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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학년도까지 교무과장을 하느라고 바빴지만, 1973년 여름방학 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아내와 나, 넷이서 8박 9일 동안 전국을 여행하기도 했다. 그 여행 후 기행문이 저장되어 있어 여기에 옮겨본다.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기행문이기도 한다.
*73년 7월 29 - 8월 13일 여행일지(부모님과 함께)
7/29 일요일
“여행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공포다. 막연한 공포심이 우리를 사로잡으며 구습에 안도해 보았으면 하는 어떤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 여행은 오히려 일종의 고행을 볼 것이다. 교양의 뜻이 영원을 의미하는, 가장 본질적인 우리의 지각의 훈련이라면 여행은 자기의 교양을 높이기 위하여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위대하고 엄격한 학문과도 같은 여행은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로 이끌어간다.“ A.까뮈
“여행은 인간을 겸허하게 한다. 세상에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입장이 얼마나 하찮은가를 두고두고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G.플로오베에르. 샘터 8월호에서 여행에 관한 말 두 군데를 옮겨보았다.
어제까지 3학년 수업을 마쳤고, 오늘부터 나에게는 방학이 주어진 셈이다. 금년 여름방학은 연초부터 화려하게 여행계획으로 가슴 벅차게 하고 있다. 방학이 가까워지면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나의 화려한 여행계획을 소개하면서 자랑과 함께 계획적이고 재미있는 삶을 강조하곤 했었다. 오늘부터 여행이 시작된다. 한 시간 앞도 예견할 수 없는 인간의 생활에서 앞으로 어떠한 사건이 여행을 방해할 런지도 모르지만 계획대로 된다면 금년 여름방학은 뜻있게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집을 떠나면 고생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까뮈도 공포라고 했을 것이고, 고행이란 말을 썼을 것이다. 돈이 아까워서 어떻게 여행을 하느냐고 말한 촌부도 있다. 확실히 돈을 길에 뿌리고 다니는 것이 여행이다. 아까운 것 생각하면 여행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돈을 뿌리고 다니면서 얻어지는 것이 많은 것이다. 플로오베에르 말대로 하면 인간을 겸허하게 하고, 까뮈의 말대로 하면 교양을 높인다고 했으니 여행은 가치 있는 것에 틀림없을 것이다. 다행이 필요한 물품들이 며칠 전부터 쪽지에 메모되어 있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놓은 것이다. 준비부터 빈틈없이 해서 여행의 불편을 줄여보려고 한 것이다. 오늘은 교회에 다녀온 후 여행을 출발한다. 우리의 여행길에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고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이아침에 기도한다.
8/3. 금요일
7월 29일 백수를 출발해서 만곡에서 이틀 밤을 자고 광주로 왔다. 29일에 오후 버스로 만곡에 가면서 장날 때문에 초만원버스로 다소의 고통을 겪었다. 잉꼬가 들어 있는 새장을 탈 없이 가져간 것이 다행이었다.
내일은 기차로 대전까지 가서 속리산 법주사부터 관광을 시작하려고 한다. 여행계획과 예산이 다소 차질이 나서 계획대로 될 런지 모르겠으나 돈이 허락하는 데까지 돌아다니다가 돈 떨어지면 돌아올 예정이다. 많은 곳을 돌아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순간이다.
8/4. 토요일
첫날 지루한 여행이 끝났다. 10시34분발 서울행 태극호편으로 대전까지 와서 속리산에 갈려고 했는데 비가 많이 와서 교통이 두절되어 못 가고 천안으로 방향을 돌렸다. 천안에서 현충사행 합승으로 가서 마감시간 직전에 가까스로 약 40분간 현충사 경내를 구경할 수가 있었다. 천안으로 다시 나와서 고속버스로 서울로 와서 삼촌 집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속리산에 가지 못한 것이 서운하지만 오늘 여행은 비교적 성공리에 유쾌하게 지난 것 같다.
