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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첫 번째 그림
동자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어려운 유년시절을 살아왔으나 내 소중한 인생을 세상 풍파 속에 속절없이 내던져놓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니 세상에는 道가 없고 인간에게는 정의가 없음을 보았다. 현실에 안주할 수 없어 세상을 유력하며 세상을 한번 보았다. 전쟁과 투쟁, 기아와 가난, 인간의 갖은 사리사욕과 욕심 속에 힘 있는 자의 횡포와 약자의 비굴함을 보고 깊고 깊은 생각에 빠진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하늘이 계시다면 왜 인간을 이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었을까.
과연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할 길은 없단 말인가.
그러나 하늘이 계시다면 분명히 道가 있을 것이다.
깊고 깊은 생각 끝에 道가 있다는 깨달음을 갖는다.
② 두 번째 그림
道를 찾아 들어간다. 대순진리회에 입도하여 보니 道의 실체는 보이지 않고 그 발자취만 있다. 즉 구천상제와 옥황상제께서 인세에 강림하신 연후로 후천오만년 선경의 道가 선포되었고, 수도 법방이 있기는 하였으나 구체적인 道의 실천은 보이지 않고 가려져 있다. 도전 박우당께서 양위 상제님 뜻을 받들어 道를 영도하시고, 만수도인들에게 교화를 하고 계셨으나 도전님의 말씀을 직접 모시지 못하고, 전해 듣는 말만 듣다 보니 그 말 속에는 사람들의 사견이 섞여 있어 진리를 보기가 어렵다. 또한 입도를 하고 보니 영대의 元位에는 석가여래가 구천상제 • 옥황상제와 함께 봉안되어 있었다. 혼란한 세상을 구하기 위한 道는 기존 종교의 道가 아닌 새로운 道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와서 과거부터 있어 왔던 부처의 道를 구한다면 굳이 대순진리회에서 道를 찾을 필요도 없고, 이미 있는 절을 통해서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석가불의 道를 닦아 난세를 구할 수 있다면 벌써 세상은 극락이 왔을 터인데도 세상은 오히려 더욱 타락하였고, 더구나 3000년 불운이 다한 지금에도 석가불을 원위에 봉안해 두었으니 상도 박성구는 이해가 되지 않아 수도를 그만두려 하였다. 그러나 전도인(傳道人)으로부터 “석가불을 모셔놓은 자리는 나중에 도전님이 가실 자리이다”라는 설명을 듣고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道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어 수도를 하게 되었다. 이제 道의 발자취를 남긴 분이 확연해진 것이다.
③ 세 번째 그림
소[牛] 발자국 세 개가 선명하고 뚜렷이 보인다.
즉 이제는 세 분 하느님의 발자취를 쫒아 道를 찾아 들어간다. 강증산께서는 구천상제로 밝혀졌고, 도주 조정산은 옥황상제로 밝혀져 하느님으로 믿고 수도하고 있으니 이제 도전 박우당의 정체를 찾아가는 것이다. 도전 박우당께서는 당신께서 세 번째 오신 하느님이심을 성지 순례를 통하여 여러 번 알려 주셨다. 즉 세 분 하느님의 발자취를 남기시는 것이다. 1982년 8월에 상급 임원들을 대동하고 내장산 백양사를 거쳐 논산군 개태사에 납시었다. 개태사 정문 현판에는 大天護山 三天一地 開泰寺라 적혀 있었고 경내에는 미륵삼존불상이 서있었고 또 팔각정 안에는 나반존자가 모셔져 있었다. 백양(白羊)은 乙未年, 신미년에 오신 양위 상제이시고, 내장산은 甑山,鼎山 양산 사이에 감춰진 산을 찾으라는 암시이다. 즉 三神山을 찾으라는 암시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 감춰진 산이 당신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개태사 미륵삼존불을 찾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1986년 5월 14일 상급임원 189명을 대동하고 성지 순행을 다녀오셨는데 광주 무등산을 거쳐, 목포 유달산에 들르셨다가 남원 광한루를 들르셨다. 이곳에는 연못 속에 섬 모양의 산이 세 개가 나란히 인공적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팻말에 각기 영주산, 봉래산, 방장산이라 써붙여져 있었다. 도전 박우당께서는 임원들과 그 연못 속의 三神山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셨다. 그리고 지리산 쌍계사를 거쳐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을 참관케 하셨다. 이것은 바로 당신께서 삼신(三神) 중 미륵이심을 암시하시고자 했던 것이다. 박성구 선감은 이러한 발자취를 좇아 계속 道를 찾아 나아가고 있었다.
