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외환위기와 저가의 중국산 제품들이 몰려 오면서 우리고유의 전통들이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젊은 세대 또한 디지털과 인터넷 등 글로벌화에 발맞춰 새로운 것에만 관심을 가질뿐 사라져 가는 우리 것에는 점점 무관심해 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충북지역의 사라져 가는 전통 실태와 문제점을 진단하고 보존 계승 시키는 모습을 사진 취재 보도, 새로운 돌파구를 향한 발전방안을 모색해 본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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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작업 IMF와 중국산 붓이 들어오기 전, 수십명의 직원들을 데리고 작업했으나 현재는 혼자서 모든 작업을 소화해내고 있는 유필무씨가 5평이 조금 넘는 공간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종이상자들은 붓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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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려앉은 산야의 밤에는 정적이 흐른다.
산 짐승도 사람의 마을도 숨죽여 밤의 고요에 침잠한 새벽 어스름, 백열등 불빛에 의지해 붓을 매는 필장이 있다.
몇해 전부터 청원군 문의면 마동창작마을에 둥지를 튼 유필무(柳弼茂)씨(48). 소담하게 자리한 옛 분교건물의 5평 작업실에는 아침부터 새벽까지 붓 매는 손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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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각 붓작업이 거의 끝나, 마지막으로 붓대에 좋은 글귀나 자신의 이름을 서각하고 있는 유필무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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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창작마을의 낮풍경은 나무를 다듬는 둔탁한 망치질과 돌을 다듬는 날선 쇳소리, 낡은 카세트 테잎에서 흘러나오는 큰 볼륨의 음악소리가 어우러져 꽤나 운치있는 정겨움을 전한다. 예술가들의 작업이 만들어내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저녁이 돼 세상소리도 잦아들면 필장의 낮은 작업 소리만이 창가 한가득 하루살이 벌레들을 불러모은다.
시절 좋던 세월도 지나고 흔하디 흔한 중국산 붓이 유통의 큰 줄기를 형성해 버린 요즘. 하루 20여시간을 꼬박 작업에 몰두하는 그는 자연을 닮은 붓 만들기가 최근 작업의 화두라고 했다.
충북 충주가 고향인 그가 붓을 매기 시작한 지도 어언 35년. 이름도 없는 '꼬마'로 불리며 공방에 취직해 모필을 제작한 인연으로 88년 충북 음성에 처음 장원필방을 연후 92년에는 청주에서 유림필방을 또 진천 초평에서 필무산방을 운영하며 전통의 맥을 이어갔다.
온전한 수작업만으로 이뤄지는 붓매기는 여간해서 배우려는 사람이 나서지 않을 만큼 고되고 녹녹치 않는 작업이다. 그러나 1천여종 이상의 붓을 재현 내지 개발하고 싶다는 필장 유필무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식물성이든 광물성이든 다양한 소재로 붓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고 싶다는 그가 최근 모필장이라는 수식에서 '모'를 뺀 이유도 다양한 종류의 붓 매기에 전념하면서 부터. 수입산 양모를 이용한 모필은 높은 가격 부담도 있거니와 다양한 붓 맛을 알아버린 수용자들의 요구가 이어지며 식물성 소재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기록과 자료는 아직 찾지 못했지만 중부지방의 흔한 소재인 띠풀을 이용한 초필은 이미 유씨의 손을 거쳐 상당한 완성도를 갖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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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휜 대나무를 불에 달구어 펴고 있는 유필무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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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는 10년에서 20여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연장을 들고 붓의 현대화 작업을 꾀하고 있는 필장 유필무. 고된 일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 후계자 양성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동안 걸어온 발자취에 대한 기록만큼을 철저하려 한다. 그는 내년께 청주시한국공예관에서 붓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시간만 허락하면 작업과정을 기록한 책자와 CD도 선보이고 싶다.
비록 황소걸음 보다도 더 느리게 진행되는 작업이지만 그는 자신한다. "내년 전시에 오실때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오셔야 할 겁니다. 소재를 망라하고 아우른 다양한 붓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을테니까요"
한달에 200여자루씩 철저한 가내수공업으로 붓을 매는 유필무. 섬유질을 고르게 다듬는 5천여번의 두드림 속에서도 전통을 계승하는 구도자와도 같은 삶을 사는 그는 칠보공예와 도자공예를 붓대에 접목해 유필무류의 맥을 형성하는 그 만의 붓을 만드는 것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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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인 완성된 붓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하는 유필무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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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만들기 12단계
붓 만들기의 과정은 크게 12과정으로 원모선별-지방질제거-초벌정모-배합과정-재벌정모-작편-물 끝 보기- 촉알묶기-필관 맞추기-접착과정-풀 먹이고빼기-붓 완성으로 볼수 있다.
짧게 줄여 사진 맨위부터1. 원모 선별 - 2. 배합과정 - 3. 작편 - 4. 물끝보기 - 5. 테스트
글 김정미 / 사진 노승혁