광주에서 대전까지 올 때는 호남평야의 넓은 들이 마음을 흐뭇하게 했으나 정읍근처를 지날 때 비가 많이 와서 논들에 흙탕물이 끼어 있는 곳이 보였고 어떤 곳은 이미 나락이 핀 곳도 있었다. 또 새마을 사업의 덕인지 초가집이 하나도 없는 마을도 보였고, 어떤 한마을은 기와집이 하나도 없는 곳도 있었다. 대개의 마을은 단계적으로 지붕을 개량하는 듯했고, 부록크 담들이 깨끗하게 쌓여져 있는 곳이 많았다. 특히 온양에서 현충사까지 가는 길은 포장도 잘 되어 있고 도로변에는 초가집이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으며 총천연색의 집들이 깨끗하게만 보였다.
대전에서 속리산까지는 버스요금이 260원인데 택시는 4,000원을 달라고 하더니 가지 않겠다고 하니까 2,500원까지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도 싫어서 현충사로 갔는데 우리가 현충사에 가는 것을 안 기사가 시간이 늦었다고 하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가게하려고 배려해 주는 것은 고마웠다. 고속버스는 처음으로 타 보았다. 천안에서 서울 노량진까지 꼭 1시간 걸렸다 역시 빨랐다.
삼촌 집에 오니 외할머니와 함께 삼촌내외분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하루 밤을 편히 쉴 수 있게 배려해 주어서 고마운 마음을 가지며 잠자리에 들려고 한다.
8/5. 일요일
상도동 삼촌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문화동 누나 집으로 왔다. 오전에 누나와 함께 문화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젊은 목사의 열정적인 긴 설교가 은혜로웠다.
교회에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오후 4시경 삼양동 고모 집에 갔다. 오후에 서울 구경을 하고 내일은 설악산에 가자는 아버지의 말씀이 있었으나 점심을 먹은 후 모두 피곤한 듯 낮잠을 자고 있어서 하루 늦추기로 하고 고모 집에 간 것이다. 고모 집에 가서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성찬이었고 화기애애한 가운데 놀다보니 그대로 고모 집에서 자게 되었다.
삼양동 고모집 뒤편의 모습이 전혀 새롭다. 한국신학대학이 과거에는 산과 언덕으로 인하여 고모 집에서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주 가까이에 보였다. 그사이 산과 언덕이 모두 사라지고 우뚝우뚝한 건물과 집들로 꽉 차있고 새서울이 건설되어 있다. 내가 한신을 그만두고 내려갈 때 한 참 작업 중이었으니까 당연하리라. 그때 밤을 새우며 부루도자 소리가 요란하던 것이 생각난다. 한신의 모습도 건물은 그대로 있으나 주위가 많이 변하여 가보고 싶었으나 비가 가끔 내리고 시간도 너무 늦어 가는 것은 포기했으나 옛 생각이 많이 났다. 아내와 같이 가서 조형과 함께 유실수 심기 운동을 한답시고 심었던 나무들도 잘 있는가 보고도 싶었으나 아쉬웠다.
8/7. 화요일
어제와 오늘 겹친 여행이 다소 피곤하다. 어제는 서울에서 고모, 고숙과 큰 누나네 식구들과 어린이 대공원, 워커힐, 남산 등을 돌아보며 하루를 지냈다. 어린이대공원의 여러 시설, 워커힐의 수박 겉핥기식 구경, 밤에 남산에 오르니 케이블카가 끊겨서 식물원과 서울의 야경만 보고 내려와서 보신탕집에 가서 저년을 먹고 밤 11시가 되어 누나 집으로 갔다.
집에 들어갔을 때는 11시가 되었고 빨래와 목욕을 한 후 밤 1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 6시에 일어나 시외버스 정류소에 가서 속초행 시간을 알아보고 다시 누나 집에 가서 아침을 먹고 10시경 속초행 버스에 올라 오후 5시30분 속초에 도착, 곧 바로 설악산에 와서 인의여관에 여장을 풀고 이렇게 쓰고 있다.