④ 네 번째 그림
道를 찾고자 박우당의 뜻을 진심 갈력으로 받들어 나가자 박우당께서는 계속 발자취를 남겨 좇아오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갖은 시련과 고난이 닥쳐와 앞길을 가로막지만 굴복하지 않고 오직 도를 찾아 나아가니 점차 박우당께서 하느님이심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은 박우당께서 분명히 인세에 강림하신 하느님이심을 알기는 하였어도 그 분의 정체가 어떤 神이신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당신의 자리에는 석가모니 부처가 앉아 있으니 누런 소의 모양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이때까지만 하여도 박성구 선감은 10여 년을 수도하였으나 윗임원들의 말을 통해 박우당의 뜻을 전해 받았으므로 도전님의 진의를 알기 어려웠다. 상급임원들은 단지 포덕과 유공을 많이 하면 도전의 뜻을 잘 받드는 것이라고 가르쳐 왔으므로 박성구 선감은 당시 누구보다도 포덕과 월성율과 유공에서 남다른 실적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상급임원들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도전님의 진정한 뜻을 알 기회가 왔다. 박성구 선감 앞의 한 내수도인의 유공 문제로 인해 도전님과 3시간 동안 독대를 하여 교화를 듣게 되었다. 여기서 크게 깨달은 박성구 선감은 유공으로 받은 돈을 돌려주고 그후 지금까지 상급임원들의 지시로 행해 왔던 대성(代誠)을 완전히 정리하고 모든 것을 정직하게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때부터 상급임원들은 자신들과 전혀 방향을 달리하고 있는 박성구 선감을 핍박하기 시작했다. 박성구 선감은 임원들에게 갖은 시련을 당하며 도를 닦아 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도전님의 뜻이 상급임원들이 의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버린 박성구 선감은 도인이 잘 살아야 상제님의 덕을 펼칠 수 있다고 교화하면서 도인들에게 사회사업이나 상점 등을 경영하며 포덕을 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상급임원들은 박성구 선감에게 수반 도인들을 돌보지 못하게 해버렸다. 그래서 1988년 3월부터 1988년 12월까지 거의 1년간은 수반도인을 만나지도 못하였고 교화조차도 일절 할 수 없었다. 즉 도전 박우당의 뜻을 알아 이제 그 본 모습을 알아가니 갖은 풍파가 밀어닥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전해 들은 도전 박우당께서는 1988년 11월 29일 서울 중곡도장에서 전체 임원들이 모인 가운데서 박성구 선감에게 상도(上嶋)라는 호를 내리고 방면을 내어주어 상급임원들로부터 분리시켜 간섭을 받지 않게 해주셨다. 그리고 도전 박우당께서는 박성구 선감에게 방면 호를 내려주시기 전에 다음과 같은 절차를 통해 박성구 선감이 도전님의 후인(後人), 즉 眞人임을 확실히 밝히셨다.
도전께서 박성구 선감에게 하문하셨다.
“박성구, 너 道 믿느냐?”
박성구 선감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믿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문하셨다.
“박성구 너, 방면 내어주면 네 배짱껏 할 수 있느냐?”
박성구 선감은 이번에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할 수 있습니다!”
도전 박우당께서는 이렇게 후인(後人)을 세우신 이 날, 각 방면 회관에서 납향치성을 올리라고 분부를 하셨다.
