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부임하기 전까지 필자는 인터넷에 무지했다. 컴퓨터라면 오직 글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원고를 작성하는 데 활용할 뿐이었다. 그 이외의 용도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2001년 법학과 김재문 교수님께서 경주캠퍼스 부총장 소임을 맡으면서, 학생들과의 소통을 위해 모든 교수들에게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셨다. 학교의 강요(?)에 의해 홈페이지를 이용하던 중, 홈페이지란 것이 참으로 많은 용도로 활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나라 불교정보화의 선각자라고 부를 수 있는 천불동(www.buddhasite.net)의 이승훈 선생님의 도움으로, 2003년 1월에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새로 담당하게 된 <불교와 정보환경론>이라는 전공강의의 보조수단으로 홈페이지를 활용할 뿐이었는데 개설 후 만 2년이 지났을 때 방명록에 불교와 관련한 일반 불자들의 질문이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발하지만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들이 많았다. 그 모든 질문들에 대해 차근차근 답을 하다 보니 어느 새 문답이 200여회를 넘었다. 그러던 중 작년 7월 모 출판사로부터 “내용 불문하고 신간을 집필해 달라.”는 ‘백지 원고’ 청탁을 받았다. 수년 전에 시작한 개인적 연구(고구려 승랑 연구)가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기에 선뜻 응하지 못하다가 필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의 문답이 떠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주변의 권유도 있고 해서 문답이 어느 정도 쌓이면 언젠가는 책으로 묶을 예정이었는데 그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05년 1월부터 2008년 6월까지 만 3년 반 동안 있었던 문답 가운데 절반 정도를 추린 후 주제별로 묶어 이렇게 단행본으로 꾸미게 된 것이다. 몇 가지에 대해서는 문답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내용을 보완하였지만 대부분 게시판의 문답을 그대로 옮겨 실었다.
본서에는 ‘체계불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체계불학(體系佛學: Systematic Buddhology)은 수년 전 불교학 방법론을 모색하는 논문을 쓰면서 필자가 고안했던 신조어다. 체계(System)란 용어는 초기불교에서 대소승, 그리고 밀교와 정토, 화엄과 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불교사상을 수미일관한 체계로 해석한다는 의미이고, 불학(Buddhology)은 기독교의 신학(Theology)에 대응하는 용어다. 굳이 정의한다면 ‘현대의 문헌학적 연구성과에 토대를 두고 불전의 가르침을 유기적으로 조직함으로써 수미일관한 하나의 신행체계로 구성해 내는 불교학’이 체계불학이다.
근대 이후 서구를 중심으로 불전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 인문학적 연구가 시작되었다. 제국주의시대에 식민지 경영을 위한 학문적 보조수단인 지역학, 언어학, 종교학 분야에서 불교가 연구되었는데, 서구 인문주의 전통의 객관성과 과학성, 합리성을 방법론으로 삼았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이러한 인문학적 불교 연구는 불교에 대한 인습적 오해를 시정한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갖지만, 마치 실험동물을 다루듯이 불교를 해부하다 보니 불교의 종교성이 망실되기 쉽다. 갖가지 이설(異說)들이 난무한다. “십이연기설에 대한 태생학적 해석은 후대에 삽입된 것이다.” “여래장 사상은 우빠니샤드적인 아뜨만 이론의 재판(再版)이다.” “천태의 오시교판은 허구다.” “≪능엄경≫과 ≪원각경≫은 중국에서 찬술된 위경이다.” … 이를 접한 불자들은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의 경우도 근대 이후 인문학적 연구의 메스가 가해지긴 했지만, 신구약의 가르침을 체계화 한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이 신앙의 좌표 역할을 했기에 그 종교성은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문헌학을 포함한 인문학적 기독교 연구는 조직신학의 주변부에 기생하는 벌레 정도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근대화가 곧 서구화를 의미했던 아시아에서는 근대화의 위세를 등에 업은 인문학적 불교학이 불교신행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불교의 종교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불교에 대한 객관적, 과학적, 합리적 연구는 중요하며 ‘인문정신의 극한에서 발견된 진리’가 바로 불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 대한 연구가 오로지 문헌학적, 인문학적으로만 이루어질 경우 불전은, 종교 성전의 지위를 잃고 ≪희랍신화≫나 ≪논어≫, ≪맹자≫, ≪장자≫와 같이 인문교양도서로 전락하는 비극적 운명을 맞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신학이 ‘계시의 학문’ 또는 ‘접신(接神)의 학문’이라면, 불교학을 포괄하는 불학은 ‘깨달음의 학문’, 즉 ‘각학(覺學)’이다. 그 방향이 상반된다. 공간적 언어로 표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진리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신학이라면 마음에서 올라오는 깨달음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각학이고 불학이다. 최근 들어 서구의 불교학자들 사이에서도 기존의 불교연구방법에 대한 반성이 일기 시작하였고, 새로운 연구방법을 모색하면서 그에 대한 논문집이 Buddhist Theology(2000)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된 바 있지만, 제목에서 보듯이 그 ‘발상(發想)’에서조차 신학의 옷을 벗지 못하고 있다.