어제의 강행군은 주로 도보와 시내버스였고 오늘은 약 8시간을 버스를 타고 와서 피로가 약간 겹치는 것 같다. 어제 서울에서의 모든 비용은 고숙과 자형이 번갈아가며 모두 부담해서 우리는 잘 먹으면서 편하게 구경만 했는데 두 가정에 너무 신세를 진 것 같아 미안한 마음 그지없다. 어린이대공원은 어른들에게는 너무 비용을 많이 요구하는 것 같고, 시설이 잘 된 대신 밀리는 인파가 어제 월요일인데도 너무 많아 복잡했다. 어린이들에게는 확실히 좋은 장소로 그 안에 있는 어린이들의 표정이 밝았고 가끔 어린이는 칭얼대고 어른은 달래는 모습도 보였는데 어른의 돈 주머니가 달리는 고충이 있는 듯했다. 모든 시설이 무료가 되는 때가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서울에서 춘천을 거쳐 홍천, 인제를 지나 속초에 왔다. 홍천은 내가 장교가 되어 맨 처음 근무했던 지역인지라 눈여겨보아졌다. 1사단 15연대 12중대 1소대장으로 지낸 그 자리에 그 때 그 모습이 많이 보였고 새삼스러우면서도 나와는 이제 거리가 먼 탓인지 생소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북방면 일대가 많이 발전되어 있고 교회가 뚜렷이 보인 것이 신기했다. 버스 차창밖에 보이는 동네들에 우뚝우뚝 교회들이 많이 보이는 것은 흐뭇한 광경이었다. 강원도의 특색이라 할 수 있는 옥수수 밭이 많이 보였고 남쪽보다 확실히 농작물은 빨라서 벼는 2/3이상이 폈고 조를 털고 있는 곳도 있었으며 꽃도 가을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에게 자지 말고 구경하라고 했더니 산과 옥수수 밖에 없으니 구경할 것이 없어 잔다고 할 정도로 산이 많고 옥수수가 많이 있는 것이 강원도인 듯했다. 버스가 고성군에 들어설 때부터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나타나 함께 달렸다. 툭 트인 바다는 마음을 상쾌하게 해 준다. 멀리 수평선이 쭉 그어진 채 망망 바다가 잔잔하니 한없이 바라만 보고 싶은 동해바다이다.
설악산에는 마침 관광객이 별로 없어 여관도 싸고 쉽게 구한 것 같다. 1인당 1박 2식 비용이 700원씩이다. 내일 아침은 새벽부터 설악산 관광을 시작할 계획이다.
8/8. 수요일
설악산에서의 하루해가 저물었다. 오늘 저녁은 수요일인데도 이곳에는 교회가 없어 예배드리러 가지 못한다.