도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도주님께서도 납향치성을 한번 받으시고 화천하셨다. 납향치성을 각 방면 회관에서 올리도록 하라. 납향치성은 제후가 천자(天子)께 드리는 치성이다”
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도주님께서 하느님으로써 산제사를 받으셨듯이 도전 박우당께서도 하느님으로써 산제사를 받으시겠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이제 소[牛]의 모습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당신의 자리로 가시지 않으셨고 당신의 자리는 석가여래가 앉아 있으니 누런 소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앞부분에 조금 흰색이 비치는 것은 그 자리는 석가여래 자리가 아니라 하느님으로써 도전 박우당의 자리라는 것이 조금 알아지는 것이다. 상도 박성구 선감은 지방회관에서 납향치성을 올리고, 음복을 진상하고 폐백으로 향을 도전님께 올렸는데, 그 향은 이후에 영대에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훈시」를 내리실 때 말씀하시기를,
“과거 서가여래도 세 번 절을 받았다. 도주님 재세시에 네 번 절을 받으셨다. 불교에서 절의 주지도 절을 여러 번 받는다”
라고 하시고, 이후에 임원들에게 분부하시길,
“임원들이 지방회관에서 봉심전에 배례를 올릴 때는 元位에만 올리도록 하라고 지시하셨다.
이와 같이 각고의 노력으로 도전 박우당의 뜻을 좇고 또 좇아 나가다 보니 도전 박우당의 정체가 점점 보이기 시작하여 元位의 서가여래가 앉은 자리는 도전님의 자리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진다. 그러나 아직 확신은 서지 않은 단계이다.
⑤ 다섯 번째 그림
누런 소가 없어지고 점점 흰 소의 모습이 드러나 보인다. 즉 도(道)의 실체인 도전 박우당의 정체를 완전히 깨달아지게 되니 서가여래가 봉안된 자리는 바로 도전 박우당께서 봉안되어 세 분 하느님께서 한자리에 모셔져야 됨을 알게 되었다. 세 분 하느님의 정체가 모두 밝혀져 三神이 일체로 계신 것이 흰 소[白牛]이다. 그러나 이것을 깨달아 실천하려고 하자 많은 고난과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다.
1990년 도전 박우당께서는 여주도장 본전 신축공사를 하셔서 완공하시고 10월 25일로 예정했던 영대 봉안을 거행치 않으시고 공사에 참여했던 임원들도 지방으로 내려보내지 않으신 채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그리고 임원들이 식사하러 내려올 때마다 숭도문으로 납시어 무엇인가를 애타게 기다리듯이 앉아 계셨다. 이것은 분명히 어떤 암시였던 것이다. 상도 박성구 선감은 도전님의 의중을 알기 위해 무척 고심하던 중 최해경 차선감을 만나 대화 도중 도전 박우당의 존영이 영대에 봉안되실 도수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상도 박성구 선감이 도전님의 존영을 모셔 올리자 그 뜻을 알 길이 없는 임원들은 모두 상도 박성구 선감을 반목하여 도장 출입조차 못하게 막았다. 이런 때에 도전 박우당께서는 1990년 음력 11월 29일(양력 1991년 1월 14일)에 수임선감, 사정위원, 징계위원과 상도 방면 임원 23명을 회관 4층에 모이게 하시고 공판을 하셨다. 그 자리에서 도전께서는 상도 박성구 선감이 모셔 올린 존영을 가져오게 하시고 “박성구 이름 써서 불태워라” 하시고, 또 『교운』 1장 37절을 펼쳐 보이시며 “너 산제사 이것보고 했지?” 하고 물으시며 이것이 하느님으로서 당신 자리에 가시는 공사가 틀림없음을 확인시켜 주셨으나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었던 임원들은 오히려 상도 방면 임원들과 상도 박성구 선감을 이간시키고, 감사원에서는 박성구 선감에게 出道 처분을 하려는 등 큰 난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도전 박우당께서는 “감사원에서 너를 진작 제명하려고 하였으나, 내가 조금 두라고 해서 지금까지 있는 것이다. 내가 아니었다면 너는 벌써 제명당했어” 하시면서 임원들을 제재하셨고, 1991년 2월 12일 전체 임원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시길,
“도주님께서 도전의 직책을 나에게 주셨다.
설령 아니라 그래도 내 말이라면 들어야 하는 것이다.
‘맡을 도(都) 자(字)’ 옥편에도 그런 도(都) 자가 없더라고 박성구가 말한다
. 옥편에는 총(總) 자(字)로 나와 있다. 거느릴 총(總), 맡을 도(都) 자(字)지.
전(典)이란 법 전(典)이다. 법(法)이 된다.
주장 주(主)는 주인 주(主)이다. 모든 것을 주장하는 사람이다.”
