후에 거제농악 공연과 학춤이 있었다. 또 사물놀이팀을 초청해서 다양한 공연을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특히 거제농악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지신밟기의 연희형태와 군의 전법농악이 혼합된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고 하는데, 호남우도나 좌도 굿에 비해 쇠, 북, 소고, 징, 기수가 많으며, 많은 북수들이 변화무쌍한 쇠가락을 받쳐주는 점이 특징적으로 보였다.
굿은 자정을 넘겨서 까지 계속되었다. 정영만은 옛날 어른들이 이런 상황을 보고 "서낭대는 이슬을 양껏 머금고 고개를 푹 수그리고, 굿청에 사람들은 졸음이 와서 고개를 양껏 숙이고, 한설음 세월이 흐르는 냥 발간 촛불만이 환하게 비추더라"라고 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이 시간쯤, 용선춤과 탈놀이 공연을 했다. 용선춤은 대나무를 가늘게 잘라서 배 모양의 골조를 만들고 여기에 한지를 감고 8보살, 선실 따위를 만들어 단 것으로, 혼령을 태우고 저승으로 가는 배를 상징하는 반야용선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춤을 추는 것이다. 정영만이 1993년부터 용선 하나로 재현하기 시작해서 1996년 6월 정식으로 해 보았다고 한다.
푸른색과 붉은색 두 대의 용선이 등장하는데, 규모가 커서 놀랐는데, 정영만 선생은 옛날에는 호상이나 잘 사는 집에서 오구굿을 하면 넓은 마당에서 용선을 놀았다고 한다. 당시에 춤은 현란하게 추지 않았지만, 현재 용선춤의 규모와는 별로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낮에 굿이 쉬는 동안, 구경꾼들은 용선을 장식할 다양한 종이 조각을 푸는 등 여러 가지 작업을 거들기도 했는데, 왜 이리 용선을 만들지 않았는지 물어보니 재현행사인 만큼 관객들이 용선 제작에 직접 참여하고 체험하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단순하게 보이는 종이 작업은 실제 아주 정교한 것 같았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꼬깃꼬깃 만들어 붙인 종이로 멋진 용선을 장식하게 되었다.
탈놀이는 본래 굿을 하는 중간에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덜고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놀이이다. 탈놀이도 인적 구성이 어려워 단절되었던 것을 용선춤과 함께 1990년대에 정영만이 재현한 것이다.
중광대탈놀음과 해미(할미)광대탈놀음이 있는데, 이번 행사에서도 중광대와 해미광대가 잠시 출현하여 굿을 했다. 해미광대는 당산할미가 불러들이는 풍유를 상징하는 것이고, 중광대는 소모(소무)와 '수작'을 벌이는데, 중광대탈놀음은 통영오광대 등에 나타나는 중춤놀이과장과도 관련이 있다. 탈은 원래는 종이로 만든 지탈로 하고, 행사를 하고는 태워버렸지만, 편의상 바가지로 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굿의 각 거리 사이사이에는 악사들이 다양한 장기를 발휘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아쟁, 거문고, 젓대(대금), 해금, 피리, 장구 등의 시나위합주, 타악기의 사물놀이, 장구잽이가 정영만 일가에서 수십년 전승되어온 장구로 설장구를 하는가 하면, 악사 공대원의 시나위제 대금산조라고 하는 강백천류 대금산조를 연주해서 자연스럽게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또, 이 별신굿이 남해안 수산 별신굿의 재현행사였던 만큼, 마을회관 2층에는 제단을 장식하는 태전(혹은 신태전), 각종악기, 한지로 만든 보살, 혼백을 모셔두는 신광주리 등 무구와 홍치마, 쾌자와 무복, 악기, 탈 등을 전시하여 별신굿에 사용되는 다양한 도구들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남해안 별신굿의 악기와 음악
남해안 별신굿의 반주는 장구, 북, 젓대, 피리, 해금 등 삼현육각과 징, 그리고 아쟁, 거문고, 가야금 등이 들어간다. 삼현육각 이외에 아쟁, 거문고, 가야금 등은 새로 편성한 것이다. 장구, 젓대, 피리, 북 등 악기가 특이하게 보였다. 장구는 보통 장구보다 작은데, 이동이 용이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특히, '손님풀이'에서 장구가 특이하게 쓰이는데, 손전(가는 대나무 가지에 흰 종이를 서너 가닥 묶어 손에 드는 무구)을 꽂은 장구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장구를 치면서 무가를 부른다. 전에는 굿청이 작았고, 이처럼 장구는 악기이지만 동시에 무구처럼 들고 춤추며 쳤기 때문에 작은 장구가 적합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작은 장구는 일본의 산노쓰즈미와 비슷하게 보였다. 산노쓰즈미는 한반도에서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의 궁중음악인 가가쿠(雅樂)의 한 부류인 고마가쿠(高麗樂)에서 장단을 연주하는데, 몸통의 길이가 약 20cm로, 바닥에 놓고 움직이지 않도록 왼손으로 가운데 들어간 부분의 끈을 잡아 고정시키고 오른손의 채로 치는 것이다.