하루 종일 별로 휴식 없이 설악산 일대를 돌아다녔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먼저 비룡폭포에 올랐다. 약 2시간 정도 걸렸는데 비룡교와 육단폭포의 줄교가 장관이었다. 폭포는 제주도에 있는 폭포와 비교해서 별로 보잘 것이 없었으나 시원한 물에서 세수를 하고 어떤 사람들은 등물을 하는 등 물의 좋은 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러나 새벽길에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장소에서 여자들이 유방을 들어 내놓고 몸을 씻고 있는 것은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비룡폭포에서 내려와 아침을 먹고 점심으로 약간의 빵과 음료수를 준비해서 들고 흔들바위가 있다는 곳을 향해 등산을 했다. 가는 길에 신흥사에서 시원한 물도 먹고 구경도 했다. 흔들바위가 있는 곳에는 계조암이라는 암자도 있었다. 사람들이 흔들바위를 밀어보니 그 큰 바위가 과연 눈에 보일정도로 움직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계조암은 바위에 구멍을 뚫어 불당을 만들고 상당히 큰 경내를 이루고 있었다. 바위 밑으로 한 바퀴 돌 수 있게 되어 있고 바위틈에서 나오는 매우 시원한 물이 있기도 했다. 계조암 뒤에 있는 울산바위는 재미있는 전설과 함께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밑에서 보는 바위들의 기괴한 모습이 좋았고 아내가 피곤해 해서 오르지 못하고 온 것이 서운했다. 그러나 오늘의 마지막 코스였던 비선대와 금강굴의 등산에서 울산바위에 오르지 않았어도 후회가 되지 않는 장관을 맛보았다. 와선대의 맑은 물과 바위들을 보며 비선대에 가니 역시 바위와 물이 좋았는데 골짜기마다 관광객들이 박혀 있고 목욕하느라 야단이다. 남자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여자들이 부라자에 내의 팬티만 입고 남자들 사이에서 목욕하는 모습도 보였다. 비선대에서 잠시 쉬고 600m 떨어진 금강굴에 갔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계단으로 된 비탈 길을 약 400m오르는데 경사가 심해 왼만 해서는 못 갈 것 같았다. 땀이 많이 났지만 더운 줄을 몰랐고 스릴이 있어 다녀온 것이 재미있는 코스였다. 설악산관광에 가장 인상에 남을 것 같다. 겉옷까지 모두 땀으로 젖어 비선대에 와서 은폐된 곳을 찾아 목욕을 했다. 시원한 물에 목욕을 하니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오후 7시경 다시 여관에 왔다. 발바닥도 아프고 피로가 겹친 듯도 하지만 흐뭇했다. 내일은 일찍 강릉방면으로 갈 예정이다.
8/11. 토요일 아침
9일 설악산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낙산사와 낙산해수욕장을 보고 경포대까지는 택시로 왔다. 약 80km되는 거리 같은데 7,600원에 왔으니 싸게 온 것 같다.
경포대해수욕장에서는 해수욕을 할까 생각했는데 너무 사람이 많아 자리를 잡을 수가 없어 수박 겉핥기식으로 둘러보고 기차시간이 마침 적당해서 예정에 없는 기차로 북평으로 왔다. 울진으로 갈려고 했으나 마지막 버스가 이미 출발하고 없어 북평으로 와서 북평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했다. 역에서 가까운 곳에 해수욕장이 있어서 맑고 깨끗한 동해 바다 물에 몸을 담굴 수가 있었다. 툭 트인 바다와 깨끗한 물이 동해바다의 특징인 것 같고 모래가 있는 곳은 모두 해수욕장으로 어디서나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북평에서 약 3시간 머문 후 저녁을 먹고 다음에 오는 열차편으로 영주로 왔다. 밤 12시가 넘어 영주에 도착하여 열차를 바꾸어 탈 수 있었으나 피곤하여 영주역 근처에서 여관에 들어 쉬고 10일 아침 8시 기차로 영천까지 와서 버스로 바꾸어 타고 경주에 왔다. 어제 경주에서 하루 불국사와 석굴암을 돌아보았다. 불국사는 세 번째 왔는데 옛 모습이 많이 사라지고 관광지로의 개발이 많이 된 인상이다. 산뜻한 새 맛이 있으나 고적으로서의 가치가 훼손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굴암은 보존시설이 잘 되어 있고 예나 다름없다. 경주의 여인숙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아침식사 후에 버스로 부산으로 갈 예정이다.