라는 말씀으로 상도 박성구가 ‘석가여래 자리에 도전 박우당께서 모셔져야 한다고 우리의 眞法을 主張하니 법을 주장한 자가 법의 주인인 것이므로 법[典]을 맡아라[都]’ 하시는 의미로 만수도인을 영도하는 都典의 직책을 맡을 것을 발표하셔서 종통 계승을 발표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도전님과 상도 박성구 선감 사이에는 心法으로 전해진 것이었으므로 임원들로서는 그 뜻을 간파할 길이 없었고, 더욱더 상도 박성구 선감을 내몰려고 혈안이 되어 괴롭혔고, 도장에서나 도인들 사이에도 언제나 따돌림을 당하는 처지였다. 설상가상으로 상도 박성구 선감에게는 1993년 5월부터 1994년 7월까지 1여 년 간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되는 병고까지 겹친데다 최해경이 그나마 남아 있던 도인들까지 이간시켜 데리고 가는 일이 발생되어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런 와중에 도전 박우당의 정체가 미륵세존이심이 점점 뚜렷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1995년 도전 박우당께서 토성도장 건설 현장에 납시어 “여기에 미륵을 모실 터를 닦아야겠다”라는 말씀을 하시자 임원들은 얼토당토않게 미륵불상을 조성한다고 부산을 떨었다. 그때 상도 박성구 선감이 토성도장 연수원 마당의 토목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경산방면 이성렬 교감으로부터 그런 일이 있었음을 전해 들었다.
이성렬 교감이 상도 박성구 선감에게 말했다.
“도전님께서 미륵불상을 모신다고 하더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상도 박성구 선감이 말했다. “도전님께서 미륵이시잖아. 그 말씀은 당신을 모셔달라는 뜻이지 않느냐?”
상도 박성구 선감은 眞法眞理를 이야기하였으나 이성렬 교감은 “또 그런 말을 하느냐?” 하시면서 자리를 피해 버렸다.
이제 누런 소의 모습은 지워지고 흰 소의 모습이 완연히 드러나고 있다. 즉 元位에 봉안해 둔 석가여래는 난법으로 세워 둔 것이고, 그 자리는 미륵세존이신 도전 박우당께서 가셔야함이 확실해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서가여래가 봉안되어 있으므로 뒷부분이 누런 소의 형태가 조금 남아 있다.
⑥ 여섯 번째 그림
소는 사라지고 동자가 소의 고삐줄만 쥐고 있다. 줄은 도통줄이며 宗脈이 동자에게 이어졌음을 뜻한다. 즉 1995년 12월 4일 도전 박우당께서 화천하시자 도인들은 지금까지 하느님이라고 믿어 왔던 道의 실체를 잃어버린 격이다.
맥이 떨어져 버렸다.
맥 떨어지면 죽는다. 그러므로 다시 도(道)의 맥을 찾으려면 줄을 쥐고 있는 동자를 찾아가야 한다.
상제께서는 「교운」 1장 41절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도통줄을 대두목에게 보내리라. 도통하는 방법만 일러주면 되려니와 도통 될 때에는 유 • 불 • 선의 도통신들이 모두 모여 각자가 심신으로 닦은 바에 따라 도에 통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어찌 내가 홀로 도통을 맡아 행하리오.”
라고 하셨다.
도전 박우당께서 아무런 말씀 없이 화천하시자 상급임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임원들은 이틀이 지난 12월 6일에야 도전 박우당께서 화천하신 사실을 발표하였다. 유경문 선감이 전 임원들을 회관에 모이게 하고 다음과 같은 말로 진법을 가려 버렸다. “道라는 것은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도전님께서 대두목인 줄로 알았고, 도전님께서 도통을 주실 줄 알았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무런 말씀 없이 화천하셨습니다. 화천하시고 난 후 전경 책을 보니 ‘복중 80년’과 ‘無語別時情若月 有期來處信通潮’ 행록 4장 24절)란 구절이 이렇게 풀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이어나갔다. “종단의 일은 종의회에서 의논을 하여 의결을 거친 후, 도전님께서 해오시던 대로 차질 없이 해나가겠습니다.” 그러나 도전 박우당께서는 이미 화천하시기 전 1991년 2월12일에 모든 말씀을 해두었으므로 화천하실 때 굳이 말씀을 하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임원들은 이런 상황이 닥쳤으면 충분히 도전 박우당께서 아무런 말씀 없이 화천하신 뜻을 알아차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욕심에서 상도 박성구 선감을 인정할 수 없었기에 만수도인들의 눈과 귀를 막아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도인들은 암흑천지가 되어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도전 박우당께서는 재세시 상급임원들을 대동하고 지리산 쌍계사를 두 번이나 다녀가셨다. 쌍계사의 최초 창건자는 의상대사의 제자인 삼법이었다. 삼법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을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의 내용은 이러하다.