대금은 일반 대금과 달리 취구, 지공과 청공이 일직선 상에 있지 않고, 취구가 입쪽으로 약간 넘어와 있다. 고음을 용이하게 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대금은 입술이 안쪽으로 들어가야 소리가 크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실제 산마루에서 이런 젓대를 불면 온 동네에다 들렸다. 또, 이런 젓대는 일월맞이, 부정굿, 제석굿, 가망굿, 군응굿 등 잔삭다리에서 한 거리의 굿이 끝나갈 무렵 굿을 준비한 관계자들을 꿇어 엎드리게 하고 굿을 준비하는 정성이 부족했음을 꾸짖는 절차에서 명태와 함께 이들을 때리는 도구로 사용된다. 또한, 공사(공수)을 줄 때, 젓대로 사람의 등을 눌러주고 명태로 때리기도 하는데, 이렇게 몸이 아픈 사람을 만져주면 편안하게 된다고 한다.
이것은 <삼국유사>에 "대나무를 베어와 그 대나무로 젓대를 만들어 월성 천존고(月城天尊庫)에 간직하였는데 이 젓대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뭄에 비가 오고, 장마가 걷히고 바람과 파도가 자므로 이를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이름하고 국보로 삼았다"라고 하는 대금에 대한 신성한 의식을 연상시켰다. 이 지역에서 대금은 영혼을 청하는 음악으로 통했다. 무가 사설에도 "귀신이 대금따라 오더라"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피리의 경우, 일반 피리보다 굵고 서가 짧다. 음량이 커서 해안지방에 어울리게 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피리 서가 짧으면 상청에서 음이 맑다고 한다. 즉, 이러한 피리의 구조는 음색과 음량과 관련이 있다. 또, 소리를 꺾어주고 이어주는 쎄제침(혀치기)를 하기에도 좋다.
북은 소리북을 쓰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무를 일어 만들지 않고 한 통으로 만드는 통북이고, 주로 원박만을 짚어 주고, 채편보다는 북편을 많이 친다.
장단은 푸너리, 덩덕궁이, 대너리, 조너리, 불림 등이 있다. 선율은 전체적으로 육자배기 토리와 비슷하지만 메나리적인 요소가 있고, 특히 시김새에 있어서 전라도 육자배기토리 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떠는 목에서도 남도의 시김새와 달리 가늘고 잘게 떠는 요성을 많이 쓴다.
형식에 있어서는, 각 거리가 시작하고 끝날 때 대금이 청신악과 송신악을 독주로 짧게 연주하는 것이 특이하다. 그 선율은 "솔도레미 미레도레미 미레 미레도 솔라 라솔 라솔 미레 미레도"등으로 불러 "솔라도레미"로 구성된 평조이다. 그런데, 한 거리 안에 공사를 주기 전에 신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신을 정중하게 모시고 바래기 위해 연주하는 '세면가락'도 청신악과 송신악처럼 역시 평조적이다. 아마, 청신악과 송신악은 이런 '세면가락'에서 온것 같다. 이러한 선율은 육자배기토리로 된 시나위와 대조적이었다.
또한, 청신해서 음악을 바칠 때, 지동굿과 같은 큰 굿의 첫머리에서 거상악도 연주한다. 거상악은 모두 6장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나위 속에 섞어서 피리만 거상 1장을 연주했다. 거상악은 계면으로 흘러야 한다고 한다.