8/11. 토요일 저녁
아침식사를 마치고 경주에서 고속버스 편으로 부산에 갔다. 부산에 가서 대략 구경하고 배편으로 여수에 갈 예정으로 바쁘게 서둘렀다. 부산에 도착하여 곧 부두에 가서 배 시간을 알아보고 해운대에 갔다. 해운대 온천에서 온천욕을 약 1시간 하고 부두에 오니 2시 여수행 배가 결항이고 4시에 삼천포행 배가 있어서 타려고 했다. 점심을 먹고 용두산 공원에 올라 전망이 좋아서 부산시내와 바다를 바라다 볼 수가 있었다. 공원에는 전망대를 만드느라 높은 탑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원에서 3시경 내려와 부두에 가니 배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고 표를 살 수가 없어 배 타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고속 터미널에 가서 마침 대구행 버스가 있어서 대구로 와서 숙소를 정하고 이렇게 쓰고 있다. 여행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 배타는 것이고 고속버스 타는 것이 가장 쉬운 것 같다. 배를 타려고 땀을 흘리며 약 40분간 줄을 서서 기다린 것이 허사가 되어 집에 올까 하고 항공사로 광주행 비행기가 있는가 알아보았는데 그것도 없고 그래서 대구로 왔는데 와보니 잘한 것 같다. 내일은 해인사로 해서 남원을 거쳐 광주로 갈 예정이다.
부산에 한번 가보고 싶은 때가 많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부산을 본 것이 좋았다. 우리나라의 두 번째 큰 도시인 부산에는 관광지도 많은데 타지도 못한 배를 타려고 제대로 구경을 못한 것이 아쉽다.
8/13. 월요일 아침
어제 밤 11시 무사히 집에 왔다. 8박9일의 여행에서 한 번도 아프지 않았고 무덥기는 했지만 날씨도 좋았고 좋은 조건과 기회들을 만나며 무사히 여행을 마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어제는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대구에서 7시 50분발 직행버스로 해인사에 갔다. 10시 30분경 해인사에 도착해서 구경을 했다. 절의 건물이 많고 주위의 나무가 울창한 것이 다른 곳과 비교되었고, 가는 길은 도로공사로 복잡하여 시간이 지연된 것 같았다. 해인사하면 팔만대장경을 생각하는데 크고 기다란 건물 두 채와 작은 건물 두 채가 팔만대장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절 주변에는 가야산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소리가 시원하고 좋았다. 많은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었는데 경상도의 억센 억양의 말들만 가득한 것 같았다. 전라도 쪽으로는 교통편도 없어서 대구행 버스를 타고 고령에 와서 광주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다행이 고령 못 미쳐 광주행 버스를 만났는데 기사들의 호의로 정류소가 아닌 곳에서 버스를 바꾸어 탈 수 있었다. 버스는 한가했고 길은 비포장이 많았기에 기분이 언짢았다. 강원도와 경상도 지방을 다닐 때는 도로도 많이 포장이 되었고 교통도 편리했는데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도로는 협소하고 나빴다. 다행이 군데군데에 도로공사를 하는 모습이 보여 곧 좋아지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은 대체로 계획대로 했으나 교통두절로 법주사를 못 가고 또 배를 탈 수가 없어 한려수도를 구경하지 못했다. 그 외는 대체로 잘한 여행이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고 먹는 것도 값이 싼 백반을 주로 먹었으며 기차 버스 택시들을 많이 타고 다녔다. 가장 많이 든 비용이 교통비이다. 숙소도 값이 싼 여인숙을 많이 이용했다. 여인숙에서 3박, 여관에서 2박, 서울의 친척 집에서 3박 했다. 서울에서의 비용은 누나와 고숙이 부담해 주었는데 상당한 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여행 총 경비가 66,215원으로 비교적 적은 비용을 쓴 것 같다. 여행 중에 가족단위의 여행이 많은 것을 보았다. 우리나라도 가족중심의 레저로 되어 감을 느꼈고, 학생들의 캠핑을 위한 여행이 가장 많이 보인 것은 학생들의 견문을 넓히는 것으로 좋게 보였다. 가족들이나 학생들이 여관에서 방을 빌리고 식사는 직접 해결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비용절약과 새로운 재미를 보기에 적절한 것 같다. 방학의 절반이 여행계획과 준비 및 여행으로 끝났다. 앞으로 남은 기간의 방학도 즐겁게 보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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