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갑동마을물통골
 
 
 
카페 게시글
화순군고향소식 스크랩 화순적벽
갑동마을물통골 추천 0 조회 120 12.01.02 21: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화순적벽 화순환경연합 자연회 최 성 영 제공


화순적벽 사진기행(02)
- 망향정(望鄕亭), 적벽동천비(赤壁洞天碑), 적벽가, 적벽8경 -



  이윽고 망향동산의 '망향정'에 도달했다. 이 망향정을 짓기까지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단다. 그 사연인 즉 인근에 있는 광주시가 점차 비대해 지면서 광주시민의 식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광주시가 이 일대를 사들여 적벽을 중심으로 한 이서면과 북면 일대에 지난 1967년부터 동복댐을 축조하였고, 다시 1985년에 댐높이를 올리는 확장공사를 하였다.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댐 공사가 이루어짐에 따라 하늘이 주신 이 아름다운 산천을 수장시키고, 서리, 경산, 월평, 장월, 난산, 보암, 장항, 학당, 사촌, 와촌, 물염, 창랑, 전도, 석복, 석림 등 15개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어, 5700여 주민들이 두 차례에 걸쳐 누대에 걸쳐 살아온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되어 실향민으로 되었단다.
  그때 신농중학교, 이서국민학교, 이서남국민학교, 우체국, 농협, 그리고 이서면사무소도 잠겼다고 한다.

△ 망향정 : 망향동산 한 가운데에 서 있는 망향정, 오른쪽 뒤편으로 망향탑이 보이며, 정 뒷편에 보이는 산은 학소봉이다.

  따라서, 적벽이 있는 이서면 장학리 일대와 그 적벽대안인 학소봉과 이 모두를 아우르는 적벽동천은 이제 마음대로 출입조차 할 수 없는 ‘상수원 보호구역’이 되어, 높고 커다란 철조망으로 막아버렸다.
   그래서 예전처럼 적벽아래 동복호에서 선유는 못한다 하드라도 가까이에서나마 아름다운 적벽을 바라보며 하늘이 물려준 이 아름다운 풍광과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실향의 아픔을 다소나마 위로하기 위하여 망향동산을 조성하고 망향정을 지었다고 한다.

망향정에는 위와 같은 실향의 아픔과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서글픔을 글로 써서 왼쪽부터 차례로 6개의 주련(柱聯)으로 걸어져 있다. 주련을 옮겨 적으면서 글의 해석은 ‘조면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음을 밝혀 둔다.

  碧水浩浩兮我心悚然(벽수호호혜아심송연) :
            푸른 물 넓고 웅장하게 흘러옴이여! 내 마음 두려워라.
  微物首邱兮況是靈長(미물수구혜황시영장) :
            하찮은 미물도 고향을 생각함이여!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겠는가?
  故園未歸兮路隔永年(고원미귀혜노격영년) :
            고향에 돌아가지 못함이여! 영원히 길이 막혔네.
  桑田變海兮山川非舊(상전변해혜산천비구) :
            뽕밭이 바다로 변함이여! 산천도 옛것이 아니구나.
  鄕思鬱陶兮憑欄瞻望(향사울도혜빙난첨망) :
            고향 생각에 근심이 꽉 참이여! 난간에 의지해 멍하니 바라본다.
  日月逾邁兮依稀古阡(일월유매혜의희고천) :
            나달이 흘러감이여! 황량한 들판만 어렴풋하여라.


  * 浩浩(호호) : 물이 넓게 가득 들어참. 넓고 웅장하게
  * 兮(혜) 는 감탄 조사 또는 어미, ...이여!의 뜻
  * 首邱(수구) : 여우도 죽을 때는 자기가 난 고향 쪽을 향하여 머리를 두고 죽는다고 함.
  * 故園(고원) : 고향
  * 桑田變海(상전변해) : 창해상전(滄海桑田)에서 온 말. 세상의 일이 무상하여 자주 변한다는 말. 옛날 마고(麻姑)선녀가 이르기를 '내가 난 이후 동해 바다가 3번이나 뽕나무 밭으로 바뀌었다' 라고 한 말에서 나옴.
뽕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으로 ‘세상일이 덧없이 바뀜’을 이르는 말인 상전벽해(桑田碧海), 벽해상전. 창상지변(滄桑之變). 창해상전 등이 다 같은 뜻이며, 상해(桑海)가 준말이다.
  * 鬱陶(울도) : 마음이 궁금하고 답답한 것.
  * 첨망(瞻望) : 아득히 바라보거나 높은 데를 바라봄. ‘고향 하늘을 아득히 첨망하다.’
  *古阡(고천) : 황량해진 들판. 황량적원야(荒凉的原野)에서 온 말.

△ 망향정에 앉아서 적벽을 바라보며 실향의 아픔을 ......망향정 뒤안에서

  이곳 망향동산 터는 지난날 기우제와 풍년제 등 백성들의 안녕을 빌며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곳인 소도(蘇塗)였단다. 소도는 신성한 지역이다. 그 신성한 땅에 망향동산을 조성하였으니 옷깃이 여며진다.
  망향정은 돌 석축으로 기반을 닦고,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에 검정 한기와를 올린 전형적인 누정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 망향정에서 본 적벽의 일부분

□ 적벽가

  망향정에 앉아 실향의 아픔을 달래려는 사람들을 그려보면서 망향정의 뒤꼍으로 돌아가니 ‘적벽동천비’가 나를 맞이한다.

△ 적벽동천비 : 전면에 적벽동천, 중앙에 적벽8경, 후면에 적벽시비가 배치되어 있다.


  전면에 타원형의 화강암에 ‘赤壁洞天’이라 커다랗게 새겼고 그 기단에는 새까만 오석에 ‘장두석’이 짓고, ‘이옥란’이 쓴 ‘적벽가’가 새겨져 있다. 그 때가 2001년인 단기 4334년 신사년 입추절이다.