“육조 혜능의 頭頂을 모셔다가 三神山의 눈 쌓인 계곡 위, 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
삼법은 이 꿈의 계시에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중국 불교의 조사인 육조 혜능의 두정을 모셔다가 지리산의 금당자리에 육조 혜능의 머리를 평장한 뒤 그 위에 절을 창건한 유래가 있는 사찰이다. 도전께서 쌍계사에 임원들을 대동하고 순행하신 이유는 오조 홍인이 육조 혜능에게 종통을 계승한 내용이 도전 박우당께서 상도 박성구 선감에게 종통을 계승한 내용과 같은 것이었으므로 종통 계승을 암시하시기 위함이었다. 오조 홍인과 육조 혜능 사이의 종통 계승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보리달마에 의해 중국에 전해진 불교의 종맥은 五祖 홍인으로부터 六祖 혜능에게로 이어졌는데, 혜능이 오조 홍인으로부터 종통의 상징인 의발(衣鉢)을 물려받을 때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혜능은 중국 남방의 영남 신주 사람으로 총명하고 본성이 매우 밝았으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집안이 어려워 평소 장작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다 보니 학문을 익힐 기회가 없었다. 그가 어느 날 시장에 나갔다가 어느 사람이 금강경을 잃는 소리에 마음이 동하여 금강경을 가르치는 하북 황매산의 오조 홍인을 찾게 되었다. 홍인이 “너는 어디서 왔으며 여기는 무엇하러 왔느냐?” 하니 혜능이 “저는 영남 신주 사람으로 成佛하러 왔습니다.”하였다. 그러자 홍인이 대뜸 “너는 오랑캐인데 어찌 成佛하랴?” 하며 꾸짖자 혜능이 “佛性에 어찌 남북이 있으리요?” 하고 대답하였다. 홍인은 이러한 문답 중에 혜능의 비범함을 보았으나 홍인은 가르침을 주지 않고 후원에서 방아를 찧게 하였다. 혜능이 황매산에 온 지 여덟 달이 지났을 때, 오조 홍인은 법을 전수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깨우친 바를 詩로 적게 하였다. 이때 가장 뛰어난 제자로 알려진 신수대사는, 詩를 지었다.
그런데 방아 찧는 일을 맡은 혜능은 이 詩를 듣고 아직 깨우치지 못한 詩라며 자신의 詩를 대필하게 하였는데,
그 날 오후에 오조 홍인은 신수와 혜능의 詩를 평가해 주었다.
“이 글을 외우면 죄에 빠지지 않고 복을 이루리라.”
이것의 신수의 詩에 대한 평가이다. 홍인은 그의 시를 인정해 준 것이다.
“이 詩는 깨우침이 없다. 당장 지워버려라.”
이것의 혜능의 詩에 대한 평가이다. 홍인은 그의 시를 혹평했다.
하지만 홍인은 그의 의중을 숨기고 있었다.
홍인은 잠시 후 신수를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아직 문턱을 넘지 못하였으니 더욱 정진하라. 내일 아침에 가르침을 줄 테니 다시 오너라.”
그리고 후원에 방아를 찧고 있는 혜능을 찾아가 말을 걸었다.
“공부는 잘되어 가고 있느냐?”
혜능이 대답했다.
“해가 서산 너머로 너울너울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때 둘이 나눈 대화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혜능의 대답을 듣고 난 홍인은 주장자로 방앗대를 세 번 치고는 주장자를 뒤로 끌며 천천히 돌아갔다. 홍인의 뜻을 깨우친 혜능은 그날 밤 삼경(三更)에 뒷문을 통과하여 홍인을 찾아갔다. 홍인은 그 자리에서 혜능에게 금강경을 해설하고, 가사와 바릿대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 길로 너는 남쪽으로 가라. 그리고 시기가 익을 때까지 절대 법을 설하지 말라.”
