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클럽
내가 학교 다닐 때 칠 명이 모임을 가졌다.
장차 우리들의 미래를 IGBC 클럽으로 명명 하여 설계해 나가기로 했다.
인터내셔널 그레이트 비즈니스 클럽이 공식 명칭이며 예비역 오하사를 캡틴으로 이리 시에 상전 고창에 목련 홍산에 창연 천안에 명종 금산에 현기 연기에 나가 한 멤버다.
비즈니스 클럽이 빈대클럽으로 둔갑 한 것은 고창에 한 목림과 이리에 이 상전 때문에 얻은 명칭이다.
한 목림 그는 전남 고창 출신으로 다재다능한 능력에 친구다.
말도 조리 있게 예의도 바르게 노래는 백팔번뇌를 대학 가요제 원 싱어 보다 더 잘 불렀다.
내가 그 친구 자치 집에 가서 놀란 것은 너무도 초라했기에 그를 이해 할 수 있었다.
너무도 또렷한 기억 전날 통금 시간을 기해서 어찌하다 보니 그 친구 자치 집에서 잤다.
아침에 그가 좀 일찍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식사를 하자는 것이다.
밥은 쌀밥 반찬은 김치와 간장 통에 두부가 전부다.
지금도 간장 통 안에 두부가 어찌 그리 짜든지 조선간장에 그냥 두부를 사서 넣었는데 고창 간장이 짜다 못해 쓸 지경 이었다.
그랬다. 그는 가난 했다. 키가 184 센티에 몸무게는 60 키로 정도니 벗으면 뼈만 앙상하다. 가끔 그 아버지가 멜방으로 쌀을 닷 말 지고 아들을 보러 온다는 것이다.
그는 장남이고 고창 촌에서 대전으로 유학을 온 것이다.
집에는 밥상 겸 나무탁자가 책상이고 옷장은 비닐로 짜꾸 달린 이불장 겸용이 전 제산이다.
책 몇 권 옆에 담배와 라이터가 있다.
그는 학교에 담배를 가지고 가질 안았다.
나 역시 담배를 양발 속에 감추기가 일수고 그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문제는 이 상전 이 친구는 돈도 빽도 능력도 되는데 담배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골초가 아니므로 있으면 피고 없어도 문제가 없다. 켑틴 오 하사는 가끔 피운다.
비즈니스 클럽이 빈대클럽이 된 것은 이 친구들에게 자주 빈대 당하는 과 친구가 부처 준 이름이다. 점심은 누굴 찾아 가든지 해결한다.
선배든 동아리든 과 친구든 그에게 점심 한 두 번은 다 사주었다. 아니 2년 내내 다 얻어먹고 다녔다.
지갑도 없고 돈도 없다.
그러나 그는 불편함이 없다 언제나 밟고 예의 바르고 웃으며 산다.
“빈대는 굶지 않는다. 다만 쪽 팔릴 뿐이다”
그는 졸업하고 고향에서 지역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상전이는 이리시 백화점집 아들이다. 그 고무부가 광주 지방법원 판사고 이모부는 검사다.
별명은 강아지 물건이다. 일명 “개X”
오 하사가 부처 준 별명이다
그는 알바로 음악다방이나 주점에 디제이를 봤다. 그래서 여자들이 꼬이고 2학년 때에는 고3 여학생과 동거를 했다.
창연이는 부여 홍산 우체국장 아들이며 별명은 눈물이다. 구기 종목 육상 탁구 운동에 제주가 있다, 눈이 작아서 떳는 지 감았는지 잘 분간이 안 간다.
수업 시간에 늘 잔다. 그 눈가에 자욱이 남는 것을 종종 본다.
오 하사는 부안군 동진면 사람이며 본명은 오 연성이다
입학만 하고 군에 갔다 왔으며 학교에 젖소 8마리 닭 천여마리 농장 관리장으로 학비일부와 먹고 자고를 목장에서 해결 했다.
현기는 금산이며 창연 이와 한 방을 쓰는 하숙집 룸메이트다.
명종은 천안이 고향이다.
나의 학창 시절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재수로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 했는데 예비고사 첫 시간에 카드 작성을 감독관이 다르게 설명하여 여러 명이 이의를 제기 하니 감독관 실에 같다 와서 자신이 맞다고 그라 작성하란다.
찜짐 하지만 그리 작성 했다.
예상 점수 270여점 허지만 199점이 나왔다.
너무도 억울하여 돌아오는 길에 둑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시간 반은 울었다,
지금 같으면 교육청이나 인터넷 유포 혹은 다른 방법으로 이의를 제기 해 봤을 텐데 나로서는 방법을 몰랐다.
실업전문대를 간 동기는 후기 접수 마지막 날 토요일이다
12시 까지가 마감 인데 아침 9시에 서울에 형이 집에 왔다, 난 대학 포기 하고 원서를 쓰질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형은 자신이 실패 했는데 부모님 생각해서 전문학교라도 들어갔다, 그만 두더라도 그리 했으면 한단다.
그래서 사진 찍고 청주공고 가서 원서 작성하여 대전에 가니 12시가 넘었다, 마음먹은 학교는 원서 접수 마감 했고 실업 전문대 전화하니 지금 오면 받아 준다 해서 1시 반에 접수해서 들어간 것이다,
들어갔다, 소리 듣고 그만 두려 했으나 놀기는 그만이었다.
오락비가 조금 비쌀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