    적벽가

하늘을 받들고 솟은 적벽의 웅자여/ 그 기상 타오르는 불길을 간직하고/ 그 마음 지혜로운 물을 배우며/ 그 사랑 일편단심 산을 닮는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는 자/ 여기 와 옷깃 여며/ 이 거울 앞에 바로 서라.//
역사도 가고 인걸도 가고/ 다시 천고의 세월이 가도/ 적벽은 꺼지쟎는 불변의 마음/ 역사의 먹구름 걷히는 산하에/ 내일의 태양은 떠오르리라.//
오오 흙 한줌 바윗돌 하나/ 영원히 불타오를 민족혼이여/ 찬란한 역사의 불기둥이여.


△ 적벽동천 : 적벽동천비의 전면에 새겨진 글씨. △ 적벽가 : 적벽동천비의 전면 아래에 새겨진 적벽가.

□ 적벽8경

  그 적벽동천비의 뒤 중앙의 양편에는 계란모양의 자연석인 오석을 둘로 길게 갈라서 그 자른 면에 ‘적벽8경’을 새겨 좌우에 배치하였다.
  선인들은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8경이라는 이름으로 찬양하고 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그곳의 8경을 또 다시 찾아 내 세운다. 그래서 우리 호남에도 8경이 있고, 적벽에도 8경이 있다. 그 호남 8경 중의 하나가 적벽이며, 또 다시 적벽8경을 찾아 일찍이 동복읍지 (1915년)에 기록해 두었으니, 강선명월 환학청풍 금사어화 한암만종 한산폭포 화표귀운 고소낙조 황니설경이 그것이다.

  강선명월(降仙明月) : 강선대에서 바라보는 밝은 달
  환학청풍(喚鶴淸風) : 환학정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금사어화(金沙漁火) : 밤 백사장에서 고기 잡는 사람들의 횃불과 반영
  한암만종(寒庵晩鐘) : 한산암에서 종소리가 바위에 부딪쳐 울려 퍼지는 메아리소리
  한산폭포(寒山瀑布) : 한산암 동굴 앞에서 떨어지는 폭포 소리
  화표귀운(華表歸雲) : 화표봉 허리를 감고 도는 아침안개의 황홀감
  고소낙조(故蘇落照) : 고소대에서 바라보는 낙조의 풍경
  황니설경(黃泥雪景) : 황어굴 앞 진흙 밭에 쌓인 설경

  그런데 여기에는 동복지에 기록된 것과 다른 적벽8경을 ‘흥덕 장영목’이 해서로 쓰고 그것을 새겼는데, 같은자리에 있는 적벽동천기에는 적벽8경을 고소청풍 강선명월 등이라고 적어두어 혼란을 일으키게 한다.
  즉 '적벽동천기'에 있는 강선명월(降仙明月)은 동복지에 있는 8경 중의 하나인데 반하여, 고소청풍(故蘇淸風)은 새로운 8경(?)속에 들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관성이 없다. 가능하다면 여러 사람의 뜻을 모아 진정한 적벽8경을 내 세우고 이를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 적벽8경 : 적벽동천비의 가운데의 오른편에 새겨진 적벽8경.

  赤壁八景

  寒山曉鐘(한산효종) : 한산사의 새벽 염불 시 들려오는 종소리
  金沙落雁(금사낙안) : 황금빛 모래밭에 내려앉은 기러기
  浮巖觀魚(부암관어) : 보산리 부암호안에서 낚시 드리우며 한가히 지내는 흥취
  赤壁落花(적벽낙화) : 적벽 위에서 나뭇단에 불을 부처 강물로 던질 때의 아름다움
  鶴灘歸帆(학탄귀범) : 장학리 여울목으로 돌아오는 범선
  故蘇淸風(고소청풍) : 고소대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仙臺觀射(선대관사) : 강선대에 나아가 활 쏘는 모습 구경
  雪堂明月(설당명월) : 눈덮힌 당에서 바라보는 밝은 달


  * 한산사(寒山寺) : 한산사는 노루목절벽의 아래에 있었으며, 1950년대 중반에 구지에 한산암 이 복원되면서 절을 왕래하는 범선과 유람선이 운행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유람선을 타고 선유하며 뱃노래를 부르면 절벽이 그를 받아 메아리되어 신선이 된 듯 무아지경에 빠지게 했었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 금사낙안에서 '기러기안'자가 다른자로 새겨져 있지만, 자판이 없어서 이자로 대체 하였다.
  * 부암 : 보산리의 마을 이름
  * 고소대 : 동복천 하류에 김현규의 조대(釣臺)가 있었는데 그 유손들 이 석대위에 모정(茅亭)을 짓고 시구를 많이 걸었는데 정은 폐정되고 석대만 남아 있으며 동복천의 물길과 넓은 평야가 잘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곳으로 낙조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 강선대 : 1641년 적벽 복쪽 언덕 위에 3층으로 단을 쌓아 정지준이 정자를 짓고 강선대라 이름짓고 활을 쏘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이 적벽8경의 아름다움을 즐겼을 선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고, 특히 늦가을 저녁 적벽에 어둠이 찾아 들때 적벽 위에서 나뭇단에 불을 부처 여럿이 함께 절벽아래 강물로 던지면 그 불빛이 적벽을 타고 내려오면서 불바다를 이루는가 하면 그 불빛이 강물에 비쳐 적벽도 타고 강물도 불타는 듯 온 천지를 붉게 물들인 아름다움을 즐기고 풍월을 읊었든 적벽낙화를 즐기며 살아 온 선인들의 풍류를 새삼스럽게 그려본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