무가는 '넋노래,''조너기,''제석노래,'제만수,'수부,'천근'등이 있는데, 이중에서도 "오나리야 헤 오나리로다 헤 어허어어허 오나리로다 이히요 오나리야 노자 놀고 노자 오나리여"로 시작하는 제석노래는 <양금신보>(1610)에 중대엽(中大葉),지금의 가곡(歌曲)과 관련이 있고, 일명 심방곡이라고 하여 실린 곡이 "오나리 오나리소서 매일에 오나리소서"로 되어 있어 관심을 끌었다. 또, '제만수'는 "어라만수 어라 대신이야 하늘이 울어"로 시작해서 성주풀이의 첫 부분과 비슷하다. '천근'은 "신아 어허허어 천하태평 천근이야.."로 되어 있는데 천근은 큰 굿이 끝나는 부분에 들어간다. 망자가 천근이 없이는 그냥 못 가는 것으로, 천근은 하늘에 들리게끔 소리를 울려주어 신이 감응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남해안 별신굿 음악은 단조로운 듯 다채롭다. 그래서인지 박녹주 명창도 통영 신청(권전)에 왔다가 굿을 보러 와서 악사들의 학습이 대단하다고 평했다고 전한다.
남해안 별신굿의 전승
남해안에서 굿은 어정이라고 했다. 또 악사는 고인수이고, 무녀는 지모(드물게 승방)이라고 했다. 작은 지모는 젓지모, 큰 지모, 즉 대모를 원지모라고 했다.
정영만의 가계는 세습무 집안으로 현재 11대에 있다. 남해안 별신굿은 그의 친가인 정씨 집안과 외가인 박씨집안, 그리고 친인척 관계가 되는 이씨집안, 김씨집안, 노씨집안이 대표적인 단골판을 형성해왔는데, 친가는 거제도, 부산을 중심으로, 외가인 이씨집안은 통영, 욕지 등 도서지역을, 한산도는 김씨 집안에서 단골판을 주도해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광복 이후 이들 지역의 신청이 통영신청으로 합병되면서 조금씩 다른 형태의 굿들이 하나로 정리되었다.
정영만의 부모는 굿을 하지 않았지만, 집안 형편상 할머니인 고주옥과 살면서 통영권번에서 아홉 살까지 춤과 음악을 익혔다고 한다. 그러나 성장해서는 굿을 하지 않고 다른 사업을 전전하다가, 왕고모 정모연이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남해안 별신굿 보유자로 지정되면서 이를 이을 사람이 없어지자 본격적인 수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모연, 고주옥이 타계하자, 이들을 이어 문화재가 되었다.
형제가 모두 7남매인데, 굿의 열악한 상황 때문에 정영만 외에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지금은 정영만이 가르친 김현숙, 정옥이가 무녀로 활동하고, 악사로 활동하는 젊은이들은 더욱 많다. 이들은 모두 정영만이 운영하는 '통영국악연구소 신청'에서 배운 이들이다.
아들 정석진(중앙대학교 3학년)은 피리를 하고, 딸 정은주(전북대학교 졸업)는 해금을 한다. 인근 영호남을 비롯한 전국의 국악단체 소속 연주자들과 국악 전공 학생들도 함께 굿을 하고 있다.
전승이 거의 단절되었던 현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밝게 전통을 이어 창조해가는 모습으로 보였다. 이들의 음악적 내용이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넓어지고 있는 것 같다.
지난 11월 4일 통영에서 열린 남해안 별신굿에 참여한 독일 무용가 피나 바우쉬(Pina Bausch, 65)가 참석했다. 1980년대부터 세계여러 도시와 국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드는 '도시, 국가 프로젝트'의 13번째 작품으로 이 땅의 이미지를 모아 내년 한편의 무용극(탄츠테아터)으로 만들어낸다고 한다. 세계가 한국의 굿을 주목하는 것 같다. 수산별신굿에도 일본인들이 몇명 참가했었는데, 정영만은 일본과 유럽에도 남해안 별신굿 보존회를 만들어 해외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수산마을 별신굿에서 본 남해안 별신굿을 이제 세계가 공유할 것 같다.
[출처] 거제도 수산마을 별신굿|작성자 소울캐서린
첫댓글 네 바닷가마을에서 많아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