혜능은 그 길로 야음을 틈타 이 일이 알려지면 닥쳐올 저해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갔다. 다음날 아침에 신수가 오조 홍인을 찾아갔으나 홍인은 이미 열반에 든 후였고 가사와 바릿대도 없어진 후였다. 그러자 신수가 혜명(惠明)을 시켜 급히 혜능을 쫒아 가사와 바릿대를 찾아오게 하였다. 혜명은 날쌘 중들을 이끌고 추격하여 마침내 혜능을 잡았다. 혜명이 가사와 바릿대를 내놓으라 하자 혜능이 흔쾌이 가사와 바릿대 놓아두고 가져가라 하였다. 그러나 혜명은 그 가사와 바릿대를 들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혜명은 오히려 혜능을 따르게 되었다.
원로였던 신수와 경륜이 적은 혜능은 마치 원로의 상급임원과 수도 생활 십수 년에 불과한 짧은 경력의 상도 박성구 선감과 비유되는 장면이다. 그리고 홍인이 신수를 인정하여 마음을 놓게 한 후, 혜능을 찾아가 심법전수로써 가사와 바릿대를 전한 후 남쪽으로 도망하게 하고, 시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법을 설하지 못하게 한 것은 모두 신수의 질투심으로 인한 저해를 피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마찬가지로 도전 박우당께서 공판에서 언제나 상도 박성구 선감을 꾸짖으시면서도 말씀 속에 眞意를 담아 심법으로 전수하시고, 이후 함구령을 내리신 것은 바로 아직 힘을 갖추지 못한 상도 박성구 선감을 상급임원들의 저해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상도 박성구 선감이 허리를 다쳐 하반신 불구가 되자 상급임원들은 완전히 안심을 하고 상도 박성구 선감에 대해서 더 이상 경계를 하지 않게 되었다. 또 도전님 화천하신 후에 남쪽 포항에서 진법을 펼쳐 나간 것과 혜능이 남쪽에서 15년 후부터 법을 설한 것과 비유가 되는 것이다.
상제께서 「교법」 2장 26절에 말씀하신 “서전 서문을 많이 읽으면 도에 통하고…” 하신 말씀은 서전 서문에는 요 • 순 • 우의 심법 전수가 나오기 때문이다.
精一執中 堯舜禹相授之心法
정일집중 요순우상수지심법
建中建極 商湯周武相傳之心法
건중건극 상탕주무상전지심법
오직 일심을 갖고 도를 잃지 않음은 요 · 순 · 우가 서로 전한 心法이요, 중용의 도를 세워 만민의 삶의 푯대를 세움은 상의 탕과 주의 문이 서로 전한 心法이다.
이것과 같이 구천상제와 도주 조정산께서 서로 心法으로 종맥이 이어졌으며, 도주님과 도전 박우당께서 역시 서로 心法으로 종맥이 이어졌고, 이번에도 도전 박우당과 상도 박성구 선감이 心法으로 서로 전하고 받아 종맥이 이어졌으니 그 이치를 알아서 맥을 놓치지 말고 따라가면 道에 통할 수 있다는 말씀인 것이다.
⑦ 일곱 번째 그림
동자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흰 소를 만났다.