삼계설의 천신(天神) 비판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적 견지에서는 불학의 하위 분과에 ‘접신의 학문’으로서의 ‘신학’을 위치시키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이 기독교 신학의 사고방식이 인문학 전반에 깊이 뿌리내린 지금의 학문 풍토에서는, 신학을 하위 분과로 거느리는 불학의 건립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그런 요원한 목표를 지향한다고 해도 전략적으로 볼 때 우선 불학을 신학과 대등하게라도 자리매김 해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필자는 기독교의 ‘조직신학’에 비견되는 ‘체계불학’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티벳의 대학장(大學匠) 쫑카빠(Tsong kha pa: 1357~1419) 스님의 ≪보리도차제론(菩提道次第論)≫이 그 전범(典範)이라고 생각되어 십여 년 전부터 강의나 글을 통해 이를 적극 소개해왔다. 그러던 중 필자의 생각에 공감하는 몇몇 분들이 ‘현대적 체계불학’ 또는 ‘한국적 체계불학’을 구성해 보라고 권유하였다. 그러나 불전의 양은 다른 종교성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방대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현대 불교학의 인문학적 연구 성과를 취합한 후 옥석(玉石)을 감별하여 수미일관한 신행체계로 구성해 내는 일은 필자의 능력 밖의 일로 생각되어 감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앞으로 눈 밝은 후학에 의해 그 작업이 완수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본서에 대해 감히 체계불학이라는 부제를 사용하였다. 본서에 불전 전체, 인문학적 불교학의 연구 성과 전체가 모두 망라되어 있지는 않지만 하나하나의 질문에 답하면서 모든 답변들이 수미일관한 불학 체계의 한 부분이 되도록 노력하였다.
머리글을 마무리하면서 몇몇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포항공대 수학과의 강병균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누구든 홈페이지를 운영할 경우 게시판에 올라오는 질문에 답글을 다는 것은 ‘귀찮은 일’일 수 있다. 필자 역시 매 번 질문이 올라올 때마다 자판을 두드리기가 망설여진다. 그런데 기발한 질문, 쟁점이 될 만한 질문, 진지한 질문이 올라오면 만사 제쳐두고 컴퓨터 앞에 앉게 된다. 몇 줄 정도의 답글을 달려고 자리에 앉지만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어느 새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장문의 답글이 만들어지고 만다. 필자가 ‘답글 삼매’에 빠지는 것은 오로지 질문의 ‘기발함’과 ‘진지함’ 때문이었다. 개설 후 만 2년간 적막 속에 있었던 방명록 겸용의 게시판이었는데, 게시판을 활성화 시켜 주신 분이 바로 강 교수님이었다. 필자의 저서에서 발견되는 오류도 지적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답하기 곤란한 비판적 질문’들을 주로 올림으로써 필자의 탐구심을 자극하셨다. 강 교수님의 참여 덕분에 단순한 방명록이 <불교문답게시판>으로 변모하였고, 현재 열려있는 <자유게시판>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서두에서 소개했던 천불동의 이승훈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십 수 년 전 출간되었던 필자의 번역서 ≪불교의 중심철학≫(무르띠 저, 경서원 간)의 편집 담당자로서 처음 만나 뵌 이후 불교정보화와 관련하여 이 선생님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모뎀을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하던 시절 ‘천리안 불교 동호회’로 시작한 천불동은 그야말로 세계최대의 불교학 자료실이 되었다. 불교학자들이 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불교정보화와 관련한 최신 자료들이 계속 제공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불자가수 이메이 우이(Imei Ooi)의 ≪자비송(The Chant of Metta)≫을 처음 발견하여 그 가사를 손수 번역한 후 우리 불교계에 보급시킨 분 역시 이 선생님이었다. 필자가 천리안에서 제공하는 개인홈페이지 서비스를 활용하면서 자문을 구하던 중 이 선생님께서는 보다 큰 규모의 홈페이지를 운영할 것을 권유하셨고, 이 선생님의 배려로 필자의 홈페이지는 현재 천불동 서버에 입주해 있다.
필자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질문을 올려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신오유, 정광윤, 유성열, 최명호, 김영목, 전일원, 김종철, 김일룡, 우종인, 이상욱, 박연숙 … dendub, 用花, 탐진치, 길벗, 공유, 무명, 백당시기 …. 대부분 직접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밝히는 잔잔한 등불의 역할을 하고 계실 것이다.
불교에 대한 기초지식을 갖춘 분들과의 문답을 모은 대중성이 떨어지는 원고였기에 애초에 출간을 의뢰했던 출판사에서 원고를 검토한 후 몇 달 후 되돌려주셨다. 새롭게 출판사를 찾던 중 ≪불광≫의 류지호 주간께 문의하였고 며칠 후 흔쾌히 출간을 수락해 주셨다. ‘경제논리’에 역행하는 불광출판사의 ‘인문정신’에 감사할 뿐이다. 아울러 산만한 문답들을 재정리하고 편집해 주신 첫 독자, 출판사의 이상근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불기 2553년(2009) 6월 23일
도남(圖南) 김성철(金星喆) 합장
홈페이지: www.kimsch.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