즉 도통줄을 쥔 대두목이 도전 박우당의 정체를 ‘박성미륵세존’으로 밝혀 靈臺의 元位에 봉안하니 三神이 밝혀져 세 분 하느님께서 한자리에 모셔졌다. 완전한 道의 모습을 잡은 것이다. 1995년 12월 4일 도전 박우당께서 화천하시자 1995년 12월 10일에 토성 수도장에서는 만수도인이 운집하여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장지(葬地)는 도전 박우당 재세시 임원들을 대동하고 토성수련도장 동편 언덕에 납시어 바다를 보고 앉으셔서 “여기가 미륵이 앉을 자리야” 하신 그곳에 안장하였다. 그리고 1995년 12월 13일에 도전 박우당께서 마지막으로 혼신의 정을 쏟아 건립하신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영대 봉안을 거행하였다. 도전 박우당 재세시 상급임원들로 구성된 종의회가 있었으나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였고, 화천하시기 전 1995년 8월에 새로 임명하신 여주본부도장 원장 이유종, 토성수련도장 원장 정훈봉, 포천수련도장 원장 손경옥 이상 각 도장 원장 3명과 그리고 종의회 의장 안영일, 전 대진대 이사장 정대진, 전 감사원장 유경문 이렇게 6명의 상급임원들에 의해 모든 행사가 주관되었다. 이들 상급임원들은 영대 봉안을 하면서 영대의 원위에 서가여래를 그대로 봉안하고 정작 그 자리에 가셔야 할 도전 박우당의 존영은 내정에 안치하였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상도 박성구 선감은 “세상에 도(道)가 없어져 버렸다. 암흑천지가 되어 버렸다” 하고는 급히 포항 상도회관으로 돌아와 치성 준비를 하고, 1995년 12월 15일에 도전 박우당께서 ‘박성미륵세존’이심을 밝혀 포항 상도회관 봉심전의 元位에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 조성옥황상제와 함께 봉안하였다. 이로써 천지 삼라만상의 주인이신 세 분 하느님께서 三神으로 한자리에 봉안되신 것이다. 이로써 『전경』의 堯舜禹王一切同과 三人同行七十里가 이루어졌고, 도전 박우당의 훈시에서 말한 出出名將이 나왔으며, 세상의 비결인東海三神不死藥의 도수가 도래된 것이다.
堯舜禹王一切同과 三人同行七十里가 이루어진 이치는 1925년 4월 28일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께서 元位에 봉안되고, 1971년 5월 24일 조성옥황상제께서 元位에 봉안되셨으며, 1995년 12월 15일 박성미륵세존께서 元位에 봉안되셨으니, 실로 70년 만에 세 분이 한자리에 일체로 앉으신 것을 말한다.
그리고 出出名將이 나온 이치는 甑山 • 鼎山이 出하기 위해서는 세 분이 한자리에 모셔져 뫼 산(山)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甑山 • 鼎山의 ‘산(山)’이 공 산[]으로 비어 있어 출(出)을 이룰 수 없었지만, 이제 세 분의 하느님이 한자리에 모셔져 빈 산[]의 가운데가 채워졌으므로 산(山)이 두 개가 되어 출(出)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도전 박우당을 ‘박성미륵세존’으로 봉안하여 뫼 산(山)자가 형성된 道가 出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이 三神의 道를 세계 사람에게 가르치는 도통군자가 출출명장인 것이다.
또한 동해삼신불사약의 도수가 도래하였다 함은 三神을 모신 道가 동해 포항에서 밝혀졌으니 이 三神을 믿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으며, 不老不死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자가 흰 소를 만난 것인데, 이것은 대두목이 도전 박우당의 神을 ‘박성미륵세존’으로 밝힘으로써 세 분 하느님께서 모두 밝혀져 나와서 三神을 만나게 된 것을 말한다. 이렇게 정성 드리고 또 정성을 드려서 드디어 완전한 道를 만났다.
⑧ 여덟 번째 그림
동자가 흰 소를 타고 소와 완전히 일체가 되어 유유자적(悠悠自適)한 모습이다.
도통진경에 든 모습이다.
대두목이 세 분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천하창생들에게 眞法을 열고 道를 펼쳐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1만2천 도통군자를 찾아 세 분 하느님의 유업인 인류의 정신을 개벽하고 인간을 개조하여 지상신선을 실현하고, 포덕천하 • 구제창생 • 보국안민으로 지상천을 건설한다.
세 분 하느님께서 인세에 강림하셔서 열어주신 후천오만년 선경 세상의 道를 완전히 통하여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⑨ 아홉 번째 그림
소는 없고 동자는 神仙이 되었다.
道之通明, 이제 道가 완전히 통하여 자기의 본 모습으로 완성된 신선이므로 세 분 하느님을 모시고 자기 본연의 자리에서 자기 본연의 사명을 다한다. 대두목은 1만2천 도통군자를 이끌어 후천오만년 선경세상을 다스려 나가는 총화주이고, 1만2천 도통군자는 전세계 천하창생을 법리에 맞게 잘 다스려 나가는 출출명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